소설리스트

113화 (113/189)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제공이 앞에서 다가오고 있는 제일 선두에 선 두 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계공(戒空), 계심(戒心),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거죠?”

“닥쳐요.”

상대는 점점 더 화를 내었지만 제공과 시하의 수행 계급에 눌려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치기만 했다.

“마수와 결탁하고도 감히 여기까지 오다니, 당신은 오늘 가체사를 빠져나갈 수 없을 거예요.”

그가 말을 하면서 손을 휘두르자 몇백 명이 넘는 불수들이 제공과 시하를 에워쌌다.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서 있었지만 아무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 다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어 그 장면이 뭔가 대치 상태에 빠진 듯한 모습을 연상케 했다.

제공이 미간을 찌푸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빈승 가체사를 수천 년 동안 관리해 왔지만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부처님께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어요. 방금 유명지해에서 돌아와 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저를 잡아 가두든, 벌을 주든 상관없지만 그 이유는 알아야겠어요. 제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벌은 원망 없이 달게 받겠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화가 잔뜩 나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공은 어찌됐든 가체사의 주지이니 그 위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 앞에 서 있던 계공이라는 민머리 승이 다급히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 사람 말에 미혹되면 안 돼요. 계치(戒痴)와 계진(戒嗔) 사형의 일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제공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계치, 계진 그 두 사람이 왜요?”

제공이 계속해서 그에게 묻자 계공이 차갑게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당신이 감히 그걸 물어요? 두 사형은 줄곧 당신을 존경해 왔어요. 근데 당신이 어떻게 그들에게 그렇게 금수보다 못한 짓을 할 수 있는 거죠?”

금수보다 못하다고? 도대체 어떻게 금수보다 못한 짓을 한 거지? 시하가 제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 뭘 한 거죠?”

제공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두 사람과 마주치지도 않았다고요.”

“정말요?”

“정말이에요!”

계공이 비통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고요. 그래도 발뺌할 셈인가요? 그날 그들은 당신의 손에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또, 또…….”

또 뭐지? 또 뭐가 있는데요.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진진한 이유는 뭘까. 시하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제공을 바라봤다. 당신이 그런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는 시선이었다.

“소사숙님, 저희 둘은 지금까지 함께 있었잖아요.”

제가 무슨 시간이 있어서 사람을 죽였다는 거죠?

“두말할 것 없이, 저는 오늘 두 사형을 대신해 당신 같은 반역자를 제거할 거예요.”

계공이 돌아서더니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오늘은 절대 이 요승을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계공!”

제공이 설명을 하려 했지만 상대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가 먼저 법인을 하자 다른 사람들도 결인을 하여 불법을 읊기 시작했다. 겹겹의 법부들이 하늘에 솟아오르더니 순간 하늘에 거대한 금색의 ‘卍’ 자가 떠올랐다. 무거운 위압이 두 사람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천지에 범인이 메아리치더니 몸에 기혈(氣血)이 거꾸로 솟구치는 듯하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시하는 도겁기의 수사이고 제공은 그보다 대경계나 높은 출규기였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중들이 수가 많아도 그들 중에 수행 계급이 제일 높은 사람은 고작 도겁 초기밖에 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그 ‘卍’ 문자 부호가 내려오자 제공이 두 손을 합장하고 가볍게 “아미타불.” 염불을 외웠다. 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순간 바로 그 범인을 눌러 버렸다. 그의 주변에 반투명한 구리종을 닮은 모양의 결계가 나타나더니 머리 위에 그 ‘卍’ 문자 부호를 부수어 버렸다. 그리고 점점 더 크게 주변으로 확장되어 갔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제자들이 잠시 혼란스러워하더니 방금까지 설치되어 있던 법진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일부 사람들은 법진의 거부 반응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차원이 다른 압제에 방금까지도 기세등등하던 사람들은 한풀 꺾인 듯했다.

갑자기 금빛이 멀리에서 날아오더니 바로 제공의 결계를 부수어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귓가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공 사형, 정말 동문의 우정은 생각하지 않을 건가?”

“사숙님께서 돌아오셨어요!”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제자들이 기뻐하며 우측 방향을 바라보자 시하도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남자는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고, 몸에는 각종 이상한 문양의 검은 문신이 있었다. 머리는 새둥지처럼 생겼고, 등 뒤에는 나뭇가지처럼 생긴 물건 몇 개를 꽂고 있었다. 시하가 깜짝 놀라 그 모습을 바라봤다.

모두 민머리가 아니었어? 머리카락을 길러도 어쩌면 이렇게 개성 있게 기를 수가 있지? 승려는 머리카락을 기르면 안 된다는 금기를 잊은 건가?

제공이 미간을 찌푸리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사제. 제가 이곳을 떠난 지 3개월이 조금 넘었지요. 절에서 제자들을 소환하는 소식을 듣고도 제때에 돌아오지 못한 것은 확실히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동문들을 살해한 일에 내해서는 금시초문이오.”

“제공 사형의 거짓말은 끝이 없군요. 이미 잘못을 저질렀는데 여기서 더 잘못을 저지르면 되겠습니까.”

그 이상한 모습을 한 남자가 웃더니 제공의 해명은 듣지도 않고 잘못을 단정 지었다.

“오랜 세월 동문으로 지낸 우정을 생각해서 계치와 계진 두 사람의 영혼을 돌려줘요.”

제공이 놀라며 물었다.

“영혼이요? 두 사람은 영혼을 빼앗긴 겁니까?”

“사형, 가체사는 제자들이 다른 문파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제한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을 죽이고 영혼을 약탈하는 일은 덕행에 어긋나는 일이죠. 그 마수와 같은 행실은 사형 자신도 망치게 할 겁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고요.”

“증거가 확실해요. 사형이 한 모든 일들이 정세각의 유음벽(留音壁)에 모두 드러나 문파에 적지 않은 제자들이 직접 목격했으니까.”

제공이 놀라 소리쳤다.

“유음벽이요? 말도 안 돼요!”

그는 탄식하듯 제공을 부르더니 이내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저희 불수는 함부로 형벌을 내리지 않지만 당신이 한 일들은 정말이지 천지가 놀랄 만큼 큰일이에요. 당신이 만약 두 사람의 영혼과 우리 문파의 법보인 정생련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더는 동문의 우정으로 봐주지 못합니다.”

“뭐라고요? 정생련도 잃어버렸어요?”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의 질문을 묵인했다. 그러다 손에 들고 있던 묵주를 들고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과 여기 있는 당신의 공범은 저와 함께 계률당(戒律堂)으로 가셔야겠어요.”

나는 왜?

남자는 시하를 한번 보더니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그들이 따라나서지 않으면 바로 공격이라도 할 듯한 태세를 보였다.

“어떡하죠?”

시하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제공이 어두운 안색으로 대답했다.

“저자도 출규기의 수사예요. 저의 수행 계급이 그보다 조금 높긴 하지만.”

시하는 순간 그의 의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를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결계를 하여 옆에 있는 민머리들까지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어쨌건 이 대 다수였으므로.

“그럼 저들과 함께 절로 들어가요?”

“그 일도 그렇게 쉽지 않아요. 저들은 이미 저를 죄인으로 단정 짓고 있으니까요. 돌아가도 진상을 밝히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한테 방법이 있으니까. 이 제공이 있는 한 당신은 안전하죠.”

분위기를 전환할 방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서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사제, 사실 이 일은…….”

그런데 그때, 그가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어, 사부님, 당신이 여길 어떻게 오신 거죠?”

사람들을 비롯해 시하마저도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제공이 그녀의 손을 공중으로 끌어당겼다.

“어서 도망가요!”

이게 당신이 말했던 그 방법인가요? 세상에! 그냥 조용히 도망가자고 하면 될 것을 어린애도 이렇게 속이지는 못하겠네!

제공이 그녀를 이끌고 정신없이 날아오르면서 뒤에서 쫓아오는 무시무시한 민머리 부대를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겨우 쫓아오는 무리들을 따돌리고 나니 두 사람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제공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 와중에도 투덜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이고, 자식들! 내가 지금까지 절에서 소처럼 개처럼 그렇게 오랜 세월 일해 왔건만 이렇게 갑자기 돌변을 해서 괴롭히다니!”

시하는 그에게 끌려서 오다 보니 머리가 좀 어지러운 것 외에는 문제가 없었다.

“당신 주지로서는 너무 실패한 거 아닌가요? 어떻게 그렇게 금방 자리를 내놓을 수가 있는 거죠?”

아무도 편들어 주는 사람도 없지 않았는가.

“아, 아마도 제가 평소에 너무 선량한 모습만 보였던 모양이에요.”

제공이 길게 한숨을 쉬며 자신의 민머리를 어루만지더니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그렇게 저의 이 잘생긴 외모를 질투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양심이 있는 건가? 이 일이 당신 외모랑 무슨 상관인데요! 위기에 닥치니까 아주 자포자기를 하고 본성을 드러내는구나. 중들은 원래 모든 세속에 공허함을 느끼는 거 아니었어?

“말해 봐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방금 그 상황을 돌이켜보면 두 가지 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첫째, 정생련이 도둑을 맞았다. 둘째, 그 정생련을 훔친 사람이 제공으로 위장을 하고 두 제자까지 살해했다. 결론적으로 제공은 그 절에서 이제 두 동문을 살해한 요승이 된 것이다.

“유음벽에 저의 영상이 있었대요. 그러니 제가 지금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그것을 이길 방법이 없어요.”

“선검문의 사람들에게 증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요.”

그들이 선검문에서 3개월 동안 같이 머물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증명해 줄 수 있으리라.

제공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저는 3개월 동안 계속 염하봉에만 있었죠. 그곳엔 저와 당신을 포함해서 모두 네 명밖에 없던 데다가 가체사에서 선검문은 그렇게 멀지도 않고요. 분명 누군가 고의로 저에게 누명을 씌운 겁니다.”

듣다 보니 그 말도 맞네. 염하봉에는 확실히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었다. 그러니 제공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돌아갔다고 해도 할 말은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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