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189)

“이상하네요. 소리의 근원지를 알 수가 없어요.”

제공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하자, 용오천도 미간을 찌푸리고 경계했다.

“조심하세요.”

시하가 그들에게 주의를 주더니 옆에 있는 용오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손은 어때요?”

자세히 보니 방금 그 흑백 공간에서 그려 놓았던 팔이 금빛 속으로 들어오자 자동으로 입체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먹을 잘못 사용한 탓에 팔 여기저기가 검게 물들어 있는 것 외에는 다른 팔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선을 너무 얇게 그린 탓에 확실히 왼팔보다 오른팔이 조금 작은 듯했다.

용오천이 팔을 몇 번 들어 올리며 움직이더니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영기를 움직여 봐요. 영기가 공급되면 바로 전과 같이 회복될 수 있을 거예요.”

시하의 말에 용오천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결인을 하며 영기를 움직였다. 제공도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그의 시커먼 팔을 어루만지며 자세히 살피고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려 놓은 팔이 정말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러고는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탄식하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럴 줄 알았으면 영석이나 그려 갖고 올 걸 그랬네.”

“당신 같은 중이 영석은 왜 필요해서요?”

시하가 그를 흘겨보며 묻자, 제공은 표정을 굳히고는 바로 두 손을 합장하며 말했다.

“하하하. 아미타불, 우선 갈 길이 먼 듯하니, 서둘러 출발하죠.”

그가 서둘러 각종 꽃들이 만발한 넓은 초원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이봐요. 화제를 너무 엉뚱한 곳으로 돌렸단 생각은 안 들어요?

이곳 새로운 지도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상에는 꽃들이 만발했는데 마치 누군가가 예쁜 꽃들만 골라다 놓은 것처럼 모두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게다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배경음악까지 있어 그 아름다움이 더욱 배가되는 듯했다. 시하는 마치 이어폰을 꽂고 식물원을 거니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풍경이라도 계속 보고 있다 보면 지루하기 마련이었다. 화해(花海, 꽃들의 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그들이 검을 부려 십여 분을 날았지만 눈앞에는 여전히 꽃들만 보였다. 그리고 귓가에는 같은 배경음악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곳은 도대체 얼마나 넓은 거죠?”

이렇게 오랫동안 왔는데 아직도 같은 배경음악만 들리다니 졸려 죽겠네. 어떤 음악이든 괜찮으니까 제발 빠른 리듬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어? 잠깐만! 정말 바뀌었네?

방금까지만 해도 느릿하게 흘러나오던 음악이 갑자기 장엄한 국가로 바뀌었다. 분위기 전환이 너무 갑작스럽잖아. 갑자기 뭔가 애국심을 막 일으키는 듯하기도 하고.

시하가 한참 당황스러워하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뒤에서 뭔가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조심해요!”

시하가 힘껏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밀치며 소리쳤다. 그리고 검을 부려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지면에서 거센 물기둥이 솟구치더니 세 사람을 지나 하늘로 올라갔다.

“당신들은 누구죠? 감히 여기를 다 들어오다니.”

화가 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손에 강재(Y자형 철제 강재로, 주로 보안 용품으로 사용됨)를 들고 있었고 몸에는 아주 이상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색이 혼합된 이도 저도 아닌 색의 옷이랄까. 중요한 것은 그녀의 몸 전체가 파란색이라는 점이었다. 그녀의 몸 뒤에는 기다란 꼬리까지 있어서 마치 파란 도깨비처럼 보였다.

설마 여기가 산의 그곳이고 바다의 그곳인 건가? 아니면 방금 그곳에서 너무 심하게 퇴색되어 이곳으로 색을 보충하러 온 것일까? 하지만 이 파란 도깨비의 배경음악이 너무 고급스러운 거 아냐? 국가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다니! 이 도깨비는 분명 엄청난 보스임이 분명해.

“당신들과 같은 침략자들은 참 간도 크네요. 여기까지 다 들어오고.”

여자가 엄청 화가 난 모습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당신들, 들어올 때는 쉽게 들어왔는지 몰라도 나갈 때는 그리 쉽게 나가지 못할 거예요.”

그녀가 말을 하더니 강재를 들어 올리며 조용히 뭔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물기둥 위에서 물줄기가 곧바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뿜어져 왔다. 시하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그 물줄기를 피했다.

방금 그녀에게 밀려난 제공이 어두운 얼굴로 용오천과 함께 검을 부려 다가왔다. 그러고는 초조한 얼굴로 그녀를 살피더니 말했다.

“시주님, 괜찮으신 거죠?”

시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금 그 물줄기는 경고에 불과했다. 때문에 그녀도 쉽게 피해 갈 수 있었고 상처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그제야 안심하여 고개를 돌려 그 물 기둥 속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이건 도대체 무슨 괴물인 거죠? 이제 보니 사람의 말도 할 수 있네요.”

제공의 말에 시하가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몰라요?”

“이런 피부색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시하는 여자가 수선계에 어느 이름 모를 부족의 토착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설마 정말 파란 도깨비인 걸까?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뭘까? 설마 가가멜?

그때 파란 도깨비가 차갑게 말했다.

“흥, 나의 제일 강력한 공격을 피해 가다니, 그래도 능력은 어느 정도 있나 보네.”

뭐라고? 제일 강력한 공격? 방금 그것이? 장난해?

“지금부터는 그리 쉽지 않을걸?”

그녀는 더욱 화가 나서 그들을 노려보더니 뭔가 주문 같은 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방금보다 뭔가 더 복잡한 주문인 듯했다. 파란 도깨비는 족히 2분 정도 주문을 외우더니 손을 들고 휘두르며 크게 소리쳤다.

“죽을 준비나 하시지!”

시하가 깜짝 놀라며 영검을 불러냈다. 제공이 손을 들어 방어 결계를 만들더니 세 사람을 안으로 보호했다. 그리고 긴장된 얼굴로 위에 있는 그 파란 도깨비를 바라봤다. 파란 도깨비 주변의 물기둥이 더욱 거세게 요동치더니 방금과 똑같은 물줄기를 세 갈래로 뿜어냈다.

잠시 후, 물줄기가 호선을 그리며 빠르게 화해로 흘러내리더니 그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적시지 않고 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

꽃에 물이라도 주는 거냐?

“괘씸한 것!”

그때 파란 도깨비는 안색을 굳혔다가 몸에 뭔가 거부 반응이 일어난 듯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더니 입으로 피를 토해 냈다. 그녀가 더욱 사나운 얼굴로 그들을 쏘아봤다.

“나의 가장 강력한 살해 공격도 막아내다니! 역시 그래서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거군.”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설마 이 공격밖에 할 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오늘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만 진정하는 게 어때요?

“이리 와 봐!”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강재를 들고는 또다시 네 줄기의 물기둥을 뿜어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로 분사되었지만 그들로부터 두 장 남짓한 거리에서 바로 아래로 떨어져 화해를 적셨다.

거참, 초라한 보스의 모습이네.

파란 도깨비의 머리 위에 황색 빛이 비치더니 희미하게 숫자가 떠올랐다.

<상처 –1000>

숫자는 눈 깜짝할 사이 바로 사라져 버렸다. 시하는 눈을 비비며 다시 그곳을 바라봤다.

착각인가? 어떻게 상처 지수를 나타낼 수 있지, 게임도 아닌데?

“당신, 당신들!”

파란 도깨비의 얼굴이 더욱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물기둥이 쏴! 소리를 내며 모두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녀가 중상을 입은 듯 피를 토하더니 공중에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당신들 같은 악당들은 내가 증오해. 당신 같은 인간들은 자신의 재주가 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지. 내가 귀신이 되어서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한쪽으로 떨구더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

그냥 그렇게 죽는 거야? 등장할 때 그 거창한 배경음악은 뭐였는데. 배경음악 값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일어나서 국가에 대한 사과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쉽게 굴복한다고?

“순, 아니 시하 동생. 이 사람은…….”

용오천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시하를 바라봤다. 그리고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 시체를 가리키더니 다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네.”

시하가 그의 말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도 120%의 충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의 머리 위로 뭔가 떠오르고 있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또다시 글자 같은 게 떠오르고 있었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이니, 대협은 다시 한 번 도전하십시오.>

왜 이렇게 익숙하지? 이건 단기(單機) 게임에서 실패했을 때 항상 나오는 문구잖아? 근데 그게 왜 이 파란 도깨비 머리 위에 나타나? 수선 세계에 왜 그 쓰레기 같은 단기 게임 설정이 걸려 있냐고. 그것도 자막까지 있잖아!

그때 제공이 사방에 있는 화해를 바라보며 놀란 듯 말했다.

“주변을 봐요! 색깔이 없어졌어요. 또다시 흑백으로 변해 버렸다고요.”

젠장, 자막만 나오는 줄 알았더니 화면도 흑백이네. 이건 정말 그 단기 게임이랑 똑 같잖아. 그 흑백 화면은 얼마 가지 않아 큰 소리와 함께 또다시 새로운 세계로 바뀌었다.

“애려아(艾麗雅).”

또다시 땅으로부터 물기둥 하나가 솟구쳐 오르더니 이번에는 파란 남자 도깨비가 나타나 여자 도깨비 시체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과 비통함이 가득 서려 있었다. 공중에서 울려 퍼지던 배경음악조차 그에 맞게 애잔한 곡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극이 절정에 이른 걸까? 여긴 도대체 뭐 하는 곳이지?

“애려아! 일어나요, 일어나!”

남자 도깨비가 애타게 품에 안은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애달픈 울부짖음 소리에 방금까지만 해도 햇빛 찬란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우레가 울고 번개가 쳤다.

“안 돼, 애려아. 당신이 어떻게 날 떠날 수가 있어. 안 돼, 안 돼!”

남자 도깨비가 품에 안은 사람을 세차게 흔들고는 또다시 비통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서 일어나요. 제가 후회하고 있어요. 정말 후회하고 있다고요. 어서 일어나요.”

“어, 저기…….”

시하가 참다못해 입을 여는 순간, 남자가 사나운 표정으로 공중에 있는 세 사람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들이군, 당신들이 이 여자를 죽였어.”

“아니에요.”

“애려아가 이렇게 착한데, 당신들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죠?”

“제 말을 들어 보…….”

“변명 따윈 필요 없어. 흉측한 이족(異族)같으니.”

“그건…….”

그 여자가 먼저 공격했거든요?

“살인을 저질렀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내가 그녀를 대신해 당신들에게 복수할 거야.”

“하지만…….”

“당신들 오늘 한 명도 여길 빠져나가지 못할 줄 알아!”

남자는 이를 악물더니 세 사람을 바로 씹어 삼킬 듯한 자세를 취했다.

“당신, 제 말을 들어…….”

“애려아! 당신 왜 그렇게 바보 같은 거야?”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품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더니 더욱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

나 말 좀 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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