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시하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그를 보며 소리쳤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거죠?”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한 마디씩 힘주어 말했다.
“몰라요.”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그가 놀라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더욱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녀의 말에 뭐라고 할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화가 난 표정을 하고 다가와 말했다.
“따라와요!”
시하가 바로 뒤뚱뒤뚱 그의 뒤를 따라갔다. 말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행동은 그대로잖아? 역시 후지는 변하지 않았어!
눈앞의 풍경이 바뀌며 파란 대해가 나타났다. 엄청나게 큰 바다라 용혼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창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묵직한 낯선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소저, 오늘 날씨가 맑고 바람도 좋은데 소왕과 함께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발길질을 했다. 뚜둑! 소리와 함께 뭔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옷 한 벌을 걸친 한 남자가 두 다리를 교차하고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가 아래 부위를 가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몸을 덜덜 떨더니 중얼거렸다.
“인수(人修), 역시 음흉해.”
남자가 말을 마치더니 갑자기 용으로 변신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그 모습을 감춰 버렸고, 구슬이 서서히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그녀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시하가 그 자리에서 한참 어리둥절해하며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단원, 방금 그거 설마 영혼은 아니겠죠?”
“아마도 맞을 거예요.”
“그럼 방금 전에 그건.”
“……사라졌어요.”
조금 늙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약한 거 아냐? 그냥 발로 찬 것뿐인데, 그것도 딱 한 번!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완전 별거 아니었잖아.
시하가 흥분하는 사이 풍경이 다시 바뀌었고, 그들은 염하봉으로 돌아와 있었다. 청명이 놀란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사부님, 시하! 제 씨 가족들은 방금 돌아갔어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오셨어요? 도대체 어떻게 그 용혼을 사라지게 한 거죠?”
시하가 청명의 어깨를 두드리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양기(陽氣)를 공격했죠. 당신은 아직 어려서, 그런 괴로움은 아직 몰라도 돼요.”
용혼이 사라진 후, 여의주는 순백의 구슬로 변했다. 시하가 여의주를 바로 병아리의 몸 안에 집어넣었다. 여의주를 넣으면 바로 깨어날 줄 알았던 병아리의 몸에 붉은빛이 생기더니 몸 주위에 병풍처럼 무언가가 한 겹 한 겹 감싸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알의 모양으로 변해 버렸다.
단원은 상처가 심하기 때문에 새로운 내단을 받아들이려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했고, 그때 알에서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시하가 제일 처음 노란 병아리를 봤을 때도 그는 알 안에 있었다. 알로 변신한 건 아마도 봉족들의 회복 방식인 듯했다. 시하는 안심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었으니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우선 단원을 찾아가 얘기해야 했다. 전에 그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그녀가 한 말을 전혀 믿고 있지 않는 듯했다. 바로 그녀가 그의 누이라는 사실을. 그녀를 자신에게 빌붙으려는 사람으로밖에 보지 않는 모양이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래도 제대로 대화는 해야 했다. 시하는 성미가 곧아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추측하고 의심하는 일에는 소질이 없었다.
말 못할 일도 없지. 기억을 잃었어도 괜찮아. 어차피 모든 기억은 추억으로만 남는걸. 하지만 떠나 버린 마음은 돌이킬 수 없겠지.
시하가 연못에 있는 알을 바라보고 단원이 있는 석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말에 대해 신뢰도를 높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석실에 도착하자 안에 두 명의 인영이 한참 토론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하가 서둘러 걸음을 옮겨 그에게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누굽니까.”
강한 바람이 그녀를 향해 몰려왔다. 한기가 그녀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시하가 깜짝 놀라 날아오는 풍인을 바라보며 몸을 피하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측면에서 또 다른 풍인이 한발 앞서 날아오더니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풍인을 부서뜨렸다.
“당신이 어떻게?”
단원이 방에서 걸어 나오더니 얼굴을 찌푸리고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저를 찾아온 건가요?”
“네? 아, 네.”
시하가 아직 그 공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석실 안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내 눈이 이상한 건가?
“방금 그 사람은 누구죠?”
어째 뭔가 익숙했는데?
“누구요?”
단원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 당신하고 얘기하고 있던 그 사람이요.”
방금 풍인도 그 사람이 날린 거 아니었어?
단원이 얼굴을 찌푸리며 조금 화가 난 얼굴로 그녀의 뒤에 있는 돌을 가리켰다.
“방에는 저밖에 없었어요.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경솔할 수가 있죠? 여기는 금지구역이라 넘어오려고 할수록 더 큰 충격이 가해져요. 방금 제가 한 걸음만 늦게 도착했어도 당신은 이미 상처를 입었을 거예요.”
그녀가 주위를 살피자 돌 위에 진법이 발동한 흔적이 보였다.
“미안해요. 진법 선생님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잘 몰라요.”
“무슨 일로 절 찾아온 거죠?”
시하가 그제야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떠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그가 옆으로 비켜서며 방 안으로 안내했다. 시하가 종종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가더니, 방 안에 있는 탁상 앞에 앉아 스스로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자신이 차원 이동을 한 일부터 시작해 그와 상관이 있든 없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도가 만들어 낸 시차 문제까지 낱낱이.
“그렇게 된 거예요.”
시하가 말을 마치며 탁상 위에 있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벌컥 들이켰다.
“제가 상처를 입은 것은 병아리를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가체사?”
“맞아요. 저는 그 제진이라고 하는 그 대머리한테 당했어요!”
단원은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여자와 봉황이 상처를 입은 원인이 바로 이거였어? 그가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를 삭이고 옆에서 한창 모든 일들을 고자질하고 있는 시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저는 당신에게 빌붙으려고 누이라고 한 것이 아니에요.”
시하가 최대한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제 말은 다 사실이니, 신임한다고 대답해줘요.”
단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건 무슨 뜻이지?
“당신은 안심하고 여기 염하봉에 있어요. 아무도 여기로 쳐들어올 수 없으니까.”
“그, 그런 다음에는요?”
이건 나를 믿는다는 얘긴가?
“다른 일 없으면 돌아가서 수련이나 해요. 당신의 수행 계급은 높긴 하지만 술법이 너무 부실해요. 특히 진법에 대한 지식은 너무 빈약하죠.”
그가 손가락을 그녀의 이마로 가져가자, 대량의 문자와 도형들이 시하의 머릿속 신식 안으로 들어가 생생하게 각인되었다.
“이건 진법법인의 입문이에요. 어서 그것들을 익히도록 해봐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고요.”
“네.”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갑자기 나타난 지식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일이 없으면 먼저 돌아가세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시하가 머릿속에 있는 지식들을 소화시키며 밖으로 나가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렸다.
잠깐만! 나는 가족을 만나러 온 것이지, 사부를 모시러 온 것이 아니라고!
시하가 고개를 돌려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한결 따뜻해진 단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저를 인정하는 건가요?”
그가 묵묵히 바라보더니 또다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보아 하니, 아직도 의심하나 보네. 시하가 이를 악물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고 말했다.
“아니면, 제 얼굴에 있는 이 동심인부터 풀어주죠?”
신뢰도를 높여야 돼. 그녀가 말을 마치자 단원의 안색이 순간 또다시 차가워졌다. 마치 여름에서 겨울로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그가 쾅! 소리를 내며 방문을 닫아 버리자 시하의 얼굴에 먼지가 날아와 앉았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 * *
청명은 요즘 사부님이 뭔가 이상했다. 특히 그 사부를 대하는 태도가 그러했다. 산 아래로는 잘 내려오지도 않고 줄곧 염하봉에서 버섯이나 키우던 그가 갑자기 환해로 가서 천택대륙을 살펴본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던 중 어느 한 섬에서 여수사 한 명을 발견하더니 바로 염하봉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그 환해를 건너는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지내는 듯했다.
여수사가 중상을 입었지만 사실 이미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그는 3일 동안 밤을 새우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그녀를 보살폈다. 평소에 제정이 무릎을 꿇고 청을 해도 주지 않던 단약을 그녀에게는 단번에 내주었다. 그는 이왕 어렵게 살려 놨으니 영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단약을 먹어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둘러댔다.
하지만 단약을 무슨 사탕처럼 먹고 있잖아, 그것도 한 번에 저렇게 큰 걸. 그 단약이면 중상자를 열 명도 더 살려낼 수 있겠어.
여수사는 본인이 그의 누이라고 했다. 그는 겉으로는 믿지 않았지만, 그 길로 익영지에 들러 그녀의 영수에게 영기를 전달해주고 그를 구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전부 가르쳐주었다.
그녀가 여의주 속으로 들어가 영수를 구하려고 할 땐 경거망동하더니 죽어도 싸다고 화를 냈었다. 절대로 그녀를 도와 입구를 열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니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자 다시 화를 내며 함께 길을 나섰다. 그녀가 스스로 죽음을 자처할 때에는 더 이상 막지 않는다고 하더니 다시 동심인을 이용하여 그녀를 따라 여의주 속으로 들어갔다.
나이 들어서 가정을 이루려니 그럴 수도 있지. 그에게도 그런 약간의 인간적인 면모는 필요했다.
그가 상대의 몸에 동심인이 있다고 알려준 것은 그런 술법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몸에 있으면 언젠가는 병폐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에게 화를 내며 겹겹의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더니 전체 석실을 완전히 얼음 방으로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석실에서 얼음이 깨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는 이제 그녀의 수행 능력까지 챙기며 진법종전(陳法宗典)까지 전달했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자신의 사부에게 요청하다가 대승기에 이르러서야 전달받을 수 있던 것이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그녀에게 모두 가르쳐주다니, 도대체 누가 그의 제자인 거지?
“사부님, 그녀를 제자로 거두실 건가요?”
단원이 놀라더니 미간을 좁히며 그에게 말했다.
“누가 제자로 거둔다고 했어?”
제자로 삼으면 평생 내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별로야.
“그럼 진법은…….”
전 재산을 다 털었는데 정말 제자로 삼을 생각이 없는 걸까?
“쓸데없이 많은 말은 필요 없어. 사형으로서 조금 챙겨주면 그만이야. 넌 그냥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진법은 다른 법술보다 못하잖아. 누군가 그녀를 지켜보지 않으면 진을 친 사람까지 진 안으로 들어갈걸?”
단원이 엄숙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그녀보다 먼저 진법술을 언급하셨고, 아무리 그녀가 부족하다고 해도 한두 가지만 가르쳐주셨으면 됐잖아요.”
청명은 팔에 칼을 맞은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게 부족한데 왜 날더러 그녀를 챙기라고 하는 거지.
“하지만 사부님, 그 전법존전 안에 있는 각종 진법들은 모두 사부님의 손에서 나온 거예요.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정당한 명분을 주시지 않으면 그녀가 밖에 있을 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밖에서 당신의 제자가 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선계에 줄을 섰어요.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면 그녀가 밖에 나갈 시 벌집이 되는 건 일도 아니라고요.
“우리 염하봉의 사람을 누가 감히 건드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염하봉의 사람인 줄 모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선검문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이 사부님의 진법을 사용하는 걸 보면 시하 소저가 훔친 것으로 오해할 거예요. 아무도 사부님이 그녀를 제자로 거두었다고 믿지 않을 겁니다.”
단원이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부님께서 그녀를 염하봉에 머물도록 하셨으니 최소한 그녀에게 신분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청명이 계속해서 설득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확실히 신분이 있어야지.”
“그렇게 되면 제가 그녀를 호칭하기에도 편하고요.”
도겁기의 사매쯤이야.
“그럼, 너는 그녀를 사숙이라고 부르면 되겠네.”
“네, 네?”
사매도 아니고 사숙(사부의 동생)이라고?
“사, 사부님, 정말 그녀를 누이로 인정하는 건 아니시죠?”
오라버니라는 호칭은 아직 좀 거슬리긴 하지만, 그녀에게 오라버니가 있었다고 하니 뭔가 마음이 또 불편했다.
“아니.”
청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사부를 바라봤다. 제자도 아니고 누이도 아니면 그럼…….
“사부님, 제가 사모님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사부님, 솔직히 말씀하세요. 그 처자를 마음에 두고 계신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