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189)

시하가 그를 데리고 오던 길을 가며 물었다.

“맞아요. 혹시 형, 동생은 없어요? 아니면 손자라든지, 이모라든가? 다른 단영근이기만 하면 괜찮아요.”

아예 다섯 개 영근을 모두 찾아 바로 신용(神龍)을 불러내면 좋겠어.

“저의 동생 제청(諸淸)은 단일 토 영근이에요.”

시하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렇게 빨리 네 개의 영근을 모으다니, 완전 감동이야. 시하가 감격하여 제정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제 오라버니, 당신은 저의 참사랑이에요!”

제정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시하 존자, 다시 한 번 고려해주세요!”

만 년 동안 홀로 지낸 천존을 버리시면 안 돼요. 그를 구하셔야 해요. 저는 상황을 보러 온 것이지, 당신들 사이를 흔들려고 온 것이 아니라고요!

“아이고! 이렇게 망설일 시간도 없어요. 어서 저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안내하세요!”

우선 사람을 만나야 설득을 하든 말든 하지. 시하가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제정이 끝까지 버티면서 말했다.

“잠깐만요. 존자, 신중하셔야 해요! 안 돼요.”

“어디로 가려는 거죠?”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의 온기도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에 제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차가운 기운이 발밑으로부터 몰려오더니 순식간에 온몸을 덮었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태, 태사조님.”

내가 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걸 들켜 버리면 어떡하지? 큰일 났네. 이제 죽었다. 그러나 시하는 오히려 기뻐하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단원. 좋은 아침이에요!”

단원이 두 사람을 한 번 훑어보더니 시하가 잡고 있는 제정의 손에 시선을 멈췄다.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자기도 모르게 거슬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 손을 끌어당기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차갑게 말했다.

“제가 말했죠. 상처가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아 3일 동안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요. 근데 지금 어디로 가려는 거죠?”

“사람을 찾으러 가려고요! 청명이 그 오영술(五靈術)은 오행 단영근의 수사가 동시에 실행해야만 된다고 했어요. 근데 지금 이미 네 명을 찾았어요.”

“오영술?”

그가 미간을 더욱 깊이 찌푸리더니 옆에 있던 청명을 노려봤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청명이 몸을 덜덜 떨었다. 사부님의 눈빛이 뭔가 좀 이상한데? 설마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시하가 걱정하며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단원이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제정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녀를 이끌고 바람처럼 가볍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함께 가요.”

시하가 어리둥절하여 그를 바라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왜 이렇게 열정적으로 변한 거지? 하지만 그보다 오영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원은 힘껏 시하의 손을 잡자 마음속에 영문도 모른 채 차오르던 그 화가 그제야 서서히 가라앉는 듯했다. 왜 화가 났는지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어쩐지 그의 옆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제정이 눈에 거슬렸다. 갑자기 제정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건 대체 왜였을까.

단원은 자신이 구해온 그 여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는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의 수행 계급으로 그저 보호해준 것뿐이었다. 하지만 몸에 그렇게 큰 상처를 입고 나서도, 자신의 사람을 챙기는 그녀가 수행 계급은 낮아도 자신보다 연약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해 낸 그 이유라는 것도 조금 흥미로웠다.

그녀는 자신이 누이라고 했다. 17500년을 수행하면서 많은 수사들을 만나 보았지만 그 같은 핑계로 접근하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근데 무엇 때문인지 그녀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상하게 그녀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이 여수사가 혹시 사람을 미혹하는 술법이라도 쓴 걸까? 이 저항할 수 없는 느낌은 대체 무엇 때문이지? 단원은 그녀를 최대한 멀리하면서 그녀의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지만 그녀는 매일 익영지에 가서 봉황을 살피는 것 외에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어떻게 하면 여의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만 물어보고 다녔다.

그리고 다섯 가지 영기를 가진 수사들을 모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금방 산으로 내려온 제정을 잡고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마치 영석이라도 주은 듯 기뻐하며 한 떨기 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단원의 마음이 조금 답답해졌다.

이제 알게 된 지 몇 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뭐가 그렇게 기쁜 걸까? 나한테는 그렇게 웃어주지도 않더니. 그래 봤자 다섯 개의 영술에 불과한데, 왜 그렇게 다섯 개의 영근을 찾으려고 하는 거지? 나를 찾아올 생각은 왜 안 해? 오리버니라고 하더니 역시 거짓말이었어.

선검문 대전당에서 제정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소식 대신 뜻밖에도 도통 모습을 보기 어려웠던 태사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틈도 없이 그의 차가운 표정에 모두 얼어 버렸다. 전당 안에 순식간에 눈바람이 몰아치는 듯했다.

제정이 태사조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단영근을 찾는 일을 설명하고는, 시하에게 한 남자를 소개했다.

“존자, 이 분이 바로 제 동생 제청이에요. 토 영근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

시하가 기뻐하며 바로 앞으로 다가가 상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하라고 해요!”

제청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빼고 싶었지만 예의상 그녀에게 잡힌 손을 아래위로 흔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존자.”

그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태사조가 더욱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을 노려봤다. 그 모습을 본 제청이 깜짝 놀라며 생각했다. 태사조께서 나의 행동에 불쾌함을 느끼신 걸까? 내 태도가 성의가 없었나? 제청이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기라도 하듯 손을 포개어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존자, 걱정하지 마세요. 오영술에 불과하니 저희가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너무 잘됐어요. 고마워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당연하죠!”

그가 가슴을 내밀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예를 갖춘 거겠지? 그가 조용히 옆에 서 있는 누군가의 눈빛을 살폈다. 얼굴이 왜 더 어두워지신 거지. 곧 얼음이라도 떨어뜨릴 듯한 태사조를 바라보며 제정이 서둘러 화, 목 영근의 아내와 아들을 소개했다.

“존자,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오늘 사람이 다 모였으니 지금 가서 실행하시죠.”

“아직 영근 하나가 남지 않았어요?”

여기는 네 사람밖에 없는데? 제정이 당황하며 말했다.

“태사조께서는 빙 영근이세요. 수계법술로는 태사조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거든요.”

그렇지, 빙 영근은 원래 수 영근이 변이한 것이었지. 시하가 단원에게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그가 그녀를 이끌고 대전당을 나서며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돌아갑시다.”

마치 그곳에 몇 초라도 더 머물기 싫은 표정이었다. 시하는 다섯 사람이 함께 오영술을 실행하려면 아주 복잡할 거라 생각했지만 다섯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 단원이 여의주를 던지자 공중에 법부 몇 개가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의주가 반짝이더니 공중에 하얀 구멍이 나타났다.

“이렇게 빨리?”

난 또 엄청 대단한 이변이라도 있을 줄 알았잖아! 여의주의 입구가 이렇게 잠깐 사이에 열려 버리다니. 시하의 마음속에 왠지 모를 실망감이 생겼다.

“이 여의주에는 당신의 기운이 있어서 당신만이 안전하게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용혼에는 용족이 생전에 갖고 있던 집념들이 있죠. 안에 나타난 모든 것이 바로 용이 생전에 갖고 있던 집념들이에요. 구체적으로 뭐가 나타나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정말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이미 열렸잖아요? 어쨌든 들어가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곳은 신족의 영지예요. 안에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위험들이 기다리고 있죠. 당신이 영혼을 바로 찾는다고 해도 그것을 제거하려면 쉽지 않을 겁니다. 잘못하다가는 그 속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저도 알아요! 하지만 병아리에겐 이 구슬이 필요해요. 얼마나 위험하든 저는 반드시 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한 마리의 영수를 위해서요? 그럴 가치가 있어요?”

“제가 말했죠? 그 친구는 제 가족이라고. 그러니 그를 구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어떻게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질 수 있겠어요.”

단원이 놀라며 더는 설득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그렇게 한참을 있더니 그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당신 맘대로 해요.”

본인이 죽음을 무릅쓰는데 내가 말린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지. 그녀와 알고 지낸 지 이제 열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녀가 누굴 구하든 나하고 아무 상관없잖아.

시하가 그 입구를 향해 걸어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잠깐 멈춰 서서 주위에 결인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여러분! 이제부터는 저 혼자 들어가서 진행할게요. 아, 그리고 후지.”

시하가 뭔가 얘기하려다가 그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고는 말을 멈추었다.

“됐어요. 돌아와서 다시 얘기해요. 안녕!”

그녀가 말을 마치고 밝은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단원의 얼굴이 점점 더 차갑게 변해 갔다. 그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그는 지금까지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자세히 설명을 해도 기어코 그 속으로 들어가 버리다니. 더욱 화가 났던 건 그에게 한 번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다. 이 비승기 수사의 계급을 장식으로 본 건가?

비록 그 여의주 속에 그녀의 기운만 들어 있긴 했지만,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은 채 홀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미련하니 죽어도 싸지.

시하의 모습이 완전히 그 빛 속으로 스며들었고, 입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제정과 사람들은 그제야 결인하고 있던 손을 거두고 단원에게 질문했다.

“태사조님, 저희는……. 어? 어디로 가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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