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189)

시하가 이를 악물며 일어서서 모든 영기를 아낌없이 밖으로 분출하자 맘속에 뭔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진이 병풍을 불러내 그것을 막았다.

“시주님, 고집 부리지 마…….”

찌직,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시하의 검이 그의 병풍을 뚫었다.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그의 몸이 찔려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제진이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가슴에 뼈가 드러나는 깊은 상처가 났다. 그가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도겁기의 선수가 어떻게 나의 술법을 뚫을 수가 있지? 시하는 어떤 법술이든 어떤 검법이든 상관하지 않고 속으로부터 솟구치는 분노를 아낌없이 분출하며 다시 검을 들어 그를 공격했다. 상처 입은 노란 병아리의 모습이 떠오를수록 제진에 대한 원한이 더욱 커져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죽여 버릴 거야!

제진이 처음에는 법술로 막아 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하가 그에게 다가서기만 하면 영기가 완전히 사라져 버려, 전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을 감춰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에 이미 상처가 가득했다. 그의 얼굴에 자비로움 대신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당신 도대체 누구죠?”

시하가 발에 힘을 가득 실어 그를 십 미터 밖으로 차 던졌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다시 휘두르며 그의 몸을 밟고 올라섰다. 그때 용오천이 다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택배 동생, 안 돼요!”

“비켜요!”

시하가 위압을 풀어놓으며 용오천을 물리치더니 들고 있던 검으로 제진의 가슴을 찔렀다.

“아!”

제진이 비명을 지르며 가슴에서 피를 뿜어냈다.

“미안해요. 잘못 찔렀네요!”

시하가 아직도 화가 다 풀리지 않은 채 칼을 뽑았다. 그리고 그의 심장을 겨누고 아래로 칼을 꽂았다. 갑자기 온 대지가 흔들리며 결계 밖에 서 있던 초오가 놀라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시하가 몸을 바로 세우며 초오가 갑자기 이상한 붉은색을 내뿜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몸은 마치 잘 익은 새우처럼 붉은색을 띠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뭔가에 익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방금 삼킨 봉단을 뱉어 내려는 듯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자신의 입속을 파헤치고 있었다. 점점 더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비행도 멈춘 채 술에 취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어서 멈춰. 난 봉단이 필요 없어! 어서 멈춰!”

그가 붉은 피가 가득한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한 쪽으로 기어 나와 소리쳤다.

“어서 멈춰! 난 죽고 싶지 않아!”

시하가 고개를 돌려 병아리가 있는 곳을 바라보니 그의 몸도 붉게 빛나고 있었다. 내단(內丹)을 스스로 터뜨리려 하고 있어! 시하가 검을 놓고 날아가 바닥에 있는 노란 병아리를 끌어안았다.

“병아리! 이러지 마. 어서 멈춰!”

내단은 초오의 몸속에 있었다. 노란 병아리가 중상을 입긴 했지만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데 자폭을 한다면…….

신족은 자부심이 강한 종족이라 몸의 내단이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때문에 노란 병아리는 자폭을 선택한 것이었다.

거대한 진동음이 울리며 초오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폭발의 여파가 사방으로 확산되며 혈색 가득하던 공간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작은 섬 마을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섬은 황폐해지고 사방에 몰아치던 강풍마저도 사라졌다. 붉은 핏빛은 모두 사라지고 병아리의 몸에 있는 상처만이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삐약.”

그가 서서히 눈을 뜨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머리를 비볐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시하의 마음이 텅텅 비어지는 듯했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용오천이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택배 동생, 사부님도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 거니 이제 그만…….”

그가 뭔가 설명하려는 듯 입을 열더니 말끝을 흐렸다. 시하가 주먹을 불끈 쥐고 피가 묻어 있는 병아리의 털을 쓰다듬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용오천, 이게 바로 당신이 모시는 사부예요?”

그가 놀라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사부님은 좋은 사람이에요!”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용오천, 아니 광량 대사님. 아직 용성을 기억해요?”

그가 굳은 표정으로 한참 후에야 서둘러 입을 열었다.

“사부님은 아주 많은 사람들을 구하셨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거랑 달라요. 그를 오해하지 마세요!”

“오해요? 방금 그는 이 아이를 결계 밖으로 내던졌어요. 제 눈이 잘못된 건가요?”

그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더니 믿기 어려운 듯 확신 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건 대국을 위해서…….”

“하하하하.”

시하는 너무 웃은 탓에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방금 혹시 ‘대국’, 사람들을 구한다고 했나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공격으로 돼지머리가 되어 버린 제진을 바라보며 악의적인 말투로 말했다.

“제진, 당신은 공덕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연 때문이라고 했죠? 그럼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요? 이 친구는 화봉(火鳳)이에요. 천 년 동안 음양 두 세계가 교차하는 곳에 감추어졌다가 음부의 원기가 인간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죠.”

제진이 눈을 크게 뜨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인간계의 모든 사람들을 구한 거예요. 그는 이 세상을 구한 공신이죠. 근데 당신이 방금 그 손으로 세상을 구한 구세주를 죽인 거예요. 당신이 그 공덕을 어떻게 갚을 건가요?”

그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 그녀 옆에 있는 병아리를 노려봤다.

“말도 안 돼! 이건 어린 유봉(幼鳳)에 불과해요. 설사 신족이라고 해도 몸에 그렇게 많은 공덕을 지니고 있진 않을 거라고요!”

“유봉이라고요? 당신은 그가 어떻게 유봉으로 변신한 건지 모르죠?”

제진은 몸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니, 아니야. 말도 안 돼.”

불수는 인과로 수행하기 때문에 그들은 인과를 제일 신뢰했다. 제진이 그렇게 두려움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려고 했던 것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대신,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공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공덕은 그의 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내세에 가서라도 그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희생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병아리는 세상을 구한 자로 이번에 그 대가가 얼마나 클지 시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제진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한다고 해도 세상을 구한 공덕을 초월하지는 못하리라. 동시에 그 공덕이 그의 몸에 남아 영원히 성불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날 속이는 거야! 날 속이고 있는 거라고!”

제진이 실성한 눈빛으로 시하를 쳐다봤다. 더 이상 그 자비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ㄴ 난폭함과 광분이었다. 시하는 차갑게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제가 당신을 속였다고요? 제가 당신을 속일 가치가 어디 있어서요?”

그는 병아리에 상처를 입혔고, 그 인과가 그의 몸으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시하는 쉽게 그를 때려눕힐 수 있었다.

“당신 말은 믿을 수가 없어.”

그가 영기를 움직이자 장풍이 시하가 있는 곳으로 오더니 중간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가 황당한 표정으로 덜덜 떠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야, 지금까지 오랜 세월 수행한 것이 이렇게 사라질 수는 없어. 나는 성불이 될 수 있다고! 맞아! 나는 성불이 될 거야. 이번만 넘기면 나는 성불이 될 수 있어! 하하하하.”

그가 미친 듯이 웃더니 돌아서서 강풍이 몰아치는 해면 위로 날아갔다.

“사부님!”

용오천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쫓아가려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뒤에 있는 시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택배 동생, 방금은…….”

“당신을 탓하지 않아요.”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며 겨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병아리를 끌어안았다.

“당신은 그의 제자이니 당연히 그의 편을 들어야죠. 저희는 천 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잖아요. 저는 그래도 친구를 만난 줄 알았는데, 당신은 이미 그때의 그 용오천이 아니었군요.”

“택배 동생.”

시하가 차갑게 한 마디씩 힘주어 말했다.

“용오천, 오늘부터 우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에요.”

그가 놀라더니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나중에 다시 설명할게요.”

그리고 다시 제진이 사라진 방향을 따라 가 버렸다. 시하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힘껏 눈을 비볐다. 그리고 모든 영기를 움직여 손안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 줄기 생기를 병아리의 몸속으로 전달했다. 이건 그녀가 여의주에서 얻은,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녀의 특수한 영기를 이용하여 그의 몸속에 내단을 만들고 다시 화영기로 변환시켰다. 그렇게 하면 그녀의 영기가 모두 소진되기 전에 그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순양 영근을 갖고 있었고, 노란 병아리와는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그녀의 영기에 거부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었다.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아니, 반드시 성공할 거야!

영기가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몸에 있는 모든 영기를 쏟아붓자 그제야 내단이 서서히 모양을 형성했다. 영기가 순간적으로 유실되는 바람에 온몸에 무력감이 느껴지자, 시하가 이를 악물며 버텼다.

지금 쓰러지면 안 돼. 영기를 화영기로 변환해야 돼.

하지만 온몸에 영기가 이미 텅텅 비어 그녀는 신식을 통해 그의 단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병아리의 신식이 본능적인 반응을 보이자 그녀의 머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 시하의 입으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신식의 상처는 그녀의 영혼마저 아프게 하는 듯했다. 시하의 몸이 더는 통증을 버티지 못하자 눈앞이 흐려졌다.

지금은 속도를 줄여 그의 신식을 타고 올라가 서서히 그의 단전에 접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었다.

안 돼! 포기할 수 없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돼.

시하가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며 그의 단전으로 들어가 조금씩 영기를 전환했다. 흰 영기가 붉은색으로 전환되었고 머릿속의 통증은 이미 극에 달했다. 현기증이 온몸을 감싸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시하도 더는 버틸 수 없음을 감지했다. 시하의 신식에서 바삭바삭 소리가 들려왔다. 침묵하던 002호가 급히 경고음을 울렸다.

[경고, 경고! 생명체에 이상 발견, 자살 행위를 멈춰주십시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멈출 수 있어! 내가 멈추면 이 아이도 바로 죽는다고!

임시로 만들어 낸 흰색의 내단이 완전히 붉은색으로 전환되었다. 시하가 신식을 풀고 바로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신식에 점점 더 큰 균열이 생겼다.

[경고, 경고, 신식 손상도 80%, 어서 복구하십시오!]

영기가 이미 바닥났는데 무슨 힘으로 복구해! 시하의 의식이 점점 더 희미해지는데, 하늘에 희미한 흰 인영이 나타났다. 착각인가? 왜 호구 오라버니와 닮은 듯하지.

“오라버니?”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그를 불렀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공중에 있던 인영이 잠시 멈칫했다.

“사부님, 왜요?”

그의 옆에 파란 옷을 입고 있는, 체형이 아주 특이하게 생긴 수사가 질문했다. 흰옷의 남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데?”

“네?”

잠시 후, 흰옷의 남자가 돌아서서 섬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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