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189)

“아직 덤벼 보시겠다?”

초오가 차갑게 비웃으며 수천 갈래의 혈류를 불러냈다. 그러자 혈류가 마치 붕대처럼 순식간에 그녀의 검의를 꽁꽁 묶었다. 시하가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검의는 그녀의 몸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녀가 가슴에 통증을 느끼자 검의도 덩달아 폭발해 버렸다. 하지만 검의는 초오의 몸에 상처는 내지 못한 채 시하의 몸을 튕겨 낼 뿐이었다.

시하가 그것을 기회로 힘껏 진안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수만 개의 영검을 불러내 아무것도 없는 공중을 공격했다.

“당신!”

초오는 오만한 표정을 거두고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어떻게 진안이 있는 곳을 알아낸 거지?

“삐약, 삐약, 삐약,”

“사부님!”

그때 노란 병아리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고 묶여 있던 용오천이 다급히 소리쳤다. 초오가 갑자기 모든 혈류를 불러내었고, 그녀가 진을 파괴하려는 것을 막지 않은 채 오히려 결계 속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모든 사람들이 혈역 안에서 죽기를 바라는 듯했다.

진안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시하가 전력을 다한다면 바로 혈역을 나갈 수 있었지만 동시에 몇백 명의 사람들도 죽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어떡하지? 진안의 위치는 언제든 변하는데 한 번 놓치면 초오가 또 계략을 부려 다시는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진을 파괴하느냐 사람을 구하느냐. 당연히…… 사람을 구해야지!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구하지 않으면 어찌 도리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시하가 이를 악물며 영검을 부려 결계가 있는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바로 결계 위를 막아섰다. 제일 큰 혈류가 검에 부딪치더니 빗겨 나갔다.

“흥, 미련한 것!”

초오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빗겨 나간 혈류들이 갑자기 혈릉으로 변해 그녀를 공격했다. 시하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결계를 받치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고, 혈릉들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젠 정말 벌집이 되어 버리겠군.

“삐약!”

갑자기 그녀의 어깨에 엎드려 있던 병아리가 뛰어오르더니 털을 순식간에 확대시켰다. 파란색 화염이 그의 온몸을 감싸고 커졌다. 봉황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자 화염으로 만들어진 몸이 솟아올랐고, 순식간에 그녀를 향해 다가오던 화릉을 불태워 버렸다. 공중에 순식간에 밝은 빛이 비치면서 노란 병아리가 원상태로 돌아와 힘없이 떨어졌다. 시하가 서둘러 손을 내밀어 병아리를 받아 안았다. 그는 많이 힘들었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삐약.”

초오가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 그건 봉, 봉황? 세상에 아직도 신족이 존재하다니! 신족의 유수(幼獸, 어린 괴수)를 여기서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이건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야! 봉단만 있으면 이 세상에 감히 누가 나를 이길 수 있을까. 하하하하하.”

시하가 놀라며 힘껏 계약을 연결했다. 병아리를 밖에 내놓으면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

“봉단을 나에게 줘!”

초오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옆에 있는 혈릉을 긴 검으로 만들더니 시하를 공격했다. 검으로 공격을 막자 차가운 음한 기운이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젠장, 이 혈역 안에서 초오의 능력이 대체 얼마나 더 증가된 거지?

시하가 병아리를 보호하며 몸을 피했다. 병아리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기 때문인지 병아리의 공간과 연결되지 않아 최대한 몸을 움직여 초오와 거리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흥! 어디로 숨을 수 있는지 두고 보지.”

그가 매서운 눈빛으로 손을 흔들자 하늘에 혈릉이 가득 덮였고, 비처럼 아래로 쏟아졌다. 결계 속 인어들이 몸을 피하고 있었다. 젠장, 또 그놈의 술법.

“아미타불.”

한참 침묵하던 제진이 반응을 보였다. 그가 염불을 시작하더니 밝은 빛으로 사방을 비췄다. 동시에 외부에 있던 혈릉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시하가 그제야 안심을 하며 그 틈을 타서 용오천을 이끌고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중 양반이 이제야 손을 쓰네. 계속 그 자비로운 자태를 유지했다가 더 버티지 못할 뻔했잖아.

용오천이 걱정되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택배 동생, 괜찮아요?”

“아직은 안 죽어요.”

초오가 차갑게 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수 없는 중 양반, 손 뗀다고 하지 않았어? 역시 당신들 불수도 선수와 다를 것 없군. 모두 겉으로만 자비로운 척하는 거지.”

“아미타불. 소승, 진을 파괴하는 일에 확실히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하지만 당신의 악행을 모른 척한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초 시주님, 더는 사람들을 해하는 그 칼은 내려놓고 성불을 하세요.”

“진을 파괴하는 데는 관여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안전은 지키겠다? 당신 참 순진하군. 아쉽지만 내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저 사람들은 이 혈역의 힘을 견디지 못할 거야.”

역시나 그곳에 있던 인어들의 얼굴빛은 안 좋아 보였다. 적잖은 사람들이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들어 하고 있었다. 원래 몸이 약했던 사람들은 아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초오가 더욱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봐, 중 양반. 당신 혼자서는 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미타불.”

제진이 그는 상관하지 않고 다리를 틀고 앉아 경을 읊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금색의 범문들이 결계 위에 나타나 끊임없이 움직였고, 혈살(血殺) 기운마저 많이 옅어졌다. 초오가 이를 악물며 차갑게 말했다.

“자신의 수행 계급을 결계 속으로 녹여 넣다니.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당신 수행 계급이 바닥나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똑같이 죽게 될 거야. 제진이 눈을 감고 초오의 도발에 아랑곳없이 개의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

용오천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를 말리고 싶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였다. 시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진이 초오를 막지 않는 것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를 돌이키기 위함이었다. 희생정신 한번 정말 고상하기도 하지.

초오는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흥분하는 데다가, 이런 행동은 오히려 다른 사람을 악하게 만들 뿐 아니야? 제진은 계속해서 설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더 못 참아! 반드시 병아리의 공간과 연결이 되어야 돼. 노란 병아리, 말 좀 듣고 어서 정신 차려!

초오는 제진이 끝까지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더욱 분노했다. 진을 가득 덮고 있는 범문의 결계를 뚫을 수 없게 되자 더욱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초오가 갑자기 병아리를 안고 있던 시하를 바라보더니, 서서히 입꼬리를 올렸다.

“제진, 당신 내가 불수를 하길 원하지 않아? 생각해봤는데 내 몸에는 확실히 살의가 가득해서 수행 계급이 아무리 높아져도 성선에는 오르지 못할 거야. 하지만 괜찮아! 당신을 따라 수행하도록 하지. 이 인어들도 놓아주고, 결계를 거두고 당신들도 놓아줄 거야. 이반진을 거두고 인어들에게 터전을 다시 세워주지. 당연히 내 몸의 수행 계급도 모두 내려놓고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 거야.”

제진이 드디어 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초오가 더욱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시하는 갑자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병아리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가 손을 내밀어 시하의 품에 있는 노란 병아리를 가리켰다.

“저 봉단을 나한테 줘! 봉황의 단은 업보를 태워 버릴 수 있고, 게다가 내 마음속에 있는 악념들을 태워 버릴 수 있어서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지. 그렇게 하면 정말로 나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제진이 한참을 침묵하더니 시하를 바라봤다. 시하가 이를 꽉 깨문 채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제가 두 번째 초오가 되고 나면 그때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용오천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택배 동생, 사부님께 무례하게 굴지 말아요. 급할 것 없어요. 우선 말부터 들어봐요.”

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화를 가라앉혔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할지 들어나 보지. 제진이 실눈을 뜨고 여전히 자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미타불. 시 시주님은 지혜가 있고 마음속에 자비가 있지 않으십니까.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7층 불탑을 짓는 것보다 낫다고, 초 시주가 돌이키는 마음이 있다고 하니 그가 돌이키면 또 한 사람의 선인이 탄생하고, 악인 한 명이 줄어들 겁니다. 사람들의 목숨이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으니, 허락해주실 수 있겠죠?”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멸절하기라도 한다는 말이야? 역시 그 말이 떨어지자 그곳에 있던 인어들이 희망 가득한 표정을 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시하는 이 상황이 조금 당황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허락? 저 변태 같은 초오의 생명조차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 작은 생명은 가치가 없다 이건가요? 무슨 근거로요? 당신한데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얘가 당신들의 목숨을 대신해야 하죠? 저 변태가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이 아이가 막았는데도 이러시는 겁니까? 도대체 얼마나 얼굴이 두꺼우면 그런 요청을 할 수 있는 거죠?”

시하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쭉 바라보자, 그들도 방금 전의 일을 떠올렸는지 눈이 마주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택배 동생.”

용오천은 난감한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보다가 다시 사부를 바라봤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듯했지만 뭐라고 얘기를 해야 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제진은 여전히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시하의 질책은 개의치 않는 듯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주님께서 인어들을 구해주기만 하면 제 모든 수행 능력을 걸고 봉단의 생명을 지키겠습니다.”

“사부님, 안 돼요!”

용오천이 제일 먼저 반대하며 나섰고, 인어들조차 흥분하며 그를 막아섰다.

“상사님, 저희가 어찌 그렇게 큰 은혜를 감당할 수 있겠어요.”

“맞아요. 이미 어족들을 많이 도와주셨는데 어떻게 당신의 목숨까지 희생시킬 수 있겠어요.”

“상사님의 자비로운 마음은 저희가 영원히 기억할게요. 오늘 여기서 모두 멸족한다고 해도 그냥 받아들이겠습니다.”

비록 그들이 시하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그녀에게 불만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용오천마저 그녀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미타불.”

제진이 높은 목소리로 염불을 외우며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시하의 답만 기다렸다. 시하는 마치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돌보지 않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반역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의 심리란 참으로 무서운 듯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정말로 시하를 제2의 초오로 대할지 몰랐다.

시하가 여전히 자비롭고 인자한 표정의 제진을 바라봤다. 이 섬에 오면서부터 들었던 그 위화감이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내는 듯했다. 시하는 그가 정말 자비로운 대사인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영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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