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오가 점점 더 오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애당초 후회같은 건 해본 적이 없어. 나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지!”
그가 두 손으로 결인을 하더니 아주 복잡한 진법을 만들었다. 시하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뭘 하려는 거지?
잠시 후, 균열이 가득한 하늘에 금색 부문(符文)이 나타났다. 그리고 방금 섬 위에 몰아치던 강풍은 사라지고 아주 거대한 진법이 천막처럼 섬을 덮어 버렸다. 초오의 마기가 넘쳐흐르더니 마치 생명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원래 금색이던 부문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부문은 서서히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섬을 뒤덮었다.
혈역(血域)! 시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모든 영기를 이용하여 방어진을 펼치세요. 어서요!”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놀라 시하를 바라봤다. 제진이 먼저 시하의 말을 듣고 바로 두 손으로 결인하며 금색의 방어 결계를 만들어 사람들을 덮었다. 잠시 후, 하늘에 진법이 움직이더니 하늘에서 피처럼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폭포처럼 아래로 쏟아졌다. 움직임은 매우 느렸지만 숨 막히게 진득한 피비린내가 섬에 흘러넘쳤다. 가는 곳마다 초목과 꽃이 시들어 있고, 물도 모두 메말라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섬이 지옥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혈역은 강한 영력으로 만들어 내는 천지였다. 천지는 그 진을 설치한 사람의 영기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 범위 내에서는 그 혈역의 주인이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이 진법은 엄청난 영기가 필요했지만 하필이면 원래 이 섬에 깔려 있던 진은 이반진이었다. 이반진은 혈역과 비슷하여 한쪽에 공간을 만들었다. 이 진법은 진안이 없어 완전히 지형과 천지 영기를 의지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영기가 끊임없이 운행하며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오가 그걸 보더니 이반진을 아예 혈역으로 바꿔 버렸다. 그는 원래 마수였던 터라 강풍과도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 그들보다 더욱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때문에 지금의 상황으로는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제진의 얼굴에 구슬땀이 맺혔다. 그가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결계를 시작하더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때 시하가 옆에서 한창 바쁘게 움직이는 용오천을 불렀다.
“오두방정. 가서 촌민들에게 결계 중심으로 들어가라고 하고 최대한 몸을 작게 만들어 범위를 줄이라고 하세요. 결계에 집중되는 사람들이 적을수록 제진의 압력을 줄일 수 있으니까.”
용오천이 놀라며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바로 돌아서서 실행에 옮겼다. 그녀도 제진의 뒤에 앉아 자신의 영기를 그에게 전달해주었다. 그의 안색이 돌아오자 그제야 영기를 전달하는 것을 멈췄다. 지금은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보는 방법밖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제진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시주님, 고마워요. 저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지금 진을 펼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당신은 왜 저 화근을 풀어준 거죠?”
“중생은 모두 평등해요. 아무리 소승이라 해도 함부로 초 시주님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저 사람을 평생 가둘 생각이 없었던 거죠?”
제진이 말없이 그 자비로운 얼굴로 하늘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왜 진작 제진이 이렇게 이상한 사람임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초오를 가둘 생각이 없었다니, 그럼 왜 그때 사람들에게서 초오를 데리고 온 거지?
그때 초오가 진법의 발동을 마친 후 하늘에서 내려왔다. 짙은 마기만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시하는 이제 그의 수행 계급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당신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그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 손을 흔들자, 또다시 익숙한 진법이 나타났다.
“또 이 진법이네!”
도대체 끝이 어디에 있는 거야. 사람들의 수행 계급을 얼마나 빨아들이려는 거지? 걸핏하면 그 진법을 펼치다니.
“선문에 그 폐물들을 놓아줬더니 출규기의 불수가 나타날 줄이야. 이번에야말로 정말 수지가 맞겠군.”
“아미타불. 초 시주님, 당신은 이미 몸에 죄로 가득한데, 어찌하여 또다시 악행을 저지르는 건가요.”
“악행이요? 당신이 쓸데없이 관여하지 않았어도 여기까지 와서 악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는 것만 기억해.”
초오의 비웃음에도 제진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설득했다.
“인과응보가 언젠가는 당신에게 미치게 되어 있어요. 이제 사람들을 해치는 그 칼은 내려놓고 성불이 되세요.”
“아직도 나를 거두고 싶은 건가?”
초오가 아주 재밌는 이야기라도 들은 사람처럼 차갑게 웃었다.
“이 세상에 거둘 수 없는 사람은 없어요.”
“선수들만 맨날 입에 가식을 달고 사는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불수들도 마찬가지군.”
그가 어두운 눈빛으로 갑자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펴더니 검은 마기를 결계로 전달했다.
“조심해요!”
시하가 다급히 사람들에게 소리쳤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인어 한 명이 이미 마기에 잡혀 버렸다.
“생각이 바뀌었어. 당신들을 그렇게 빨리 죽이고 싶진 않아.”
초오가 손을 움켜쥐자 그 인어는 순식간에 재로 변해 버렸다. 그가 도발적인 눈빛으로 제진을 바라봤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거두는지 두고 보지.”
“아미타불! 시주님의 마음에 악행이 너무 중하여 사람을 죽여서라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소승 더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사부님, 안 돼요!”
용오천이 서둘러 그의 앞을 막았다.
“광량, 예로부터 부처는 자신의 몸을 바쳐 희생했다고 했어요. 제가 죽어서 그가 선의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공덕을 세우는 일 아니겠어요.”
“하지만 사부님,”
“그의 스승이 되겠다는 뜻은 이미 접었어요.”
그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이미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하의 마음에 뭔가 이상한 의문 하나가 생겼다. 초오는 제진을 죽인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초오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분노가 가득하여 말했다.
“당신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아?”
“우리 불수는 자비롭죠.”
초오가 그를 노려보더니 더욱 화가 나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우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죽인 다음에 당신을 죽여주지. 언제까지 그 자비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이 인어들은 수위도 없고,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유익이 없어요. 그저 당신의 악행만 더해질 뿐이죠.”
“악행이라고 하면 이미 넘쳐나지. 모든 중생이 평등하다고 했지? 그럼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르든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할 수 있다는 건가? 당신이 언제까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지 두고 보지.”
“모든 중생이 평등하다는 소승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어요.”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두고 보지.”
시하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다가 참다못해 소리쳤다.
“잠깐만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예요? 당신들 눈에 다른 사람들은 무나 배추로 보여요?”
방금 초오가 인어들을 다 죽인다고 했었나? 그럼 지금은 인어들을 구해 낼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때다. 왜 또 그 사람을 거두니, 몸 바쳐 희생을 하니 쓸데없는 공론을 펼치는 거지?
“제진, 정말로 이 변태한테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그래서 놓아준 거예요?”
“세상에 거둘 수 없는 사람은 없어요.”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세상에 이렇게 세속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있다니! 시하가 길게 한숨을 쉬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당신이 저 사람을 거두든 거두지 못하든 상관없지만, 우선 저희가 저 변태를 막고 혈역을 뚫고 나가야 된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두 사람이 협력하면 희망이 있잖아요! 그리고 나에게는 병아리라는 무기도 있다고요! 하지만 제진은 여전히 그 부처의 얼굴을 하고 김빠지는 소리를 했다.
“소승은 이미 이 일에 손을 대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뭐라고요? 저자가 여기 있는 모든 인어들을 죽이겠다고 날뛰는데, 당신은 사람을 돌이키더라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수행이에요. 세상의 기한은 정해져 있죠. 소승은 원래부터 세상 밖의 사람이었으니 속세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맞아요.”
“그럼 초오의 일은 왜 관섭하는 거죠?”
편애가 심하잖아, 이 인간아.
“그의 몸에 불연(佛緣, 중생이 불교나 부처와 맺은 인연)이 있어요.”
“불연이 누군데요? 그걸 좀 보여주시죠, 제가 얘기나 좀 나누게.”
그때 초오가 갑자기 시하를 바라보며 살의를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애를 잊고 있었네. 너부터 시작해야겠군.”
초오가 손을 흔들자 사방에 피가 흘렀다. 마치 생명력이라도 부여된 듯 핏빛의 차가운 얼음덩이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시하가 깜짝 놀라며 그 얼음덩이들을 쳐다봤다.
시하가 바로 영기를 움직여 지심인력으로 그 핏빛의 얼음덩어리들을 흡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바닥으로 완전히 스며들며 아무런 효력도 내지 못했다.
“택배 누이!”
용오천이 그녀를 끌어당기며 공중에 있는 혈릉(血凌, 피로 형성된 얼음)들을 떨어뜨렸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초오의 공간이라는 걸 깜박했다. 그가 만들어 놓은 만능 물리 법칙 때문에 아무것도 먹히지 않았다.
하늘에 핏빛 얼음덩이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녀와 용오천은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결계를 빠져나왔다. 그들은 인어족들이 함께 화를 당하지 않도록 결계를 나와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녀가 돌아서자 그 혈릉들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더니 뒤를 쫓아왔다.
시하가 공중에서 각종 방법으로 몸을 피하며 고난도의 동작들을 소화했다. 만약 이게 올림픽이었다면 분명 금메달을 땄을 정도로. 하지만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심사위원이 아니라, 죽이려고 날뛰는 초오라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혈릉들이 점점 더 많아지더니 더 빠른 속도록 뒤를 쫓아오면서 강풍을 몰고 왔다. 혈역이 어떻게 운행되는 건지 진법지식이라곤 기초적인 것밖에 모르는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다.
초오가 차갑게 웃으며 사냥감을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하는 더 이상 몸을 피하기가 어려워졌다. 곧 몸이 벌집이 되어 구멍이 숭숭 뚫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시하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혈릉들은 이상하게도 술법의 공격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모두 삼켜 버렸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피가 몰려와 흐르다가 순식간에 얼음으로 변하여 그녀의 얼굴을 공격했다.
잠깐만! 흐른다고?
자세히 보니 그 진법의 흐름은 전에 우망경에서 봤던 그 시련진 안의 진법이랑 닮아 있었다. 하지만 한 개가 아니라 다섯 개였다는 점이 달랐다.
다섯……. 오행! 설마 이 혈역은 그 다섯 개 진법의 합작품인 건가?
진을 파괴하려면 반드시 진안을 찾아야 했다. 혈역의 진안은 진을 설치한 그 장본인이었다. 혈역은 다른 진을 변환시킨 것인데 그럼 진안은 다른 곳에 있는 걸까?
시하가 서둘러 신식을 시작하며 앞으로 다가오는 혈릉 하나를 잡았다. 그런 다음 그 속에 흐르는 혈류를 따라 올라가 진안을 찾았다. 바로 초오의 오른쪽이었다. 시하가 검의를 불러내 거대한 당근을 공중에 띄운 뒤 초오를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