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189)

그 순간, 초오가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잃어버렸으나 지금은 되찾은 오른손을 바라보며 기쁜 표정으로 제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제진을 노려봤다.

“빌어먹을 중놈 같으니, 도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미타불. 당신 몸에 있는 상처는 이미 치료했습니다. 다만 초 시주님의 상처가 깊어 수행 계급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요.”

초오가 이를 악물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중을 읽을 수가 없었다.

“시주님, 얼른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진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옆에 있는 흰색 승복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인과가 따르기 마련이지요. 당신은 이미 너무 많은 악행을 저질러 이렇게 해야만 그 악을 다 갚을 수 있어요. 이제 그만 고집은 내려놓으세요.”

초오가 그의 손에서 옷을 가져와 몸에 걸쳤다.

“내 손에 죽은 그 사람들도, 이전에 악을 저질러서 화를 당한 거라는 말이네. 그럼 내가 그 사람들을 죽인 것이 뭐가 그렇게 잘못된 거지?”

“선은 선으로 갚고 악은 악으로 돌아와요. 그들이 선을 심었다면 내세에서 반드시 그 복을 받겠죠. 중생은 모두에게 평등하니까.”

“웃기고 있네. 당신 말처럼 모든 중생이 평등하면 세상 사람들은 왜 태어나서부터 영근에 차이가 있지?”

그는 뉘우치는 기미 따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제진의 수행 계급 때문에 섣불리 경거망동은 하지 않는 듯했다.

“내세는 무슨, 복을 받는다고? 나는 나만 믿어. 내세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나에게 강한 능력만 있다면 누가 나를 벌할 수 있지?”

“세상의 모든 이익과 계급은 모두 허황된 것이에요. 근데 당신은 왜 아직도 그것들을 내려놓지 못하죠? 당신이 오늘 이 지경에 이르고도 아직 눈앞의 미혹을 버리지 못하는군요. 앞일을 도모하지 않고, 나중에 있을 일을 염려하지 않으며, 오늘에 매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해탈입니다.”

초오가 점점 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겨운 중 같으니, 쓸데없는 소리 이제 그만해. 당신이 내 상처를 치유해줬다고 해서 내가 당신한테 감사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 당신은 나를 설득할 수 없으니까. 당신을 따라 불수를 배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초오에게 불수를 가르치려고 한 거였어?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중간에 다른 걸 배우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게다가 초오는 사람을 많이 죽여서 몸에 악기도 많을 것이고, 만약 불수를 하게 되면 불수계의 최고 난제가 되겠어. 생각 한 번 참 대담하기도 하지.

“모든 만물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인연이라는 것은 금세 모습을 감추기 마련이지요. 당신과 내가 불수의 연이 있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이해하는 날이 올 거예요.”

“그래요?”

초오는 차갑게 콧방귀를 끼며 전혀 믿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범사에는 제한이 있어요. 당신이 저지른 그런 일 때문에 여기 인어족들이 어려움을 겪은 겁니다.”

그때 도움을 청하러 왔던 족장이 그제야 그곳에 찾아온 자신의 용건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상사님은 이미 결계의 일을 알고 계셨던 거예요?”

“방금 섬에 들어오면서 이미 결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족장이 서둘러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상사님, 저희를 구할 방법이 있을까요?”

“족장님,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진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더니 자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소승이 일부러 도와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결계의 상황은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인어족은 원래부터 심해에 살고 있었던지라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족장은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했다.

“저희가 바다에서 살 수 있는 건 맞지만 환해 밑은 너무 위험해요. 그게 아니었다면 저희 조상님들도 그때 그 능력자를 따라 이곳 해안으로 오지 않았을 거예요.”

“인어 조상들이 몸을 피할 수 있었던 건 그 능력자와 인연이 있어서였는데, 지금은 그 인연이 다한 모양이군요.”

“어떡하죠? 저희는 이 섬에서 수천 년을 생활하여 이제 심해 생활에는 적응하지 못할 거예요. 게다가 저희 종족 중에는 이제 갓 태어나 강포에 싸여 있는 아이도 있어요. 만약 아래로 내려가면 그 아이는…….”

환해 속은 매우 위험하여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기에는 충분했다.

“아미타불, 이 결계는 이제 반 시진밖에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어서 대비를 하셔야죠.”

“반 시진이요?”

족장이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시간이면 지금 사람들을 이동시켜도 이미 늦었는데!

그 말을 들은 시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비록 그녀와 그 인어들 간에 별다른 접촉은 없었지만 그래도 눈앞에 한 종족이 멸절할 것을 지켜보려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제진,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거의 죽어 가던 초오도 그렇게 멀쩡하게 살려내지 않았는가.

“전에도 결계를 한 번 복구했었다면서요? 다시 시도해보면 안 될까요? 아니면 다른 진법을 만들어 사람들이 이곳을 떠날 때까지만이라도 버텨 보면…….”

“그것도 이제 모두 한계에 달했어요.”

시하가 아무 말도 없이 침묵했다.

“상사님, 고마워요. 지금 바로 가서 인어들을 모을게요.”

족장 노인이 제진에게 예를 갖추고 돌아서서 힘없이 문을 나섰다. 넋 나간 사람처럼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때 시하가 무거운 마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

“잠깐만요! 족장님, 저도 같이 가요. 제가 그 결계를 복구할 능력은 없지만 인어들을 위해 강풍을 막아 시간을 벌어줄 테니까 그 시간에 여기를 떠나세요.”

용오천도 그쪽으로 다가가 말했다.

“맞아요. 저도 가서 도울게요.”

제진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소승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족장은 그제야 감격하며 말했다.

“두 분 상사님, 감사해요. 그리고…….”

“저는 시하라고 해요.”

“시 상사님.”

난 중이 아닌데…….

“그럼 저는 용오천과 가서 사람들에게 알릴게요. 제진 대사님은 우선 여기를 정리하신 다음 오셔서 지원해주세요!”

시하가 방에 있는 초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족장 노인이 일을 처리하는 속도는 아주 뛰어났다. 반 시진도 되기 전에 마을 입구에 이미 몇백 명이 넘는 인어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감격에 찬 얼굴로 다가와 고맙다는 말과 함께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 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더욱더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사람들이 거의 모이자 족장이 해변 쪽으로 이동시켰다. 인어들은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을 가운데로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모이기도 전에 이변이 찾아왔다. 쿵! 하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조용하던 공중에 하얀 균열이 나타났고 뭔가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맹렬한 강풍과 짙은 음기가 몰아쳤다.

시하와 용오천이 술법을 이용하여 갑자기 뚫린 결계의 강풍을 막았다. 제진은 방어 진법을 불러내 인어들을 그 안으로 보호했다.

공중에 균열이 점점 심해지면서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늘에 흰색 균열과 강풍이 점점 더 거세졌다. 방금은 그저 미풍이었다면 지금은 토네이도급 강풍이었다. 시하도 이 강풍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매우 짙은 음기가 느껴졌는데, 시하는 그곳의 음기가 보통의 음기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하처럼 음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체질의 사람도 그 바람이 조금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가 점점 더 증가되면서 체내의 영기가 절반은 줄어든 듯했다.

전에는 바다 위에서 그녀 혼자 버티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몇백 명의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니 체력적으로 힘이 많이 부족했다. 나머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용오천의 수행 계급은 원래부터 그들보다 낮았고, 제진은 방금 초오의 상처를 치유하느라 영력을 모두 소모한 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 사람이 함께 버티기에도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에서 해변까지는 아직도 조금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시하가 검을 꺼내 사람들을 막는 강풍을 흐트러뜨리며 이마에 구슬땀을 흘렸다.

“삐약!”

그녀의 어깨에 조용히 엎드려 있던 병아리가 그녀를 걱정하듯 길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눈을 깜박거렸다. 계약 이후 그는 다시 공간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녀를 따라 세상 끝까지라도 갈 듯했다. 시하가 마음이 약해져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아!”

그리고 다시 다른 강풍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삐약, 삐약, 삐약.”

그가 다시 소리 내어 울부짖으며 작은 날개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날 돕고 싶다고?”

“삐약!”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위로 뛰어오르며 털을 치켜세웠다. 거센 바람과 함께 그 털이 거대한 파란색의 화염으로 변했다. 그리고 주위를 날자 날카로운 칼날이 휩쓴 듯 강풍이 순식간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시하와 그녀의 일행들 모두가 깜짝 놀라 노란 병아리를 바라봤다. 공격을 마친 후 털은 원래의 모양으로 다시 돌아갔다.

“하하하, 정말 하늘이 도왔군. 이 섬에 이반진(離返陳)이 깔려 있었다니!”

음침한 목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왔다. 그 순간 시하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초오가 갑자기 하늘 높은 곳에 나타나더니 흥분한 얼굴로 웃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시하가 고개를 돌려 제진을 바라봤다.

“저 사람, 가둔 거 아니었어요?”

초오를 경계해야 된다고 얘기했을 텐데?

“아미타불.”

제진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자비로운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초 시주님, 소승한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면 나를 따라 수행을 할 거라고요. 근데 이 행동은 어떻게 된 거죠?”

“하하하하하. 미련하기는! 그저 그 법기 속에 다시 갇히기 싫었을 뿐인데 그걸 믿다니! 당신처럼 속이기 쉬운 중은 처음이로군.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미련해.”

제진은 조금도 분노하는 기색 없이 여전히 그 자비로운 모습으로 길게 한숨을 쉬었다.

“소승은 진심으로 당신이 미궁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랐습니다.”

“진심? 어리석기도 하지, 자신이 너무 웃기다는 생각은 안 들어? 천 년 전에도 내가 도시를 점령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몰살하고 난 후, 후회하는 듯한 말들을 좀 하니 나를 놓아주었지. 그런데 이제는 나한테 불수를 하라고?”

천 년 전? 시하가 놀라며 제진을 바라봤다. 설마 제진이 전에 초오와 만났다고 했던 그때를 말하는 건가? 도시를 점령하고 그 도시의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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