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189)

제진은 다시 한 번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용모는 살가죽 밑에 뼈가 있을 뿐인데, 시주님께서 그렇게 염려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요즘 유행하는 국민남신, 국민여신이 되고 싶지, 국민대머리가 되고 싶진 않아요. 당신은 경험이 없으니 이해할 수 없겠죠.”

제진은 두 손으로 합장하며 몸을 떨더니 할 말을 잃고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염불만 외웠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러고는 더 권하지 않고 몸을 돌려 조롱박에 초오를 가두러 걸어갔다. 시하도 그를 참견할 여유가 없었고, 장문에게 중요한 일을 물어야 했다.

“장문님, 뭐 좀 물어볼게요. 혹시 유명지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중요한 일 때문에 그곳에 가서 당신의 그 오래된 친구를 만나야 해요!”

“그, 그곳은 저도 오래된 친구에게서 들은 거라 자세한 건…….”

“자세한 위치는 모른다고요?”

그때 조롱박을 다 채운 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혹시 환해 이남에 있는 그 유명수역(幽冥水域)을 얘기하는 건가요? 만약 그곳이 맞다면 제가 있는 가체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요.”

그 말을 들은 시하가 바로 고개를 돌려 눈빛을 반짝이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국민대머리 아저씨, 돌아가는 길에 다리에 장식 하나쯤 필요하지 않으세요? 숨도 쉴 수 있는 그런 거요.”

* * *

“제진 대사님, 가체사로 돌아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이 섬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제진이 여전히 자비로운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아미타불. 여기에서 가체사까지는 하루가 걸려요. 여기는 환해 위에 유일하게 안전한 섬이고요. 저희는 여기에서 하루 정도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만 다시 길에 오를 수 있답니다.”

“아.”

이제 보니 여기는 휴게소 같은 곳이었구나.

“시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섬의 주민들은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해서 저희를 받아줄 거예요. 제 제자도 여기에서 소승을 기다리고 있지요.”

“제자도 있어요?”

이제 보니 여기서 데려갈 사람이 또 있었던 거네. 얼른 얘기하지.

“그 제자의 수행 능력이 아직 미흡하여 제가 이곳에 머물도록 했어요.”

시하는 그 제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환해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섬에는 빛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조금 걸어 들어가자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피부는 까무잡잡했다. 처음에는 흑인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들의 팔다리는 구분되지 않아 사람보다는 마치 동물 같은 형상이었다. 목에는 아가미 같은 기관도 보였다. 설마 인어인가.

그들은 심해에서 사는 종족으로 인류가 아니었다. 인어는 제진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고, 심지어 멀리에서부터 그들을 발견하더니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예를 갖추며 경외심을 보였다. 제진은 익숙한지 길가의 인어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섬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섬은 그리 크지 않아 그들이 15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흙과 잡초로 지은 건물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고, 까무잡잡한 인어들이 더 많이 보였다.

“사부님, 오셨어요.”

마을로 들어서자 앞에 큰 인영이 그들을 향해 뛰쳐나왔다. 이 사람이 제진의 제자인가? 이 건장한 몸매는 가는 제진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만약 머리카락만 좀 있었어도 용오천과 비슷하달……. 용오천?

“오두방정, 당신이 여기에 왜?”

대머리 버전의 용오천이 놀라며 그녀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은인님! 당신이 여기에 왜 있는 거죠?”

“저야말로 묻고 싶어요. 언제부터 중이 된 거예요? 상처는 괜찮아요?”

마지막으로 용오천을 봤을 때, 그는 초오에게 당해 숨이 겨우 붙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작은 상처는 이미 다 나았죠. 아, 전에는 바로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어요. 상처도 치료해주셨고요.”

시하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제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시주님과 저의 제자는 서로 구면인가 보네요.”

용오천이 흥분하여 설명했다.

“맞아요! 사부님, 이분이 제가 말씀드렸던 그 은인이세요.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요!”

“두 분이 인연이 있으니 언제든 다시 만나게 됐을 거예요. 날이 저물고 있으니 안으로 들어가서 그동안의 회포를 좀 푸시지요.”

용오천이 웃으며 그들을 이끌고 앞에 있는 초가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진이 먼저 옆에 있는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용오천과 시하가 회포를 푸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 하는 듯했다. 용오천이 시하를 이끌고 책상 앞으로 가더니 감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순풍 은인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제 그 순풍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될까요?”

“아, 네. 알겠어요. 그럼 은인님만 괜찮으시다면 택배 누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내가 영원히 그 직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이나.

“택배 누이는 어쩌다가 사부님과 같이 있는 거죠?”

시하는 길게 한숨을 쉬며 초오를 만났던 일을 그에게 모두 말해주었다. 용오천은 이야기를 들으며 얼굴을 점점 더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 있는 얼굴이 되어 깊은 한숨을 쉬더니 두 손을 합장하며 염불을 했다.

“이제 보니 그날 저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아직 살아 있었던 거네요. 아미타불, 그가 사부님께 잡힌 것도 어떻게 보면 벌을 받는 거예요. 적어도 다시는 나쁜 짓을 계속할 수는 없을 테니까.”

시하는 족히 100볼트는 되어 보이는 민머리와 중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위화감을 느꼈다.

“어쩌다가 출가를 하게 된 거죠? 맨날 맘에 드는 처자를 찾아 장가간다고 하더니.”

예전에는 구해도 꼭 처자들만 구해주더니 어쩌다가 초식남이 되어 버린 거지? 그가 잠깐 얼굴을 굳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저는 자원해서 사부님을 따른 거예요. 아시다시피 저는 모든 수행 계급을 소진해 버렸죠. 근데 불수는 영근의 제한이 없고 공덕으로만 수행할 수 있어서 불수로 전환하여 다시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의 법호는 광량(光亮)이에요.”

음, 확실히 아주 밝게 빛나고 있는 듯해. 시하가 그제야 그의 수행 계급이 이미 화신기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멋있네요! 이렇게 빨리 화신기에 다 오르고.”

이제 며칠 됐다고, 이곳 대륙의 풍수가 좋아서 그런 건가?

“제가 뭐가 빨라요. 천 년이나 걸려서야 화신기에 올랐는데, 이만하면 늦은 거죠.”

“천 년이요? 당신이 여기 대륙으로 온 지 천 년이나 되었다고요?”

“네. 상처가 모두 낫고 나서 당신을 찾아가고 싶었는데 수행 계급이 너무 낮아 환해를 뚫을 수가 없었어요. 이번에도 사부님께서 도와주셔서 여기 섬까지 올 수 있었던 거예요.”

시하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왜 용오천과 나의 시간이 다른 거지? 나는 분명 몇 달 전에 여기에 도착했는데. 그때 초오가 나를 알아봤을 때만 해도 몇 년 전밖에 되지 않았잖아. 설마 시간을 뛰어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건가? 이놈의 002호는 도대체 믿을 수 가 없어!

“그럼 후지와 역요괘는요? 그들은 보지 못했어요?”

“당신이 제가 천 년 만에 재회한 첫 사람이에요.”

시하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녀의 시간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면 이제 모두 천 년 전에 머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고 쳐도 왜 후지의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수행 계급이 제일 높았고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분명 그의 수행 계급이 더 많이 올라 있을 텐데. 그러니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두 명은 있을 법한데.

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후지도 반드시 찾고 싶어. 대체 오라버니들은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거야.

“택배 누이, 걱정하지 말아요. 언젠가는 그들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용오천이 시하를 위로하던 그때 밖에서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어족 족장, 상사님께 인사 올립니다. 소인 상사님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용오천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주름진 얼굴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서성였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자 눈빛을 반짝이며 바로 용오천이 있는 앞으로 다가와 예를 갖추었다.

“광량 상사님, 듣자 하니 영사(令師, 스승) 제진 상사께서 이미 섬에 도착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네, 이미 도착하셨어요.”

“상사님께서 계시니 이제 됐어요!”

족장이 크게 안심하며 얼굴의 주름을 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아, 바로 섬의 결계 때문에요! 광량 상사님도 아시죠? 이 섬이 환해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능력자 한 분이 이곳을 지나가면서 결계를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강풍이 이 섬까지 미치지 못한 것이고요. 근데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결계가 점점 약해져 곧 무너질 듯한 조짐을 보이고 있어요. 다행스럽게도 제진 상사님이 지나가시다가 결계를 안정시켰지만, 방금 누군가 와서 저에게 결계에 이상이 생겨 균열이 있다고 보고했어요. 그래서 급히 상사님께 결계를 한 번 봐 주십사 요청드리려고 이렇게 찾아뵈었어요.”

제진이 인어들을 도와 결계를 만들었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공경했구나. 이제 보니 이 섬은 결계 속에 있는 거였네.

그래서 그 이상한 바다 위를 날아오면서는 각종 강풍과 풍랑을 만났는데도, 이 섬에 들어서자 갑자기 모두 사라져 고요해진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지만 진법의 움직임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결계를 설치한 사람은 엄청난 경지의 능력자임이 분명해.

“그럼, 급한 일인 듯하니 얼른 가서 사부님께 말씀드릴게요.”

제진은 모범적인 중의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초오의 몸에 주문을 외웠다. 순간 진법의 빛이 비치더니 그가 서서히 깨어났다. 이건 춘회진(春回陳)이잖아? 시하가 놀라며 초오의 몸을 보니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심지어 부러졌던 오른쪽 어깨도 원래대로 회복되어 있었다.

“당신, 상처를 치유한 거였어요?”

초오를 가체사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 가두고 교육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왜 여기서 상처를 치유하는 거지.

“아미타불. 초 시주의 상처가 깊어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그 상처가 오랜 병으로 남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시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 불편함을 느꼈다. 이유가 너무 빈약한데. 중들은 원래 다 이렇게 자비로운 건가? 하긴 초오를 그에게 넘기기로 했으니 뭐라고 할 말은 없지. 제진의 능력이면 상대도 어쩔 수 없을 텐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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