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화 (93/189)

“언니!”

유유가 언제 왔는지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다들 괜찮은 거지?”

시하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다른 수사들이 방어진 안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한 명도 줄어들지 않았다. 수행 계급이 안정된 범천이 걸어오더니 시하를 도와 내식(內息)을 했다. 잠시 후, 시하는 몸이 많이 편안해졌다.

“고마워요. 유유의 사부님.”

“당연한 거예요. 당신이 우리를 구해줬잖아요. 그 마수는 완전히 제압된 거겠죠?”

그때 누군가 웅덩이 안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마수가 아직 죽지 않았어요. 안에 있어요!”

웅덩이 안에 희미하게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고, 주위에 희미하게 검은 기운이 떠다녔다. 사람들은 시하가 있는 곳으로 날아와서야 그곳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초오는 그저 간신히 숨만 붙어 있을 뿐이었다. 온몸의 관절이 모두 부러져 있었고, 살가죽이 다 벗겨져 몸속의 뼈가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한 쪽 손도 잘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원망 가득한 눈빛만은 아직 변함이 없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시하를 노려보던 그가 피를 토하며 힘겹게 질문했다.

“당, 당신 방금 나의 진법을……. 대체 그 법술이 뭐지?”

시하가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아마도 물리(物理)일 거예요.”

초오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뭔가 더 질문하려는 듯했으나 옆으로 다가온 수사들에 의해 그만 막히고 말았다.

“이런 마수 우두머리와는 쓸데없이 말을 섞을 필요가 없어요. 바로 죽여 버려야 해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이 법기를 꺼내 들고 그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기 위해 달려들었다.

“아미타불.”

그때 하늘로부터 짧은 한마디가 울려 퍼지더니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그 한마디는 순식간에 모든 포악한 기운을 씻겨주었다. 사람들은 분노가 모두 사라진 채 일제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로부터 한 사람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가 걸을 때마다 발아래에 순백의 연꽃이 피어나 꽃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사람은 티끌 하나 없이 하얀 법의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나이는 사오십 전후로 추정되었고 매우 온화해 보였다. 마치 온 세상을 품은 듯한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어 보고 있으면 경외심이 들었다. 그의 수행 계급은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예측할 수 없는 높은 능력의 고수인 듯했다. 분의에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뒤로 물러서며 그가 내려올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미타불. 소승의 법호는 제진(濟塵)이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시주분들께서 이 사람을 저에게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중의 화려한 등장에 기가 눌린 탓인지 아니면 방금 그 염불에 분노가 모두 씻긴 것인지 요청을 들은 사람들은 화를 내지 않고 그저 얼굴만 찌푸리고 있었다. 그중 현기가 무거운 목소리로 그에게 설명했다.

“대사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 사람은 마수예요. 악랄한 술법으로 저희를 여기까지 끌고 와서 수행 계급을 빼앗고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했죠. 이자는 방금까지도 수많은 수사들의 생명을 위협했어요. 저희는 그저 그 일을 바로 잡으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다시금 분노했지만, 눈앞에 있는 중의 의중을 알 수 없어 아무도 섣불리 손을 쓰지 못했다.

“아미타불.”

중이 다시 염불을 하자 사람들의 분노가 사라졌다.

“여러분, 저는 이 사람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악랄한 일을 일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때문에 소승이 교화를 시켜 언제가 되었던 깨달을 수 있게 하려는 겁니다.”

듣던 중 한 수사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스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당신이 누구신데요? 당신이 맡기라고 하면 저희가 순순히 맡길 것 같아요?”

“맞아요. 한 번도 제진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혹시 저 마수와 같은 패가 아닐까요?”

“마수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이렇게 놓아줄 수는 없어요.”

“맞아요. 데려가서 교화를 한다고 해도, 만약 저자가 몸이 회복되고 나서 다시 찾아와 복수하려고 하면 어떡하죠?”

사람들은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 후환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말끝마다 갑자기 나타난 그 중을 빈정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은 조금도 화를 내는 기색 없이 여전히 자비로운 모습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 안심하셔도 됩니다. 소승 가체사(伽蒂寺)에서 수련하는 제자고, 이 사람을 데리러 이곳으로 온 거예요.”

가체사, 그게 뭐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상사(上師)님!”

하늘을 가르며 파란색 옷을 걸친 중년 남자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소매에는 금색의 상운(祥雲, 복되고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이 보이는 구름) 무늬가 선명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는 여기까지 급하게 쫓아온 탓인지 숨을 헐떡였다. 남자가 나타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바라봤다. 그때 현기가 또다시 소리쳤다.

“고(顧) 맹주!”

남자도 놀라며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가 그제야 인사했다.

“현 장문! 범천 존자, 이 장문, 모 장로.”

사람들이 그를 향해 예를 갖추며 태도를 바꿨고, 심지어 흥분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줄곧 오만한 표정을 짓던 범천 존자마저 어쩔 수 없이 상대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때 남자가 시하를 바라보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이 존자는…….”

천택대륙에 언제 또 도겁기의 존자가 나타난 거지?

“시하입니다.”

“저는 고택(顧擇)이라고 하고, 천의맹의 맹주예요.”

어쩐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조심스러워 하나 했네.

고택은 더 중요한 일이 있는지 바로 중에게 예를 갖췄다.

“제진 상사님, 방금 저희 천의맹에 오셔 놓고, 갑자기 무슨 급한 일이 생겨서 가신 건가요? 제가 도와 드릴 일이라도 있을까요?”

“고 맹주. 소승 이번에 바다를 건너 여기로 온 것은 여기 초 시주 때문이에요. 저는 천 년 전에 이 분과 인연이 있었답니다. 당시에도 바른 길로 가게 하고 싶었지만 이미 마도에 너무 깊게 빠져 있었죠. 그러다 오늘과 같은 이런 악행을 저지르게 되었고요. 때문에 소승 이번에는 반드시 이자를 가체사로 데려가 교화를 시키고 싶어요. 그러니 각 시주님들께서 부디 허락해주시길 바라요.”

“가체사!”

고택이 눈을 반짝이며 동경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수사에게 상황을 듣고는 바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제진 상사님은 환해 밖에 있는 가체사에서 오셨고, 출규기(出竅期)의 불수(佛修)이십니다. 저는 이 마수를 이 분 손에 맡기는 것이 제일 합당하다고 생각해요. 절대로 도망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출규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소리쳤다. 그건 경계에서도 한참 높은 계급이었다. 전체 천택대륙을 다 뒤져도 출규기의 수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 사람은 불수를 수련한 사람이었다.

불수는 선수와 달라 대대로 공덕을 쌓아야만 이런 경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분명 복이 엄청 많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불수에게는 손을 쓰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 공덕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인과에 걸려들면 수련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저 염불을 외우기만 해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평온해진 거였구나. 출규기의 수사가 지키고 있으면 초오는 꼼짝도 못할 거야.

사람들은 그제야 안심하며 의심했던 모든 마음을 가라앉히고 중을 막아서지 않았다.

“시주 여러분께 감사해요. 초 시주, 소승이 말했었죠. 세상의 일은 모두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요. 마음에 선을 품고 있으면 속계를 벗어나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음에 악을 품고 있으면 반드시 그 화가 몸을 상하게 하죠. 이제 당신도 조금은 뉘우쳐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초오가 오히려 차갑게 웃으며 여전히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또 당신이에요? 선이니 악이니 전부 부질없어요. 세상은 원래부터 선과 악의 구분이 없죠. 실력이 있는 자만이 최고의 발언권을 갖게 된다고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날 죽이려면 바로 죽여요.”

“그러면 소승이 우선 당신을 가체사로 데려가야겠군요. 거기 머물면서 우선 마음속의 집착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와 그 켜켜이 쌓은 업보를 갚아요.”

하얀 조롱박 하나가 중의 손에 나타났다. 그가 뚜껑을 열고 염불을 외우며 상대를 그 법기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잠깐만요!”

시하가 참다못해 그를 막자 제진이 고개를 돌렸다.

“시주님, 무슨 일이시죠?”

“물건을 좀 가져가려고요.”

시하가 서둘러 그쪽으로 걸어가 초오 몸에서 주머니를 취한 다음 중을 향해 합장하며 예를 췄다.

“됐어요. 이제 데려가세요.”

제진은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시하가 들고 있는 그 주머니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마수의 주머니에는 방금 그가 빨아들인 수행 계급들이 들어 있어요.”

“수행 계급을 빨아들여요?”

고택도 놀라며 소리치더니 질책이라도 하듯 그녀를 바라봤다. 당신이 그걸 혼자 독식하려고? 시하가 손에 들고 있는 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맞아요. 이 안에 정말 그런 진법이 들어 있어요. 때문에 절대 남겨 두어서는 안 돼요!”

시하가 아직도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녀의 어깨에 엎드려 있는 병아리를 불렀다.

“어서 입김을 불어봐.”

병아리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용히 입을 벌려 불꽃을 뿜어냈다. 주머니가 순식간에 재로 변해 버렸다.

“잘했어. 입김이 엄청난데?”

사람들은 그제야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아무도 막지 못했다. 그런 물건을 남겨 봤자 수선계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으니 없애 버리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애석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에 있는 재를 바라봤다. 아주 특수한 진법이었는데, 아깝군.

하지만 제진은 사람의 수행 계급을 빨아들이는 진법에는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그녀의 어깨에 있는 병아리를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한참을 관찰했다. 그의 눈길에 시하는 조금 언짢아졌다. 도대체 왜 저렇게 날 바라보는 거지.

“시주님, 소승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혹시 전에 수선(修禪)을 하셨는지요.”

“아뇨.”

“그럼 시주님의 마음속에 있는 보리(菩提)는 시주님의 마음에 따라 생긴 거군요. 시주님께 이러한 재능이 있으신데 혹시 불수(佛修)를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만약 그럴 맘이 있으시다면 제가 자세히 안내해 드리고 싶습니다.”

“전혀 없어요!”

“시주님께 그렇게 많은 복이 있는데 왜…….”

“머리를 다 밀어 버리면 못생겨지거든요.”

그 말에 사람들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유가 너무 직설적인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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