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89)

비록 그 이름이 이 대륙에서 그렇게 지명도가 있진 않았지만, 초오는 분명 그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 역시나 그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했다. 마치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듯 고민하더니 잠시 후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으니, 오늘은 놓아드리죠.”

“그럼 다른 사람들은요?”

시하는 마기가 가득 덮인 구덩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검은 마기가 다른 사람들은 막아도 자신에게 있는 차단 기능의 영근은 막지 못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구덩이에는 몇십 명의 사람들이 아직 묶여 있는 듯했다.

초오의 얼굴이 잠시 창백해지더니 눈에 살기를 띠었다. 잠시 후, 자신의 마음을 억누른 그가 어쩔 수 없이 시하에게 말했다.

“역시 소주님이시군요. 저의 마기 장벽을 다 꿰뚫어 보시고. 좋아요! 소주님의 얼굴을 봐서 이 사람들도 모두 풀어주죠!”

그가 손을 흔들자 그곳에 깔려 있던 짙은 마기가 서서히 물러가고, 구덩이 안에 제각각의 옷차림을 한 열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선수였고 수행 계급이 모두 높아서 최소 대승기로 보였다. 그들은 모두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중간에 그 여장을 하고 있는 수사는…….

“범천 존자!”

이 사람은 유유의 사부잖아? 시하가 놀라서 초오와 타협 중이었던 것도 잊은 채 바로 구덩이로 날아갔다.

“조심해요!”

귓가에 거센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영검을 불러내 몸을 돌려 그것을 막았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풍인 하나가 부서졌다.

“흥! 당신 역시 나를 속인 거였어!”

초오가 차갑게 웃었다. 오라버니는 무슨, 당신 혼자밖에 없잖아.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몇십 척의 거리에서 손을 흔들더니 수많은 풍인을 뿜어냈다. 방금은 시험 삼아 던진 거였다면 이번에는 더 큰 위력으로 공격했다. 그 풍인이 갑자기 몇 척이나 높아지더니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그녀를 공격했고 다른 하나는 장문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장문의 상처가 깊어 망과 진 어린이는 아무것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하가 이를 악물며 바로 낙성진을 불러냈다. 검기가 순식간에 기다란 용으로 변하더니 두 갈래로 다가오는 풍인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풍인들의 방향을 바꾸어 반대로 상대를 공격하도록 했다.

초오는 몸을 날려 몇 척이나 되는 거리까지 물러서며 몸을 피했다. 그가 더는 코앞까지 다가온 검기를 피할 수 없게 되자 결계로 자신의 영검을 불러내더니 흩어 놓았다. 그러고는 영검의 공격을 막더니 뜻밖에도 공격하지 않고 장문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시하도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이동했다.

초오는 더 크게 웃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공중에 떠 있던 영석들이 붉은빛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시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공중에 떠 있는 영석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하나로 연결되는 모양을 보니 심상치 않았다.

“어서 나가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어 버렸다. 붉은빛이 크게 온 하늘을 덮었는데, 반투명한 붉은색 유리막이 청운파를 덮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하하하하. 또다시 재료를 얻게 되었군. 나의 계급이 또 한 단계 오르겠어.”

“사부님, 어떡하면 좋죠?”

망이 미간을 찌푸리며 붉은 진법을 바라보자, 장문이 고개를 돌려 구덩이에 있는 사람들을 응시했다.

“우선 사람부터 구하고 봐야지.”

그가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날아갔고, 시하도 중간에 있는 범천에게 날아갔다. 그들은 법부에 하나로 묶여 있어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 몸속에서 영기 같은 것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시하는 영검을 불러내 연결되어 있는 끈을 잘라냈다. 그러자 눈을 감고 숨죽이던 사람들이 그제야 눈을 떴다. 범천 존자가 제일 먼저 깨어나 입을 열었다.

“유유의 언니?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

이 사람, 내 이름도 기억 못하고 있잖아!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당신의 수행 계급은 고작……. 이제 보니 당신은 수행 계급을 감추고 있었군요. 그러니까 그런 공법을 유유에게 전달해줄 수 있었던 거고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범천 존자, 당신들은 어떻게 잡혀 온 거죠?”

“저는 원래 천의맹으로 가려고 했는데 가는 길에 마수의 음모에 빠져 버려 몸이 꽁꽁 묶여 버렸어요. 깨어나 보니 여기에 와 있었고요.”

살펴보니 역시나 전에 천의맹을 찾아가 곽명의 일을 물으려고 떠났던 그 일행들이었다. 그중 대부분은 각 파의 장로, 장문들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유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유유는요?”

“마기의 음모에 들면서 어린 제자들은 이 상황을 문파에 전달하기 위해 서둘러 빼돌렸어요. 지금쯤 이 일을 각 문파에 전달하고 있을 거예요.”

시하가 그제야 안심했다. 그때 묶여 있던 사람들이 깨어다더니 그중 한 사람이 물었다.

“여기는 대체 어디죠?”

“여기는 저희 청운파예요.”

장문이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영악파 장문 현기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를 잡은 마수가 바로 당신의 제자예요? 이름을 들어 보지도 못했던 문파에서 이런 마수 우두머리를 다 배출했네요.”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죠.”

그때 다른 대승 수사가 차갑게 말하며 얼굴에 불만을 드러냈다.

“어쩌다가 그렇게 가르친 것이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어요. 각 파의 대승 장로들을 끌고 간 일은 절대 혼자의 힘으로 했다고는 믿기가 어렵네요.”

그 말이 떨어지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분노하며 청운파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딱 봐도 작정하고 온 거였어요. 한 사람의 수행 계급이 아무리 높아도 이렇게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기는 어렵다고요.”

“청운파의 소행일 수도 있죠. 아니면 저를 그 멀리에서부터 여기까지 끌고 올 이유가 없잖아요?”

“여러분 저 사람을 믿지 마세요. 다른 음모가 더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수행이 쉽지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바로 마수로 변신한 거죠? 청운파가 원래부터 마수였던 건 아닌가요?”

흥분한 사람들을 보며 시하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은 어떻게 여기에서 나갈 건지 그 방법을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렇게 상대를 비난할 때가 아닌 듯한데?

청운파의 사람들은 입이 둔했기에 장문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고, 화가 나서 얼굴만 붉히며 마땅한 변명을 내놓지 못했다. 그때 한 중년의 수사가 범천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범천 존자! 이들이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어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범천은 갑자기 자신에게로 날아온 공을 받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이곳으로 끌려 온 것이 부끄러워 청운파에게 그 책임을 물어 자신들의 체면을 세우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 사람들을 상대하라는 거지? 당신들 눈에는 옆에 서 있는 이 도겁기 수사가 안 보여요?

그때 현기가 갑자기 생각난 듯 분노하며 말했다.

“아, 맞아요. 전에 대비에서 금단 우승을 차지한 사람도 청운파에서 왔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는 미리 와서 염탐을 한 거네요. 그 금단 수사는 지금 어디에 있죠? 어서 나와서 저희 질문에 답해보라고 하세요!”

당신이 먼저 나를 찾으니 나도 사양하지 않겠어.

도겁기의 위압이 그에게 흘러가자 현기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시하가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에 납작하게 눌려 있는 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그 금단이에요. 저를 찾으셨어요?”

현기가 눈을 크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 도…….”

그는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고작 그 한마디밖에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위압을 뿜어냈다.

“아직도 의문이 남아 있으면 저한테 바로 물어보세요. 저희 사부님께 물을 필요 없으니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시하의 시선을 피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아무 말 못하고 있던 중, 잠시 후 누군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이제 보니 도겁기의 선배셨군요. 저희가 경솔했어요.”

“문파에 도겁기 존자가 있으니, 마수가 있는 것도 이상할 건 없네요.”

“맞아요. 선배님께서 부디 널리 양해해주세요! 저희가 고의로 무례를 범한 건 아니에요.”

방금까지도 화가 나서 날뛰던 사람들이 갑자기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시하가 그제야 위압을 거두었다. 사람들이 왜 위압을 좋아하나 했더니, 얘기가 훨씬 쉬워지네.

그때 범천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유의 언니. 이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나 어서 말해 봐요. 이 초오라는 자가 왜 저희를 여기로 끌고 온 건지 아세요?”

“아마도 여기에는 영석이 많아서일 거예요. 이 진을 치기도 편하고요.”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들며 하늘을 바라봤다.

“이게 무슨 진이죠?”

“이 진법은 처음 보네요. 마수진은 아닌 듯하고 선수의 것은 더욱 아닌 듯하고요!”

사람들이 한참 추측하다가 그들 중 수행 계급이 제일 높은 시하와 범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하는 바로 그들에게 답을 알려줬다.

“환천진. 이 진은 들어갈 수만 있고 나올 수는 없어요. 그리고 진안이 밖에 있어 밖에서만 뚫을 수 있죠.”

시하의 말에 범천이 대꾸했다.

“그럼 저희는 각 파에서 저희를 구원해주기만 기다리고 있어야겠네요?”

시하가 머리 위에 있는 그 금색 법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상황이 더 안 좋을 수도 있어요. 머리 위에 있는 이 진법은 그 이름이 뭔지는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용성의 마수는 그걸 수체진이라고 했지만 분명히 몸을 씻는 것에 사용하는 법진은 아닌 듯했다.

“저 진은 수사들의 수행 계급을 흡수해요.”

세상에 수행 계급을 흡수하는 진법도 있다니!

“수행 계급을 흡수해요? 젠장,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그 때문이었군요!”

그때 영악파의 장문 현기가 두 손을 불끈 쥐며 시하에게 예를 갖췄다. 오만함이 온데간데없어지다니, 원래 장문의 얼굴은 다 지우개로 만들었나? 신기하네.

“존자께서 이 진법의 악독함을 알고 계신 걸 보니, 혹시 진법을 뚫을 수 있는 방법도 알고 계신가요?”

“아니요.”

“그럼 존자께서는 이 진법이 어떤 영기로 세워졌는지 아세요?”

“아니요.”

“그럼 존자께서는 이 진법의 띠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저는 진법을 못해요.”

그건 배운 적이 없어요.

현기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도대체 어떻게 도겁까지 오른 거지? 진법은 기본 공법 아닌가?

그때 장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근데 이 진법이 수행 계급을 흡수하는데, 왜 초오는 여태 움직이지 않죠?”

시하도 그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진이 공중에서 반나절이나 떠 있고, 그들이 아래에서 그 난리를 치고 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인간 요괴는 아직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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