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5/189)

“아!! 저리 가! 저리 가라고.”

그녀가 몸의 균형을 잃고 바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완전히 궁지에 내몰리게 되었다.

“왜? 왜 이러는 건데? 저리 가, 저리 가!”

이제 그녀의 혼령 전체가 그녀의 몸 밖으로 내몰릴 듯했다. 시하가 얼굴을 찌푸리며 법기 옥령롱을 꺼내 그녀에게로 던졌다. 흰색의 방울이 순식간에 큰 반투명한 모습으로 변했다. 옥령롱이 그녀의 온몸을 덮자 그제야 그녀의 혼령이 다시 몸속으로 돌아갔다.

시하가 결을 만들어 자신의 영기를 이용해 방어 진법을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그 속으로 들어가 잠시 검은 원기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양란지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모든 감각을 잃은 자신의 손과 발을 보더니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두려움이 더욱 깊어졌다.

“왜죠? 왜 저만 이런 거죠? 제 손, 제 발…….”

“제가 말했었죠. 화종이 당신의 영혼을 사라지게 할 거라고. 이 검은 기운은 음부에서 온 원기예요. 음부는 원래부터 망령들로 인해 생성된 곳이죠. 때문에 음부에서 온 것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바로 혼령이에요. 당신의 혼령이 안정되지 않아 그들에게 끌려 나가 먹히는 것이고요.”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몸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녀는 영혼에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당신의 말은 제 혼령이 방금 먹혔다는 거예요? 말도 안 돼!”

그녀가 자신의 손을 들고 휘저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오른손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다시 영력을 이용하여 몸의 상처를 살펴보려고 했지만 영력이 오른손에 닿으면 자동으로 끊겨 버렸다. 완전히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혼령이 먹히는 건 일반적인 상처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혼체(魂體)에 상처를 입으면 환생한다고 해도 오늘부터 그녀는 불구로 지내야 했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야. 그건 분명 나를 구하는 신기였어. 근데 어떻게 내 혼령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거지? 말도 안 돼! 당신이 날 속이는 거야! 날 속이는 거라고!”

“당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어요!”

시하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런 사람과는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않고 바로 몸에 있는 진법과 법기를 거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몸이 또다시 검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그녀는 바로 얼굴을 바꾸더니 진 안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안 돼, 구해줘요! 구해줘!”

시하는 다시 진법을 열고 옥령롱으로 그녀의 혼령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은 후 힘껏 옷깃을 잡아당겼다.

“당신, 뭐 하려는 거죠? 아! 이거 놔요, 이거 놔!”

“이런, 입 다물어요!”

시하는 그녀가 몸에 상처를 입은 틈을 타 결을 만들어 몸을 고정시켰다.

“나도 여자예요. 소리는 왜 질러요. 내가 당신을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양란지가 아무 말도 못하고 시하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만 좀 소리 질러요.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화종은 꺼내야 하니까.”

그녀의 가슴 아래 빨간색의 불꽃 표시가 보이자, 시하가 손으로 그 부분을 눌렀다.

띵!

[[002] 복구 도구 발견, 추출 중.]

“잠깐만요. 당신이 그걸 가져가면 저는 어떡하죠? 저는 다시 향로가 되어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시하가 더는 참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양란지, 저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기억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일이 과거에 있었다고 해도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누구든 영원히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어요. 사람은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미래를 볼 수 있죠. 다시는 그런 기억에 얽매이지 마세요. 과거에 오래 머물수록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더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져요. 혹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 보았을 때, 그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면 어떡할 거예요? 그리고 그 기억들이 진짜로 일어난 일이 아니면 어떡할 건데요?”

그녀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마침내 자신이 중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기억들이 제 과거가 아니면 왜 저한테 미리 알려주는 거죠?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차라리 이 고통스러운 일들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열 살부터 자신이 누군가의 향로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것을 바꾸려고 일생을 노력해 왔다. 만약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내가 미리 알 수 있게 한 거지? 왜 나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 거야? 그리고 이 물건은 왜 또 빼앗아 가는 거지?

시하가 얼굴을 찌푸리며 신식에 들어갔다.

“002호, 화종이 사라지고 난 후 숙주의 상태는 어땠어요?”

[[002] 혼령이 소모되고 나서 다시 회복되지 않아 스스로 보강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그럼 기억은요? 그 중생의 기억이요.”

[[002] 심층 자료 창고는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는 구역이라 수정이 불가합니다. 하지만 002호가 상대를 도와 그곳을 가려줄 수는 있는데 실행할까요?]

“실행하세요! ……양 동생, 그 기억들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면 그냥 잊어버려요!”

순간 그녀가 깜짝 놀라는 눈빛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놀라움, 환희 등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있었지만 다시 그 모든 것들이 희미해졌다. 그녀의 얼굴에 그동안의 감정들은 사라지고 막연함과 의혹만이 남았다. 그 순간 손톱보다 조금 큰 불이 그녀의 몸에서 솟아올라 먹빛을 뿜고 있었다. 시하가 손을 거두고 화종을 향해 손을 폈다. 그러자 그 불이 조용히 그녀의 손 위로 날아올랐다.

[[002] 도구 회수 완료.]

양란지의 몸이 나른해지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시하는 고개를 돌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고 유유와 운림 외에 다른 사람들은 상처가 가볍지 않았다. 양란지는 손과 발이 하나씩 잘려 나갔고, 곽명은 몸의 절반이나 못쓰게 되었다.

시하의 영기도 얼마 버티지 못할 듯했다. 시하가 손안에 있는 화종을 보고 바로 지도가 표시하는 봉인 지점으로 갔다. 마침 방금 사라진 빨간색 돌기둥 아래에 있었고, 그곳에 검은 기운이 밀집되어 있었다. 시하는 손안에 있는 검은색 화염을 땅 위에 있는 그 구멍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순간 빼곡하게 솟아 있던 검은 기운이 멈췄고, 그 구멍을 시작으로 누군가 불을 밝힌 것처럼 어두컴컴하던 공간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큰 덩어리의 용암들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사방의 석벽이 물처럼 녹아내리며 서서히 용암 바다로 변해 버렸다.

큰일이네. 아래에 아직 사람이 있는데!

시하는 서둘러 뛰어가 진 어린이가 주었던 비행법기를 찾아냈고, 몇 사람을 건져내어 화산 출구를 빠져나왔다. 그곳을 나오고 나서야 시하는 화산 내부가 이미 불바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에 가득하던 균열 틈 사이로 용암이 가득 채워져서 온통 붉은빛을 뿜고 있었다.

시하가 높은 곳으로 올라 아래를 바라봤다. 그 빛들이 어딘가 모르게 많이 익숙해 균열들의 모양을 연결하여 보니, 진법과 닮아 있었다. 균열들이 거대한 진법이었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데?

지면의 붉은빛이 점점 더 밝아지더니 갑자기 하늘이 뭔가 왜곡되어 보였다. 착각인가? 세상이 갑자기 왜 작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잠깐, 정말 작아지고 있잖아! 방금 전까지도 멀리에 있던 산이 갑자기 사라졌어! 그럼 우리는 어떡하지?

그때 밝은 균열들이 하늘에 나타나 한 번 반짝이고는 바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밝은 빛이 그녀의 뒤에 나타났다. 강한 흡입력이 전달되면서 마치 누군가 입을 벌리고 그들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듯 몇몇 사람들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경에서 탈출하는 건가? 어쨌든 비경에서 나가는 거잖아. 너무 잘된…… 것이라기엔 나는 왜 아직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 다섯 명이고 내가 중간에 서 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만 데리고 나가는데!

광활하던 천지가 10미터 둘레의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국제관례법에 따라 매번 비경이 붕괴되기 전, 외부로부터 유입된 생명체는 밖으로 튕겨 내곤 했었다. 이곳도 무망경과 다를 바 없었다. 때문에 비경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다 보면 그녀도 밖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 그냥 아무 걱정 없이.

그런데 왜 갑자기 멈추는 거지. 줄어들고 있던 비경이 갑자기 멈추었다. 바닥에는 아직도 용암이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고,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관례는 어디로 간 건데? 미션은 이미 완성한 거 아니었어? 왜 아직도 나는 여기에 있는 거야? 이곳의 영기가 아무리 짙고 풍경이 아름다워도 난 여기에 남고 싶지 않아.

그때 휴대전화 벨소리 같은 것이 울리자 시하가 소리가 나는 쪽을 찾아보았다. 그 익숙한 소리는 우측에 있는 암석 밑에서 들려왔다. 시하가 결계를 이용하여 그 암석을 열고서야 높은 단상 위에 놓여 있던 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금 양란지가 놀라 놓치면서 알이 여기까지 굴러온 듯했다.

알 위에 있던 그 복잡한 금색 무늬는 사라지고, 녹색 줄무늬가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위에는 간체 한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밀어서 전화받기.’

알에 터치 기능도 있는 건가? 설마 비밀번호를 풀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시하가 슬라이딩 표시 버튼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몇 초 후,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요. 2호예요? 이제야 저한테 연락한 거예요? 백 년도 지났는데 난 또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요.”

전화기 너머로 무거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제가 누군지 알고 있죠? 저도 집행자예요. 시동이라고 합니다. 당신처럼 재수 없이 이 시스템에 걸려들었죠. 이름이 뭐예요? 아니다,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네요.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은 2분밖에 안 되니까요. 당신은 지금 음부와 인간계의 구멍을 복구하고 천택대륙에 도착했어요. 하지만 어디에 있든 신속히 유명지해(幽冥之海)로 와서 저와 합류해야 해요.”

“저는…….”

“전 여기서 어느 귀찮은 놈을 만나는 바람에 미션 진행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아주 급하니까 어서 와서 저를 도와주셔야 돼요! 구체적인 건 만나서 다시 얘기할게요.”

“하지만…….”

“당신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 잘 알아요. 미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죠. 사실 저도 처음에 이 세계로 전달되었을 때 많이 괴로웠거든요. 하지만 미션을 완성하는 것이 저희가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며칠 미친 듯이 하다 보면, 적응될 거예요. 조급해할 것 없어요. 이 썩을 미션을 완수만 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까.”

“…….”

“저는 반드시 돌아가야 해요. 보살펴야 할 여동생이 있거든요. 동생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가 남겨 놓은 사진은 보셨어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돌아가지 않으면 여동생이 엉뚱한 놈이랑 도망갈까 봐 큰일이에요. 제가 당신보다 더 급할걸요? 그러니까 어서 여기로 오세요. 알겠어요? 여보세요? 아직 거기 있어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빠?”

“저는 당신이……. 잠깐. 하하(夏夏)?”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