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189)

그때 발의 통증을 느낀 시하가 아래를 바라보니 영검이 발에 꽂혀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고통을 무릅쓰고 고개를 드는 시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유!”

유유는 시하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였다. 시하보다 앞에 있었던 탓에 대부분의 공격을 그녀가 막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영검으로 인해 상처들이 나 피로 얼룩져 있었다.

“언니, 전 괜찮아요!”

그녀가 이를 악물며 다시 결계를 지탱하려고 했지만 몸이 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 지경이 됐는데 어떻게 괜찮다는 거야!”

어떡하지? 전혀 승산이 없어 보여! 그렇다고 얘기를 하자니 상대방은 들어주지도 않을 테고. 곽명은 원래부터 누군가를 구해주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밀입국자나 마찬가지였기에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가 범천 존자의 부탁을 가장한 까닭은 석문이 갑자기 닫힐 줄 모르고 유유의 몸에 있는 법기를 편취하여 출구를 나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폭로된 이상 유유가 그 허공을 가르는 법기를 그에게 넘겨준다고 해도 그는 그들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곽명이 다시 결계를 만들어 두 번째 공격을 시작했다. 영검이 하늘을 가득 덮고 공격하는 바람에 그들은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시하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하늘에 가득한 위압 때문에 몸이 다시 무거워지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상에, 이렇게 심하게 누를 일인가? 이렇게 괴상한 중력은 완전 비과학적이잖아. 잠깐만! 중력? 위압의 표현 방식이 바로 중력이고, 중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물체가 회전하면서 만들어 내는 원심력이라고 물리 선생님이 말씀하셨었어!

시하가 마음을 집중하며 몸속에 있는 모든 영기를 움직였다.

도전! 물리 선생님 말씀을 믿어 보는 거야.

시하는 영기를 두 사람의 주변으로 모아 엄청난 속도로 회전시켰다. 잠시 후, 압력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일촉즉발의 순간 시하가 유유를 이끌어 땅으로 구르며 영검들을 피했다. 몸 주변에 움직이고 있는 영기로 인해 위압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이지?”

곽명이 놀라며 다시 한 번 큰 위압을 풀어놓았지만 두 사람 주변에 닿기도 전에 시하가 고속으로 움직이는 영기에 부딪쳐 밖으로 튕겨 나갔다. 곽명이 더욱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게 말이 돼? 당신들이 내 위압을 막을 수 있다고? 하, 생각보다 능력은 있네. 하지만 내 위압을 막았다고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지.”

그가 법검을 불러내더니 순식간에 그들의 뒤로 이동했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빛을 뿜어내는 검이 곧 시하의 목을 치려 하고 있었다.

“언니!”

유유가 시하를 끌어당기며 몇십 미터 밖으로 물러나더니, 상대를 공격하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순간 또다시 위압에 눌려 휘청거렸다. 시하가 바로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유유, 영기로 몸을 지탱하면서 한 방향으로 빠르게 돌려 봐. 그러면 위압을 물리칠 수 있을 거야.”

유유가 눈빛을 반짝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의 말대로 영기를 움직이니 역시나 바로 위압이 밖으로 튕겨 나갔다. 경쾌한 칠현금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수천수만 개의 풍인이 다시 날아오르더니 상대의 검진을 막았다. 게다가 시하도 옆에서 불시에 공격을 가하면서 순식간에 열세한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유유는 화허기의 수사라 상대에 비해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하는 그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행 실력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시간이 길어지면서 형세는 또다시 역전이 되었다. 두 사람이 서서히 힘을 잃어 가면서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생겼다. 반면에 상대는 담담한 얼굴로 가끔 그들을 희롱하며 자극했다.

공격하면 할수록 시하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렇게 가다가는 곽명에게 중상을 입어 영기가 모두 소진되고 죽을 듯했다. 어떡하지?

“멈춰, 주인에게 접근하지 마!”

그때 갑자기 화영이 소리쳤다. 방금 상처를 입고 땅바닥으로 쓰러진 양란지가 언제 왔는지 그 높은 단상 위에 나타났다. 그녀가 탐욕스러운 얼굴로 단상 위의 알을 안으려고 했다. 화영이 다급하게 발을 구르자 자색 불꽃이 화르르 떨어졌고 몸이 두세 배나 불어났다. 잠시 후, 그가 양란지를 향해 뛰어갔다.

양란지가 차갑게 콧방귀를 끼며 수류(水流)를 만들어 내어 화영을 공격했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화영의 불빛이 절반이나 소멸되더니 몸이 작은 덩어리로 변했다.

“멈춰, 양란지. 그 알을 만지지 마!”

그건 봉인이라고! 시하가 긴장하며 서둘러 그쪽으로 날아가려 했지만 바로 운림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양란지가 심두혈(心斗血)을 알 위에 떨어뜨리고는 핏방울이 스며드는 것을 지켜보더니 모든 것을 다 이룬 듯한 표정으로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이 도겁기의 영수는 내 것이야!”

“도겁기?”

순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특히 한참 대결을 펼치고 있던 곽명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당신 나를 속인 거였어?”

그 알을 제일 처음 발견한 것은 곽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승기의 수사였고 천택대륙의 제일 높은 계급의 영수는 기껏해야 십계(十階) 정도의 화신기에 해당했다. 때문에 처음에 그는 그 영수단(靈獸蛋, 영수의 알)에 그렇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양란지는 고의로 그에게 화영의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그가 화영에게만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때문에 그는 알 속에 도겁기의 영수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영수가 그의 수행 계급보다 대경계나 높은 계급을 갖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양란지가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차갑게 웃었다.

“곽 진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은 이 알 속에 어떤 영수가 들어 있는지 묻지도 않았잖아요. 다시 말해서 저는 이미 이 영수단에 계약을 걸었어요. 진인께서 저를 죽인다고 해도 이 알이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곽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양란지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점점 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알을 노려봤다.

“이 알을 얻고 난 후에도 감히 누가 나를 업신여기는지 두고 보지, 이건 내 거야! 이 심두혈을 흡수하기만 하면, 이 알은 내 것이 되는 거야.”

“퉤!”

그녀의 말이 아직 끝나기 전, 그 알 속으로 들어갔던 핏방울이 갑자기 튕겨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핏 봐도 알이 그 핏방울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양란지가 저 알에게 거부를 당한 건가? 엄지를 치켜세우고 싶은데 어떡하지?

“이건 말도 안 돼!”

양란지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보았지만 심두혈은 다시 알 밖으로 튕겨 나왔다. 알이 연속 퉤퉤퉤 소리를 내며 핏방울을 거부했다. 곽명이 유유의 공격을 막으며, 그녀에게 조소를 날렸다.

“하하하하. 영수단이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하니, 이 진인이 나서 보지!”

양란지가 당황하는 얼굴로 눈앞에 있는 영수단을 끌어안았다. 시하가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양란지가 이미 단상 위에 있는 알을 들어 올렸다.

띵!

[[002] 임시 봉인 보조 프로그램 붕괴, 두 세계의 균열이 열렸습니다.]

알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 진동 소리와 함께 화영기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높은 단상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붉은 불빛으로 가득하던 공간이 갑자기 소등을 한 것처럼 어두워졌다. 심지어 뜨겁게 이글거리던 용암들마저 갑자기 굳어 짙은 회색빛을 보였다.

탁탁탁탁. 뭔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지면이 진동했다. 마치 뭔가가 솟아오를 것처럼.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거대한 흑광(黑光)이 밖으로 나와 구름 속으로 날아올랐다. 흑광 속으로 희미하게 수천수만의 괴물들이 흉악스러운 얼굴을 드러내었다. 처량한 괴물의 울음소리가 구석구석 울려 퍼지며 모든 세계가 흑암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온이 차갑게 내려가며 갑자기 북극으로 이동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방금까지 공중에 날고 있던 유유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졌다. 시하는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 유유를 살폈다.

“유유!”

“언니. 그 흑광은 영기를 삼키고 있어요!”

시하가 그제야 아래로 몰려오는 흑광을 발견했다. 흑광이 조금씩 유유의 몸속으로 스며들며 마치 뭔가를 갉아먹는 듯했다. 이것이 설마 오빠가 말한 그 음부의 원기인 걸까? 근데 난 왜 괜찮은 거지? 설마 영근 때문에?

시하가 서둘러 순양 영기를 불러내 유유의 몸을 보호했다. 그러자 흑광 기운이 더는 유유에게 접근하지 못했고, 유유의 안색도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욱 비참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검은 기운이 하늘을 가득 덮었다. 전체 지면이 모두 밖으로 흘러나오고 처량하고 참혹한 비명은 점점 더 늘어났다. 마치 몇 편의 공포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느낌이었다. 흉측한 인영들이 주변에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지만, 정확한 실체는 알아볼 수 없었다. 사방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이건 뭐지? 저리 가!”

그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곽명이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그는 눈앞에 있는 어두운 기운을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몸이 마치 검은색 염료를 입혀 놓은 것처럼 여기저기에 물들더니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더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지더니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수행 계급이 높을수록 원기에 대한 거부 반응이 심해서 그런 건지 옆에 서 있던 운림은 곽명과 유유보다 양호한 상태였다. 운림이 바로 결계를 펼친 덕분에 아직 검은 기운이 그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그의 머리 위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곧 검은 기운이 결계를 뚫고 들어가 그의 몸을 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양란지에 비교할 수 없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놔, 날 놔줘! 놔!”

양란지가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그녀와 똑같이 생긴 인영이 희미하게 흔들리며 밖으로 나오려 했다. 시하가 깜짝 놀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저건 저 여자의 혼령이잖아! 제일 먼저 반투명한 그녀의 손이 몸 밖으로 나왔다.

“아!!”

양란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오른쪽 손이 순식간에 활력을 잃더니 바로 아래로 축 처졌다. 남은 한 손으로 힘겹게 공중을 날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뒤이어 그녀의 다리에서 반투명한 영체(靈體)가 밖으로 나오더니 검은 기운에 깨끗하게 먹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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