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189)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의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 음성은 그 사진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사진 아랫부분에 유음진(留音陳)이 있는 것이 보였다.

“대인님께서 말씀을 남기셨어요!”

화영의 말에 시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알고 보니 음성 메모만 남아 있고 오빠는 정작 그곳에 있지 않았다.

“2호, 당신이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신개발구역의 초급 미션에 통과했다는 거예요. 갑자기 생소한 세계로 이동하여 적응이 어렵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시스템이 약속했어요. 미션 완료 후 저희를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 준다고요. 하지만 이후 미션은 좀 더 어려워질 거예요. 당신이 저와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어찌됐든 이제 저희는 동료잖아요. 당연히 월급은 받지 못하는 그런 동료를 말하는 거지만.”

지금 보니 그는 차원 이동을 해서 온 사람이 시하임을 아예 모르는 듯했다. 그는 그녀를 자신처럼 재수 없이 어쩌다가 차원 이동을 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그래도 먼저 온 선배로서 후배를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 진지한 모습은 3초밖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복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그 앞에 사진 보셨죠? 그건 제가 특별히 남긴 사진이에요. 어때요. 예쁘죠? 사랑스럽죠? 귀엽죠? 흐흐, 비밀 하나 알려줄게요. 그건 제 여동생이에요. 친동생이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제가 보여주지도 않아요. 당신한테만 특별히 보여주는 거예요! 하지만 경고 하나만 할게요. 제 여동생에게 사심 같은 건 품으면 안 돼요. 그랬다간 제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제 여동생은요 저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여섯 살 때부터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저한테 밥을 해준다고 했다니까요! 당신은 그 애가 저한테 오빠라고 부를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를 거예요…….”

유유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 언니, 이 사람이 정말 언니의…….”

“난 저 사람을 몰라.”

난 저렇게 동생 사진을 걸어 놓고 온 세상에 자랑하는 팔불출 오빠를 둔 적이 없어.

“도대체 어디서 저런 정신 나간 사람이 나타난 건지. 이거 어떻게 끄는 거예요?”

“아! 당신처럼 여동생이 없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시하가 그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는 동안 드디어 그의 동생 자랑이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가 진짜 본론을 떠올렸는지 계속해서 말했다.

“오, 당신한테 얘기 못한 것이 있는데 저의 미션은 당신보다 앞서서 진행되고 있어요. 당신이 이 메시지를 들을 때쯤이면 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실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균열이 붕괴되는 곳에 통영진(通靈陳)을 설치해 두었어요. 그걸로 저랑 연락하실 수 있을 거예요.”

오빠와 연락할 수 있다고? 시하가 진을 끄려던 손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 물건은 저도 처음 사용해보는 거라 사용할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니까, 스스로 한 번 해보세요.”

스스로 알아서 해보라고? 사용할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메모는 왜 남기는 건데!

“그럼 여기까지 남길게요. 어서 쌍계(双界)의 균열을 봉인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음부의 원기가 튀어나와서 귀찮아지거든요.”

“음부의 원기?”

그게 뭔데? 그 쌍계의 균열은 인간계와 음부의 균열을 말하는 건가?

“아, 그리고 역사가 남긴 문제를 좀 해결해줘야 될 듯해요. 그럼 나중에 봐요!”

“역사가 남긴 문제? 이봐요.”

시하가 다급한 마음에 앞으로 나서 보았지만 그녀의 사진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아예 모습을 감춰 버렸다. 오빠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다시 곧게 뻗은 통로만 나타났다. 시하가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산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바닥에서 뭔가 솟구쳐 올랐다.

“누군가 주인님을 건드렸어요!”

조용히 영석을 씹던 화영이 깜짝 놀라 소리치더니 자색 화염을 옅은 녹색으로 바꾸었다. 그가 영석을 버리고 바로 벽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보아하니 뭔가를 쫓아가는 듯했다.

시하가 긴장된 얼굴로 옆에 있던 유유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서둘러 통로 끝으로 걸어갔다. 진동이 한동안 계속되다 다시 멈췄다. 그들이 통로 끝에 이르자 눈앞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붉은 빛이 보였다. 앞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있었는데, 한눈에 그 변두리를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컸고 곳곳에 용암이 뒤섞여 있었다. 구덩이 중앙에는 순수한 화영기로 만들어진 붉은색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돌기둥 위에 높은 단상이 있었고 그 위에서 밝은 빛이 반짝이는 걸 보니 뭔가 놓여 있는 듯했다. 위에서는 희미하게 싸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들이 아래에서 올라와서 그런 건지 그들 앞에 있던 길이 갑자기 사라졌다. 앞에 밝은 빛이 반짝이더니 전송진 하나가 나타났다. 전송진 아래 부분에는 터무니없이 또다시 그녀의 사진이 나타났다. 시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누르며 유유와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우측에 있는 단상으로 이동했다. 진법이 아직 물러가기도 전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후배님, 당신은 이 화영을 상대하고 저는 가서 영수단(靈獸蛋)을 가져올게요.”

“양 동생?”

시하가 고개를 들자 눈앞에 바로 양란지가 있었다.

“당신들이었군요!”

그녀는 잠깐 놀랐다가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들의 뒤를 바라보았다. 시하가 그녀의 눈길이 닿는 곳을 좇았다가 사람의 키만큼 거대한 알을 발견했다. 알 위에는 황금색 무늬도 있어서 마치 세상에서 제일 예쁜 예술 작품 하나를 보는 듯했다.

양란지가 두 눈을 반짝이며 알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당신 여기서 나타나다니, 그럼……. 역시 내 기억은 전부 사실이었어!”

시하가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저 여자가 나에게 접근한 것이 이 알을 위해서일까?

띵!

[[002]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어서 숙제를 시작하십시오. 조작 실패로 임시 봉인된 프로그램이 누설되었습니다. 손실도 90%.]

임시 봉인?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양란지가 영검을 불러내더니 그들을 공격했다. 유유가 준비하고 있다가 결계를 불러내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다시 칠현금을 불러내고는 금을 타기 시작했다. 풍인의 반격에 양란지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 몸을 피했다.

“당신은 내 기억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했죠? 그럼 지금은 왜 저를 막는 거죠? 지금 일어난 일은 제 기억이랑 완전히 일치해요.”

“난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이 물건은 당신이 건드릴 수 없어요.”

지도와 002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이 알은 오빠가 화종을 대신해 임시적으로 그 두 세계의 균열을 막아 놓은 물건이었다.

“흥, 이제 더는 거짓말도 하지 않네요? 세계 붕괴는 뭐고 혼비백산은 또 뭐람. 그저 내 몸에 있는 그 신기를 빼앗으려고 거짓말한 거잖아요.”

그녀가 손으로 결을 만들더니 긴 검을 들고 힘껏 휘두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화룡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그들에게 날아왔다.

“언니, 비켜 봐요!”

유유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자, 시하가 별다른 이견 없이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힘내, 언니가 정신적으로 널 응원해줄게.”

유유는 한 손으로는 금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금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백 개의 풍인들이 그녀의 손 사이로 나와 공중에 있는 화용을 잘랐다. 잠시 후 화용이 유유가 날린 풍인에 잘려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하지만 유유는 금을 멈추지 않고 더욱 강하게 타기 시작했다. 수행 계급이 한 단계밖에 차이 나지 않았지만 양란지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풍인이 여러 차례 그녀의 몸을 공격했다.

뒤에서 열심히 공격에 대응하던 운림이 놀란 나머지, 잠시 한눈을 팔다가 화영의 자색 화염에 휩쓸려 왼손이 불에 탔다. 그가 바로 수결을 불러냈지만 손은 이미 살가죽이 벗겨져 뼈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가 양란지를 데리고 뒤로 물러서더니, 이를 악물며 시하에게 말했다.

“어찌됐든 모두 함께 여기로 들어온 사람들인데 꼭 그렇게 날카롭게 맞서야 하는 거예요?”

시하가 대꾸하기도 전에 유유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웃기시네! 이 일이 누구 때문에 일어난 건데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야, 지금? 우리 언니에게 물어볼 게 아니라, 당신 선배에게 물어봐요!”

운림도 양란지가 시하를 균열 사이로 몰아넣은 일을 떠올리는 듯 말이 없었다.

“그 사람들이랑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전부 비열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니까.”

양란지가 경멸하듯 운림에게 얘기하더니 갑자기 위를 보며 소리쳤다.

“여기까지 쫓아와 놓고 설마 옆에서 계속 구경만 하고 있을 거예요?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요? 곽명!”

공중 우측에 검은 장포를 입은 남자가 나타나 있었다. 곽명? 두 사람이 왜 같이 있는 거지? 양란지는 입만 열면 철천지원수라고 욕을 하더니, 이렇게 빨리 화해를 한 건가?

곽명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흥, 나를 뿌리치고 어디 가서 귀한 보물이라도 찾는 줄 알았더니 그새 이렇게 궁지에 빠져 있네요? 보아하니 당신이 말하는 그 예측이 그렇게 정확하진 않은 듯한데.”

양란지는 이를 악물더니 공중의 자색 불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이화로 만들어진 화영이에요. 이 물건의 가치는 당신도 잘 알고 있겠죠?”

곽명이 눈을 반짝이며 공중에 있는 화영을 바라봤다.

“당신이 저를 도와서 저 두 사람을 죽여주면 화영은 당신 거예요! 하옥심 몸에 있는 물건이 있어야만 천택대륙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요. 이거 완전히 일거양득일 텐데.”

곽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승기의 위압을 풀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거래 괜찮네요.”

유유가 놀라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금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공중을 바라봤다.

“당신, 사부님의 부탁으로 저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었군요!”

“허허, 누가 범천 존자의 제자가 아니랄까 봐 역시 눈치가 빠르군! 맞아요. 나는 당신을 데리러 온 것이 아니었어요. 나는 당신의 손에 있는 법기를 가지러 왔죠. 이제 당신도 알았으니 당신을 더더욱 놓아줄 수 없네요!”

그가 말을 마치더니 더욱 무거운 위압을 뿜어냈다. 시하가 몸의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금단이 모두 찢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가슴에 통증이 몰려왔다.

“언니!”

유유가 시하의 손을 잡고 결계를 만들어 상대의 위압을 막았다. 그제야 시하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지만, 유유의 안색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녀와 곽명 사이에 큰 결계가 있었지만 상대가 전력을 다하여 위압을 풀어놓고 있기에 버티기도 쉽지 않았다. 거기에 시하까지 챙겨야 하니 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곽명은 절대 봐주지 않고 두 손으로 결계를 하며 수천수만의 검진을 불러내었다. 무수한 반투명의 영검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덮었고, 그가 소매를 한 번 흔드니 시하와 유유에게 날아왔다.

시하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어 그저 날아오는 검들을 바라보며 곧 자신의 몸이 고슴도치로 되어 버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유유는 결계를 지탱하며 최선을 다해 금을 탔다. 금 타는 소리와 함께 풍인들이 나타나 영검들을 산산조각을 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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