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189)

“사실 이런 일은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다 알 수 있어요. 당신이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번에 금단 3등 안에 있는 사람들과 4, 5등을 한 두 사람도 같이 왔으니까 물어보면 되겠네요. 당신은 전생의 기억을 지나치게 믿고 있는 거예요, 아니면 이미 자신의 기억이 뭔가 잘못 되었다는 걸 눈치채고도 계속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강압적으로 들어간 기억이 그렇게 쉽게 자리 잡을 수는 없었을 텐데.

게다가 양란지는 민감한 여자라 전생이라고 하는 기억들에 대해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다만 선견지명에 미혹된 상태에서 깨어나기 싫은 것뿐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그 중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믿지 못하는 얼굴로 분노했다.

“그만, 그만해요! 저는 이미 새로운 삶을 얻었어요. 일부 사건들이 기억과 다르다고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기억들은 전부 사실이에요. 저는 어떻게든 전생에 있었던 비극이 다시 일어나게 할 순 없어요. 이건 하늘이 저에게 주신 기회고, 하늘이 저에게 진 빚을 갚는 거라고요! 당신, 당신은 이걸 빼앗으려는 거죠? 그래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거죠? 그렇다면 쓸데없이 마음 쓰지 마세요!”

“맞아요! 저는 당신 몸에 있는 물건이 필요해요. 그건 원래부터 제 손에 있던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물건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물건이 아니에요. 그 물건은 당신을 혼비백산하게 만들 거라고요.”

“역시 저를 속인 거였군요! 혼비백산은 무슨, 당신은 제 법보를 가져가고 싶은 거잖아요!”

그녀는 드디어 뭔가를 깨달은 듯 서서히 차갑게 얼굴을 굳히기 시작했다.

“꿈 깨세요!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이 저의 일을 모두 다 알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제가 죽기 전까지 이 물건을 당신한테 주지 않을 거예요.”

“란지 동생.”

“닥쳐요!”

양란지가 매섭게 시하를 쏘아보더니 검을 불러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하고 다를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어요. 전에는 내가 단일 수 영근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멋대로 당했지만……. 그거 알아요? 저는 예전에 수 영근이라는 이유로 제가 존경하는 사존(師尊)에 의해 저 짐승의 침대 위에 눕혀졌어요. 저의 전생은 그로 인해 죽은 거예요! 근데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죠?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나면서부터 수 영근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당해야만 했던 거예요? 지금은 달라요! 저는 지금 화 영근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그런 악인을 스승으로 모실 일도 없어요!”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검을 꽉 잡으며 더욱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저는 영악파의 입실 제자예요. 다시는 누구도 저를 무시하지 못할 거예요!”

이제 보니 화종이 양란지의 영근을 바꿔 놓았네. 하지만 그건 모두 거짓이라고!

“당신이 말하는 그 전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다만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뿐이죠. 당신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그만! 그만해요! 전부 사실이고 제가 경험한 것들이에요. 영근이 바뀌면서 저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저는 이 물건을 당신한테 줄 수 없어요!”

“화종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물건이 아니에요! 아직 구체적인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그 물건의 용도는 세계를 복구하는 거예요. 만약 그 물건이 계속해서 당신 몸속에 있으면 전 세계가 모두 붕괴될 수 있다고요.”

양란지는 시하의 말에 들고 있던 검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당신은 그 물건이 뭔지 알아요? 그 말이 전부 사실이에요?”

“저는 당신을 속이지 않아요. 당신의 몸을 혼비백산하게 하는 것도 그 물건의 본능이에요. 제가 말하는 모든 것이 사실이에요. 저는 그 화종이 이미 당신 몸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꺼내주려고 했을 뿐이에요.”

“이 세계가 정말 붕괴된다고요? 그럼 저는 이 물건을 어디에 써야 하는 거죠?”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한참 침묵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그 물건을 어떻게 꺼낼 건데요?”

“아주 간단해요! 그저…….”

시하가 그제야 안심하고 앞으로 두 걸음 나서며 설명하려고 하자, 방금까지 멍한 표정으로 있던 양란지가 갑자기 주먹을 날렸다. 시하는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공중으로 나가 떨어졌다. 시하가 입으로 피를 토하며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하는데, 뒤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오더니 전체 하늘을 가득 덮고 영위(靈威)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 언니!”

하옥심은 깊은 낭떠러지가 있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띄워 시하에게 가해지는 공격을 막아주었다. 하지만 너무 강한 충격에 순간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이 오장육부로 전달되었다.

시하의 몸이 순간 가볍게 들리더니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속으로 던져졌다.

양란지가 연기하는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날 이용해서 곽명으로부터 도망갈 시간을 벌은 거잖아? 젠장, 태도를 바꾸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너무 빠른 거 아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눈이 어떻게 된 모양이로군. 중생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제일 어려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언니, 언니 하더니 이제는 죽이려고 달려들잖아!

시하가 의식을 잃어 갈 때쯤 희미하게 눈앞에 하옥심이 나타났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시하를 따라 낭떠러지 속으로 떨어졌다.

바보같이 여길 따라 오면 어떡하자는 거지?

시하가 의식이 돌아왔을 때에는 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위에 영력이 깃든 등불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하의 옆에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는 한 소녀가 보였다.

“언니, 일어나셨군요! 어때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 가슴은 아직 아파요? 발은요? 움직일 수 있어요?”

하옥심이 시하의 몸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마치 시하가 곧 숨이라도 끊길세라 초조한 모습이었다. 전에 그 도도하고 차갑던 빙선자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하가 길게 한숨을 쉬며 여기저기 바삐 움직이는 그녀를 말렸다.

“난 괜찮아, 유유!”

그녀는 마치 몸이 얼어붙은 듯 한참 말없이 시하를 바라봤다. 그러다 기쁨, 흥분, 놀라움, 그리고 깊은 그리움이 섞인 얼굴로 눈물을 터뜨렸다.

“기억하시는군요!”

시하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유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바보, 이 세상에 너 말고 누가 또 나를 하 언니라고 부르겠어.”

유유가 더는 참지 못하고 시하의 품에 안겨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어엉! 언니,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유유는 언니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어요.”

“우선 날 좀 놓아주면 안 될까?”

“이렇게 안고 있을래요!”

“안는 건 좋은데 내 가슴은 좀 놔주면 안 될까?”

얘는 흥분하면 사람 가슴을 잡더니 아직도 그 병을 못 고쳤네! 안 그래도 작은 가슴인데, 그만 놓아주면 안 될까?

유유의 고급 기술로 상처의 흔적은커녕 옷에 묻어 있던 혈흔까지도 전부 사라졌다. 거대고양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소녀가 언제 이렇게 변한 건지 시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유유는 아주 아름답고 멋있는 여인으로 자라 있었다.

유유가 시하에게 자신이 어떻게 천택대륙에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당시에 그녀가 문파로 가고 있던 중, 지금의 사부가 전에 그녀를 선발했던 사부들로부터 가로챘다고 한다. 당시에 범천 존자는 뜻밖의 일로 환해를 건너다가 신개발구역으로 들렀던 것이다.

그는 우연히 새로운 제자들을 선발하여 문파로 돌아가던 어음파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천음파와 어음파는 똑같이 음공을 잘하는 문파였고, 유유는 풍영근이라 마침 그와 같은 술법과 잘 맞았다. 그리하여 그 존자는 멋대로 타 문파에서 선발한 제자를 빼앗아 도망갔다.

신개발구역과 천택대륙 간에 변화무상한 환해가 가로막고 있어 강풍이 더더욱 거셌다. 대승수사들도 함부로 그곳엔 들어갈 수가 없어 유유는 그녀에게 이 일을 알리지도 못한 채 지금까지 연습만 하고 있었다.

“유유 멋있는데? 그동안 보지 못한 사이에 화허기의 수사가 되어 있었어.”

“저는 그저 사부님을 따라 가르침을 받는 것뿐이에요. 다시 말해서 이제 천 년이나 되었으니 저는 느린 편이라고 할 수 있죠.”

“뭐? 천 년이라고?”

시하가 놀라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농담하는 거지? 여기 신개발구역에서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무망경에서 5년 지낸 것을 다 합쳐도 60년을 넘지 않는데? 어떻게 천 년이나 지난 거지? 설마…….

“002!”

시하가 바로 신식에 들어갔다.

[[002] 여왕님, 역시 명철하십니다. 여왕님의 추측이 완벽합니다. 지도를 바꾸면서 자동으로 시공을 뛰어넘게 되었고, 현재 시간은 천 년으로 측정됩니다.]

한 번에 천 년이나? 이렇게 심하게 뛰어넘어도 되는 건가?

시하가 한참 말이 없자 유유가 참다못해 그녀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언니, 왜 그러세요?”

“별거 아니야. 그저, 갑자기 내가 미처 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유가 놀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시하가 화제를 돌렸다.

“우리 우선 여기서 나간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유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방금 제가 신식으로 여기를 탐색해보았어요. 여기는 엄청 넓은 곳이라 방향을 변별하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위에는 영기를 막는 뭔가가 있는 듯해요. 저의 신식이 위에 닿기만 하면 바로 사라져 버렸어요.”

역시 위에도 칠흑같이 어두웠고 희미한 빛도 보이지 않았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에서 술법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영기가 아주 미약하게밖에 공급되지 않았다. 하늘에 덮여 있는 그 검은 물체는 균열 속에서 영기를 사라지게 하던 그 물건인 듯했다.

“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난 알 것 같아.”

“네?”

“우선 걸으면서 얘기해.”

시하가 몸을 돌려 우측으로 걸어갔다. 머릿속에 002호의 미션 지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안내하던 길이 갑자기 바뀌긴 했지만 최종 목적지는 변함이 없었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야.

유유가 망설임 없이 바로 시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바로 화구를 불러내 두 사람이 서로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길을 비추었다. 길은 단순했지만 그들은 이미 거의 이 시진 동안 걷고 있었다.

“하 언니, 앞에 빛이 보여요!”

걸음을 재촉하며 다가가니 그것은 붉은 용암이 떨어지면서 만든 석벽이었다. 석벽의 윗부분은 칠흑같이 어두운 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 그 끝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석벽 위에는 용암이 흐른 흔적들이 가득했다. 마치 거미줄을 쳐 놓은 것처럼 여러 갈래의 선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이상하네. 지도에서 가르치는 방향은 여기가 맞는데, 왜 출구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거지?

그들이 석벽을 돌아 반나절을 걸었지만 여전히 별다른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 언니, 저게 뭐예요?”

유유가 놀란 얼굴로 석벽 위를 가리키자, 용암이 흘러서 만들어 놓은 길이 보였고 그 옆에 문자 부호들이 하나하나 연결되어 옆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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