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89)

“한 사람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떡하고요? 장문님이 저희를 구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요?”

운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곽명이 미간을 깊이 찌푸리고 귀찮은 듯 대꾸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한 사람만 데리고 나가면 되는데 뭐 하러 번거롭게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나가요? 그리고 옥무우에 영력이 충분히 채워지면 당신들도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요.”

운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그냥 두고 가겠다고? 옥무우에 영역이 채워지려면 적어도 백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옥심, 당신의 몸에 아마 사부님이 준 취영법기(聚靈法器, 영기를 모으는 법기)가 있을 겁니다. 어서 꺼내 봐요. 그 법기의 도움이 있어야 제가 허공을 뚫을 수 있으니까.”

“흥, 곽명 진인도 똑같은 냉혈한이군요!”

하옥심이 대답도 하기 전에 양란지가 갑자기 끼어들더니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은 죽든 말든 상관도 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은 천의맹을 통틀어 당신 한 사람밖에 없을 거예요.”

곽명은 높이 쳐들고 있던 고개를 그제야 조금 숙이더니 싸늘한 얼굴로 양란지를 바라봤다.

“누군데 감히 본 진인을 비방하는 거지?”

“사실이잖아요!”

양란지가 차갑게 한 번 웃더니 조금도 숨김없이 분노를 드러냈다. 그녀는 상대와 끝까지 맞설 기세였다.

“왜요? 말은 그렇게 해 놓고 다른 사람의 비방은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보죠?”

“닥쳐!”

곽명이 분노를 터뜨리며 그녀를 노려보다가 사람들을 향해 대승기의 위압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순간 시하가 긴장하기 시작했고, 그곳에 있는 네 사람 모두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 하옥심이 시하의 손을 꼭 잡더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뜻밖에도 위압은 사람들에게 다가올 수 없었다. 곽명과 그들 사이에 공교롭게도 균열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가 위압을 내뿜어도, 그 틈으로 사라져서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역시, 선법 금지 구역의 원칙을 보장하는군.

“하하하, 진인은 무슨.”

양란지가 그 모습을 보더니 얼굴을 굳혔고 더욱더 원망스럽다는 듯 이를 악물며 말했다.

“왜곡된 방법으로 겨우 쌓아 올린 그런 수행 능력으로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지금 보니 천의맹이 고작 당신 같은 패배자를 길러낸 모양이군요!”

“닥쳐! 감히 누구한테 큰소리야! 오늘 내가 현기를 대신하여 너의 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이 깊은 줄 모르는 어리석음에 대해 교훈을 주지.”

그가 손을 흔드니 잠시 후 주변에 영검들이 나타났다. 멀리에서 보아도 영검의 차가운 검기가 느껴졌다. 곽명은 이미 화가 치밀어 그들 사이에 있는 균열을 잊은 채 검을 부려 바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가 균열 변두리에 다다르자 기세등등하던 영검이 절반이나 사라졌다. 그가 균형을 잃고 잠시 흔들거리다가 간신히 물러나며 낭떠러지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면했다.

곽명이 사나운 얼굴로 땅으로 내려오더니 무서운 눈빛으로 양란지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두고 봐!”

기세등등하던 대승 수사가 순식간에 ‘늑대와 빨간 모자’ 이야기 속 늑대의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하하하하하.”

양란지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복수에 대한 쾌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양란지를 쳐다봤다.

양란지는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상대방이 아무리 반격할 힘이 없다고 해도 대승 수사에게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건가? 마치 오랫동안 묵혀 뒀던 분노에서 나오는 행동들처럼 보였다. 설마 이 사람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걸까?

“곽명, 당신이 하도 악하니 하늘도 당신을 돕지 않는군요!”

양란지가 더욱 기세등등하여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곽명이 화가 나서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새파랗게 어린 원영의 제자가, 이 곽명의 청렴한 명성을 비방하다니.”

양란지가 어림도 없다는 듯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뭔가 떠오른 듯 주먹을 불끈 쥐며 힘주어 말했다.

“당신의 수행 계급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올라간 것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멀리 건너편에서 길을 찾던 곽명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바로 원래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다만 양란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살기가 느껴졌다. 그는 세가대문(世家大門)에서 나서, 천의맹의 장로에서 대승기의 수사가 되기까지 개인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극히 사적인 일이라 누구도 알 리가 없었다.

“향로를 키우는 일까지 다 하고, 당신들 천의맹은 마수들과 뭐가 다르죠?”

그 말이 떨어지자 양란지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하옥심과 운림마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곽명이 화가 난 듯 그녀에게 말했다.

“닥쳐! 내가 언제 향로를 키웠다는 거지?”

“키우고 있는지 없는지는 스스로 잘 알잖아요!”

양란지가 그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다 알고 있다는 듯 확신에 차서 말했다. 듣고 있던 시하는 참다못해 질문했다.

“향로가 뭐죠?”

양란지는 창백해진 얼굴이 되어 주먹을 꼭 쥐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들은 여수사들을 감금하고 강제적으로 상대방의 몸속에 있는 음양의 기운을 빼앗아 영력을 증가시키고 수행 계급을 올리고 있어요. 그런 여성을 바로 향로라고 하는 거예요. 그 여수사들의 대부분은 수 영근(水靈根)이죠. 특히 단일 수 영근이요.”

수선계에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완전 짐승만도 못하잖아?

그때 그녀가 고개를 들어 시하에게 동의라도 구하듯 말했다.

“언니,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 그냥 두면 안 돼요. 저 사람이 비경 밖으로 나가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거라고요! 지금 저 사람을 놓아주면 다음에 저희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 사람은 당신이 건드렸지, 우리가 건드린 건 아닌데…….

“먼저 도망갈까요?”

저 사람 당장은 여기로 넘어오지 못할 테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이대로 보기만 하실 건가요?”

마치 ‘당신이 그런 언니인 줄 몰랐어요’하는 표정으로 양란지가 차갑게 시하를 쳐다보았다. 시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잊었나 본데 제 수행 계급은 금단이에요.”

여기 있는 사람 네 명의 힘을 합쳐도 저 사람 손가락 하나 당해 내지 못할 거라고요. 관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거지.

양란지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더니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시하에게 말했다.

“언니, 사실 저는 이미 전부터 당신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어요. 저는 언니가 자신을 감추는 이유를 알고 있어요. 당신의 수행 계급은 금단에 제한되지 않았잖아요.”

어? 그게 정말이야?

“제가 평생 미워한 이 곽명은 언니 같은 사람이 죽여줄 수 있어요. 만약 언니가 이 사람을 죽여주면 모든 것을 걸고 보답해 드릴게요.”

“왜 그러는 거죠? 전생에 저 사람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거예요?”

양란지가 놀라더니 눈을 크게 뜨자 시하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이 향로, 이 단어에 그렇게 가슴 아파하는 걸 보면, 혹시 전생에 당신도 그 일을 겪어 봐서 그런 거예요?”

양란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면서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저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다만 방금 일이 하도 크게 일어나서 말할 기회를 놓쳤다가 지금이 기회라 얘기하는 것이었다.

“설마, 당신도?”

“아니에요! 저는 중생이 아니에요. 당신도 아니고요! 란지 동생, 당신이 기억하는 것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혹은 아예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몸에 있는 물건이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그럴 수 없어요!”

그녀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말했다.

“당신이 저희의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은 사실이 아닐 리가 없어요!”

그녀는 분명히 그 사람들이 몸에 입힌 굴욕을 기억했다. 죽기 전에 그들이 그녀의 가슴에 꽂은 그 검은 더욱 분명하게. 마음대로 죽을 수조차 없었던 그 절망적인 순간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모두 생생했다. 근데 그게 사실이 아닐 수 있다니?

“당신이 저를 속이는 거예요!”

“란지 동생, 저는 당신 몸속에 뭐가 있는지 알지만 그게 생각처럼 좋은 물건이 아니에요. 당신에게 중생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 물건은 당신의 영혼을 태우고 있다고요. 지금이라도 그 물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당신은 혼비백산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없어요!”

양란지가 힘껏 고개를 저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정말 기억들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전생이 정말 존재한다고 확신하냐고요. 지금 벌어지는 일들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정말 일치하다고 생각해요?”

“평생 그렇게 자라 왔는데, 제가 어떻게 모든 일을 기억해요! 하지만 저는 그 일들이 모두 일치하다고 생각해요. 제 전생이고 제가 경험한 일들이라고 확신한다고요.”

“그럼 저는요? 당신이 의도적으로 저에게 접근한 것도 전생의 기억 때문인가요?”

양란지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는 당신의 전생 속에서 어떤 인물인가요? 저도 그 속에 있어요?”

양란지는 한참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달원천존(笪源天尊)의 누이고, 대승기의 수사예요.”

그 말이 떨어지자 시하를 비롯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내가 대승기의 수사라고? 근데 난 왜 모르고 있었지?

“란지 동생. 저는 달원천존이라는 건 들어 보지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그의 누이일 가능성은 더욱 없고요. 게다가 저는 대승기 수사가 아니에요. 당신도 보다시피 저는 그냥 보통의 금단 수사랍니다.”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은 금단 우승자잖아요. 수행 계급을 숨긴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녀의 현재 수행 계급은 금단 초기였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 금단 중기, 대만원의 수사들을 이길 수 있었다는 건지 양란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시합이 있은 후에 멀리서 바라보니 시하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나 있지 않았었다.

시하가 양란지 뒤에 서 있는 운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에 관련해서는 당신의 후배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제가 이길 수 있었던 건 바로 시합 중에 깃발이 바로 제 옆자리에 나타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걸…….”

“그렇다고 해도 다른 시합은 어떻게 된 거죠?”

그녀가 여전히 고집스럽게 그녀에게 질문하자 시하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자신을 믿게 하려면 본인의 흑역사를 모두 들춰내야 할 듯했다.

“5강은 제비뽑기를 통해 그냥 올라갔고, 3등까지는 우승자가 시합 중에 입은 부상으로 마지막 시합장에 올라와 바로 쓰러져 버렸어요. 저는 운이 좋아서 우승한 것이지 절대 수행 계급을 숨기지 않았어요.”

“그럴 수 없어요.”

양란지가 힘껏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다가 고개를 돌려 운림을 바라봤다. 운림도 고개를 끄덕이며 시하의 말에 동의했다.

“당신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틀림없어요. 저 여자는 확실히 그렇게 우승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저 여자와 싸워 진정한 승패를 가르려고 했던 거지요.”

“당신이 믿지 못하겠으면 스스로 보세요.”

시하가 손을 내밀어 그녀에게 시하의 수행 계급을 탐색해보도록 했다. 양란지가 망설이면서 시하의 팔뚝만 쳐다보다가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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