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189)

현기는 여전히 친절한 미소를 유지하며 범천 존자의 제자에게 체면을 세워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가 다음 사람의 얼굴을 보며 말을 걸었다.

“화신기의 우승자는 본 파 능검당(凌劍堂)의 강택(姜澤) 아닌가?”

“맞습니다. 장문께 인사 올립니다.”

“그래요. 멋있네요!”

“그럼 2등은 당신의 제자 모천양(暮千楊)?”

“네, 장문께 인사 올립니다.”

“원영기 우승자는 능부당(凌符堂)의 고천백(顧天白)?”

“장문께 인사 올립니다.”

그가 한 사람씩 얼굴을 확인하며 지나갔다. 사람들은 그제야 그가 인사하고 있는 제자들은 모두 영악파의 제자들임을 알아챘다. 대놓고 자랑질하는 거잖아?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후배들을 호명하고 있는 것을 딱히 막을 수도 없어 그저 이를 악물고 듣고만 있었다.

그가 드디어 마지막 제자의 이름을 호명하더니 시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금단기 우승자는…….”

누구지? 현기가 당황하며 잠시 얼굴에 미소를 거두었다.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도 시하의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기에 줄곧 득의양양하던 현기가 난관에 부딪쳤다. 그는 어색한 얼굴로 자신이 판 함정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는 어느 문, 어느 파의 제자이신가요?”

“저는 청운파예요!”

청운파? 천택대륙에 그런 문파도 있었나?

현기는 이 문파에 대해 모른다고 하면 자신의 학문과 견문이 좁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에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이어 가며 슬며시 화제를 돌렸다.

“이번 대비에서 3등 안에 든 여러분을 축하합니다. 영악파는 약속대로 상을 내리고 화외비경(化外祕境)으로 데려다줄 거예요.”

그의 말이 떨어지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하는 예외였다. 또 비경이잖아. 왜 아무도 상이 이거라고 얘기해주지 않은 거야? 나는 영석이라도 주는 줄 알았잖아. 바쁜데 안 가면 안 되나?

“화외비경은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한 곳이지요.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느냐는 여러분들의 운에 달려 있어요.”

현기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옆에 있던 장로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뜻밖의 일에 대비해 여러분의 영기로 전송진을 설치했어요. 전송진이 위험한 순간에 여러분을 비경에서 나올 수 있게 할 거예요. 여러분들의 이름과 영기 속성을 모두 등록해주세요!”

제자들이 한 명씩 나와 자신의 이름과 영기 속성을 통보하기 시작했다.

* * *

002호에게서 양란지 동생의 금수지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후, 시하는 ‘잘못 배송된 택배를 회수하는 완벽한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우선 그 여자의 몸에 있는 화종의 흔적부터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 흔적은 상대의 가슴에 있다는데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가슴을 습격, 아니 접촉할 수 있을까?

1. 우선 그 동생과 서로 감정적으로 친해진다. 그녀의 생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수련을 응원해주고, 고민이 있으면 위로를 해준다. 나를 좋아할 수 있게 하고, 우러러볼 수 있게 하며, 신임할 수 있도록 하다가 더는 그녀가 떠날 수 없을 때 가서 가슴을…….

2. 적극적으로 그녀의 옷을 벗기고 화종의 위치를 알아낸다. 외진 곳으로 유인하여 기회를 엿보다가 그녀를 넘어뜨리고, 기절하게 하여 거절할 수 없도록 하고 가슴을…….

3. 그녀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몸속에 있는 화종이 영혼을 삼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스스로 물건을 내놓도록 유도한다. 그런 다음에 가슴을…….

4. 대놓고 그녀를 덮칠 기회를 노린다. 목욕탕에서 물싸움을 하는 건 어떨까? 그리고 우연을 과장하여 손을 뻗은 다음에 가슴을…….

이렇게 많은 방안들 중에 어떤 걸 사용할까 고민하던 시하를 누군가가 흔들었다.

“사매, 사매, 사매!”

“응? 무슨 일인데!”

“제가 방금 전에 뭐라고 말했어요?”

“어, 뭐라고 했었지?”

진이 작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어요. 아무튼 조심하고 이걸 받아요!”

그가 그녀에게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이건 뭐지?”

“화외비경은 위험과 기회가 병존하는 곳이에요. 저도 당신이 거길 들어갈 줄 모르고 있어서 사전에 준비를 못했으니까 제 주머니라도 줄게요. 안에 단약과 법부가 있으니까 그걸 우선 가져가요. 지금 저한테는 이것밖에 없지만 분명 나중에 쓸모가 있을 거예요.”

“나 감동받았어!”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아 그를 안았다. 그리고 그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정말 마음이 따뜻하구나!”

“이, 이만 놔줘요. 체통을 지키셔야죠.”

진이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이참, 조금만 더 안고 있을게. 부끄러워하지 마! 이 누나가 아쉬워서 그러는 거니까, 좀 가만있어 봐!”

사매의 머리가 다친 게 아닐까. 어떡하지? 누가 좀 도와줘요!

“하하, 두 분 사이가 참 좋아 보이네요.”

그때 웃음소리와 함께 흰 바탕에 파란색 문양의 옷을 입은 양란지가 걸어왔다. 시하가 바로 진에게서 손을 떼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또 만났네요.”

“방금 대전당에 사람이 많아 제가 잘못 본 줄 알았어요! 이제 보니 정말 언니였군요. 금단 우승자라니 정말 대단하세요.”

그때 갑자기 양란지의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대단해요. 운이 좋았던 거죠!”

그녀와 똑같은 복장을 한 남자가 뒤에서 나타나더니 시하를 매섭게 노려봤다.

“사제! 무례하군요!”

남자는 내키지 않는 듯 시하에게 눈을 흘겼다.

이 사람은 누구지? 왜 나를 이렇게 미워해?

“언니가 이해해 주세요. 사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이 화외비경이 그렇게 어렵다는데, 제가 같이 동행해도 될까요?”

“좋아요!”

시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접근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건 완전히 졸고 있으니까 베개를 가져다주는 격이잖아. 시하는 원래 비경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알고 보니 3등 안에 들어간 사람들 외에 영악파의 일부 우수한 제자들도 비경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고, 그 속에 양란지도 있었다.

“언니랑 같이 가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어, 비경이 열렸어요!”

조용하던 광장 위에 갑자기 큰 진법이 반짝거렸다. 진법 안에 거대한 석문이 서서히 올라왔다. 문은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좌측은 순백색이었고 우측은 먹색이었다. 진동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리더니 밝은 빛과 함께 전송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영악파의 장문 현기가 크게 소리쳤다.

“이 문은 한 달밖에 유지가 안 되니, 각문 제자들은 그 전에 돌아오셔야 합니다. 만약 위험한 일을 겪으면 바로 여러분 손에 있는 전송 부호를 누르세요.”

“네!”

“출발하세요!”

사람들이 저마다 진 안에 있는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번에 가는 사람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3등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 열두 명에 영악파에서 내정한 몇 명의 우수 제자들까지 전부 스무 명 안팎이었다. 다른 파의 사람들은 영악파에서 인원을 추가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모두 이곳이 본거지가 아니라 뭐라 드러내지 못했다.

시하가 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즐겁게 양란지의 뒤를 따랐다. 시하는 그녀와의 간계를 더 좁히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란지 동생! 저희도 친구라고 할 수 있겠죠?”

“그거야 당연하죠.”

“그럼 저희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때요?”

“좋아요.”

“동생은 취미가 뭐예요? 평소에 씨름은 좋아해요? 상반신 벗고 하는 그런 거요.”

“……그건 남자들이 하는 운동 아닌가요? ……뭐, 괜찮죠!”

“그럼 겨울에 늦잠 자기는요? 옷 다 벗고 자는 늦잠이요.”

“……저는 저녁에 보통 입정을 해요.”

“오, 수영은 좋아해요? 아래위 아예 아무것도 입지 않고 하는 수영이요.”

제발 한 번만 벗어줘요!

* * *

시하는 화외비경이라고 하는 곳이 무망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림에서 괴수들이나 때려잡고 승계나 해야겠다 싶었지만, 그 문은 그들을 어느 황량한 땅으로 데려갔다.

앞을 바라보니 사방이 모두 어두운 토지였다. 마치 뭔가에 태워졌던 것처럼 지면의 온도도 급격히 몇십 도나 올라갔다. 영기에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어 그들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그 열기에 타 버렸을 듯했다.

하늘에 뭔가 하얀 물질이 날아다녔다. 눈인 줄 알았지만 받아 보니 재임을 알 수 있었다. 멀리 높이 솟은 화산이 끊임없이 용암을 토해 내었다. 화산의 열기로 하늘이 붉게 타올랐고 용암이 강을 이루고 사방으로 흘렀다.

이런 화산의 풍경은 시하도 처음 보는지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용암이 흘러나오는 화산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건 암흑계 게임에서나 봤던 풍경이잖아. 안전을 보장한다더니, 순 거짓말이야.

그때 양란지가 입을 열었다.

“역시 화외비경이네요. 영기도 엄청 짙어졌어요. 그 자리에서 열흘만 수련해도 평상시에 몇 년을 한 만큼의 수행 효과를 얻을 수 있을 듯해요.”

시하가 자세히 그곳의 영기를 살펴보았다. 짙은 영기가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듯했다. 양란지가 시하를 바라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기는 많이 위험해 보여요. 뭐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언니, 저희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여기에 화산이 많으니 분명 온천이 있을 거예요. 저희 온천할까요? 옷을 입지 않는 그런 거요!”

이 언니 뭔가 좀 이상한데? 선배 같지도 않고, 전설 속 그 사람이랑 완전히 다르잖아. 양란지는 자신의 목적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든 의문을 가라앉혔다. 이번에 그녀는 반드시 시하를 따라가야만 했고,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했다. 양란지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온천은 무슨! 역시 당신같이 그렇게 작은 문파에서 온 사람이 견식이 있을 리 만무하죠. 여기는 화외비경이에요. 상고 시대의 신마(神磨)들의 전투 장소라고요. 이 화산들은 모두 신족의 신식이 만들어 낸 거고요. 사방이 다 타 버렸는데 어떻게 온천이 있다는 거죠?”

“전투 장소라고요?”

양란지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맞아요. 이곳은 아직 신마의 기식이 흐르고 있어 예전에 신족들이 봉인해 놓은 곳이에요. 저희 영악파의 법기 옥무우(玉無憂)만이 이 비경을 잠시 열 수 있지요.”

“그런 거였군요.”

어쩐지 상이 비경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했을 때 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흥분하나 했네.

“그리고 여기 비경은 상고 신족의 전투 장소였어요. 그냥 평범한 법보도 저희 수사들에게는 신기와도 같죠. 하지만 좋은 기회에도 큰 위험이 따르는 법이에요. 신마의 전투 장소였던 곳이라 신기가 있으면 마물이 난무하거든요. 그러니 동행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사방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있었다. 그들 앞에 있는 무리는 특히나 많이 모여 있었다. 적어도 여기에 들어온 사람들의 절반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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