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189)

“범천 존자, 멀리까지 마중을 나가지 못해 죄송해요. 양해 부탁드려요!”

앞에 있던 자색 옷의 사람이 앞으로 나서더니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성 장문, 괜찮아요.”

여자들 중 제일 성숙해 보이는 붉은 옷의 여자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자색 옷의 사람은 영악파의 장문이었다.

“이쪽으로 모실게요!”

원 장문이 물러서며 길을 안내하자 여자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청란을 타고 날아갔다. 원 장문과 미리 그들을 맞으러 나와 있던 사람들도 따라 날아갔다. 사람들이 제일 큰 봉우리로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천음파의 범천 존자가 직접 오실 줄은 몰랐어요.”

“역시 일류 선문이네요. 시합에 나서는 모습도 이렇게 기개가 있는 걸 보면요.”

“방금 그건 성수(聖獸) 청란인 거죠? 세상에, 그걸 굴복시키는 사람도 있다니.”

“뒤에 있는 그 사람은 전설로만 듣던 그 빙선자(冰仙子)예요? 그녀도 대비에 참석하러 온 건가요?”

“이번에는 범천 존자께서 데려온 제자들이 시합장을 모두 장악하겠는데요.”

“빙선자의 능력이면 사부님께서 직접 나설 필요도 없겠죠?”

사람들이 서로 한마디씩 하며 부러워했다.

이게 바로 부자와 평민의 차별인 건가. 저 사람들은 장문이 직접 나와서 마중하고 우리는 서명을 해도 줄을 서서 해야 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도도라도 데리고 올걸. 도도도 신족의 혈통인 데다가, 백신을 때려 부수는데.

[여왕님, 예비 자료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진을 나서려던 시하가 발걸음을 멈추고는 서둘러 내시 신식을 시작했다.

“무슨 뜻이죠? 예비 자료 창고가 뭐예요?”

신식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선인’ 애플리케이션에서 002호로 바뀐 애플리케이션이 갑자기 금단 옆의 흰색 구슬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반투명한 화면이 튀어나오더니 붉은색 화살표가 나타나 아래에 있는 구슬을 가리켰다.

[[002] 예비 자료 창고(제시: 집행자의 유전자가 불일치함)]

“여의주! 이게 자료 창고예요? 이건 그저 귀여운 여의주 아니었어요?”

[[002] 이 물질에는 대량의 계면 자료가 저장되어 있었는데 현재 이미 누출된 상태입니다.]

잠깐! 그때 그 용이 이 여의주를 나에게 줄 때 어떤 용족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고 얘기했었는데.

시하는 방금 자신이 그 청란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는지 이제야 알 듯했다. 용성에 있을 때도 갑자기 그 진법이 현천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심지어 아주 오래전에 그 서수수가 교룡으로 변신하려고 할 때도 바로 한눈에 알아봤었다. 전에 시하는 한 번도 이 방면의 지식을 배워 본 적이 없어서, 계속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을 여의주가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자료가 누출되면 저한테는 어떤 영향이 있는데요?”

[[002] 잠시 불량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럼 그냥 내버려둬요!”

그래 봤자, 고작 신식 안에 수선계 백과사전을 하나 품고 있는 거잖아.

[[002] 좋습니다. 여왕님, 예비 자료 창고 다운로드에 성공하였습니다!]

다운로드는 왜 해요! 내 신식을 정말 컴퓨터로 보는 거야 뭐야? 언젠가는 이 불량 소프트웨어를 제거하고 말겠어.

시하가 진 어린이를 데리고 전송진을 나왔다. 앞에는 똑같이 생긴 작은 정원들이 구성되어 있었다. 정원 안에는 모두 똑같이 생긴 3층 건물들이 있었고, 많은 곳에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시하가 요패의 숫자를 보며 그들이 배정된 방을 찾았다.

하지만 안에 사람이 있었다. 분홍색 치마를 입은 여자의 몸은 왜소하고, 머리가 길었다. 뒷모습만 봐서는 딱 청순가련형의 여자였다. 문 입구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 여자가 고개를 돌려 시하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시하는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요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여자는 얼굴은 예뻤으나 전신이 반투명한 게, 꼭 귀신 같았다. 시하가 진 어린이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사매. 우리 숙소는 여기가 맞는데 어딜 가는 거죠?”

“너, 너, 봤어?”

“봤어요. 아마 저희랑 같은 방에 머무는 투숙객 같은데요.”

혹시 진이 보는 여자의 모습은 내가 보는 여자의 모습과 다른 걸까?

그때 여자가 시하와 진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더니, 두 사람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두 분은 이번에 이 정원에 머물게 된 분들인가요?”

시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웃을수록 반투명한 얼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잇몸부터 시작해 뼈가 드문드문 보이더니 아예 머리가 해골로 변하기까지 했다. 이 여자의 미소는 투명도를 조절하는 개폐기 기능이라도 있는 걸까.

시하는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002호를 호출했다.

“002호,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이 사람이 도구예요? 저는 인간 모양의 택배는 배달한 적 없어요! 게다가 저 여자는 왜 투명한 거죠?”

[[002] 상대방의 몸에서 도구의 용합 파동을 감지하였습니다. 현재로서는 도구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도구용합(道具容合)? 그럼 그녀의 몸에 정말 택배가 들어 있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도군데요?”

[[002] 표면상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심층적인 스캔을 진행하십시오.]

스캔이요? 어떻게 하죠? CT라도 찍어요? 하려고 해도 도구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

띵! 갑자기 그녀의 눈앞에 사람 크기의 장방형 계면이 나타나더니 그 투명한 여자의 몸에 씌어졌다. 상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장방형 가운데 부분에서 얇은 녹색 실이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방형 윗부분에 두 개의 글자가 나타났다.

스캔!

[수집 수캔이 완료되었습니다. 자료 분석 생성 중,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말 스캔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차원 이동을 한 곳은 선협 세계가 분명한데, 이건 미래 과학기술이잖아! 002호가 말을 마치자 눈앞에 있던 그 스캔 계면도 사라졌다. 신식 안이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저는 성이 양(揚)이고 이름은 란지(蘭芝)예요. 영악파의 제자이고요. 예전에 입문할 때 머물렀던 곳이라 구경 한 번 와 봤어요. 두 분께 혹시 폐가 되었다면 양해해주세요.”

“괜, 괜찮아요.”

보아하니 그 스캔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모양이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두 분의 성함을 여쭤 봐도 될까요?”

“저는 청운파 제자 진, 여기는 저의 사매…….”

“시예요!”

“저는 당신을 보는 순간 뭔가 친밀감이 느껴졌어요.”

그녀가 갑자기 몸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시하에게 건네며 말했다.

“처음 저희 영악파에 왔으니 혹시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저를 찾아와요. 저는 여기서 멀지 않은 어수각(御獸閣)에 있어요. 이 물건을 증표로 친구가 되면 어떨까요?”

그 물건은 옥패였는데 품계가 그리 높아 보이진 않았지만 방어 기능과 소리를 전달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요즘 수선계에서는 만나면 물건을 주는 게 유행인 건가? 지난번에 결단한 다음 모두 수릉봉에 던져놔서 지금은 돈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시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란지가 할 일이 없을 때 심심풀이로 만든 거라, 그렇게 귀한 물건은 아니에요. 이걸 증표라 생각하고 가져오셔서 어수각에 절 찾으시면 돼요.”

“고마워요!”

“언니가 좋아하면 됐어요.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란지는 이만 돌아갈게요. 내일 금단기 대비의 첫 시합이 있는 날이네요. 언니의 몸짓이 범상치 않은 걸 보니 꼭 수석의 자리를 차지할 듯해요. 란지도 여기서 두 분을 응원할게요.”

“고마워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란지도 더는 머물지 않고 친절한 미소를 짓더니 검을 띄워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하가 날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영악파의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사교성이 좋은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언니가 되어 버렸다.

“영악파는 일류 선문이에요. 예전부터 자신감이 강해서 문중 사람들과 다른 파의 제자들 간의 교류는 그리 깊지 않았죠.”

“그럼 저 여자는 왜…….”

시하가 손에 들고 있던 옥패를 들며 말했다.

“설마, 내가 화폐처럼 생겨서? 그래서 나한테 줄을 서는 건가?”

“그녀는 원영 수사예요!”

“어쩐지 수행 계급을 맞힐 수 없더라고. 근데 너는 어떻게 알았어?”

“저는 화신기니까요!”

딸깍, 시하가 손에 들고 있던 옥 장식을 떨어뜨렸다.

“화신기! 그 화신기?”

“또 다른 화신기도 있나요?”

“지금 몇 살인데?”

키도 아직 내 다리 반밖에 자라지 않았는데 수행 계급이 어떻게 그렇게 높은 거지?

“저는 세 살에 축기, 열 살에 결단, 결영 후, 몸의 성장이 멈춰 버려서 지금의 이 모습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정도는 아주 평범한 거라고요.”

수선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상식 따위는 이제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야.

“잠깐! 네가 화신기면, 그럼 망 사형과 사부님은?”

“2사형은 화허중기(化虛中期), 사부님은 대승(大乘)초기세요.”

“화허? 대승? 화신 이상 계급에 또 다른 경계가 있었어?”

“당연하죠!”

새로 들어온 사매는 왜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보아하니 할 것도 많고 갈 길이 멀었네. 진이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진 어린이의 과외를 통해 시하는 새로운 지도는 원래 수선계 전 국민을 위한 표준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진정한 경계는 연기(練期), 축기(築期), 금단(金丹), 원영(元嬰), 화신(化神), 화허(化虛), 대승(大昇), 도겁(渡劫), 출규(出竅), 비승(飛昇)으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 10개의 경계가 있으며 비승기에 도달한 후에야 허공을 부수고 성선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어쩐지 시하가 신개발구역에 있을 때에는 비승성선을 한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보니, 화신에 이르렀다고 해도 9년간의 의무교육 과정의 절반에 불과한 계급이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인 듯했다.

시하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원래는 결단 후 스스로 뭔가 그럴 만한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지도가 바뀌고 난 후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 느낌이었다. 마치 방금 죽기 살기로 수능을 치루고 난 그녀에게 누군가 박사 과정을 치러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는 느낌이었다.

어쩐지 여기 사람들의 수행 계급이 가늠되지 않는다 했어. 이제 보니 천지에 널린 것이 화신이고 원영은 개보다도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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