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189)

후지가 이미 그곳으로 날아갔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었다. 인간 요괴의 몸이 반짝이더니 이미 진안(陳眼, 법진의 눈)을 떠나 버렸다. 대량의 빛이 인간 요괴를 중심으로 모여들더니 잠깐 사이에 그의 몸속으로 모두 들어갔다. 그의 몸이 진흙으로 빚어 놓은 사람처럼 군데군데 비뚤비뚤 부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엄청난 위압이 온 세상을 덮고 눌러 왔다. 흑살의 결계가 소리를 내며 부서졌고 시하가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숨을 쉴 수조차 없어 전신이 곧 부서질 듯했다. 다행히 후지가 제때에 뒤로 물러나 다시 결계를 하는 바람에 시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바닥에 깔려 있는 그 위압 아래 모든 것들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눈에 익숙한 낡은 전당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전당은 어떻게 봐도 뭔가 익숙했다.

이, 이건 모현선부잖아? 왜 모현선부가 용성의 지하에 있는 거지? 잠깐! 그때 모현선부로 들어갈 때 확실히 뭔가 특수한 전송진으로 들어갔었지! 설마 모현선부가 지금까지 용성 안에 있었던 건가? 그때에는 기어 올라오고 나서 바로 후지에게 들려왔기에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하하하하하.”

하늘에 서 있던 인간 요괴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새로 채워진 힘으로 흥분되어 있었다.

“이제 보니 비경에서 공법을 빨아들인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야. 하하하, 내가 잘못 오지 않았어. 그럼 혼원신철(混元神鐵)도 분명 여기에 있겠군!”

후지가 몸을 날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가 검을 흔들자 수천수만 갈래의 검기가 상대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하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를 지켜봤다.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무서운 위압이라 다시 공포가 몰려왔다. 인간 요괴의 모양을 보아하니 그는 처음부터 이 용성을 노리고 있던 듯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용성 아래에 있는 모현선부였다. 그 공법을 빨아들이는 것도 그 안에서 찾은 모양이었다.

왜 지난번에 왔을 때에는 이 못된 놈의 공법을 찾지 못한 걸까? 그리고 그 혼원신철은 대체 뭐지?

잠깐! 혼원? 그때 그녀가 용오천에게 줬던 그 비적도 ‘혼원비적’이었는데. 휴대전화에 빨려 들어간 후 변신했던 그 휘장도 역시 금속이었지. 설마 진짜 그건 아니겠지? 그럼 그가 오두방정을 잡아들인 것도 그것 때문인 건가?

시하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그 위에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살펴봤다. 하지만 애플리케이션 위에는 아무런 이상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인간 요괴는 내 휴대전화에서 나온 그 물건을 알고 있는 거지?

“은, 인, 님?”

옆에 있던 오두방정이 정신을 차리며 작게 눈을 떴다.

“오두방정, 어때요? 괜찮아요?”

시하가 무릎을 꿇고 앉아 휴대전화는 내려놓고 그를 부축하려고 했다. 순간 용오천이 뭔가 떠오른 듯 서둘러 그녀의 휴대전화를 밀며 소리쳤다.

“어서 가요! 저 사람이 당신을 잡으려고 해요, 어서요!”

“당신이었군!”

용오천이 아직 말을 마치지 못했는데 공중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인간 요괴가 놀라운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보더니 만면에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혼원신철을 가져간 사람이 당신이었군! 어서 내놔!”

그가 갑자기 손바닥을 뒤집자 차가운 장풍이 하늘 가득 위압을 싣고 그녀를 엄습해 왔다.

후지가 검을 움직이자 공중에 검기가 만들어 낸 거대한 흰 용이 나타났다. 마지막 순간에 몰려온 그 장풍이 그 흰 용이 돌고 있던 궤도를 바꿔 놓았다. 그리고 바로 그녀가 옆에 내려놓은 그 휴대전화 위를 공격했다. 뭔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내 휴대전화!”

딸깍! 하고 뭔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온 천지에 울려 퍼졌다. 분명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확실히 모든 사람의 귀에 정확하게 들렸다. 그녀의 휴대전화 액정 위에 N자 모양으로 검은 균열이 생겨났다.

갑자기 지지직하며 전류가 흐르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휴대전화 안에서 서서히 한 가닥 한 가닥 검은 무늬가 흘러나왔다. 매 가닥마다 서로 마주칠 듯하다가도 다시 평행선을 유지했다. 마치 인쇄 회로 기판처럼 보였고 무늬들이 빠르게 연결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공중으로 뻗어 나가 사각형의 모양을 만들고는 그 안에 사람들을 가두었다.

주위가 갑자기 깜깜하게 어두워졌고, 시하는 의식이 흐릿해지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희미하게 귓가에 지지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띵!

[단자에 치명적인 훼손이 발생함, 실체를 강제로 묶을 예정.]

[측정되지 않은 불명의 대상 5, 자동 제거 프로그램 작동 실시.]

[상대는 천성적으로 지혜로운 생명체로, 제거에 실패하였습니다.]

[작동 2단계 복구 작업, 현재 진행률 10%.]

[목적지 전송 중: 5. 4. 3. 2. 1.]

[도달!]

[비밀: 감시자 미션 진행률 0]

“여기 보세요. 사람 모양이에요!”

“어제는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났네요? 원래 모습은 뭐였을까요?”

“감자는 아니겠죠?”

“허튼소리, 우리 감자는 잎사귀가 있거든요?”

“그건 무 아니에요?”

“음, 아마도! 내가 한 번 자세히 보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자 그녀의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한마디씩 주고받는 소리에 시하는 머리가 아팠다. 미간을 찌푸리며 힘껏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눈앞이 환해졌다.

앞을 보니 누군가의 얼굴이 크게 보였다. 활력을 잃어 마치 죽은 생선의 눈을 연상시키는 눈빛이 시야에 들어오고, 코로는 무 향내가 들어왔다. 주위에는 배추, 감자, 양, 개, 닭, 거위, 토끼 등 생물들을 닮은 외모들이 둘러서 있었다. 모두 체형이 거대하고 진기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요괴다!”

시하는 깜짝 놀라 소리치고는 서둘러 도망가려고 했지만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대체 누가 나를 땅속에 묻은 거야?

시하가 영기를 움직이려 했지만 요괴들이 더 빨리 도망가 버렸다. 요괴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모습을 감췄고 그곳에는 시하만 홀로 남겨졌다.

시하는 땅속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너무 깊숙이 묻혀 있는 바람에 몇 번이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그녀 앞에 초록색 잎사귀가 나타났다.

“도, 도와 드릴까요?”

눈이 하나밖에 없는 무가 돌 뒤에서 얼굴을 내밀더니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시하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는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 연약해 보이는 초록색 잎사귀를 잡았다. 무의 초록색 잎사귀는 생각보다 튼튼해서 그녀를 한 번에 위로 끌어 올렸다.

시하는 그제야 안심하며 자신의 몸에 묻어 있는 진흙을 털어 냈다. 그리고 돌 뒤에 숨어버린 큰 무를 향해 웃으면서 인사했다.

“고마워요!”

그 무는 깜짝 놀라더니 조금 어색한 듯 고개를 숙였다. 순백의 무 얼굴이 조금 붉어지더니 갑자기 홍당무로 변해 버렸다.

“천, 천만에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그곳은 선산복지(仙山福地)였고 사방에 영기가 가득했다.

“여기는 어디예요?”

“여기는 산 위예요.”

“어떤 산 위요?”

“…….”

무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옥화파는 여기서 얼마나 멀어요?”

무가 이번에도 고개를 흔들었다. 무의 지능이 여기까지인 듯해, 아무래도 사람을 찾아 물어봐야 할 성싶었다.

그때 무가 잎사귀를 흔들거리며 다가와 호기심과 흥분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저는 무정(精)이에요. 당신, 당신은 무슨 정이죠?”

“저는 아무 정도 아니에요. 사람이에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 숨어 있던 인영들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사람!”

무가 순식간에 다시 하얗게 질리더니 몸을 떨기 시작했다. 하나밖에 없는 눈에서 와르르 굵은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당, 당신은 무를 먹나요?”

그가 조심스럽게 물으며 곧 쓰러질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하는 옥화파에 있을 때 많이 먹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안 먹어요, 무는.”

무정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 밝은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머리에 있는 잎사귀를 이용해 눈물을 닦으며 소리쳤다.

“들었어요? 무를 먹지 않는다네요!”

풀숲과 나무 뒤, 돌 뒤에서 줄줄이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저는 토정이에요. 당신은 토끼를 먹나요?”

시하가 고개를 젓자 희고 통통한 토끼는 흥분하며 그녀에게로 뛰어왔다. 토끼를 시작으로 다른 정괴(精怪, 요사스러운 귀신)들도 줄줄이 다가와 그녀에게 질문했다.

“저는 거위정이에요! 당신은 거위를 먹어요? 흰색의 깃을 가진 이런 거요.”

“안 먹어요!”

“저는 양정이에요. 당신은 양을 먹나요? 발이 네 개인 이런 거요.”

“안 먹어요!”

“저는 오리정이에요. 당신은 오리를 먹어요? 꽥꽥하고 우는 그런 거요.”

“안 먹어요!”

그리하여 모든 정괴가 밖으로 나왔다. 숫자가 많아지니 엄청난 무리가 형성됐다. 시하는 자신이 무슨 축산물 시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왜 이렇게 많은 정괴들이 있는 거지? 여기 모여서 대회라도 여는 건가?

정괴들이 흥분하여 시하를 둘러싸고 시끄러운 소리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이름은 뭐예요? 인정(人精)이라고 하나요?”

“당신은 어디에서 왔죠? 왜 여기에 심어진 거죠?”

“당신은 이슬을 좋아하나요? 저희 배추들은 땅속에 엄청 많아요.”

시하가 머리가 아파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우선 저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어요. 이슬도요. 그리고 저는 여기에 떨어진 것이지 심어진 게 아니에요. 저는 인정이 아니고 사람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여인이지요.”

시하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가슴을 내밀었다. 정괴 무리는 뭔가 크게 깨달은 모습으로 그녀의 가슴을 바라보더니 감탄했다.

“오.”

밋밋한 가슴을 가진 정괴들 앞에서 시하는 자신감이 회복되었다. 그때 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여인, 당신은 왜 다 안 먹는 거죠? 그럼 저 산 위에 있는 선인들이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당신도 선인이에요?”

“선인! 여기에 선인이 있어요?”

“네! 선인은 산꼭대기에 살아요. 매일 산 아래로 내려와 저희를 보고 가죠. 아, 저기 보세요. 선인들이 오고 있어요. 그들이 당신을 데리러 오는 것 같네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보니 하늘에서 검을 부려 날아오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온몸에 영기가 가득하고 수행 계급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파란 옷을 입은 어린아이었다. 보아하니 열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에 작고 통통한 얼굴, 붉은 볼을 가지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사랑스러워 볼을 꼬집고 싶은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어른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멀지 않은 공중에 멈춰 서서 큰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사부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응? 네 사부가 누군데?”

“가 보시면 알아요.”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으로 결을 만들어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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