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89)

이희는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경멸하는 눈빛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해? 선수들은 그렇다 쳐도 흑살, 당신은 언제부터 이렇게 순진해진 거죠?”

말을 마치기 바쁘게 갑자기 하늘땅을 뒤흔드는 듯한 위압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시하를 제외하고 흑살과 역요괘는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 피를 토했다. 흑살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 화신! 화신을 뚫었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한테 순진하다는 거예요! 누가 소주든 그게 무슨 상관이죠? 저를 승계만 시켜 준다면 그게 누가 됐든 무슨 상관인데요?”

흑살은 화가 극에 달했다. 이희는 유일하게 멀쩡한 시하를 보더니 눈빛이 차가워졌다.

“아직도 멀쩡하다니! 어쩐지 옥화파에서 만났을 때부터 이상하다 했어. 술법은 물론이고 화신의 위압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걸 보면 몸에 기이한 보물을 품은 것이 분명하구나!”

시하는 아무 대꾸도 않고 물러나 다시 일행들 옆으로 돌아왔다. 시하가 조용히 자신의 순양 영기를 두 사람의 몸으로 전달하여 그들을 누르는 위압을 줄여줬다.

“오늘 보니, 더더욱 놓아주면 안 되겠어!”

이희가 법검을 빼 들고 시하를 공격해 왔다. 시하가 낙성진을 사용하려는데 갑자기 지면이 흔들리며 산이 무너지고 땅에 균열이 일어났다. 붉은 쇠사슬의 진법이 띵! 소리와 함께 모두 부서졌다. 산과 땅이 흔들리며 진 위에도 균열이 생겼다. 두 개의 산이 각각 양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산에서 돌들이 우르르 쾅쾅 소리를 내며 굴러 내려오고 있어 사람들이 제대로 설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시하와 그 일행들은 싸움을 중단하고 줄줄이 검을 부려 바위 옆으로 몸을 피했다.

진 윗부분이 완전히 무너지고 그 밖으로 용성에 깔려 있는 거대한 현천진(玄天陳)이 보였다. 진이 더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갈기갈기 찢어진 플라스틱 비닐처럼 군데군데 구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멀리 공중에 흰옷이 휘날리고 있었고 뒤에는 눈부시게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그 빛이 잠시 어둠으로 덮여 있던 전체 용성을 순식간에 환하게 비췄다.

“후지!”

시하의 긴장이 그제야 안정을 되찾았다. 시하가 그쪽으로 건너가려고 하는데 한 인영이 갑자기 성안으로부터 반짝거리더니 후지에게 날아갔다. 그는 엄청 빨라서 모습을 자세히 확인하기조차 어려웠다.

귓가에 띵! 소리가 울리면서 엄청난 충격이 주변으로 전해졌다. 그는 마치 무형의 날카로운 칼날처럼 순식간에 용성의 모든 지붕과 나무들을 자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아직 다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던 현천진마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미처 몸을 피할 틈이 없었던 마수들은 모두 그 충격에 몸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시하가 정신을 차리니 후지가 어느새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는 손에 순백의 검을 들고 한기가 가득 어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시하는 처음으로 후지가 직접 자기 손으로 무기를 사용하는 걸 목격했다.

고개를 돌려 이희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역시 앞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 사람은 온몸에 구름과 불 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청색의 옷을 걸치고 있었고, 나비 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키는 커 보이지 않았지만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간 모습으로 제법 볼륨 있는 몸매였다. 손에 옥적(玉笛, 옥으로 만든 대금(大笒) 비슷하게 만든 피리)이 들려 있는 걸 보니 바로 그 소주인 듯했다.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에베레스트처럼 높은 가슴을 쳐다보고, 자신의 몽골 초원같이 광활한 가슴을 내려다봤다!

요즘 요괴들은 다 저 수준인가? 비교돼서 못 살겠네.

“이렇게 외지고 척박한 땅에 대승기(大乘期)의 수사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대승기는 또 뭔가 싶어, 시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당신들 실력으로 도망갈 수 있겠어요?”

그 요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웃었다. 그때 마수들이 모두 몰려와 시하와 일행들을 에워쌌다. 시하의 일행들은 고작 다섯 명밖에 되지 않으니 3000 vs 5의 대결이 되었다.

후지가 무거운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리며 한마디씩 힘주어 외쳤다.

“어디 한 번 덤벼 봐!”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땅바닥에 내리꽂자 그 순간, 천리까지 얼음으로 변해 버렸다. 두꺼운 얼음 층이 순식간에 그들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을 얼렸다. 거의 모든 마수들이 얼음 층 아래에 갇혀 버리자 순간 전세가 역전되어 2 VS 5의 대결로 바뀌었다.

용성이 순식간에 얼음 성으로 변하자 소주라고 하는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더니 바로 몸을 날려 공격해 왔다. 후지도 그가 오고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의 동작이 매우 민첩하여 공중에 하얀색과 파란색의 밝은 인영만 언뜻언뜻 보였다. 귓가에는 병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검기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각 사방에서 비치고 있었다.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성안은 무너져 갔다.

그곳은 마치 지구의 종말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땅과 산이 흔들리며 건물과 나무들이 부서져 내렸다. 땅바닥에 깔려 있던 얼음 층조차 깊은 균열을 드러내었다. 흑살이 급히 방어 결계를 하고 자신을 보호했다.

시하가 용오천의 손을 잡고 영기를 불어넣으며 그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살폈다. 그의 경맥은 모두 끊겨 있었고, 몸의 수행 계급도 모두 효력을 잃고 있었다. 단전에 조금 남아 있는 영기가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목숨일지도 몰랐다. 시하가 구전환혼단을 꺼내 먹이자 영력이 회복되면서 그제야 그가 안색을 되찾는 듯 보였다.

시하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갑자기 음침한 기운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시하는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물건을 손으로 잡았다. 손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더니 눈앞에 이희의 얼굴이 나타났다. 흑살과 역요괘도 그녀가 다가오고 있는 걸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시하가 손에 잡은 것은 그녀가 날린 검이었다.

역요괘가 놀라 그녀에게 우레를 날리며 공격했다. 이희가 바로 검을 거두어 몸을 날리며 역요괘가 날린 천뇌를 피해 갔다.

“흑살, 용오천을 부탁해요!”

이희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눈빛을 반짝였다. 자신의 수행 계급이 한 단계 높은 걸 이용해 검술로 시하의 공격을 막고, 마기로 역요괘를 공격했다.

시하의 손은 점점 마비 증세를 보였다. 영기를 움직인다고 해도 단시간 내 회복이 어려워 보였다. 시하는 서투른 그녀의 왼손으로 낙성진을 불러낼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요괘의 몸은 온통 상처로 가득했다. 시하가 이를 악물며 검을 오른손으로 옮겨 잡아 검술을 불러냈고, 검기를 이용해 거대한 용을 불러내어 이희를 공격했다.

결을 만들던 이희는 놀라 역요괘를 기습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물러나 용을 피했다. 사실 용이 엄청 사나워 보이긴 했지만 금단기의 검기라, 화신수사의 몸에 상처를 내기 역부족이었다. 시하도 그저 그녀를 일시적으로 막기 위해 검기를 이용한 것이었다.

“역요괘! 무망경의 서수수를 기억해요?”

역요괘는 놀라더니 시하의 말을 이해하고 온몸의 뇌영기를 움직여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역요괘가 비경에서 자신이 배운 천강술(天降術)을 사용하여 바닥에 있는 얼음 층을 쳤다. 순간 자색의 전광이 전체 용성으로 퍼져 나갔다.

뒤로 물러서 있던 이희가 발을 헛딛고 뇌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가득한 자색 뇌전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비록 그녀의 수행 계급이 역요괘보다 한 단계 높지만 역요괘는 천강술을 이용해 오행천뇌를 이끌었다. 선수(仙修)든 무수(武修)든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천뇌였다. 특히 마수들은 죽음으로 입도하기 때문에 그들 몸에는 살기와 원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천뇌에게 최상의 뷔페나 다름이 없었다. 때문에 수행 계급이 높을수록 그 충격은 더욱 큰 법이었다.

이희의 몸 여기저기에 살가죽이 뜯기고 뼈가 드러났고,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삼킬 것처럼 매섭게 쏘아보던 표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에서 싸우고 있던 두 사람도 이제 갈라섰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후지가 돌아서서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괜찮아.”

확실히 그는 아무런 상처도 입고 있지 않았으나 몸의 한기가 더 심해졌고, 손에 들고 있는 법검 위에 흰색 빛이 더욱 반짝거렸다.

“내가 너를 어리게만 봤군.”

청색 옷을 입은 인간 요괴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지만 얼굴에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팔뚝에 상처를 입었는지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손까지 모두 피로 얼룩져 있었다.

“소주님.”

이희가 기대에 찬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인간 요괴는 그녀를 섬뜩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욕하기 시작했다.

“쓸모없는 물건! 화신이 되어서 몇 명 안 되는 원영의 수사들 하나 이기지 못하느냐. 내가 네놈을 어디에 써먹겠어!”

이희의 머리를 잡은 그의 손에서 붉은 빛이 나타났다. 이희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2초 만에 이희는 그의 손에 저세상으로 사라졌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을 죽인 후 인간 요괴의 몸에 있던 상처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자신의 손을 만지며 불쾌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키워줬는데 이 정도의 영력밖에 받지 못하다니, 내 진법을 낭비하기만 했어.”

흑살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흥분된 모습으로 앞으로 두 걸음 나섰다.

“당신, 소주를 가장하면서 수체진을 깔았어? 우리의 영력을 빨아들이기 위해?”

“보아하니 마수들이 그렇게 미련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네.”

그는 더 이상 가장하지도 않으려는 듯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졌다. 그가 조금 몸을 움직이더니 잠깐 사이에 어린 소녀에서 마르고 키가 큰 남자로 변신했다. 방금 봤던 그 인간 요괴보다 그의 용모가 훨씬 더 단정했다. 눈에 가득한 간계와 모략만 아니라면 그저 멀쩡한 일반인처럼 보였다.

“나는 원래 선수라 마수들의 죽음은 조금도 아깝지 않아. 그저 폐물들을 조금 이용했을 뿐이지.”

흑살이 화가 나 얼굴을 붉히며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내가 시공간을 넘어 여기까지 와서 너희들을 이용해 준 것에 대해 영광으로 알아!”

“시공간을 넘어?”

시하가 순간 깜짝 놀랐다.

“너희들처럼 이렇게 변두리에 생존하는 수사들은 진정한 수선계가 다른 대륙에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할 테지. 너희는 평생을 있어도 화신에 도달할 수 없어. 그러니 승선(昇仙)의 그 아름다운 꿈도 그만 깨는 게 좋을 거야.”

그가 경멸하듯이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후지에게 시선을 멈추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의외로군. 하지만 나는 의외를 제일 싫어하지!”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갑자기 결인을 했다. 하지만 바로 공격하지 않고 두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잠시 후 용성의 지면에 밝은 빛이 비치더니 성에 깔려 있던 모든 진법들이 갑자기 작동하기 시작했다. 진법들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자 얼음에 깔려 있던 마수들이 얼음과 함께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하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저 사람이 모든 마수들을 빨아들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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