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는 마수의 종적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으나, 수릉봉에 도착하자 원조가 급하게 찾아오더니 얼른 예를 갖추고 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태사조님, 당시에 저에게 세우라고 하셨던 그 혼패(婚牌)가 부서졌습니다.”
혼패는 제자들이 입문할 때에 자신의 피로 세우는 것이라 그 주인의 신체 상황을 나타내었다. 혼패에 이상 증세를 보인다는 건 그 본인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누구의 혼패인데 그렇게 조급해하는 거예요?”
“태사조께서 구해줬던 그 남자 무사요.”
시하가 그제야 누군가를 떠올리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용오천! 무슨 일이죠?”
“혼패가 이미 부서져 있는 걸 보면 생명이 위급할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은 모양이에요. 그리고 혼패 위에 영기가 모두 사라지고 음기가 나타나는 걸 보면 마수의 소행이 분명합니다.”
시하가 바로 검을 부려 용성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려고 하자 원조가 그녀를 막아섰다.
“무수가 물러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만약 두 분께서 문파에 계시지 않는 걸 그들이 알기라도 하면…….”
시하가 옆에 있는 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저 혼자 갈게요.”
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안 돼. 누이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시하는 그런 그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고민하다가, 그녀의 다리 위에 매달려 한참 졸고 있는 마수를 원조의 품에 안겨줬다. 마수는 처음에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반항했다.
“도도! 조용히 여기에 있어.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테니까 집을 잘 지키고 있어야 돼. 알겠어?”
“아버지.”
그의 작은 볼이 아래로 축 처지더니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말 들어야지!”
“……네.”
시하가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하자 도도가 그제야 동의했다. 그와 필홍이 있으면 옥화파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시하는 그제야 후지와 함께 용성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시하가 용오천을 걱정하는 건 그가 오두방정이라서가 아니라 원오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그는 그 소주가 범계에서 물건을 찾고 있다고 했다. 용성은 바로 범계와 수선계의 변두리에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지? 시하는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조급해져 힘껏 검을 부렸다.
후지가 얼굴을 찌푸리며 시하를 자기 검 위로 끌어들였다. 신화기의 수사와 검을 부리니 역시 혼자일 때보다 배는 더 빠르게 날았다. 하지만 후지는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개의치 않았지만 그의 등에서 한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건 분명 삐쳐 있다는 신호였기에 시하는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용오천은 저희와 어려움을 함께 겪었던 사람이에요. 근데 제가 모른 척할 수 있겠어요?”
“…….”
“그냥 친구인데 왜 화가 난 거죠?”
“…….”
“제가 다른 사람을 오라버니라고 할 것 같아서요?”
“…….”
“그건 정말 아니에요! 용오천은 우리와 함께 모현선부를 거쳐 온 사람이에요. 설마 그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죠?”
대체 왜 화가 난 건데! 감춰진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나니 너무 힘드네.
역시 신화기 수사의 비행은 남달랐다. 후지는 일각이 걸려 바로 용성 부근에 도착했다. 멀리 검은 기운이 용성을 덮고 있어 하늘까지 어두워 보였다. 공기 중에 뭔가 기분 나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시하가 더 가까이 다가가 상황을 살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 검은 기운이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 공기 중에 그 기분 나쁜 기운도 사라지고 없었다. 성안은 여전히 전과 같은 모습으로 시끌벅적한 모습이었다. 용성의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어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시하는 머릿속에 가득한 의문을 안고 용오천의 성주부로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묻고 싶었다. 시하가 용성 입구에 들어서려고 하는 순간, 후지가 갑자기 손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성문 중간에 갑자기 파도 같은 것이 일면서 입구를 지나가던 사람들을 휩쓸었다. 마치 수면 위에 돌을 던진 듯 용성이 출렁였다. 비록 후지가 그녀를 잡아당기긴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그녀의 발부터 시작하여 온몸이 조각조각 분해되더니 그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 이,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마치 특수 효과를 입힌 듯한 장면을 목격하니 놀란 시하는 눈을 크게 뜨고 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을 지켜봤다. 후지가 황급히 몇 개의 술법을 써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녀의 몸이 점점 더 많이 사라지고 있었다. 후지는 아예 그녀를 안고 용성에서 멀리 도망가려고 했다.
“잠깐만요. 이상하게 저 하나도 안 아파요.”
몸이 절반이나 사라졌는데도 그녀는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후지가 놀라더니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살폈다.
“환각이야!”
“네?”
“이 성 전체가 환각이야. 너는 지금 환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거야.”
“그럼 어떡하죠?”
시하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녀의 몸이 점점 작아지고 있어 얼마 안 있으면 전체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몇 개의 글귀가 떠올랐다.
“환천진(幻天陳)! 오라버니, 이건 환천진이에요.”
“알겠어. 안으로 들어가면 움직이지 말고 있어. 내가 진의 입구를 찾아 들어가서 구해줄게.”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드디어 온몸이 그 환천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환히 밝은 밖과는 달리 진 안에서 보는 성내는 매우 어두웠다. 마치 순식간에 낮에서 밤으로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음침한 바람과 함께 마기가 하늘에 가득하고 도처에서 마수들이 돌아다니며 순찰을 했다. 놀랍도록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었고, 수행 능력도 모두 금단 이상은 되어 보였다.
순간의 방심으로 홀로 진 안으로 빨려 들어온 시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왜 아무도 여기가 마수들의 본거지라고 알려주지 않은 거지?
숫자를 보니 전에 옥화파를 공격했던 마수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는 듯했고, 한 사람이 한 번씩만 침을 뱉어도 그녀를 익사시켜 버릴 듯했다.
어떻게 그 오두방정을 구하지? 오라버니! 나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시하가 구석진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환천진은 사람을 임의의 장소로 전송하고 있었고,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후지는 입구를 찾아 그녀를 구하러 오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이곳에 숨어 발견되지 않고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반드시.
“사람이다.”
등 뒤에서 병기들을 뽑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시하가 뻣뻣한 몸을 돌려보니 역시나 등 뒤로 까무잡잡한 마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성(魔城)으로 다 쳐들어오다니. 간도 크네. 어서 말해! 여기는 뭘 하러 온 거지?”
우두머리로 보이는 검은 옷의 남자가 물었다.
“하하하, 여행을 왔다고 하면 믿을래요?”
역시나 무리수였다. 마수는 차갑게 콧방귀를 끼더니 손으로 결을 만들어 그녀를 공격했다. 시하가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선문에서 어떻게 너 같은 제자가 나왔냐?”
남자가 그녀의 수행 계급을 깔보며 옆 사람에게 손짓했다.
“이 여자를 지하 감옥으로 데려가야 될까?”
“당주님, 죽이지 않고요?”
“바보 같은 놈! 선문은 자신들의 제자들에게 추적 술법을 걸어 두고 있어. 여자를 죽이면 우리 마성의 위치가 폭로된단 말이야! 기다렸다가 선문을 공격할 때 그때 가서 죽여도 늦지 않아.”
“역시 당주님의 고견이십니다!”
“됐어. 어서 데리고 가!”
시하는 그저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앞에서 한 무리의 마병(魔兵)들이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도 거만하기 짝이 없던 당주가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띠며 자세를 고치더니 자색 옷을 입은 남자 마수에게 예를 갖췄다.
“오! 사호법(四護法)님이시잖아요. 어떤 일로 여기까지 오셨는지요?”
“방금 공교롭게 진으로 들어온 선문의 수사가 있길래 데리고 오는 길이에요.”
“한 명 더 있었어요?”
설마 후지는 아니겠지? 자색 옷의 남자가 손을 흔들자 흰옷을 입은 한 남자가 앞으로 밀려 나왔다. 시하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요괘! 역요괘가 왜? 이 꼬마 녀석은 또 언제 들어온 거지?
“사호법님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당주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도 두 명의 선문 수사들이 들어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악당주,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이렇게 작은 실수까지 제가 소주님께 보고하지는 않을 거예요.”
자색 옷의 남자가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지만 말속에는 위협이 느껴졌다. 그가 말을 하면서 시하가 있는 쪽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역요괘를 당주 앞으로 밀치며 말했다.
“이 사람은 악당주에게 넘길게요. 본 호법은 일이 있어서. 그럼 이만.”
“그럼 멀리 안 나가요. 사호법님 살펴 가십시오!”
당주는 그제야 안심하며 자색 옷의 남자를 배웅했다. 그는 이마에 올라온 식은땀을 닦아 내며 뒤에 있는 무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데리고 가!”
두 사람을 지하 감옥에 넣기 전, 마수들이 역요괘를 발로 걷어찼다. 마수들이 떠나고 난 후 시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역요괘를 끌어당겼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온 거죠? 폐관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게 다 당신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당신, 태사조 단둘이서 마수들을 찾으러 용성으로 간 게 걱정되어, 저, 저, 저를 지원군으로 보내신 거예요.”
“거짓말이죠?”
그는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 나자 어색해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다시 중얼거렸다.
“몰래 따라온 거예요.”
“뭐 하러요?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아요?”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금단인 당신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원영인 제가 뭐가 무서워요? 그리고 저는 더 이상 당신 뒤에 물러서 있기 싫어요. 저도 여기에 이렇게 많은 마수들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럼 당신은 어떻게 들어온 거죠? 밖에서 후지를 보지 못했어요?”
“제가 여기 도착했을 때 당신이 막 이 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어요. 순간 저도 마음이 급해 성벽을 만지는 바람에.”
이런! 전에는 나 혼자서 후지의 뒷다리를 잡았다면, 이제는 역요괘까지 한 조를 이루어 짐이 되게 생겼어. 거기에다 그 오두방정까지, 셋이서 둘러앉아 마작을 쳐도 되겠네! 후지가 잘 감당해 내기만을 빌어야겠어.
시하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몸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었다.
“소용없어요. 괜히 쓸데없이 힘쓰지 말아요. 이 밧줄에 마기가 있어 저의 영력이 봉인됐어요. 당신은 풀 수 없…….”
뚝! 밧줄이 끊어졌다. 역요괘가 믿기 어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당신도 영력이 봉인되지 않았어요?”
어떻게 밧줄을 끊을 수 있었던 거지?
“그랬어요?”
시하는 어리둥절하며 그 당주가 그녀에게 무슨 주문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그게 그녀의 영기를 봉인하는 거였다. 난 또 날 희롱하는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