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89)

“이봐요!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아직도 저를 마녀라고 믿는 거예요?”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고민하다가 다시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흥, 강산은 쉽게 변해도 그 본성을 바꾸긴 어렵지.”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제가 당신한테 잘못한 일이라도 있어요? 왜 저를 나쁜 사람으로만 보는 거죠? 그 근거 없는 믿음은 대체 어디서 온 거예요?”

“당신이 감히 마존의 누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제 오라버니가 마존이면 저는 반드시 나쁜 사람인가요? 그게 대체 무슨 해괴한 논리인 거죠? 당신은 조상 대대로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당신의 그 논리대로라면 당신도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겠네요?”

원오는 말문이 막혀, 스스로 자신의 말이 설득력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듯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뭘 아는데? 이 모든 건 모두 당신 오라버니가 망친 거야. 모두 그가 망친 거라고!”

“그를 찾지 못해서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찾아 복수를 했다? 정말이지 당신의 지능이 너무 의심스러워서 마존이 당신의 부모님을 죽인 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믿을 수가 없네요.”

“닥쳐, 이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그가 사나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시하는 마음속에 한 가지 의혹이 생기자 그를 살피며 말했다.

“그럼 참 이상하네요. 마존이 당신의 말처럼 그렇게 험악하면, 당신은 왜 살려 둔 거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마존은 원래부터 악한 짓만 골라 했어. 우리 부모님 모두가 원영의 수사였지만 그놈은 어려운 상대였지. 그날 내가 절마애로 따라갔을 때, 그놈이 그 절벽에 엎드려 있는 걸 이 두 눈으로 직접 봤어.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지. 그가 나를 죽이지 못한 건 아마도…….”

“잠깐만! 엎드려요? 그럼 그가 직접 손을 쓰는 건 보지 못했다는 거네요?”

“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어. 그가 아니면 누구겠어?”

“이제야 알겠네요.”

시하의 머릿속에 끊겨 있던 단서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연결되었다. 시하는 바로 주문을 외워 그의 몸에 있던 진법을 풀어주었다. 원오가 하마터면 땅바닥으로 떨어질 듯 허우적대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시하를 향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왜? 당신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사죄라도 하게? 내가 말하는, 아!”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시하가 힘껏 그를 돌기둥 아래로 떨어뜨렸다. 원오는 영력이 봉인되고, 중상을 입은 상태라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바로 용암이 있는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떨어지며 두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몸이 위로 붕 뜨더니 돌기둥 옆에 걸렸다. 고개를 들어, 엎드려서 자신의 손을 끌어당기는 시하를 보고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당신, 뭐 하는 거야? 이런 방법으로는 내가…….”

“이런 모습이었어요?”

“네?”

“묻고 있잖아요. 당신이 마존을 봤을 때 저처럼 이렇게 절벽 위에 엎드려 있었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뭔가 떠오른 듯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순간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지나갔다.

시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끌어 올리고 몸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바보같이 멍한 표정을 짓는 원오를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한마디씩 힘을 주며 그에게 말했다.

“이제 이해되죠? 바보가 아니고서 사람을 아래로 밀어 놓고 엎드려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없어요. 마존은 당신 부모님을 죽인 범인이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로 그들을 구하려고 했던 거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도 당신처럼 한발 늦은 거고요.”

원오는 주저앉아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 거친 숨을 내쉬며 헐떡거렸다. 그는 얼굴에 불신, 경악, 회한, 자책 등의 감정을 드러내다가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힘껏 저었다.

“아니, 아니야. 그는 마존이야. 근데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지? 내가 분명, 분명히.”

그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스스로도 자신을 설득할 수 없었던지 이제 눈에 가득하던 분노조차 조금씩 사라져 갔다.

“받아들여요. 원오, 당신은 처음부터 사람을 잘못 찾은 거였어요.”

시하는 맘속으로 조용히 자신의 친오빠를 위해 촛불 하나를 들었다.

그는 도대체 누굴 화나게 한 걸까?

시하에게 복수에 대한 허점들이 낱낱이 까발려지자 원오는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은 아예 듣지 않은 채 큰 충격에 빠진 사람처럼 말문을 굳게 닫았다. 시하는 묻고 싶었던 질문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수릉봉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일 후 원계가 갑자기 찾아와 원오가 그녀를 만나고 싶다 했다고 전했다. 시하는 고민하다가 후지를 데리고 다시 그곳으로 찾아갔다.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그의 상태가 많이 안정되어 보였다. 복수로 가득 찬 눈빛도 사라지고 오히려 시하를 피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말한 그 소주는 저도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하지만 전에 그들이 무슨 신기를 찾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그 신기는 동쪽 끝에 있는 범계의 어느 지역인 듯한데, 그 짝퉁 소주는 분명 그곳에 있을 거예요.”

“그곳이 어딘지 알아요?”

“그들이 찾고 있는 신기가 ‘혼원신철(混元神鐵)’이라는 것밖에 몰라요. 그리고 그 사람 엄청 위험해요! 그 사람이 당신 이름을 사칭하긴 했지만, 수행 계급은 엄청 높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의 진면목은 보지 못했지만 전에 ‘환진석(還眞石)’으로 그녀의 수행 능력을 탐색해보려 한 적이 있었는데, 환진석도 그녀의 한계를 탐색해 내지 못했어요. 아마 그녀의 수행 계급이 당신 오라버니보다 아래는 아닐 거예요.”

시하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옆에 서 있던 후지조차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환진석은 화신기의 수사들도 탐색해 내는데, 그 소주를 탐색해 내지 못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럼 상대는 대체 얼마나 무서운 존재라는 거지? 자기가 새로운 마존이라고 해도 아무도 감히 의심하지 않았을 텐데 왜 하필 시하의 이름을 사칭한 거지?

“만약 정말 그를 찾고 싶다면, 아마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될 거예요.”

“알겠어요! 근데 당신은 왜 그렇게 제가 마존의 누이라고 확신했던 거죠?”

그녀가 마존의 누이긴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오빠 사이에는 백 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녀는 당시에 수행 능력도 없었고 수련을 한 경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누구라도 그녀의 신분을 의심할 수 있었지만 원조와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듣고 공격하려고 했고, 지금은 이 사실을 아예 웃음거리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설명을 해도 그녀가 진짜 시하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원오만은 시종일관 그녀의 신분에 대한 확신을 놓지 않았다.

“전에 당신의 초상화를 봤으니까 당연히 당신인 줄 알았죠! 숲속에서 당신을 봤을 때, 그때는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있어 바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당신이 옥화파에 왔을 때에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어요.”

“초상화? 무슨 초상화요?”

원오는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작은 초상화는 사람 손바닥만 한 크기밖에 안 되지만 매우 선명하고, 색깔도 있어서 진짜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어요. 저도 그런 초상화는 처음 봤었어요.”

“손바닥만 한 크기.”

설마 사진?

“어디서 본 거죠?”

그가 대답 대신 그녀의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하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녀의 옆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후지가 있었다. 그는 곤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허둥대며 서둘러 검을 부리려 했다. 시하가 그런 그를 끌어당겼다.

“당신이 제 초상화를 갖고 있어요?”

“없어! 나는 마존에게서 초상화를 뺏은 적이 없어. 내 반지에 초상화는 한 개도 없어.”

“스스로 꺼낼래요, 아니면 제가 꺼낼까요?”

후지가 말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비록 그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시하는 그가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하가 그를 한참 노려보자 그제야 그는 우물쭈물 반지 속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그건 정말 한 장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열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책상에 엎드려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머리는 마구 헝클어져 있고, 책상에 침을 잔뜩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하는 순간 살인 충동을 느꼈다. 이 사진은 시하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고3 시절에 교실에 있는데, 오빠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가 자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는 그 후 그걸로 몇 년이나 그녀를 놀렸었다. 근데 그 사진을 이 세계에까지 가지고 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근데 사람들은 어떻게 이 모습으로 나를 알아본 거지?

“몰수예요!”

시하가 사진을 자신의 반지 속으로 넣어 버렸다. 후지가 눈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상의 같은 것도 필요 없어요.”

“…….”

“반드시 몰수에요!”

“…….”

“불쌍한 척해도 소용없어요!”

“…….”

“울어도 소용없어요. 저도 아직 울지 않았거든요!”

“…….”

그녀가 타협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후지가 몸을 날려 날아가 버렸다. 초상화 한 장을 잃다니 마음이 아팠지만, 다행히 마존에게서 한 장을 더 빼앗기를 잘한 듯했다. 이번에 잘 감춰 둬야지.

한편 시하는 할 말을 잃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화가 난 건가? 애예요? 잠깐! 내가 어떻게 후지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은 거지? 방금 뭔가 대단한 능력이 발휘된 듯한데.

시하는 검을 부려 그의 뒤를 쫓아가려고 했다.

“잠깐!”

그때 원오가 황급히 시하를 부르더니 뭔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전에 일은, 미안해요.”

“당신이 미안해할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억울하게 죽은 옥화파의 제자들이지.”

그가 입술을 움찔거리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시하는 듣고 싶지 않아 바로 검을 부려 날아올랐다.

내가 당시에 봤던 그 초상화는 그 한 장이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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