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89)

“원오를 말하는 거예요?”

“제가 비록 겁뇌 중이었지만, 원오와 나누는 대화를 모두 들었어요. 원오 삼촌은, 원래 저한테 아주 잘해줬었어요. 어렸을 때 저와 제일 친한 삼촌이었거든요. 비록 삼촌과 조카 사이긴 했지만, 저희는 수행 계급이 같아 형, 동생과 같은 사이었어요. 전에 그가 사라져서 계속 찾아다녔지만 그런 모습을 하고 나타날 줄은……. 저는 그를 형처럼 생각했는데 그는 저를 마기에 빠지도록 했어요. 대체 왜 그런 거죠?”

왜긴 왜야!

“사실 이유라 할 것도 없어요. 그게 사람이죠. 사람은 변하니까. 다만 어떤 사람들은 변해도 최소한의 것은 지키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최소한의 것도 지키지 못하는 거죠.”

“최소한의 것이요?”

“사람이 그런 최소한의 것도 지키지 못하면 안 돼요!”

“당신 말이 맞아요. 사람은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돼요. 수련을 오래 하다 보니 우리가 사람이라는 걸 잊고 살았네요.”

시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역요괘가 멍한 얼굴로 봉우리 아래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 씨, 저 아주 쓸모없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요?”

“네?”

시하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뇌영근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이 저보고 모두 천재라고 했었어요. 수행도 다른 사람들보다 빨라서 열 살에 축기, 삼십이 되기 전에 결단하고 지금은 백 년도 되기 전에 결영을 했어요. 심지어 제가 할 수 없는 건 없다고 생각한 적도 가끔 있었어요.”

천재의 고민을 털어놓는 건가? 축기 나부랭이가 당신한테 훈수나 들 수 있을까요?

“당신을 만나면서 전에는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좌절감을 느꼈어요. 당신은 계급이 축기밖에 되지 않는데 괴수의 무리를 막고, 저는 금단인데도 당신이 저를 구해줘야 했죠.”

날 질투하는 거였어? 그래도 듣고 보니 감격스럽네. 하지만 괴수 무리를 물리친 건 내가 아닌데.

“당시에 저는 거기에 갇혀 있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을 뛰어넘으려고 50년 동안 열심히 수행했죠. 그래서 어렵게 결영을 했는데 당신은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상고 시대의 마수를 굴복시켰어요.”

그것도 내가 한 게 아닌데!

“이번에 겁뇌도 저는 쉽게 버텨 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당신이 저를 구해줬어요. 괴수의 무리를 막고, 문파를 구하고, 마수를 거둬들이고, 역적을 색출해 내고, 제가 뭘 하든 저는 항상 당신 뒤에 있었죠.”

그는 마치 맘속에 오랫동안 쌓아 뒀던 말을 토해 내듯 머릿속에 있던 모든 것을 쏟아 내는 듯했다.

“저를 천재라고 불렀던 말들이 전부 농담 같아요. 분명 수행 계급은 제가 더 높은데 왜 항상 저는 당신 뒤만 쫓아다니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하 씨는 도대체 인간이 맞아요?”

지금 날 욕하는 건가?

“만약 제가 좀 더 강했으면, 작은 삼촌이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그를 막았다면, 옥화파가 마수에게 공격도 당하지 않고,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분명 양지에 앉아 있었지만 깊은 자책감에 빠진 그에게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시하가 한숨을 깊게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역요괘, 이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잘못하는 걸 당신이 막을 방법은 없어요.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자신을 자책하지 말아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은 축기기인데도 막을 수 있었잖아요. 내가 축기기에도 당신처럼 강했으면, 만약 더 강했으면 아마도.”

왜 자꾸 날 끌어들이는 거지? 날 끝내 끌어 내리겠다 이 말이지?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당신도요? 못생긴 거 말고 또 단점이 있다고요?”

“젠장! 저는 못생기지 않았어요. 알겠어요? 당신 눈이 어떻게 된 거라고요! 그리고 저도 사람이에요. 사람이면 모두 단점은 있기 마련이고요. 귀신도 무서워할 만큼 겁이 많고, 성질이 더러운 데다가 엄청 게을러요. 수행도 사실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가 없어서 하지 않은 거예요. 지금 이 정도만 유지하고 싶고, 승계를 할 마음도 없어요. 이기적이고 허세도 많고 경계심도 높죠. 생명을 아끼는 마음은 제가 선량해서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받아 왔던 교육 때문이고요. 저는 마음속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어 놓고 아무도 선 안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답니다.”

“하 씨, 당신.”

“그리고 후지를 저의 오라버니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사실 진정한 오라버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그가 나에게 베푸는 것들을 누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히 제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죠. 많은 일들을 그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절대 얘기하지 않고 그가 모르고 넘어가면 다행이라고 혼자 즐거워하기까지 해요. 저 엄청 나쁘죠?”

시하는 자신의 문제점들을 말하다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서 희미하게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사실 저는 그한테 잘 보이려고 오라버니라고 부른 적이 많아요. 제가 오라버니라고 불러주면 그가 기분 좋아할 줄 알고 그냥 겉으로만 그런 척한 거예요. 그가 다치면 화를 내고, 그가 힘들어하면 같이 힘들어했어요.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저 스스로 잘 알아요.”

“그게 아니라, 대사숙조님.”

“저 아직 안 끝났어요!”

너무 오랫동안 이런 말들을 참아 온지라 갑자기 모두 토해 내고 싶었다.

“저는 이 세계에서 배척당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사람이든 일이든 아니면 다른 뭔가가 됐든 말이에요. 저는 한 번도 그 속에 있어 본 적이 없었죠. 매번 방관자로 옆에서 구경만 할 뿐이었어요. 항상 본성은 감추고 한 번도 그 속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머뭇거리기만 했죠. 저는 항상 제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어요. 넌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사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제가 이기적이라서 책임지기 싫었던 것뿐임을 알 듯해요.”

“태사…….”

“세상에, 말하지 않았을 땐 몰랐는데 하다 보니까 점점 제가 인간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떡하죠? 제가 지금 후지를 찾아가 말을 해도 늦지 않…….”

역요괘가 참다못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크게 소리쳤다.

“빨리 당신 몸을 봐요!”

시하가 놀라 고개를 숙였다.

“저한테서 왜 빛이 나는 거죠?”

그녀의 몸에서 빛이 나오더니 점점 더 밝아졌다. 마치 십만 개의 전등을 한꺼번에 밝힌 것처럼 전체 봉우리에 밝은 빛이 생기더니 주변의 영기도 놀랄 만큼 짙어졌다.

“이이이이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당신 방금 결단하려는 기미를 눈치채지 못했어요?”

웃기지 마요. 결단이라니!

“결단은 어떻게 하는 거죠?”

역요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대단하게 봤던 건 자기 머리에 뭔가 큰 문제가 있어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떡하죠? 어떡하죠?”

이러다가 내 몸이 전구로 변하는 건 아니겠지?

역요괘가 바삐 손발을 움직이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후지가 나타났다. 무슨 주문을 걸었는지 그가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니 몸의 밝은 빛이 전부 사라졌다.

“가자!”

그가 시하를 안고 역요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폐관을 한 석실로 돌아와 영기를 끌어들이는 진법을 몇 개나 깔아 놓았다.

“후지.”

시하는 후지에게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나빴는지 말하려고 했지만 후지에게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의 이마에 걸린 법인을 풀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지 마. 지금 반드시 결단을 해야 돼. 정신을 집중하고 영기를 몸 안으로 끌어들여 봐. 신식에 있는 영기가 응축되면 자동으로 금단에 성공할 거야.”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방금 그 황망하던 마음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평정심을 되찾았다. 시하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눈을 감았다. 그가 알려준 대로 주변에 갑자기 많아진 영기를 끌어들여 신식으로 가져갔다.

역요괘에게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여 있는 것들을 모두 털어놓아서인지 은밀히 존재하던 그 벽이 갑자기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던 신식은 이제 눈을 감으면 그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안에 하얀 구슬 하나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줄곧 부적처럼 몸속에 존재하던 여의주가 드디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의주가 그녀가 부리는 대로 신식 안에서 좌우로 움직였다. 구슬 안에 뭔가 인영 같은 모습이 나타 나 자세히 보니 안에 작은 흰색 용 한 마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매번 움직일 때마다 여의주 위에 글자 같은 것이 언뜻언뜻 나타났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얀 영기들이 끊임없이 신식으로 들어갔다. 시하는 그제야 자신이 결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영기를 몸 안으로 끌어들였다.

전에 승계를 하면서 엄청난 통증을 느꼈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온수에 몸을 담그고 있는 듯 온몸이 아주 편안했다. 신식의 영기가 점점 많아지자 여의주가 갑자기 팽이처럼 돌기 시작했다. 여의주가 한 바퀴 돌때마다 영기가 조금씩 안으로 들어갔고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잠시 후, 영기가 소용돌이를 만들며 가운데로 모이더니 하나의 모양이 완성됐다. 그 소용돌이도 점점 더 커지더니 새로 몸속으로 들어오는 영기도 함께 빨려 들어갔다. 여의주가 그제야 멈추더니 한쪽 구석으로 날아가 조용히 그곳에 떠 있었다.

영기가 점점 더 빨라 빨려 들어와 시하가 영기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 소용돌이 속에 서서히 깨알만큼 작은 구슬이 나타났다. 영기가 증가함에 따라 구슬도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영기가 서서히 멈추었다.

이게 금단이라고?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결단에 성공했다고?

여의주가 그녀보다 더 신나 보였다. 새로 결성된 금단의 주변을 돌면서 마치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처럼 즐거워 보였다. 시하는 신기한 눈빛으로 새로 결성한 구슬을 바라봤다. 그녀의 영기 탓인지 구슬도 흰색을 띠고 있었다.

어, 저건 뭐지?

갑자기 금단 위에 옅은 흔적이 보여 자세히 보니 용 한 마리가 있었다.

언제 새긴 거지?

그 용은 움직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여의주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의주가 심심해서 자기 친구를 만든 건가? 이제 대체 누구의 금단인데? 어쩐지 방금 열심히 돕는다 했어. 내 금단을 뭐로 보는 거지? 3D 입체 자화상인가? 결심했어. 반드시 단을 부수고 결영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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