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모인 남자 봉주들이 모두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자신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가렸다.
엄, 엄청 폭력적이네. 우리 이 태사숙조에게 뭐 잘못한 건 없는 거지? 지금에라도 반성하면 늦지 않았을까?
많은 봉주들의 고민도 모르고 시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발길질을 했다. 어느덧 주봉에는 비명 소리만 가득했다.
시하는 잠시 남다른 폭력성이 마구 끌어 오르는 듯했다. 봉주들은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 맘속으로 원오를 위한 촛불을 들었다. 하지만 후지는 눈빛을 반짝이면서 기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내 누이야. 사람을 때려도 이렇게 리듬감 있게 때리다니!
일방적인 폭력은 그렇게 일각이나 계속되었고, 땅바닥의 사람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괘야!”
멀지 않은 곳에서 원조의 근심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하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그제야 발을 멈췄다. 그동안 어렵게 축적한 체력을 모두 그곳에 쏟아부은 듯했다.
시하는 자신이 그렇게 올곧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란 걸 인정했다. 어려서 양쪽 부모를 다 잃은 사람치고 가슴속 상처가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녀가 그나마 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오빠 때문이었다.
시하는 어려서 유명한 불량배였던지라 중학교 때는 매일 치고받고 싸우느라 싸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 그녀는 아이들 속에서 큰언니로 통할 정도였으나,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완전히 불량 학생 생활을 접었기에 오랫동안 폭력으로 무슨 일을 해결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그때의 실력이 나와 버린 것이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일이었는데 지금 원오가 공교롭게도 그 모습을 보였으니.
“괘야.”
원조의 다급한 목소리에 달려가 보니 뇌겁 중심에 역요괘가 매우 심각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에는 뇌겁을 맞은 상처가 드러나 있었다. 입정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몸이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고, 호흡도 아주 미약해 보였다. 그의 미간에 어두운 기운이 맴돌았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솟아올라 피와 뒤엉켜 얼굴 가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좁혔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마치 뭔가에 잡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수행 능력도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왜 이러는 거죠?”
시하가 고개를 돌려 후지를 바라보았다.
“도심(道心, 바르고 착한 길을 따르려는 마음)을 어지럽혀서 마음이 불안하고 심마(心魔, 몸과 마음을 어지럽혀 깨달음을 얻는 데 장애가 되는 일)가 든 거야.”
“그럼 방금 그 어두운 기운이?”
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역겁(歷劫)은 도심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를 제일 싫어하고 마기는 사람의 욕망을 쉽게 불러일으켰다. 방금 원오가 내뿜던 그 마기가 상대의 어두운 부분을 건드렸고 그것이 천뇌를 통해 더욱 확대된 것이다.
“그럼 천뇌를 멈출 방법은 없을까요?”
시하가 조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겁뇌가 일단 시작되면 멈출 방법이 없어.”
시하가 주먹을 쥐고 고민하다가 갑자기 뭔가를 떠올렸다.
“뇌겁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면 어때요? 지난번처럼?”
그 말이 떨어지자 후지는 물론 원조와 많은 봉주들이 침묵했다. 서로 바라보고만 있는 가운데 원계가 입을 열었다.
“태사숙조님, 방금 맞은 그 우레들 때문에 역요괘가 이미 큰 상처를 입었어요. 이 상태로 겁뇌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의 수행 계급은 연기기로 돌아갈 겁니다. 다시 수련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 심결(心結)이 남아 있게 되지요. 만약 다음에 다시 겁뇌를 받아야 하면 아마도…….”
우뢰를 끌어들이는 방법에 대해서 다른 수사들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겁뇌에는 모두 심결이 생겨 심마가 들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두 번째 겁뇌는 더 어렵고 지금까지 성공한 수사가 없었다. 역요괘도 두 번째 겁뇌였지만 전에 받았던 겁뇌는 문파를 위해 특별히 한 거라 마음속에 거리끼는 것이 없어 심결이 생기지 않았다. 만약 지금 우레를 중간에 다른 곳으로 유인하면 아마도 역요괘는 평생 금단기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시하도 침묵했다. 역요괘처럼 그렇게 자존심 강한 사람이 만약 수행 계급이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면 아마 참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떡하죠?”
시하가 옆에 서 있는 후지의 옷깃을 잡으며 물었다. 후지가 흠칫 놀라더니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가 지금 심마에 빠져 있지만 완전히 무의식 상태에 있는 건 아니야. 그를 깨워 천뇌를 받게 하면 마지막 남은 겁뇌는 더 받을 수 있을 거야.”
깨운다고? 그래서 방금 원조가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부른 건가? 시하가 고개를 돌려 역요괘의 얼굴을 봤지만 아무 효과가 없는 듯했다.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시 천뇌가 내려오자 이번엔 역요괘가 앉아 있는 자세도 유지하지 못한 채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떡하지?
“상대를 자극해야 깨어나게 할 수 있어.”
자극할 수 있는 일이라! 시하가 고민하다가 앞으로 나서며 원조와 함께 소리쳤다.
“역요괘! 어서 일어나요. 심마에 지면 안 돼요. 당신 원영의 겁뇌는 식은 죽 먹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저한테 이런 모습만 보여 줄 거예요?”
처음에는 그저 시험 삼아 시도해본 건데 정말 효과가 있었다. 땅에 쓰러져 있던 역요괘가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조가 흥분하며 시하를 바라봤다.
“효과가, 효과가 있어요! 태사숙조님, 계속해서 불러 보세요!”
방법이 효과를 보이자 시하가 기뻐하며 계속해서 소리쳤다.
“역요괘! 당신이 이 수선계에 제일가는 천재라면서요? 근데 이 모양이에요? 뇌겁도 맞지 못하고, 그러고도 뇌영근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어요? 창피하지 않아요?”
그녀가 계속해서 역요괘를 자극하자 상대방도 서서히 손을 움직이더니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또다시 겁뇌가 내려와 그의 몸을 치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쓰러졌다.
9981개의 겁뇌 중 아직 마지막 한 개가 남아 있었다. 원조가 참지 못하고 결을 만들었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그것을 역요괘에게 씌어 마지막 겁뇌를 막아주려는 듯했다. 자신의 아들이 앞으로 수행 계급이 다시 올라가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승계가 목숨보다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하도 초조한 마음으로 세차게 꿈틀대고 있는 뇌운을 바라봤다. 가망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마지막을 희망을 버리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쳤다.
“역요괘, 일어나지 않으면 지금 바로 당신이랑 결혼할 거예요! 나중에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어요!”
그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역요괘가 마치 죽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듯 몸을 일으켰다.
“나는 당신이랑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요!”
커다란 진동 소리가 나며 마지막 겁뇌가 내려왔다. 그가 마지막 결계를 하며 천뇌를 받자 그 순간 뇌운이 모두 사라졌다. 그곳에 가득하던 뇌압들이 영기로 변해 겁뇌를 받은 역요괘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몸에 가득했던 깊은 상처들이 서서히 아물었다. 그리고 그의 미간에 보이던 그 어두운 기운도 바로 사라지고 몸에서 원영 수사의 기품이 느껴졌다.
성공이다! 시하가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불쾌한 기분은 뭐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그거였어? 쳇! 내가 그렇게 비호감이야? 정말 그렇다면 솔직히 말해, 때려죽이진 않을 테니까.
원오는 중상을 입고 쓰러져 벌계당(罰戒堂)에 갇힌 후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않았다. 역적을 색출해 낸 후 옥화파는 수양기(修養期)로 들어갔고 곳곳에서 제자들이 바삐 문파를 수리했다. 반면에 태사숙조에 봉해진 시하는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역요괘는 결영을 하고 3일이 지났지만 계속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듣자 하니 주봉의 봉우리를 폐관했다고 하여 시하는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양심도 없는 자식. 겁뇌를 하면서도 날 싫어하더니, 와서 고맙다는 말도 안 하네. 자기 목숨을 구해준 게 한두 번도 아니건만.
자신은 아직도 축기에 머물러 있는지라 시하는 더욱 울적했다. 그리하여 원조를 찾아가 인생 이야기를 나누기로 결심했다. 아들도 당해 내지 못하면서 나를 당해 낼 수 있을까?
봉우리 꼭대기에 도착하니 벼랑 끝에 누군가 서 있었다. 하얀 교복 차림의 그는 두 손을 등 뒤로 지고 서서 고개를 45도쯤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고심하는 모습이 마치 사색에 잠긴 한 마리 새처럼 보였다. 시하가 참다못해 그를 발로 가볍게 찼다.
“꼬마 녀석, 뭐 하는 거지?”
그렇게 서 있다가 또 우레를 맞는 수가 있다고. 역요괘가 다리에 힘이 풀려 낭떠러지로 떨어질 듯 허둥대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고뇌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그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하 씨, 당신!”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다시 말을 멈추고는 안색을 바꾸더니 갑자기 공손한 자세로 예를 갖췄다.
“태사숙조님께 문안드립니다.”
시하가 깜짝 놀라 그의 이마를 만지며 말했다.
“어디 아파요?”
무섭게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거지? 그가 눈을 흘기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가며 눈웃음을 치고 정중하게 말했다.
“제자, 태사숙조님께서 뇌겁에서 저를 구해주신 일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시하가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왜, 나랑 결혼하기로 결심한 거예요?”
“어림도 없는 소리!”
그가 화가 나서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입에 경련이라도 난 듯 입술을 부르르 떨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태사숙조님, 농담은 그만하십시오. 예전에는 제가 태사숙조님의 신분을 몰라 무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태사숙조님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됐어요! 이제 그만 일어나요.”
시하가 그의 속마음을 이미 다 안다는 듯 눈을 흘기며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당신 폐관하지 않았어요? 근데 여기 와서 뭐 하는 거죠?”
역요괘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은 하지 않고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그러고는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봉우리 아래를 내려다봤다. 뭔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축 처져 있었다.
“왜요? 기분이 안 좋아요?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말해 봐요. 듣고 내가 기분이 좋아 질 수도 있으니까.”
역요괘가 그녀를 흘겨보더니 길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하 씨, 태사숙조님, 사람은 왜 그렇게 빨리 변하는 걸까요?”
왜 뜬금없이 이런 심각한 얘기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