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89)

그때 바닥에 깔려 있던 원오가 여전히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후지에게 말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시죠? 태사조님, 왜 이 마수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이 사람은 마수가 아냐.”

“그럼 뭔데요? 이 여자가 시하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이 여자는 시하예요. 당신은 저희 옥화파의 태상노조이고요. 근데 어떻게 그녀의 미혹에 넘어가실 수 있죠? 그녀는 마존의 누이에요!”

“내 누이야!”

원오가 그의 말에 깜짝 놀라더니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태사조께서 어떻게 마존이랑 같은 편에 계신 겁니까. 그렇게 못된 짓을 일삼고, 미친 듯이 손에 사람의 피를 묻히고 다니는 그런 사람은 잡아서 죽여야 마땅해요.”

시하는 듣다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원오는 시하가 만난 사람들 중 오히려 제일 못된 사람이었다. 못된 사람도 이렇게 못된 사람은 처음 만나 보는 듯했다.

“제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죠? 제가 사람들에게 맞아 죽어야 할 만한 잘못이 대체 뭐냐고요? 말해 봐요! 하나만 대면 당신이 손댈 것도 없이 제 스스로 그 죗값을 받을게요!”

원오는 마땅히 댈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자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

“마존의 이름은 세상이 다 알아. 네가 그의 누이인데 너라고 악한 짓을 하지 말라는 법이 있어?”

“그 말은 지금 아무 이유도 찾지 못했다는 거네요? 당연히 말할 수 없겠죠. 이유 같은 건 원래부터 없었으니까! 당신은 얘기할 수 없겠지만, 당신의 그 악행은 제가 낱낱이 밝혀 낼 수 있어요. 세상의 못된 짓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저질렀잖아요.”

“허튼소리!”

그가 흥분하여 일어서려고 했지만 후지의 위압에 눌려 주저앉았다.

“제가 허튼소리를 한다고요?”

시하가 차갑게 웃으며 그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나열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마수를 유인한 것은 불충이고, 사문을 배신한 것은 불효,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은 불인, 동문들을 살해한 건 불의예요. 불충불효, 불인불의, 이 네 가지 악행 중에 당신이 저지르지 않은 것이 있으면 말해 볼래요?”

그가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려서는 힘껏 머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한 것이 아니야!”

“아니라고요? 쇄마진을 파괴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혈도대진은 당신이 사람들을 데려와 미리 설치한 거잖아요. 마수가 옥화파를 공격한 일에 당신이 가담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에 왜 나타난 건데요?”

그때 원조와 봉주들, 그리고 장로들이 함께 내려왔다. 그들도 계략에 빠진 걸 뒤늦게 알아채고 여기로 달려온 듯했다. 그러다가 마침 시하가 원오에게 하는 얘기를 전부 듣게 되었다. 원조가 급히 앞으로 두 걸음 나서더니 믿기지 않은 얼굴로 원오에게 물었다.

“그게 사실이야? 사형, 시하의 말이 사실이에요? 혈도대진과 봉인에 연루된 사람이 정말 사형이에요?”

“그, 그건 저와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가 당황하더니 마치 스스로에게 확인이라도 하듯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그저 시하가 옥화파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복수하려고 했을 뿐이에요. 저도 그게 혈도대진인 줄은 몰랐다고요. 그 사람이 저를 속인 거예요. 그는 제가 봉인을 풀고 태상노조를 잡고 있으면 복수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가 저를 속였어요!”

“당신, 미쳤어?”

원조와 다른 사람들은 분노 가득한 얼굴로 원오를 바라봤다. 하지만 원오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다시 시하를 노려봤다.

“나는 잘못이 없어요! 복수하려고 그랬어요! 근데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죠? 저 여자는 마녀고, 마존의 누이라고요! 어떻게 저 여자를 감싸줘요? 만약 태사조께서 저 여자를 계속 보호하지만 않았어도 저도 이런 방법까진 쓰지 않았을 거예요. 부모님을 죽인 원수와 어떻게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있죠? 저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요!”

원조가 앞으로 나서더니 분노하며 말했다.

“원오! 이번에 마수에게 우리 옥화파를 공격하도록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바로 당신이 말한 마존의 누이 시하라고요!”

그가 순간 흠칫 놀라더니 다시 얼굴에 희색을 띠며 시하를 가리켰다.

“시하? 역시 저 여자였군요! 저는 저 여자가 마녀일 줄 알았어요. 근데 왜 이러고 있어요? 어서 죽여야죠!”

원조가 길게 한숨을 쉬며 실망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당신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이 마수들을 데리고 온 사람이면 지금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겠어요.”

그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은 옥화파를 공격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옥화파를 구한 사람이에요. 저 여자는 마존의 누이가 아니고 태사조의 누이에요. 바로 옥화파의 태사숙조님이시라고요!”

사실 마존은 정말 내 오라버니가 맞지만……. 원조, 그렇게까지 내 누명을 벗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원오는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 말도 안 돼요! 저를 속이는 거죠? 제가 잘못 봤을 리가 없어요. 말도 안 돼요. 저 여자가 시하예요! 저 여자가 분명 시하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절마애에서 올라왔겠어요. 당신들 모두 지금 저를 속이고 있는 거죠? 하하하하하, 당신들은 겁쟁이군요. 마존에게 혼날까 봐 그래서 이런 황당한 거짓말로 나를 속이는 거죠? 사기꾼, 전부 사기꾼이야!”

그는 오랜 시간을 들여 이날을 준비했다. 자신의 사문들까지 희생시키며 심지어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는 마수의 길에 들어선 것도 모두 복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가 처음부터 사람을 잘못 본 거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시하를 노려봤다. 그의 온몸에서 마수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녀, 너 때문이야! 네가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 내가 오늘 죽더라도 그 대가를 받아 내고야 말 거야.”

비록 몸은 꼼짝 못하고 있었지만 그는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시하가 뭔가 불길한 예감에 뇌겁을 맞고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위에 뭔가 검은 기운이 보이는 듯하더니 언제 그랬는지 그 기운이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겁뇌가 떨어지고 있었다.

“역요괘!”

이미 늦어 버렸다. 원래는 여유 있게 겁뇌를 막아내던 사람이 겁뇌를 맞고 바로 피를 토했다. 방어를 하고 있던 결계도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몸은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하지만 아직 81개의 겁뇌가 남아 있었다. 이런 몸으로는 천둥 번개를 맞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원조가 화가 나서 다급한 목소리로 원오의 멱살을 잡았다. 역요괘는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저 애는 당신이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당신 사형의 아들이라고!”

“흥, 사형의 아들은 무슨? 죽기 전에 희생물이 필요해요. 내가 이 두 눈으로 그와 저 마녀가 같이 돌아오는 걸 봤어요. 마녀와 같이 다녔으니 그도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닐 거예요. 지금쯤 아마 이미 마수의 미혹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죠. 저는…….”

퍽! 시하가 참지 못하고 손을 날려 매섭게 그의 따귀를 내리쳤다. 여태까지 봉인해왔던 소위 불량한 기질이 전부 해제된 느낌이었다. 원오는 그녀가 손을 쓰리라고는 예견도 하지 못하다가 화가 나서 그녀를 쏘아봤다.

시하는 손을 들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예 양손을 번갈아 쓰며 그의 따귀를 내리쳤다. 잠시 온 봉우리에 따귀 때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원오가 그녀에게 얻어맞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그제야 손을 멈췄다.

“자기 마음이 더러운 사람이 다른 사람도 자기와 똑같다고 착각하는 법이지. 내 말 똑바로 들어. 전에 나를 오해하고 몇 번이나 공격했을 때도 난 화가 나지 않았어. 왜냐하면 나는 아예 네놈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으니까. 너 같은 놈은 내가 시간 낭비할 가치도 없었거든. 입만 열면 나를 마녀라고 욕을 하더니, 너는? 네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봤어?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생각이나 해봤냐고!”

원오의 입가에는 핏자국이 얼룩져 있었고, 얼굴은 부어서 돼지머리가 되어 있었다. 그가 입을 열어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시하는 그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서라고? 웃기고 있네. 겁쟁이가 그럴듯한 핑계만 대고 있잖아. 자신의 진정한 원수도 몰라보고 여기서 헛짓거리나 하고 있고, 내가 만약 당신 어머니였으면 진작에 갖다 버렸을 거야. 개를 가져다 키우면 키웠지 당신같이 이렇게 배은망덕하고 사리분별도 못하는 아들은 키우지 않았을 거라고!”

“닥쳐! 닥쳐! 헉,”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그의 머리가 아예 옆으로 돌아가 버렸다. 시하가 이번에는 영기를 실어 공격한 바람에 그의 입이 아예 비뚤어졌다.

“당신이나 닥쳐! 복수할 거면 나만 공격하면 되지, 역요괘는 무슨 잘못을 했지? 그가 당신 조상들 무덤을 팠어, 아니면 당신 엄마랑 바람이라도 피웠어? 당신이 역요괘를 건드리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나랑 같이 있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당신은 데려올 사람들이 없지? 원조 사형을 좋아하면 뭘 해, 역요괘는 그의 아들인데. 그리고 옥화파는 당신 사문이잖아. 그들이 당신을 받아주니까 든든했어? 소인배 같은 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

“난 그런 적 없어! 난 그런 적 없어!”

“그런 적 없다고?”

시하가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봐. 눈을 똑바로 뜨고 옥화파를 봐! 이게 전에 네가 봤던 그 옥화파가 맞는 것 같아?”

혈도대진이 다녀간 후로 옥화파 곳곳에 부식된 피 웅덩이와 쓰러진 담벼락이 보였다. 3개월 동안 복구하였지만 아직도 그때 흔적들이 남아 있어 전에 그 신선들이 사는 안락한 곳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니야, 난 아니야.”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미친 듯이 날뛰던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는 몸까지 덜덜 떨며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려고 애썼다. 시하는 조금의 동정심도 남아 있지 않아 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똑바로 봤어? 지금 이 옥화파의 모습은 당신이 이렇게 만든 거야! 당신이 그랬잖아. 난 악독하기 그지없고 손에 피비린내가 가득하다고. 하지만 지금 악독한 건 당신이야. 손에 피비린내가 가득한 것도 당신이고. 스스로의 손을 한 번 봐봐. 그 손에 엉겨 묻은 피는 모두 당신 동문들의 피라고! 그러고도 잠이 오디?”

“아, 아니야.”

그가 몸을 더 심하게 떨더니 자기도 모르게 손을 바라봤다. 정말 손에 피라도 가득 묻은 느낌이 들어 감히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입으로는 아직도 변명거리를 찾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야. 난 잘못이 없어! 난 분명 옳은 일을 한 거야.”

“이런 나쁜 놈!”

계속하여 변명만 늘어놓는 그의 모습에 화가 난 시하가 이번에는 손이 아니라 발로 그의 두 다리 사이를 걷어찼다. 그녀의 발에 차인 원오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얼핏 뭔가 터지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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