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189)

시하는 자신이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옥화파를 공격한 마수들은 모두 그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고 했다. 원조는 시하를 데리고 수릉봉으로 오르더니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네가 정말 시하가 맞아? 너희 조상의 성이 ‘시’가 맞느냐고. 시동이 너의 오라버니가 맞다고 정말 확신할 수 있어?”

젠장! 내가 미쳤다고 농담을 하겠어요? 신분증이라도 갖고 와서 보여줄까요?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설명해도 원조는 그 작은 눈을 계속 깜빡거리며 의심하는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시하를 ‘마존의 누이’라고 의심하던 마음이 사라지니, 이제 아무런 경계심도 느끼지 않았다. 필홍마저도 가끔 시하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마치 시하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하긴, 쟤를 어딜 봐서 마존의 누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참.

시하는 의문의 1패를 당한 듯했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시하라는 이름은 분명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공의 적으로 통하지 않았어?

하지만 동시에 실망스러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분명 마존의 누이는 내가 맞는데!

“마수가 이미 물러가긴 했지만, 이렇게 순순히 멈추지는 않을 거예요. 백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이 이런 실력을 갖췄다는 건 앞으로 수선계가 그리 평탄하지 못할 거라는 경고이니까.”

원조가 전에 둘러앉은 각 봉의 봉주들을 바라보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검봉의 봉주 원계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탄하듯 말했다.

“요 며칠 밖에서 수련하던 제자들이 소식을 전했는데, 마수들이 각처의 선역(仙域)에 나타나 난리를 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치고 있다고 해요. 그들의 목표는 비단 옥화파뿐만 아니라 모든 선문인 듯해요.”

단봉의 봉주 원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그 이희라는 마수의 우두머리의 소식은 없었어요? 그 소주는요?”

“마수가 옥화파에서 물러난 뒤 바로 종적을 감춰 아무 소식도 없다고 해요. 그렇게 많던 마수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사라졌는데 그 얼굴 한 번 내밀지 않던 소주는 말할 것도 없죠.”

원하는 얼굴을 굳히고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그 소주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원조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혈도대진을 설치한 걸 보면 절대 그렇게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야. 아마 이희보다는 실력이 위일 거고.”

그 말이 떨어지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일시에 창백하게 변했다. 그때 원계가 흥분하며 일어섰다.

“이희보다 위에 있다니! 이희가 이미 원영 후기의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 소주는 그럼 화신?”

“그보다 위에 있을 수도 있어.”

아마 화신기 이상일 수도 있지. 원조의 말에 사람들의 미간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또다시 세상을 어지럽게 할 마존이 탄생하는 거네요.”

원하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떡하죠? 지금은 태사조도 깊은 상처를 입고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계시고, 사부님의 상처도 아직 치유되지 않았는데. 마수가 이번에 이렇게 물러가긴 했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더 강한 진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요. 장문 사형, 무슨 방도가 없을까요?”

“상고의 마수 도철이 여기 있으니, 당분간은 마수들이 다시 옥화파를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야. 다만 그들이 이 기회에 다른 선문을 공격하여 힘을 더 키운다면, 아무리 도철이라고 해도…….”

“그럼 어떡하죠?”

원하가 조급한 목소리로 묻자 원조가 얼굴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갑자기 시하를 향해 예를 갖추더니 뭔가 기대에 찬 얼굴로 바라봤다.

“태사숙조(太師叔祖)님, 혹시 이 일에 어떤 고견을 갖고 계신지요?”

한참 졸고 있던 시하가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원조를 바라봤다.

“네? 태사숙조? 제가요?”

내가 언제부터 옥화파의 태사숙조였지? 난 왜 모르고 있었지?

“태사숙조님, 마수 도철과 계약도 맺으셨고, 마수도 물리치셨잖아요. 그러니 이 일에 분명 어떤 고견을 갖고 계실 거라 믿어요. 태사숙조님께 가르침을 부탁드려요.”

원조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골칫덩어리를 그녀에게 떠넘겼다. 다른 사람들도 갑자기 시하가 마수를 물리친 일을 떠올리고 눈을 반짝거리며 바라보더니 한 목소리로 외쳤다.

“태사숙조님께 가르침을 부탁드려요!”

“제가 언제부터 태사숙조가 된 거죠?”

저번에는 마녀라며 죽이려고 달려들더니.

원조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필홍 사부님이 저에게 모두 설명해주셨어요. 당신은 후지 태사조의 누이라고요. 그러니 당연히 태사숙조가 맞죠.”

필홍, 이 나쁜 놈.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하를 쳐다보았다. 시하는 조용히 원조를 불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영감, 날 수릉봉에서 끌고 오더니 뭐 하는 거예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죠?”

“태사숙조님, 저희 문파가 지금 심한 타격을 받아 태사조님과 사부님까지 몸에 중상을 입으셔서, 지금 저희가 가르침을 구할 수 있는 분은 당신밖에 없어요.”

“젠장! 당신들은 내가 누군지 알잖아요! 전에는 저를 마녀라고 하더니, 제가 옥화파를 팔아먹을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아요?”

원조가 웃으며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태사숙조님, 농담하지 마세요. 당신이 옥화파를 해하려고 했으면 당시에 저희를 마수에게서 구하지도 않으셨겠죠. 태사조께서 일어나시기 전까지 저희 문파를 지켜주실 분은 당신밖에 없답니다.”

“아예 이 골칫덩어리를 나한테 떠넘기겠다, 이 말이네요?”

“태사숙조님, 방법이 없잖아요? 만약 마수들이 도철을 데리고 있는 사람이 저희 문파의 태사숙조님이신 걸 알게 되면, 마수들이 아무리 간이 커도 쉽게 옥화파를 건드리진 못할 거예요. 그리고 다른 선문을 건드리는 일도 조심하게 될 거고요.”

“지금 나를 방패막이로 사용하겠다는 거예요?”

원조가 잠깐 표정을 굳히더니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태사숙조님,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태사숙조님도 아시다시피 마수들은 후지 태사조님을 두려워했잖아요. 혹여나 마수들이 후지 태사조님께서 중상을 입은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날엔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분명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태사조님을 해치려고 하겠죠. 보이는 곳에서 날아오는 창은 피하기 쉽지만, 몰래 쏘는 화살은 막아 내기 어려워요. 하지만 태사숙조님께서 계시니, 마수들도 제일 먼저 그걸 꺼려할 겁니다.”

시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후지는 계속 깨어나지 않았다. 필홍은 그의 경맥이 이미 다 나았다고 했지만 그의 원신은 그가 스스로 회복해야 돼서 언제 일어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이미 3개월이나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하도 근심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다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시하가 앞에서 마수의 주의력을 끌고 있으면 확실히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차라리 그 소문을 밖으로 퍼뜨리면 되잖아요. 저를 여기까지 끌고 와서 뭐 하게요?”

왜 부질없는 짓을 하는 거지.

“저는 그저 여기 있는 여러분에게 태사숙조님을 소개하고, 오해를 풀려고 한 거랍니다.”

원조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자 시하는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조용히 도망갈까 봐 여기까지 데려와서 발목을 묶어 놓는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요?”

이런 늙은 여우 같으니, 아예 내가 진짜 시하라고 믿지도 않고 있었잖아!

“됐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후지가 깨어나기 전까진 저도 여길 안 떠나요. 마수 도철도 마찬가지고요.”

원조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감사합니다. 태사숙조님! 태사숙조님께서 계시면 그 소주가 아무리 대단해도 저의 문파도 어느 정도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휴, 마존이 사라지고 200년이 지나 또 다른 마수의 우두머리가 나타나다니. 아, 그리고 태사숙조님. 당신이 정말 시하가 맞다고 확신하세요?”

“입 다물어요!”

원조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필홍이 황급히 날아와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나랑 수릉봉으로 돌아가자. 너의 그 마수가 아무래도 미친 듯해. 가서 어떻게 좀 해봐!”

“무슨 일인데요?”

시하가 놀라며 묻자 필홍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이 수릉봉 전체를 다 먹어 버릴 모양이야.”

“네?”

시하가 무거운 마음으로 그를 따라나서자 원조와 다른 봉주들도 그 뒤를 따랐다. 멀리 영기가 가득했던 영산(靈山)이 갑자기 그 본연의 색을 잃었다. 주위에 회색빛의 기체가 가득 피어올라 산봉우리의 영기가 모두 타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원래는 높게 솟아 있던 산봉우리가 누군가가 잘라 낸 것처럼 5분의 1이나 없어진 괴상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시하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파손된 산봉우리 입구 쪽에서 검은 몸뚱이의 마수가 보였다. 시하의 다리를 끌어안기 좋아하는 도도였다. 그의 몸집이 몇 배나 더 커져 있었다. 그가 큰 돌을 잡더니 뿌드득, 뿌드득 소리를 내며 금방 먹어 버리고는 다시 미친 듯이 먹을 만한 물건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에게는 맛있는 음식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의 눈가에 희미하게 이상한 붉은 빛이 반짝였다.

“도도!”

시하가 참다못해 소리쳤다.

먹는 일에 전념하고 있던 마수가 고개를 돌려 시하를 바라봤다. 그가 두 눈을 반짝이더니 그제야 이성을 회복한 듯 시하를 불렀다.

“아버지, 배고파요!”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돌아서서 아작아작 먹기 시작했다. 그의 입안에서 희미한 소용돌이 모양의 기류가 나오고 있었는데 매번 뭔가를 먹을 때마다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천지를 삼키고 있어!”

원조가 얼굴이 창백하여 몸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마수를 보며 소리쳤다.

“도철이 천지를 삼킬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네.”

사람들이 갑자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하는 갑자기 후지가 전에 말했던 말을 떠올렸다. 도철은 성정이 포악스럽고 탐욕스럽다더니,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에 몇 달은 왜 괜찮았던 거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시하가 고개를 돌려 필홍에게 물었다. 전에는 괜찮았는데 어쩌다가 또 원래의 그 모습으로 돌아온 거야?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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