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화파 사람들의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이 감돌았다. 싸움은 안 되지만 용기를 가져다주는 것쯤은 그녀도 할 수 있었다.
공중에 있던 그 자색 옷의 마수가 차갑게 시하를 노려봤다.
“흥, 나의 이 규강선(葵罡扇)의 기운을 없애다니. 하지만 아쉽게도 축기기의 제자라고? 내 눈에는 그냥 하찮게만 보이는군.”
그녀가 득의양양하게 웃더니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원조에게 말했다.
“원장문님, 이제 그만 순순히 물러나시죠! 옥화파의 제자들의 목숨은 살려줄 테니까.”
“이희(魑姬), 네가 마수들을 거느리고 우리 옥화파에 온 목적이 뭐냐?”
“목적이 뭐냐고요? 당신들 꼴이 맘에 안 들어서죠. 옥화파가 제일선문이라고 우기고 다니는 꼴이 맘에 안 들어서요. 마침 당신들 사부가 자리를 비웠고, 당신들이 사처에서 우리 마수들을 죽이고 다니는데 저희라고 복수하지 말라는 법 있나요?”
“흥, 우리 파의 제자들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아. 그들이 사람을 죽였다면 분명 그런 이유가 있어서일 거야. 너희 마수들이 사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우리 제자들을 만날 일도 없었을 테지. 이희, 네가 우리 옥화파를 공격하고도 선문들이 연합하여 마수의 무리를 쓸어버릴까 두렵지 않으냐?”
이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합? 하하하! 원조 영감, 다른 선문들이 당신들 죽음에 관심이나 있는 줄 알아요? 선문이 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옥화파를 삼 일 동안 에워싸고 있을 때 도와주러 달려오는 문파가 있었나요?”
원조가 얼굴을 찌푸렸고 옥화파의 모든 사람들은 줄줄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이희가 비꼬는 어조로 비아냥거렸다.
“원조,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각파의 산문들이 보기에는 화목해도 사실은 흩어진 모래알과 같아요. 형제자매는 무슨, 다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죠. 당신들 문파가 사라지면 제일 먼저 이 문파의 지위를 노릴걸요? 그들이 당신들을 돕는다고요? 꿈 깨세요!”
원조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큰 소리로 외쳤다.
“설사, 그렇다 해도 우리 옥화파가 너희 마수의 오만방자함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저항해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선문은 모두 도덕군자인 양 점잔을 떠는 이기적인 제자들뿐이죠. 예전엔 우리가 우두머리가 없어 여기저기 숨어 다녔지만 지금은 소주(少主, 젊은 군주, 옛날에 젊은 임금을 이르던 말)가 돌아왔으니, 당신네 옥화파를 비롯해서 여러 선문에 예전에 갚지 못했던 빚들을 하나하나 갚을 거예요.”
“소주?”
마수 무리에 언제 소주가 나왔지? 원조가 놀라며 묻자 이희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 당신들 아직 모르고 있군요! 아무나 마수의 무리를 이끌 수 있는 줄 알아요? 지금 마존 외에 무수들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돌아왔어요. 마존의 친누이이자 우리의 소주, 시하예요!”
“캑캑캑!”
시하가 사레가 들려 심하게 기침을 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이번에 이 옥화파를 치도록 명령하고, 혈도대진을 설치한 것도 모두 소주의 뜻이라고요!”
순간 원조와 각 봉의 봉주들이 시하를 쳐다보았다.
“젠장, 저는 왜 봐요? 이봐요. 저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요.”
난 이제 막 비경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요!
“소주가 계시니, 이제 이 선문의 수사들은 한 명도 도망갈 수 없을 거예요.”
“이봐요. 함부로 말하지 마요.”
시하가 다급히 말했다.
당신이 대체 누군데! 나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
“시하는 무슨, 시하가 선문을 공격해야 된다고 했다고요?”
시하가 묻자 이희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시하를 노려봤다.
“닥쳐! 우리의 소주는 슬기롭고 용맹해요.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요. 흥, 일개 축기기의 제자가 어딜 끼어들어! 아무튼 조용히 물러나는 게 좋을 거예요. 계속 버티고 있다가 젊은 군주가 오면 혈도대진뿐만 아니라, 주영진(誅靈陳), 멸절진(滅絶陳) 등 상고의 진법들을 불러내는 건 일도 아니니까요.”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 시하를 바라봤다.
“그게 다 뭐 하는 것들인데, 난 아무것도 몰라!”
왜 자꾸 날 쳐다봐요. 난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고요.
“소주는 오래된 마수의 봉인도 풀 수 있어서 당신들은 승산이 없어요.”
“마수의 봉인을 당신들 소주가 풀었어요?”
시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묻자 이희가 눈을 흘기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차갑게 웃었다.
“소주가 직접 올 필요까진 없었죠! 하지만 그 진법은 정말 대단했어. 소주께서도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야 진을 푸는 법을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지. 후지가 우리의 유일한 위협이었는데 지금은……. 하하하하하.”
이희가 더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 시하는 아직도 혼수상태에 있는 후지가 생각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하가 바로 검을 들고 이희의 목을 치려고 달려들었다. 원조가 말리려고 했지만 시하는 이미 날아간 후였다.
이희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손에서 부채를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덩어리를 형성하여 시하에게 날아왔다. 순간 검은 덩어리가 시하를 휘어 감자, 그 모습을 본 이희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일개 축기기의 제자 주제에 누구한테 도전이야! 분수도 모르고…….”
이희가 아직 말을 마치기도 전, 시하가 그 검은 덩어리를 뚫고 나와 발로 그녀의 배를 공격했다. 방심하던 이희는 시하의 발에 차여 십 미터 밖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 이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분노했다. 나를 명중하다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시하는 개의치 않고 바로 몸을 날려 다시 공격했다. 자신의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잊은 채 손과 발을 이용해 이희의 몸을 가격했다. 시하는 한 번도 이렇게 분노해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친오빠가 그녀에게 같은 잘못을 두 번 반복했을 때에도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다.
마음속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이성도 품위도 이미지도 모두 태워 버렸다. 후지의 그 창백한 얼굴과 입가에 흘러내리던 핏자국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팠다. 후지는 겉보기에 온기가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시하에게는 줄곧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 놓다니, 감히!
이희가 연달아 주먹에 얻어맞고 황급히 방어술법을 작동시켰지만 결계든 술법이든 마기든 완전히 작용하지 못했다. 모두 시하에게 부딪치기만 하면 바로 사라져 버렸다.
“이건 말도 안 돼!”
이희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몸 안에서 영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너 도대체 뭐 하는 물건이야?”
이희가 두려운 표정으로 뒤로 몸을 숨겼지만 영기를 움직일 수 없어 어디든 완벽하게 숨을 수 없었다. 그저 시하의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희가 몸을 최대한 움직여 시하의 주먹을 피했다. 큰 상처는 없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술법을 사용하여 공격한 것보다 그녀의 주먹이 더 큰 통증을 주었다. 이희가 매서운 눈으로 시하를 노려봤다. 일개 원영의 수사인 그녀가 축기의 제자에게 맞고 있다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희가 시하에게 욕을 하려던 때, 갑자기 주먹이 날아와 얼굴을 얻어맞았다.
“아!”
이희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코에서 피가 났고, 어쩐지 코 위치가 조금 이상한 듯했다.
“너, 감히 내 얼굴을 때렸어?”
세상에 자신의 얼굴을 신경 쓰지 않는 여자는 없는 법. 이희가 화가 나서 입도 제대로 열지 못하다가 순간 이성을 잃고 시하에게 달려들었다. 시하와 이희가 서로 한 주먹씩 주고받으며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네가 감히 내 얼굴을 때려! 지금까지 내 얼굴을 건드린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너 오늘 나한테 죽었어!”
이희가 그냥 화가 나 있다면 시하는 화가 폭발하고 있었다.
“네가 감히 내 오라버니를 건드려? 내가 오늘 너를 때려눕히지 못하면 내 성을 간다.”
순식간에 선인과 마수의 싸움이 야만적이고 원시적으로 변질됐다. 그것도 여자 둘이서 벌이는 몸싸움이었다.
둘 다 수사는 맞는 거지? 지금 누구의 주먹이 더 센지 겨루는 거야 뭐야? 법술은 그렇다 치고 검술은 어디로 간 거지? 무기는 다 버려 두고 싸우러 나간 거야? 이젠 머리카락을 잡아 뜯고 있네!
육탄전이긴 하지만 시하는 조금 우세한 편에 있었다. 어릴 때 친오빠가 싸움을 하면 시하는 옆에서 가방을 지키고 있었다. 항상 보던 모습이라 이런 주먹다짐은 비교적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때 많은 꼼수도 배웠다. 게다가 시하는 검수를 익히면서 체력을 단련했고, 그녀의 양의 체질로 인해 일방적으로 이희가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얼굴을 집중적으로 당해 코가 삐뚤어지고 눈에 퍼렇게 멍이 들었다. 입술이 찢어지고 머리카락도 적지 않게 뽑혔다.
“대호법(大護法)!”
공중에 있던 다른 마수들이 그제야 위험을 감지하고 시하에게 법기를 날리며 공격을 시작했다. 그때 원조가 바로 무기를 날려 상대방의 법기를 막았다. 옥화파의 사람들도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들고 함께 앞으로 날아올랐다.
양쪽에서 지원군이 몰려들자 그제야 이희가 정신을 차리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시하에게서 멀리 떨어지자 다시 자신의 몸속 영기가 움직여, 이희는 놀란 얼굴로 시하를 바라봤다.
“넌 도대체 뭐지?”
“내가 누구냐고? 네 애비다!”
그리고 다시 주먹을 휘두르며 계속해서 이희를 향해 공격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시하의 다리가 무거워지며 아래로 떨어졌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도도 거예요!”
방금까지 조용히 그녀의 다리에 매달려 있던 도도가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며 앞에 있는 마수들에게 크게 울부짖었다. 그가 순식간에 광풍을 일으키며 마수들에게 달려가니 그 위세에 마수들이 몇십 미터 밖으로 물러섰다. 수행 계급이 낮은 마수들은 그가 만들어 낸 광풍에 날아가고 말았다.
미안, 다리에 대량 살상 무기를 장착하고 있는 걸 깜빡하고 있었어.
도도가 시하의 다리에서 내려오더니 몸집을 순식간에 부풀려 이희에게 커다란 이빨을 드러냈다.
“나쁜 놈, 먹어 버릴 거야!”
그가 다시 사납게 울부짖자 입에서 소용돌이 모양의 기류가 나타나더니 옥화파를 흔들었다. 산에 있는 바위와 숲의 나무들까지 모두 위로 솟아오르더니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엄청난 흡입력에 이희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가 바로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마수들에게 소리쳤다.
“마수 도철! 후퇴!”
이희가 말을 마치더니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바로 검을 날려 도망갔다. 이희가 도망가자 목자를 잃은 양들이 그제야 도도의 위력을 눈치채고 서둘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미 도도의 흡입력에 휘말려 꼼짝 못하는 마수들을 제외하고 도망갈 수 있는 마수들은 모두 가 버렸다.
그리고 그 괴수는 아직도 입을 벌리고 계속해서 모든 음식을 삼키고 있었다. 아직 도망가지 못한 마수들이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시하가 손으로 그의 머리를 치며 소리쳤다.
“그만해, 이제 그만 소리 지르라고!”
도도가 작은 비명을 내며 원래의 크기로 돌아갔다. 그리고 억울한 눈빛으로 시하를 바라보더니 검고 부드러운 배를 드러내며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아버지, 나 배 좀 쓰다듬어 주세요.”
이봐, 상고 마수의 그 체면은 어딜 간 거야? 분위기가 바뀌어도 너무 빨리 바뀐 거 아냐?
옆에 서 있던 원조가 이상한 눈빛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방금 그녀의 다리에 매달려 있던 그 영수를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선문에서 어느 수사든 영수 한 마리쯤은 다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마수 도철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시하가 상고의 마수를 길들이다니, 근데 왜 그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지?
시하는 다리를 기어오르는 그 영수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한테 질문하지 마세요. 저 잠깐 혼자 있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