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의 울음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몸을 꿈틀대던 힘도 조금씩 작아졌다. 그 기회를 타서 검진 위에 있던 봉인 법진을 바로 마수에게 눌렀다. 마수는 완전히 반항할 기력을 잃고 점점 진법 속으로 사라져 갔다. 주위에 가득 깔려 있던 그 어두운 기운도 점점 사라졌다.
시하는 진법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 거대한 인영을 보며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잡았네. 이젠 다시 나오지 못하겠지?
“크아아아아악!”
설마! 방금보다 더 큰 울부짖음 소리가 옥화파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무 힘없이 있던 마수가 갑자기 몸에서 푸른빛을 뿜으며 다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일어섰다.
젠장, 언제 끝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큰 동물들을 싫어하는 거야! 크긴 왜 이렇게 큰 건데? 고양이처럼 작고 귀여우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그 순간, 마수의 푸른빛이 점점 더 밝아지더니 작아지기 시작했다. 산처럼 높게 솟아 있던 마수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점점 줄어들더니 산양 크기쯤 되어서야 멈추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시하와 필홍이 어리둥절해하며 마수를 바라봤다. 후지가 미간을 더 깊이 찌푸리며 말했다.
“이게 마수의 원래 모습이야.”
몸집이 작아졌다고 마수의 능력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몸집이 줄어든 마수가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렸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고, 사슬 모양의 기류를 흘렸다. 뿌지직 소리와 함께 주위에 있던 검진은 산산조각이 났다. 잠시 후 검진이 무수한 빛으로 변해 마수의 입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렇게 작은 마수가 법진을 파괴하다니, 역시 작은 고추가 매운 건가?
계속해서 진법을 지탱하던 후지가 휘청거리더니 입에서 피를 흘렸다. 마수가 갑자기 몸을 날려 입을 크게 벌리더니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후지에게 달려들었다.
“멈춰! 덤비려면 나한테 덤벼 봐!”
급박한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뱉은 말인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마수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울부짖음 소리를 내며 사납게 시하에게 돌아서더니 순간 방울만 한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잠시 후 마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젠장! 정말 오면 어떡해! 그렇게 말을 잘 들을 필요는 없잖아?
“하하(夏夏)!”
후지가 쫓아가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필홍이 몸을 날려 막아 보려고 했지만 마수에 발에 차여 쓰러졌다. 시하의 앞으로 검은 인영이 다가오더니 멈춰 섰다. 마수가 큰 입을 벌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수가 그녀의 다리를 끌어안더니 사람의 언어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시하는 뜻밖의 날벼락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한테 덤비라고 했지, 내가 너의 아버지라고 한 적은 없는데? 넌 마수잖아. 근데 내가 너의 아버지라고? 그리고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나한테 아버지라니? 엄마면 몰라도! 난 여자라고 여자! 눈 똑바로 뜨고 좀 봐!
눈은 달려 있지만 시하를 사람인지 마수인지 구분 못하고, 마수는 땅을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신나게 소리쳤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조용하지 못해! ”
마수는 땅바닥을 몇 바퀴 뒹굴더니 불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갑자기 앞발을 곧추세우더니 그녀를 향해 들어 올렸다.
“아버지, 안아줘요!”
시하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마수가 갑자기 글썽거리며 다시 발을 들어 올렸다.
“안아 주세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누가 설명 좀 해봐요!
“안아 주세요!”
아니, 다 큰 마수가 왜 자꾸 안아 달라고 하는 거지? 다 큰 놈이 부끄럽지도 않아?
시하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수는 그녀에게 달려가 안기려고 했다. 순간 후지가 갑자기 날아오더니 마수를 발로 걷어차며 시하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던 마수는 후지의 발에 차여 쓰러져 두 바퀴나 뒹굴다가 간신히 멈춰 섰다. 화가 난 마수는 벌떡 일어서며 후지를 노려보더니 마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듯 글썽거리는 눈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여전히 반응 하나 안 보이자 마수가 참지 못하고 드디어 눈물을 터뜨렸다. 와아아앙. 가슴 찢어질 듯한 슬픈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이게 정말 방금 그 무시무시했던 마수가 맞아? 이렇게 뒹구는 것도 마수의 기술 중 하나인가?
“그만 울어!”
시하가 참다못해 입을 열자 마수가 한 번 쳐다보더니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와앙, 아버지, 아버지.”
마수가 울면서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땅에서 흙먼지가 날아올랐다.
“난 네 아버지가 아니야!”
“아니에요. 맞아요.”
마수가 일어나더니 두 앞발로 시하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아버지의 냄새가 나요. 저의 아버지가 맞아요.”
네 몸에서 나는 냄새겠지!
그때, 필홍이 놀란 얼굴로 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너를 주인으로 인식하는 거 아닐까?”
고집이 세고 포악한 마수라고 하지 않았어? 나를 주인으로 알고 있다고? 아버지라며, 젠장!
“아버지.”
“아니라고 했잖아!”
시하가 귀찮은 듯 다리를 빼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마수가 코알라처럼 네 발로 그녀의 다리를 꽁꽁 감싼 채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마수가 이래?”
어떻게 아무한테나 아버지라고 하는 거지.
그때 마수가 고개를 들더니 두 눈을 끔벅거리며 시하를 바라봤다.
“도도(桃桃). 아버지, 저는 도도예요.”
도도? 그건 또 뭐 하는 물건인데.
“도철(중국 전설 속에 등장하는 탐욕스러운 괴수), 성정이 포악스럽고 탐욕스러우며, 천지를 삼키는 능력을 갖고 있는 상고의 마수!”
후지는 갑자기 모습을 바꾼 그 괴수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다시 내 누이를 안으려고 했다간 네놈 발모가지를 모두 잘라 버릴 테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도철? 설마 그 용생구자(龍生九子, 중국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용의 아홉 아들)의 그 도철?”
각종 드라마에서 악역을 도맡아 하는 그 인물을 말하는 건가?
“놈이 용의 혈통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완전히 용의 혈통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
마수가 나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설마 내 몸에 있는 여의주 때문일까? 나를 용으로 본 거야? 당시에 그 여의주를 시하에게 넘겨주었던 용은 확실히 수컷이었다. 그럼, 그렇다면 내가 저 마수의 아버지가 맞을 수도 있겠네!
“아버지.”
지금에라도 관계를 끊을 수 있을까? 이렇게 험악한 놈을 아들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후지가 갑자기 결을 만들었다. 잠시 후 발아래의 진법에 밝은 불빛이 들어오자 후지가 손가락을 구부려 마수의 이마에 가져갔다. 그러자 잠시 후 붉은 핏방울이 마수의 이마에 맺히더니 후지의 손가락으로 떨어졌다. 후지가 돌아서서 시하의 손에 그 핏방울을 묻히자 조금 있다가 시하의 손안에 작은 짐승 모양의 도안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면 마수가 다시 너를 해치지 못할 거야.”
“이건 계약인가요?”
“그래.”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습관적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갑자기 몸을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시하가 깜짝 놀라며 후지를 부축했다.
“왜 이러는 거죠?”
“괜찮아.”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괜찮다고요?”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세상에, 피까지 토했잖아요!”
“놀랄 것 없어. 좀 있다가 괜찮아질 거야.”
“그래서 언제 괜찮아지는데요? 대체 뭐가 문제죠? 후지!”
“하하(夏夏), 오라버니라고 해야지!”
지금 그런 걸 따질 때야?
후지가 몸에 있는 모든 기력을 다 쓴 듯 그녀에게 쓰러졌다.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얼굴과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보는 순간, 시하는 깜짝 놀라 후지를 애타게 불렀다.
“후지, 오라버니, 오라버니.”
“어서 사부님을 이쪽으로 앉혀.”
필홍이 차분한 목소리로 시하를 진정시킨 다음, 양반다리로 후지의 뒤에 앉아 영기를 움직이며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지의 얼굴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더 창백하게 변해 갔고, 필홍의 안색도 점점 더 어두워졌다. 잠시 후, 필홍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눈을 떴다.
“어떤 것 같아요?”
“마수가 봉인을 파괴하면서 사부님께서 진법의 공격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어. 근데 그 몸으로 검진을 작동하여 봉인을 하고, 너를 도와 계약까지 하면서 경맥이 끊기고 원신까지 상처를 입은 상태야.”
“원신. 어쩌다가 이렇게 심각하게 된 거죠? 전에 봉인을 더 견고히 했었잖아요? 어쩌다가 이렇게 쉽게 풀렸어요?”
“나도 마수가 어떻게 봉인을 풀었는지 알 수 없어. 당시에 사부님께서 신식을 하고 계신 상태라 금방 알아채지 못하셨는데, 마수가 그 기회를 타고 들어왔던 거야.”
신식을 하고 있었다고, 설마 그럼 나 때문에? 시하의 마음이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파왔다.
“내가 사부님을 도와 경맥을 보충할 거야. 하지만 원신은 사부님에게 달려 있어.”
필홍이 영기를 움직이려고 눈을 감는 순간, 갑자기 후방에서 거대한 진동이 들려왔다. 주봉(主峰)이 있는 쪽에서 갑자기 짙은 마수의 기운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필홍이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또 그놈의 사악한 사수들이군! 저들이 아니었으면 사부님이 이렇게.”
시하의 맘속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누군가를 곧 칠 듯한 충동을 느꼈다.
특히 그 마존이라는 놈과 그놈의 자식들 다 죽었어!
“필홍, 우선 후지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어요. 제가 저쪽으로 가 볼게요.”
시하는 필홍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검을 날려 주봉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가는 길에 장식 하나를 더 챙겼다.
주봉이 있는 곳은 이미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다. 역요괘의 겁뇌로 혈도대진이 완전히 박살났다. 그 공격으로 마수의 세력은 많이 약해졌지만 마수들은 이미 충분한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사람의 수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옥화파에 뒤지지 않았다. 십여 명이나 되는 마수의 무리가 양쪽에서 동시에 몰려왔다. 옥화파에도 원영의 수사가 적지 않았지만 이렇게 싸워 봤자 양쪽 다 깊은 상처만 입게 될 것이 분명했다.
자색 옷을 입은 우두머리 여수사의 모습이 눈에 많이 익었다. 전에 모현선부 밖에서 적회륜을 빼앗으려 했던 그 마수잖아?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보아하니 그녀의 수행 계급이 마수의 무리 중 제일 높은 듯했다. 옥화파의 장문 원조가 그녀와 대결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검은색의 부채가 들려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검은 마수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마수의 기운이 워낙 강하여 땅의 모든 것을 부식시키며 거대한 굉음을 냈다.
하늘에 가득한 그 마수의 기운은 그녀가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시하는 바로 검의를 불러내어 낙성진의 검 동작과 합을 맞추며 무리를 향해 공격했다. 검의들이 연이어 거대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사람들이 서둘러 자신의 진 안으로 몸을 숨겼다. 원조가 복잡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황급히 물었다.
“당신이 왜 여기로 온 거죠? 태사조께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모두 해결됐지만 잠시 그곳에 있을 거예요.”
그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공중에 있는 마수를 바라봤다. 방금 그 연이은 폭발로 모두 양쪽으로 물러섰다. 축기기의 검의는 원영 수사에게 그럴 만한 상처를 내지 못했지만, 짙게 깔려 있던 마수의 기운이 갑자기 전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