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189)

“아버지, 봉주 여러분.”

원조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날아오는 소년을 보며, 옆에 있는 시하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 사람이 정말 제 아들인가요?”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 아쉽지만 시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두 개의 상투는 뇌겁을 방어하는 법기예요. 잘 어울리죠?”

그때 역요괘가 그에게로 날아왔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괜찮다.”

방금까지는 괜찮았는데 지금 너를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구나. 원조는 뭔가 토할 듯한 충동을 억누르며 머리를 뭔가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겨우 추스르고는 역요괘에게 물었다.

“아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두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방금 혹시 결영을 한 거냐?”

역요괘가 그 질문에 답을 하려는 찰나 하늘에서 갑자기 또다시 우레가 울었다. 다음 뇌겁이 곧 내려오려 하자 역요괘가 급하게 시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지,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저는 우선 뇌겁을 유인하고 올 테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하 씨에게 물어보세요!”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검을 타고 가 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시하에게 집중되었다. 시하가 양손을 들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앞으로 한 발 나서서 원조에게 물었다.

“저도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원조, 후지는요?”

그녀가 방금 한 번 둘러봤지만 후지는커녕 필홍의 인영도 보이지 않았다. 시하는 비경 밖에 있던 사람들의 말처럼 그들이 정말 실종된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그들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후지는 절대 옥화파를 떠날 사람이 아닌데?

“대사조께서는.”

원조가 고개를 들어 수릉봉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창공을 찢는 우렁찬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날카로운 침으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대한 소리가 갖고 있는 엄청난 위압감 때문에 사람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때 시하가 피를 토하자 원조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안 되겠어요! 아무래도 그것을 내보내야 할 듯해요. 그렇지 않으면 태사조께서…….”

후지! 시하가 황급히 검을 부려 수릉봉으로 날아갔다. 필홍이 예전에 몇 번이나 얘기했었다. 옥화파의 쇄마진에 오래된 마수를 가두고 있는데, 그 마수는 천지를 삼켜 버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시하는 비록 그 마수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물건임을 직감했다. 지금 옥화파가 이 지경에 몰려 있는데 옥화파의 최고 무력을 갖춘 후지와 필홍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은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봉인이 해제되어 마수가 밖으로 나왔다는 것.

필홍이 말했었지. 후지는 그 몸 자체가 바로 봉인의 핵심이라 만약 봉인이 풀리면 그는…….

시하는 마음이 점점 더 초조해져 속도를 높였다. 수릉봉에 다다르자 전에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답답한 기운이 온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짙은 피비린내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뜻밖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시하가 봉우리 꼭대기로 날아오르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하얀 검이 번쩍이며 내려왔다. 영기를 가득 품은 수백 개의 거대한 검들이 하늘에 나타났다. 거대한 굉음을 일으키며 검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로 바닷속으로 꽂혔다. 마치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빛기둥과 같은 검들이 살기를 가득 내비치고 있었다. 침침하던 하늘에 밝은 빛이 생기면서 뇌겁마저 빛을 잃었다. 하늘 가득 법부가 춤을 추고 있었고 그 가운데로 희미하게 범음(梵音, 불보살의 음성, 부처의 가르침)이 울려 퍼졌다.

이건 후지의 진법이야! 시하는 속도를 높여 바로 봉우리 꼭대기의 제일 밝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그 뒤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확인한 시하가 순간 멍해졌다.

전에 원조가 이곳을 바라보기에 시하는 후지가 이 수릉봉 위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들은 수릉봉 뒤편에 있었다. 왜냐하면 수릉봉은 그 마수를 수용하기에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시하는 이렇게 큰 괴물은 처음 보는 듯했다. 만약 마수가 가끔 꿈틀대지만 않았으면 그저 높은 산봉우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괴물의 몸은 검은색의 비늘로 덮여 있었고 네 개의 발이 달려 있었다. 표범을 닮은 얼굴에 길쭉한 한 쌍의 이빨이 입 밖으로 나와 있었다. 머리 위에는 두 개의 커다란 뿔이 솟아 있어 등까지 휘어져 있었고, 그 큰 뿔 옆으로 또 네 개의 날카로운 작은 뿔이 전방을 향해 뻗어 있었다. 네 개의 발에는 자색의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몸 뒤로 화염으로 이루어진 긴 꼬리가 보였다. 전체 모양을 보아하니 한 마리의 화룡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적잖은 괴물들을 봤지만, 이 괴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괴물은 머리를 한 번만 움직이면 모든 걸 깔아 뭉개버릴 듯한 위압감이 있었다.

지금 괴물은 방금 그 검진(劍陳)에 눌려 꼼짝 못했다. 수백 개의 거대한 검들이 괴물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공중에는 거대한 법진이 나타나 있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영검들이 괴물을 공격했다. 괴물의 몸에 이미 빼곡하게 적잖은 영검들이 꽂혀 있었고, 공중에 있던 거대한 법진도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마수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는지 굴복하고 엎드렸다.

시하가 사방을 둘러보다가 그제야 하얀색 인영을 발견했다. 한 손으로는 결인을 하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들고 있었다. 붉은 핏자국을 보니 중상을 입은 듯했다.

“후지!”

시하가 큰 소리로 외치자 공중에 떠 있던 인영이 시하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하하(夏夏)?”

그가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순간 갑자기 엎드려 있던 마수가 다시 일어섰다. 커다란 울부짖음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시하는 뭔가에 찔린 듯한 고통을 느끼며 피를 토하더니 서서히 의식을 잃었다. 단전이 곧 부서질 듯했지만 맑은 기운이 몸에 들어오자 다시 안정을 찾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필홍의 화난 얼굴이 보였다.

“여긴 뭐 하러 왔어요? 와도 하필이면 이럴 때 와!”

시하도 조금 후회하고 있는 참이었다.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 여기까지 오면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고요!

그는 입술을 깨물며 한참 꿈틀대는 마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어요! 지금은 나가도 이미 늦었어요. 저는 사부님이 봉인하는 걸 도와 드려야 해요. 이 마수는 봉인된 지 만 년도 넘고, 원한이 깊어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어요. 당신을 챙겨줄 시간 없으니까 여기 가만히 있고, 절대로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요.”

시하는 얼굴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 최대한 그의 결인을 방해하지 않도록 몸을 숨겼다. 시하는 지금 이 순간 본인 스스로가 아무 쓸모없는 인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필홍은 다시 말없이 두 손으로 결인을 시작하며 수천수만 개의 영검을 불러냈다. 필홍이 360도로 빈틈없는 공격을 가하자 마수도 점점 기력을 잃었다. 위에 있던 후지는 여전히 같은 모습을 유지했고, 시하를 한 번 부른 후에는 꼼짝하지 않고 공격에 집중했다.

후지가 예전과 다름없이 변함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엄청 힘겹게 진을 버티고 있었다. 마수가 봉인을 파괴하면서 가한 공격으로 인해, 그리고 다시 진을 봉인하느라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시하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도울 수 없는 상황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하지만 원한이 깊은 마수가 한 번 울부짖기라도 하면 그녀는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잠깐! 원한의 기운? 그 음침한 기운이랑 비슷한데?

역시나 마수의 몸에 옅게 어두운 기운이 깔려 있었는데, 마치 예전에 모현선부에서 봤던 그 혼령들의 몸에서 나오던 기운과 비슷했다. 전에도 내 몸의 영기로 그 혼령들의 어두운 기운을 물리쳤으니 이번에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마수가 다시 한번 움찔하더니 머리에 있는 뿔을 이용해 힘껏 검진들을 공격했다. 마수의 힘이 어마어마하여 매번 그 뿔이 진에 부딪힐 때마다 지면도 같이 움직이며 커다란 진동을 냈다.

한 번, 두 번. 거대한 검 위에 균열이 생기며 필홍이 피를 토했다. 공중에서 결인을 하고 있던 후지도 뒤로 한 걸음 휘청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표정은 크게 변함이 없었지만 진을 지탱하고 있었으니 더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했다.

한 번의 충격으로 진 안에 갇혀 있던 원한의 기운이 균열된 틈으로 새어 나왔다. 원한의 기운들이 나와 검은색의 풍인으로 변하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라 광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광풍이 그녀 앞에 서 있는 필홍의 몸을 때렸다.

젠장, 일단 저질러 봐야겠어! 시하는 바로 몸의 양의 영기를 똑같이 풍인으로 전환하여 그 검은 풍인을 공격했다. 잠시 후 치지직 소리만 들려왔다. 양쪽 풍인 모두 마치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듯 깨끗하게 사라졌다.

순간 시하는 매우 흥분됐다. 효과가 있네! 정말 효과가 있는 거였어! 그녀의 양의 영기가 마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원한의 기운을 모두 막았다. 이제 일이 좀 쉬워지겠는데?

“야, 방금 그거 혹시?”

시하를 막으려던 필홍이 잠깐 멈칫하더니 뒤를 바라봤다. 시하가 설명할 틈도 없이 마수가 갑자기 더욱 강하게 공격했다. 마수를 누르던 검진에 균열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렇게 가다가는 검진이 곧 붕괴될 듯했다. 시하가 필홍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필홍, 저를 좀 도와주세요.”

“응?”

그의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시하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영단(靈丹) 내의 모든 영기를 움직였다.

“뭘 하려는 거야? 방금은 네가 그 원한의 기운을 물리칠 수 있었을지 몰라도, 너의 수행 계급으로는 몸에 있는 모든 영기를 다 쓴다고 해도 소용없을 거야.”

“저를 한 번 믿어 봐요!”

시하가 큰 소리로 외치며 노려보자 필홍이 깜짝 놀라더니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시하는 영기를 하얀 기단(氣團)으로 만든 후, 영기를 모두 하나로 뭉쳤다. 기단이 점점 더 커지고 또 커졌다.

필홍의 말처럼 시하는 수행 계급이 낮아 영기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수의 그 산만 한 덩치에 원한 기운이 전부 덮여 있어 그녀의 영기를 모두 쏟아붓는다 해도 마수의 온몸을 모두 덮을 수는 없었다.

덮지 못하면 뿌리면 되지. 그녀에게는 최고의 살포 공구가 있었다. 영기가 거의 모여들자 시하가 영기를 마수의 위쪽에 있는 법진 위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음을 집중하여 검의를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후지! 검진을 열어요!”

시하가 후지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자, 후지가 망설이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법진 위 법부가 잠깐 어두워지니, 시하가 검의를 지닌 영기 덩어리를 안으로 밀어 넣고 영기를 움직였다. 잠시 후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지더니 검진 안에 하얀 안개가 가득 찼다. 잠시 후 마치 누군가가 위에 흰 가루를 뿌린 듯 순백의 영기가 마수의 온몸에 흩뿌려졌다.

“크아아악!”

마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져 이리저리 뒹굴었다. 마수의 몸에 있던 원한의 기운이 조금씩 사라졌다. 시하는 그제야 마수의 몸에 있던 비늘 색이 검은색이 아니라 사실은 어두운 초록색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와, 역시 엄청난 무야!”

필홍이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무에 이런 능력도 있었다니! 검의라서 아쉽다. 아니면 뒤뜰에 가득 심어 놓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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