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189)

역요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송진을 작동시키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주문을 외워도 전송진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역요괘의 표정이 더욱 초조해졌다. 전송진이 반응하지 않다는 건 다른 전송진이 파괴되었거나, 아니면 닫혀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리 날아서 가요!”

시하가 비검을 불러내자 역요괘도 검을 불러내 문파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역요괘는 무거운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하는 무망경에 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빙계시련진 내부에서의 마지막 이틀 동안 역요괘가 입정을 하거나 잠에 들어도 후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는 우연이거나 아니면 합체술의 기한이 다 되었다고만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옥화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 모두 말없이 전력을 다해 문파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무망경의 입구에서 옥화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들이 대략 반 시진을 날아가자 차갑고 음침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캄캄한 영기가 옥화파의 하늘을 가득 덮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이 조급해져 더욱 속도를 높였다. 옥화파가 있는 곳에 다다를수록 그 음침한 기운이 더 짙게 느껴졌다. 시하는 다행히도 태생적으로 ‘양’의 영근을 가지고 있어 그 영기들이 자동으로 그녀에게서 멀어졌지만 역요괘의 이마에는 이미 굵은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시하가 그를 끌어당겨 영기를 전달해주자 그의 안색이 다시 돌아왔다.

“주위에 있는 이 영기들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에요! 분명 마기(魔氣)인 듯해요.”

역요괘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당신이 어떻게!”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것처럼 보이더니 바로 고개를 흔들며 주저했다. 지금은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아니야.

“마기가 이렇게 짙은 걸 보니 앞에 뭔가 있는 게 분명해요. 조심해요!”

“알겠어요!”

시하가 계속해서 옥화파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눈앞에 갑자기 붉은색 빛이 나타나 자세히 살펴보니 옥화파가 핏빛 물질에 대부분 덮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핏빛 물질은 꿈틀거리며 큰 입을 벌려 옥화파를 삼키려는 듯했다.

“혈도대진(血屠大陳)이에요!”

역요괘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마기의 기운이 짙다 했어.

혈도대진은 산 사람의 선혈을 이용하여 살아 움직이는 진법이었다. 혈 중에는 그 사람의 생전에 원한이 담겨 있어 수사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바로 빨려 들어가 혈운(血云)의 일부가 되어 버리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큰 혈운은 적어도 수천 명의 생명을 삼킨 것이 분명했다.

옥화파의 호산대진(護山大陳)이 이미 가동하고 있었지만, 혈운에 뒤덮여 절반이나 사라져 곧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대량의 마수들이 혈운을 지키며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호산대진이 무너지고 나면 마수들이 아무 짓을 하지 않아도 옥화파는 혈도대진에 그냥 먹혀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땅은 말할 것도 없고 공중에도 마수들이 빼곡히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중 원영의 수사들도 수십 명이나 있었다.

역요괘가 분한 마음에 검을 들고 마수에게 날아오르려고 했다.

“뭐 하는 거죠?”

“마수들을 쓸어버려야죠!”

“이렇게 가서 마수를 몇 명이나 잡을 수 있다고요?”

“잡히는 대로 죽이면 되죠! 저는 옥화파의 제자예요.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요!”

“밖에 마수가 이렇게 많은데, 당신이 그렇게 가면 죽으러 가는 것밖에 더 돼요?”

그들은 아직 진 밖에 있기 때문에 지금 공격했다가는 무참히 당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당신네 내문입실 제자들은 호산대진으로 다가가면 입구가 자동으로 열리기 때문에 마수들에게 발붙일 틈만 더 줄 뿐이에요.”

“그럼 어떡해요? 그냥 이렇게 보고만 있어요? 안에는 저의 아버지와 사형들이 있어요! 하 씨, 인정하긴 싫지만 당신이 저보다 머리가 좋으니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봐요!”

시하는 고민하다가 주머니에서 빨간색 끈과 비단으로 만든 꽃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역요괘, 저를 믿는 거죠?”

“뭘 하려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두 개의 방어법기예요. 그것도 7계급이라고요!”

“저를 이 두 개의 방어법기와 바꾸려고요?”

하지만 두 개의 법기로 마수를 공격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도 법기가 부족하지 않게 있었다. 이 두 개의 법기가 품계는 높아 보였지만 딱 봐도 여자들이 사용하는 법기처럼 보였다.

“두 개로는 당연히 부족하죠! 이리 와서 옷을 좀 벗어 봐요!”

“네! 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 말은 그 손에 있는 반지를 벗으라고요.”

“반지요?”

* * *

“장문 사형, 호산대진이 아마도 더는 버티지 못할 듯합니다.”

역검봉 봉주 원계가 진법을 지탱하고 있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장문 원조가 이미 힘이 다 빠진 호산진법을 바라보다가 각 봉의 사제들에게 물었다.

“노사부 두 분은 어디 계시죠?”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에 원조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옥화파가 정말 명이 다 된 걸까? 이 원조가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군요.”

영단봉의 봉주 원하가 대꾸했다.

“장문 사형, 자책할 것 없습니다. 마수 무리는 이미 다 준비하고 있었어요. 옥화파의 호산대진을 파괴하려고 혈도대진을 이미 설치했죠. 여기까지 버틴 것도 잘한 거예요.”

원조가 다시 한숨을 쉬며 제일 멀리에 있는 한 봉우리를 바라보더니 호산대진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본명법기(本命法氣)를 불러내 모든 사람들에게 멈추라고 지시했다.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마수들과 정면으로 부딪쳐 보죠. 옥화파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서라도 마수들이 수릉봉에 한 발짝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돼요!”

몇 명의 봉주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높이 외쳤다.

“네!”

사람들은 진에서 손을 떼고 각자 법기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몇 사람의 영력으로 버티고 있던 호산대진이 갑자기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지더니 혈도대진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 무너졌다. 사람들의 발에 진의 중심부의 금빛마저 밟혀서 사라졌다. 하늘을 가득 덮은 혈운이 옥화파를 향해 다가왔다.

원조가 법기를 꺼내고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결계를 만들어 그 안에 제자들을 넣고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 볼 생각이었다. 혈운이 내려와 사람들을 삼키려 하자, 사람들은 마수와 함께 사라질 각오를 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 순간 구름을 뚫고 우렁찬 우레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번개가 번쩍하며 구름을 뚫고 나타나더니 혈도대진을 쳤다.

천둥 번개는 사악한 기운과 상극이었다. 혈도대진 자체가 사악한 기운으로 형성되어 있어 천둥 번개가 한 번 치자 바로 온 세상을 가득 덮고 있던 진법이 부서지며 핏빛 안개로 변했다. 원조와 그의 제자, 손자, 사형들이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이건, 겁뇌(劫雷)?”

원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눈을 힘껏 비볐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뇌운을 보고서야 방금 그것이 겁뇌가 맞다고 믿을 수 있었다.

누가 대체 여기서 결영을 하는 거지? 이런 전쟁판에 결영을 하고, 바로 겁뇌를 다 맞다니.

옥화파 사람들의 마음이 착잡해졌다. 아직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두 수사가 그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멀리 두 개의 인영이 보였다. 두 사람의 주위에 아직 울리지 않은 우레가 보였다. 핏빛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우레를 맞을 사람은 그중 한 사람인 듯했다.

사람들이 그들을 자세히 보려고 기다리는데 나머지 겁뇌가 크게 울리며 내려왔다. 원조는 초조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두 사람은 분명 그들을 도우려는 게 분명했지만 뇌겁이 이 옥화파에 떨어지면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가 뇌겁이 옥화파 제자들을 상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데 그곳을 향해 날아오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갑자기 발로 옆에 있는 사람을 몇십 미터 밖으로 차 버렸다.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고 싶어요? 여기로 오면 어떡해요? 저쪽으로 가서 맞아요!”

뇌겁은 걷어차인 사람을 따라가더니 그의 위에서 큰 우레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잠시 후 공중에 또다시 혈무(血霧)가 사라졌다. 한 여인이 혈무를 뚫고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시하가 원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 노인네, 오랜만이에요!”

“당신이었어?”

원조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던 각 봉의 봉주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녀가! 그녀는 마존의 누이가 아니었던가? 근데 왜 옥화파를 돕는 거지? 설마 남매 지간의 싸움인가? 아니면, 음모?

사람들은 각자 무기를 꽉 잡았지만, 원조가 급히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는 50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두 사부가 그를 찾아와 그녀가 무망경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부탁하며, 그녀를 보살필 수 있는 사람도 함께 붙여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녀는 그곳으로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고, 그의 생명과도 같은 아들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그는 그녀의 신분에 뭔가 말 못 할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방금 그 뇌겁은 당신이 끌어들인 건가요?”

“당연히 아니죠! 당신 아드님이 끌고 온 거예요.”

“아들?”

원조가 깜짝 놀라며 그곳을 바라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정말 내 아들이네. 아직 살아 있었구나!

그때 혈무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온몸에 아직 맞지 않은 뇌압(雷押)을 지녔고, 옥화파 제자의 흰옷을 입고 있었다. 옷이 좀 더러워졌지만 대전을 치르느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찢겨 있는 것도 뇌겁을 맞았으니 당연했다. 퀭한 얼굴도 강적들에 맞섰으니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비정상적인 것은…….

머리 위에 저건 뭐지? 왜 다 큰 사내가 두 개의 상투를 튼 거야, 그것도 빨간색 끈으로. 그것도 모자라 저 눈에 띄는 꽃은 뭐냐고? 대체 5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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