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말한 그 마수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그는 벌써 오래전에 여기를 떠났습니다.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다른 동부의 혼령들은 아마 알고 있을 거예요.”
“여기 말고 다른 유적(遺跡)들이 있어요?”
“있어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곳입니다. 바로 동쪽에 있는 진종노귀(辰宗老鬼)의 동부지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유적들이 있는 거죠?”
“등급에 들지 못하는 것들을 제외하면, 아마도 네 개 정도는 되겠네요.”
바닷속 F4라도 결정했나? 곧 유적 테마파크라도 형성되겠는걸.
“이렇게 하죠. 모든 유적 방향을 저한테 알려주세요. 제가 가서 찾아볼 테니까요. 그럼 당신이 한 일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을게요.”
“대인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대인님께서 그 몇몇 늙은 혼령들을 찾으시는 거라면 피곤하게 거기까지 갈 필요 없어요. 이 진법이 파괴된 후 저는 항상 밖으로 나가 그들을 만나 왔죠. 차라리 소인이 그들을 불러올까요?”
이봐요. 동료들을 팔아넘기는 일에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어요?
“당신이 정말 그럴 수 있어요? 하 씨, 저 사람의 말을 믿어요? 우리들을 속이는 거면 어떡해요?”
역요괘는 의심스럽다는 듯 묻더니 시하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이 갑자기 눈썹을 치켜세우며 화를 내었다.
“이봐, 어린 친구가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 되지. 아무리 죽은 혼령이지만 원칙은 지킨다고. 대인님의 몸의 영기가 그렇게 강한데 내가 다른 사람을 속여도 대인님을 어떻게 속이겠나? 아, 여수대인(女修大人)님은 혹시 저희 벽영종에 관심 없으신가요?”
“없어요.”
“대인님, 그렇게 서둘러 거절하실 필요는 없으시잖아요.”
노인이 갑자기 기력을 회복했는지 본격적으로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영근이 특별하니, 저희 문파의 공법이랑 딱 어울릴 듯해요. 영롱결(瑛瓏訣)은 최고급 공법인데 배우고 나면 실력이 백배는 높아지고, 힘을 들이지 않고도 바로 화신에 오를 수 있죠. 뿐만 아니라 9계급의 법기 영롱이 보조하면 신선이 되는 것도 더는 꿈이 아닐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데, 당신은 왜 죽은 거죠?”
역요괘가 찬물을 끼얹으며 끼어들자 노인이 말문이 막혀 쏘아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당한 거야.”
역요괘가 믿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됐어요. 그만해요. 당신이 다른 사람들, 아니지. 다른 혼령들을 불러 모은다고 하지 않았어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제야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는 역요괘가 땅바닥에 내던졌던 방울을 들고 몇 번 흔들었다.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잠시 후, 세 개의 희미한 흰 인영이 문 입구로 들어왔다.
시하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노인네들끼리 마냥 즐거워하는 듯하더니, 오랜만에 살아 있는 수사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자기네 공법을 받고 문종의 제자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친오빠의 소식을 묻자 갑자기 불만스러운 태도로 바뀌었다. 그리고 급기야 그 불만을 그녀에게 털어놓기라도 하듯 화를 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하는 어쩔 수 없이 바로 영기를 풀어놓았다. 순간 세 노인이 패배를 인정하고 그녀 앞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대인님, 살려주세요! 말씀드릴게요. 전부 말씀드릴게요.”
유유상종이라더니, 다른 혼령들도 마찬가지네.
“그는 취영지지(聚靈之地, 영이 모이는 곳)로 갔습니다. 70년 전에 그가 거기로 들어간 후로는 다시 나오는 걸 보지 못했습죠.”
“취영지지는 어떤 곳이죠?”
“그건 무망경의 영맥(靈脉)마다 있어요. 전체 비경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죠. 그곳에 시련태(試練台)가 있는데, 마수는 아마 거기로 갔을 거예요.”
“시련태요? 그게 뭐예요?”
그때 노인네 중 한 명이 진지하게 말했다.
“시련태는 비경의 모든 법규가 있는 곳이지요. 그곳은 천지자연의 도리를 품고 있어 무망경의 근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거기로 간 건 천지자연의 도리를 깨우치고 수행 계급을 높이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승계라면 오빠가 그곳에서 폐관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니 시하는 기뻤다.
“거기가 어딘지 아세요? 어서 안내해주세요.”
네 명의 노인은 시하의 말을 듣고 눈빛을 주고받더니 입을 열었다.
“취영지지는 엄청난 결계가 설치되어 있어요. 그리고 매우 위험하고요.”
“안심하세요. 당신들은 저를 근처까지만 데려다주면 돼요. 안에는 저 혼자 들어갈 테니까.”
노인들은 그제야 안심하고 길을 안내했다. 시하가 따라나서려는데 옆에 있던 역요괘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봐요. 하 씨, 설마 그 마수를 찾으려는 거예요? 이미 화신기에 있다는데 뭐 때문에 그를 찾아요?”
죽을 곳을 제 발로 찾아가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그 사람이 제 오라버니라면 믿으실래요?”
“왜 어딜 가나 당신 오라버니가 있는 거죠?”
방금 전에는 후지 노사부를 자신의 오라버니라고 하더니!
“믿지 못하겠으면 믿지 않아도 돼요.”
시하가 네 노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어, 정말 가는 거예요?”
역요괘가 얼굴을 찌푸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사람 두 명과 혼령 네 명이 바닷속을 이 시진이나 걸었다. 시하는 그들이 왜 이곳 비망경에 떨어졌는지 물었다. 단순히 계승인을 찾기 위해서였다면 밖에는 인구 이동성이 높아 더 쉽게 찾았을 텐데.
하지만 그들도 그곳이 좋아서 그곳에 테마파크를 형성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강한 무언가에 끌려서 비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정확히 어떤 원인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떨어지기 전에 이미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떤 혼령들은 심지어 자기 문파 근처에 머물고 있었으나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여기 바닷속, 동부 안쪽으로 빨려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들도 이곳이 무망경인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들이 그녀의 오빠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시하는 한 가지 원인을 알 수 없어 의구심이 들었다. 설마 이 무망경은 죽은 사람들의 유적을 모으는 곳일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그 취영지지에 도착해 있었다. 어두운 바다 밑과 다르게 이곳은 영기가 왕성하고 사방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수가 갈라져 있는 모습이 마치 바다 밑면이 뭔가에 갈라져 있는 듯 보였다. 안에서는 새의 울음소리와 꽃향기가 풍겼고, 태양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해수가 원기둥을 이루어 진법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아주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그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들어섰다. 노인들이 말했던 결계들은 이미 해제되어 있었다.
육지는 족히 축구장 네 개를 합친 것만 한 크기였다. 중앙에 평지가 있었는데 그 평지 위에 몇십 미터 높이의 돌 단상이 있었다. 그리고 위에 각양각색의 빛이 반짝였다. 돌 단상 아래에 돌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 ‘오행시련태’라고 쓰여 있었다. 시하가 흥분하여 그곳으로 달려가 기어올랐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상 위는 아주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사람은커녕 먼지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중간에 일곱 개의 생소한 진법이 깔려 있었다. 시하의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던 열정이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분명 여기에 있다고 했는데?
“당신이 말한 그 사람, 여기서 다시 나간 적 없는 거 확실히 맞아요?”
시하가 고개를 돌려 노인 2호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아마도.”
“쳇!”
헛걸음쳤잖아! 시하가 맥없이 투덜거렸지만 역요괘는 오히려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는 시하가 마수와 싸우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하 사매의 머리가 고장 난 것이 분명해.
“사람도 없는데 이제 문파로 얼른 돌아가요.”
“돌아갈 수 없어요.”
“네?”
“우리가 밤을 새워 날아간다고 해도 여기서 그 입구까지는 열흘이 걸려요.”
“잠깐만, 우리 여기까지 얼마나 걸렸죠?”
시하는 대책 없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25일이요!”
그가 그제야 눈치를 챘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했다.
“그 말은, 이제 여기 비경에…….”
“50년을 있어야 해요!”
다음 비경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다니. 역요괘가 낙심했는지 말이 없었다. 옆에 서 있던 노인 무리가 눈빛을 반짝였다.
“대인님, 시간도 느리게 가고 이제 나갈 수도 없는데 저희 공법을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책임지고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50년이나 기다려야 하잖습니까! 대인님의 영근이 특별하니, 제 문파의 어뇌술(御雷術)을 배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이 공법은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어 많은 수사들이 선호하는 공법입니다.”
“어뇌술이 나의 이 청심결(淸心訣)과 비교할 수 있어? 그걸 익히면 심경이 맑아지고 술법을 모두 이루고 나면 악귀도 물리칠 수 있다고.”
그때 제일 먼저 나섰던 노인 1호가 엉덩이로 앞에 노인 셋을 밀어냈다.
“모두 비키게! 대인님, 당신의 그 특별한 영근으로는 저희 문파의 영롱결을 배우셔야 합니다. 소인이 수련을 보조할 금영롱(金瑛瓏)도 이미 준비했습니다.”
이건 뭐 호객 행위도 하니고. 계승인을 찾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가?
이런 시하의 마음과 달리 역요괘는 머쓱해졌다.
왜 나를 찾는 사람은 없는 거지? 뭔가 버림받은 듯한 이 기분은 뭐지?
“됐어요. 저는 공법이 필요 없어요!”
1호 노인이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손에 금색 방울을 쥐여 주며 말했다.
“대인님, 이건 구 계급의 법기입니다. 구하기 어려운 것인데 한 번 사용해 보시겠습니까?”
정말 필요 없다고요! 하면서 방울을 다시 주려던 그녀가 순간 깜짝 놀랐다.
“어, 이 방울 뭔가 익숙한데요?”
어디서 봤었지?
“대인님은 역시 안목이 있으시군요! 이 금영롱은 저희 벽영종의 지보랍니다. 영혼을 단단히 하여 넋을 잃는 것을 방지하죠. 저의 문종에서는 심법(心法)을 단련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희 문파의 창시자가 오래전에 사라진 영기 옥영롱(玉瑛瓏)으로 만든 9계급의 법기랍니다.”
“옥영롱? 이걸 말하는 거예요?”
시하가 그 말에 순간 뭔가 떠올라 주머니에서 흰색의 방울을 꺼내 들며 말했다.
어쩐지 눈에 익다 했네. 방물은 색이 다른 것 빼고는 그때 낭떠러지에서 만난 노인이 그녀에게 준 방울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당, 당신이 어떻게 옥영롱을? 이건 옥벽종(玉壁宗)이 사라지고 나서 옥룡결과 함께 사라졌던 건데?”
벽영종의 전신이 바로 옥벽종이었다.
“영롱결? 이 공법을 얘기하는 거예요?”
시하가 주머니에서 옥패를 꺼내 들자 노인이 놀라 눈을 비볐다. 노인의 손에 들고 있는 공법은 그 잔본(훼손되거나 결여되어 완전하지 못한 책)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손에는 온전한 완성본이 들려 있었다.
“당신이 이걸 어떻게.”
“임 씨 성을 가진 노인이 준 거예요.”
임 씨? 옥벽종의 창시자의 성이 임 씨인데 설마 그가? 노인의 마음이 갑자기 먹먹해졌다.
“아주 오래됐어요.”
노인의 가슴에 또다시 비수가 꽂히는 듯했다. 이제 보니 영롱결은 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본인이 제일 마지막 계승인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옥영롱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럼 난 삼천 년 동안 대체 왜, 뭐 하러 이러고 있었던 거지? 에잇! 순간 그는 여기에서 보낸 세월이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