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앞장서 걸었다. 그들은 가면서 똑같은 화살표를 여러 번 발견했다. 거의 십 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있었다. 제일 처음 ‘보물을 찾으러 이곳으로 가다’를 시작하여 나중에는 이런 문구가 나타났다.
[보물이 있는 곳으로부터 500미터 남음.]
[100미터, 50미터, 30미터.]
그들은 오는 내내 어떤 장애도 없이 순조로웠다. 드디어 거대한 석문 앞에 도착하니, 석문 위에는 덮어쓴 흔적이 역력한 화살표가 문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버튼처럼 생긴 벽돌 두 개가 우뚝 솟아 있었다. 벽돌 주위에는 동그랗게 빨간색과 초록색 원이 칠해져 있었다.
빨간색 동그라미 위에는 해골 모양이 그려져 있고 ‘위험’이라고 쓰여 있었다. 초록색 동그라미 위에는 초인종 모양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열다’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시하는 그 철저함에 당황스러웠다.
함정 만든 사람이 억울해서 울겠다, 울겠어.
“하 사매, 이건 문을 여는 장치인가요? 너무 쉬운 거 아니에요?”
“네.”
그건 누군가 힌트를 주고 있기 때문이죠.
시하는 지친 마음을 안고 바로 녹색 벽돌을 눌렀다. 역시나 큰 진동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짙은 한기가 몰려오면서 뼛속까지 시려 왔다. 시하는 미간을 찌푸리고 자기도 모르게 체내의 영기를 움직여 주위의 한기를 물리쳤다.
문 안쪽은 짙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근데 그 안개 사이로 황금 빛줄기가 강하게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돌 단상 위에 금빛의 간체자가 반짝거렸다.
[보배! 구계(九階)]
그리고 돌 단상 중앙에 방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여기에 아직 남아 있는 물건도 있네.
마치 그의 오빠가 고의로 이 방울이 있는 곳으로 유인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또 무슨 뜻이지? 방울은 어딘가 모르게 많이 낯익었다. 그런데 그때 역요괘가 방울을 들며 물었다.
“이건 무슨 법기죠?”
“건드리지 마요!”
시하가 그의 손을 때리며 말렸지만 방울은 이미 만져지고야 말았다. 잠시 후 금빛의 글씨들이 방울로부터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영롱(瑛瓏) 한 마리(위, 僞)와 수신 할아버지 한 명을 획득하셨습니다. 추신, 성격이 아주 사나워요!]
영롱은 방울을 의미할 테고, 그 뒤에 ‘위’ 자는 대체 무슨 뜻이지? 수신 할아버지는 또 뭐고?
그녀가 한참 고민할 때 갑자기 음기가 모이기 시작하더니 밝은 빛이 반짝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몽롱한 인영이 나타나며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벽영종(壁靈宗) 종주 현택존자(玄澤尊者)다. 여기서 이미 3500년을 기다렸는데 이제야 계승자를 만났구나. 소년은 어서 무릎을 꿇지 않고 뭐 하고 있나. 어, 왜 두 사람이나 있지?”
몽롱한 인영이 잠깐 멈칫하더니 갑자기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시하는 그제야 그 인영의 정체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정말 할아버지네!
그는 전신이 투명하여 유혼(游魂, 죽은 사람의 넋)에 불과했다. 노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역요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보니 여자도 있지만, 뭐 됐어. 자네, 네가 만약 나를 사부로 모신다면, 벽영종의 비법들을 전부 가르쳐주지.”
“벽영종! 사천 년 전의 그 최상급 종문을 얘기하는 거예요? 비승노조(飛升老祖)를 배출한 그 벽영종이라고요?”
“그래. 내가 바로 벽영종 종주다!”
“옥화파의 제자 역요괘, 현종주께 인사드립니다.”
역요괘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자 노인네는 흐뭇한 표정으로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벽영종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니. 녀석, 너와 내가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서 엎드려 스승으로 모시지 않고 뭘 하는 것이야.”
역요괘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저는 이미 사부님으로 모시고 있는 분이 있어서…….”
“어리석은 놈! 설마 벽영종이 네놈 사문보다 못하다는 것이야? 네놈을 매장해 버려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뜻이냐?”
노인네는 화가 나서 몸에서 흰색의 안개를 마구 뿜어냈다.
“어서 말해 봐. 네가 대체 어떤 영근과 재주를 가졌길래 벽영종의 공법을 무시하는 것인지 어디 들어나 보자.”
“저는, 저는 단계뇌영근을 지니고 있습니다.”
노인이 깜짝 놀라더니 갑자기 평온해진 상태로 조용히 돌아서서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소질은 있구나! 좋아, 네가 그렇게 우리 문중에 들어오기를 꺼려 하니 나도 더는 강요하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에이, 내가 여기서 3000년을 기다렸는데 아쉽게도 아직 계승자를 찾지 못하는구나. 망했네, 망했어. 이 혼백도 이제 얼마 있지 않아 떠나야 하는데, 여기서 벽영종의 대를 끊을 수야 없지. 내 공법을 네 녀석한테 전수해주지! 어서 저 돌 단상 위에 있는 방울을 가져와 신식을 열고 공법을 받도록 하거라.”
“네?”
역요괘가 놀라더니 돌 단상 위에 있던 방울을 손에 들었다. 노인네의 눈이 순간 밝게 빛나더니 손가락 사이로 나오는 빛으로 역요괘의 이마를 비추었다. 시하는 얼굴을 굳히며 바로 역요괘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 흰색 빛이 바로 단상 위를 비추었다. 노인네가 화가 나서 시하를 쏘아보며 말했다.
“이놈의 계집애가, 뭐 하는 짓이야? 왜 노부의 전공을 방해해!”
“전공은 거짓이고, 그걸 빌미로 탈사(奪舍, 도교의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환생하는 이론을 말함)하려는 거겠죠.”
노인네가 온몸을 비틀며 화를 냈다.
“지금 뭐라는 것이냐! 허튼소리, 내가 그런 비도덕적인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느냐.”
“그럼 왜 그 방울을 들고 있으라고 하는 거죠? 만약 단순히 전공을 하는 것이면 그 방울과 무슨 상관이라고요? 당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이 법기의 힘을 빌려 탈사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더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건 우리 벽영종의 지보라서 그것도 전해주려고 한 것이다. 그럼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이냐?”
“하지만 정말 당신이 종문을 생각했다면 그가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지도 않는데 왜 전승을 해주려고 하는 거죠? 제가 옆에 버젓이 서 있는데도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왜 그 사람한테만 전승해주려고 하냐고요. 그 이유는 당신의 혼백이 여기에 머무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여자라서 탈사할 수 없었던 거 아니에요?”
노인은 할 말을 잃고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점점 사납게 변했다. 그 범속을 초월한 듯한 풍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잡혀 있던 역요괘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봐요, 하 씨. 선배님이 좋은 마음으로 공법을 전수해주신다는데, 어떻게 그걸 의심할 수가 있죠?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역요괘가 시하를 원수 보듯 쳐다보더니 참지 못하고 손을 뿌리치려 했다.
“정신 차려요!”
시하가 소리치며 그녀의 순수한 영기를 그에게 조금 넣어주었다. 순간 역요괘가 눈빛을 바꾸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더니 휘청거렸다.
“내가 왜, 왜 이러는 거지?”
역요괘는 자기가 이유 없이 시하를 죽이려는 충동까지 느꼈던 사실을 떠올리며 두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는 음한(陰寒) 기운에 영향을 받은 거예요.”
시하가 공중에 서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하얀 빛깔의 안개가 점점 색을 바꾸더니 어두운 회색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래는 보통의 혼령이었다면 지금은 원령(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혼령)처럼 음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그래. 나는 저 녀석의 몸을 빼앗을 거야. 그걸 네놈들이 안다고 한들 무슨 방법이 있지? 여기 이렇게 강한 음한의 기운을 뚫고 네놈들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말하는 동안 안개가 점점 더 짙어지더니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그 안개는 두 사람에게 몰려오고 있었다. 시하가 정신을 집중하여 체내의 영기를 밖으로 풀어놓자 하얀빛이 반짝거렸다. 그러자 안을 채우고 있던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기 음한지기(陰寒之氣)에서 죽다니!”
노인이 말도 다 마치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그리고 몸이 돌벽에 부딪쳐 떨어지면서 순간적으로 투명하게 변해 버렸다.
“미안해요. 제가 음한을 전문으로 취급하거든요!”
“너, 너는!”
노인이 몸을 덜덜 떨었다. 그의 얼굴이 의심과 놀라움으로 뒤섞이면서 더욱 더 두려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시하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혼령 주제에 나의 이 순수한 양기에 도전하다니, 죽으려고 환장한 거지!
“아직도 탈사하고 싶어요?”
노인네가 얼굴색을 바꾸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시하가 깜짝 놀라 반격 태세를 갖추려는데, 뜻밖에도 노인네가 납작 엎드렸다.
“대인님, 살려주세요! 저는 억울합니다.”
그녀가 영기를 다시 거둬들였다. 이렇게 빨리 태도를 바꾼다고? 이놈의 악령은 자존심도 없지, 방금 그 패기 넘치던 모습은 다 어딜 간 거야?
“뭐가 그렇게 억울한데요?”
“탈사 같은 짓은 저도 하고 싶지 않아요.”
“완전히 계획적이던데요?”
역요괘가 뇌영근을 가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눈빛이 바뀌는 걸 두 눈으로 똑바로 봤었다.
“저는, 저는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어서였어요?”
이런 혼령을 누가 그렇게 괴롭힌단 말인가.
노인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더니 체면 따윈 생각지도 않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엉엉, 이 몸은 한 종문의 종주였던 사람입니다. 몸은 죽었어도 원칙을 아는 혼령이라고요. 탈사와 같이 금생만 보고 내세를 보지 못하는 일은 저도 하고 싶지 않아요. 처음에는 저도 진심으로 우리 종문의 공법을 여기에 남기려고 했어요. 그런데 삼천 년을 넘게 기다려 어렵게 이 비경으로 들어온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하필이면 마수였지요. 그가 나의 동부와 진법들을 파괴하고 다짜고짜 저를 공격했어요. 더 참기 어려웠던 건, 그가 저의 벽영종의 공법을 무시했다는 거예요. 배우고 싶지 않으면 그냥 싫다고 얘기하면 될 것을, 우리 종문의 공법을 도태된 공법이라고 무시하며 저 방울도 가져가지 않았죠. 우리 벽영종의 공법이 부족한 것이 뭐고, 어디가 도태되었다고 무시를 당해야 하죠?”
노인은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흥분하며 슬퍼 보였다.
“원래 이곳의 진법은 제가 생전에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시험하여 계승인을 뽑기 위해 설치해 둔 것들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의 삼천 년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답니다.”
“근데 탈사는 왜 하려고 했죠?”
역요괘가 앞으로 나서며 그에게 물었다.
“그건 내가 설치한 진법들이 위력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우리 문종의 공법을 익힐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알고 보니 이것도 오라버니가 남긴 난장판이었구나. 시하는 당황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