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89)

“하하(夏夏).”

후지가 그 자리에 서서 시하를 불렀다.

“왜요?”

“무망경은 한 달 동안만 열려 있어.”

시하가 그제야 놀라 시간을 계산해 보다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미 이십여 일이 지나 있었다. 만약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비경에 갇혀 남아 있어야 했다.

“무망경은 50년에 한 번 열리고.”

한 번 갇히면 여기에 50년이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고 이제야 고지가 보이는데 여기서 포기해야 한다니. 그녀가 주먹을 꼭 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되든 저는 가 봐야겠어요.”

“하하(夏夏).”

“후지! 그 사람은 제 오라버니예요.”

그가 놀라서 얼굴이 어두워졌다. 기분 나쁘게도 누이는 그 오라버니를 더 좋아하는군.

“당신도 제 오라버니예요. 당신이었어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그래.”

그의 기분이 다시 날아갈 듯 좋아졌다.

피수결(避水結, 물에서 사용하는 법술)은 역시 바다를 건널 때 반드시 필요한 법술이었다. 그들이 수면에 들어서자 해수가 자동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들을 받치고 있던 부력이 빠지면서 바다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바다의 단면을 통해 각종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헤엄치는 모습들이 보였다. 유일한 단점은 바로 검을 부릴 수 없어 느리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멀리 가지 못하고 그 투명 장벽에 길이 막혔다.

“저쪽에 있어.”

후지가 앞을 가리켰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전방 십 미터 밖 산호 옆 장벽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각종 물고기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보였다. 구멍은 둥근 모양에 지름은 사오십 미터 정도였다. 그리고 그 구멍 주변으로 여기와는 다른 영기가 짙게 흐르고 있었다. 시하의 머릿속에 순간 뭔가 불현듯 떠올랐다.

서수수가 설마 이 구멍으로 나온 건 아니겠지?

후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보기에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안은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그녀가 후지의 손을 꼭 잡았다. 괜찮아, 오라버니가 있으니까!

시하가 앞으로 성큼 걸어가 그 장벽을 넘어서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그리고 뭔가 기분 나뿐 기운이 주위를 감싸더니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손가락 사이로 뭔가 반짝거리더니 후지가 그녀에게 영기를 전달해 주었다.

“마기는 사람의 마음을 교란시키니까, 빨리 잡념을 물리쳐.”

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갑자기 이유 없이 용솟음치던 그 분노가 다시 가라앉았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마기였다. 시동, 그 빌어먹을 오빠는 왜 하필 마수를 배운 걸까!

“후지, 이 마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어요?”

후지가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기의 기운이 느껴지긴 하는데 그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보이지 않아. 다만, 저기 밖에 특히 차갑게 느껴지는 기운을 보면 안에 뭐가 있는 것은 분명해.”

둘은 어두컴컴한 그곳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역시 후지가 말했던 것처럼 사방의 차가운 기운이 점점 더 짙어지고 마기는 점점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이 약 한 시간쯤 걸었을 때 후지가 갑자기 멈춰 섰다.

“왜 그래요?”

“앞에 동부(洞府, 신선이 사는 곳)가 있어.”

그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손으로 결을 만들었다. 잠시 후 그의 손에 밝은 빛을 내는 공 하나가 떠올랐다. 공이 높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밝은 빛을 내더니 마치 조명탄을 쏘아 올린 것처럼 바다의 밑바닥을 환하게 비추었다.

시하는 그제야 멀지 않은 곳에 궁전같이 생긴 건축물이 산봉우리처럼 솟아올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전당은 오래된 건물로 보였다. 건물의 많은 곳이 이미 무너져 있었고 위에 각양각색의 해양 생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게 뭐예요?”

“아마 수사가 다녀간 흔적일 거야.”

“수사가 다녀간 흔적이라고요? 위험하진 않겠죠?”

후지가 신식을 열어 한 번 탐색하더니 하찮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에 차가운 기운이 짙긴 하지만 진법의 움직임도, 어떤 위험도 느껴지지 않아.”

그럼 위험하지 않다는 거네.

“우리 들어가 봐요.”

시하가 앞으로 두 걸음 정도 나서는데 옆에 있던 후지의 인영이 갑자기 흔들렸다.

“하(夏), 하(夏).”

“왜 그래요?”

“그가 깨어나고 있어.”

후지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그녀에게 쓰러졌다. 시하가 황급히 달려가 그를 안았다.

“후지!”

잠시 후, 그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하 씨?”

시하는 그를 안고 있던 손을 거두고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아야!”

막 깨어난 역요괘는 지구의 중력이라도 증명하듯 쿵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뭐 하는 거예요?”

“미안해요. 손이 미끄러워서요.”

역요괘가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더니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는 어디예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우리가 왜 여기에 있어요?”

“바다 밑이에요. 당신이 정신을 잃은 그때, 제가 마침 바닷속에 있는 장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여기로 몸을 숨긴 거예요.”

“우리가 그 괴물들을 모두 쓸어버렸다는 건가요?”

“네.”

역요괘가 그제야 안심하더니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아니지, 저는 분명 당신이 때려서 정신을 잃은 거였잖아요.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나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당신을 업고 도망쳤죠. 그것 말고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누가 당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물었어요? 어쩐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어떻게 된 일인지, 항상 당신 옆에 누워 있었어요. 모두 당신 짓이었죠? 설마 그때부터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거예요?”

“안심하세요. 제 눈이 그 정도로 멀진 않았으니까!”

“그 말 무슨 뜻이에요? 알아듣게 말해볼래요?”

화가 단단히 오른 그를 상대하기 귀찮았던 시하는 앞에 있는 유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유적이 있는 문 안으로 들어서자 주위에 물이 바로 물러서며 자동으로 갈라졌다. 시하는 물을 피하는 주문을 거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은 텅텅 비어 있어 한눈에도 전체를 살펴볼 수 있었다. 대전 중앙에 통로가 열리더니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보였다.

“이봐요. 여기 와서 법술이나 비춰 봐요.”

“그걸 제가 왜 해야 되는 거죠?”

“당신은 뇌영근이니까, 저보다 더 쉽게 불러낼 수 있잖아요.”

그녀는 다시 영기를 전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저는 상처를 입었어요. 영기도, 어? ……상처가 다 나았네요?”

영기도 다 회복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서 내려가요!”

시하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자 역요괘는 그제야 뇌구(雷求)를 불러내 시하의 뒤를 따랐다. 그는 가끔 시하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몇 번이고 뭔가 말하려 하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지 그저 한숨만 쉬었다. 그의 마음속에 설움, 고민, 불만이 뒤엉켰다. 시하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계단을 내려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세요.”

뭐가 불만인지 얘기나 해보시지?

“저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저의 상처를 치료해준 것도요.”

“네. 천만에요.”

그래도 사람의 도리는 하는군.

“당신의 수행 계급은 높지 않지만 앞으로 꼭 성공할 거예요. 당신은 보기 드문 대단한 소저예요.”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저는 정말 당신이랑 달라요. 감정은 강요할 수 없는 거예요. 당신이 저를 치료해주고 저에게 더 잘해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요.”

“지금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걸로 보여요?”

아직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이 뭘 안다고.

그는 모든 걸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부정할 필요는 없어요. 여자들은 부끄러움이 많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확실히 저와 당신은 미래가 안 보여요. 제발 저를 좋아하지 말아요!”

시하가 깊게 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저 원조의 얼굴을 봐서 도와준 거지.”

그리고 호구 오라버니가 그의 몸을 빌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중요 부위에서 시선을 멈췄다. 역요괘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그곳을 가렸다. 역요괘는 순간 자신의 남성성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 자존심 상해!

“이거 무슨 뜻이에요? 똑바로 말해요.”

“당신 정말 원조의 아들 맞아요?”

지능이 너무 떨어지잖아.

“이거랑 제 아버지가 무슨 상관인데요? 설마 우리 아버지를 좋아하는 건 아니죠?”

시하가 깊게 호흡하며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는 당신 집안 식구 모두를 좋아해요. 됐어요?”

“우리 어머니도요?”

그 괴물 무리에 그냥 던져 넣을걸.

“이봐요. 그렇게 가면 어떡해요. 말은 똑바로!”

후지의 말이 맞았다. 안에는 확실히 어떤 진법이나 함정이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고 모두 누군가에게 파괴되어 있었다. 시하가 지하로 내려와 몇 걸음 내딛자 이미 다 파괴되어 절반만 남은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위에는 예전에 진법이 있었던 흔적이 보였다. 통로 양쪽에도 많은 검 조각들이 떨어져 있어, 여기에 어떤 충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요괘가 중얼거리며 사방을 둘러봤다.

“설마 예전에 사람이 들어왔던 흔적일까요? 여기 문 위에 뭐라고 쓰여 있어요!”

“제가 볼게요.”

시하가 바로 그쪽으로 다가가 살펴보다가 표정을 굳혔다.

[보물을 찾으러 이곳으로 가다.]

그 뒤에는 친절하게 세 개의 화살 표시가 찍혀 있었다. 무기력함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 역요괘가 추측하듯 말했다.

“이런 문자는 처음 봐요. 이 유적과 관련해서 쓴 모양인데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네요.”

찬물을 끼얹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시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안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이 글을 보면 알지요. 어떤 사람이 이미 여기를 지나면서 다 가져갔어요. 시하가 한숨을 쉬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 보기나 하자. 보물은 없겠지만 적어도 오빠에 관한 단서는 찾을 수 있겠지!

“갑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