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정돈했다. 후지가 예전에 아무리 대단한 괴물이라고 해도 모두 약점이 있고 오행(금, 목, 수, 화, 토)은 서로 상생상극의 관계를 맺고 있다 했었다.
시하는 순양기의 영근을 갖고 있어 뇌전을 불러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역요괘는 아예 뇌영근만 갖고 있었다. 아무리 7계급의 서수수라고 해도 이미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힘을 합쳐 강하게 밀어붙이면 그들에게 승산이 없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괴물이 몸을 숨길 수 있어, 목표물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강한 법술을 사용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서수수를 끌어낼 수 있지? 잠깐만! 서수수……. 수(水)?
시하가 눈을 반짝이더니 뭔가 생각난 듯 영기를 다시 빙 영기로 전환했다. 그리고 법진 밖으로 나가 낙성진을 시작했다. 그러자 순간 하늘에 수천수만의 얼음덩이들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왕희가 갑자기 소리쳤다.
“당신 미쳤어요? 서수수는 수계 괴물이에요. 아무리 많은 얼음을 만들어 낸들 그게 무슨 소용이죠?”
시하는 그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역요괘를 보며 말했다.
“역요괘, 조금 있다가 제가 술법을 하면, 당신은 할 수 있는 최대 범위의 뇌계 법술로 공격하세요. 알겠어요?”
역요괘가 아직 대답도 하기 전에 왕희가 다시 끼어들었다.
“땅은 번개를 흡수할 수 있는데, 땅으로 공격한들 무슨 소용이냐고요! 알지도 못하면 그냥…….”
시하가 매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닥쳐, 좀! 자기가 무식하다고 다 같은 수준으로 보지 말아요. 그리고 잠깐 말 안 한다고 당신한테 벙어리라고 할 사람 없거든요?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어요.”
시하는 그를 무시하고 영기를 전환하여 큰 얼음덩이를 물로 만들었다. 그러자 비가 내리듯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시하는 고개를 돌려 역요괘에게 소리쳤다.
“어서요!”
역요괘는 아직 의심스럽긴 했지만 시하의 말대로 땅을 향해 뇌전을 쐈다. 그러자 뇌전이 정말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땅에 있는 물길을 따라 전달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전광(電光, 번개가 칠 때 번쩍이는 빛)이 거미줄처럼 엉키며 넓게 확산되어 갔다. 잠시 후 땅에는 전광으로 가득했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리더니 서수수가 십 미터 앞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왕희가 놀라며 묻자 시하가 그를 향해 눈을 흘겼다.
“물이 전기를 흘려보내는 거예요. 할 일 없으면 책이나 많이 읽지 그래요?”
그의 얼굴이 순간 시커멓게 어두워졌다. 그를 상대해줄 시간도 없이 땅에 있던 물이 금방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되면 서수수가 다시 몸을 감춰 버리게 된다. 그리고 역요괘의 뇌광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 오행환영진(五行環靈陳)을 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저도 할 수 있어요.”
목정을 비롯한 나머지 두 사람이 일어섰다.
“한 사람이 한 방향씩 맡아 서수수를 둘러싸고 있다가 저랑 동시에 환영진을 작동해요.”
시하가 여전히 뇌광을 쏘고 있는 역요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요괘, 당신이 진의 중심을 맡아요.”
네 사람이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서수수를 기준으로 각각 네 방향으로 둘러섰다. 네 사람이 동시에 진을 작동시키자 서수수의 주위에 순식간에 투명한 영기벽이 만들어졌다.
“역요괘!”
시하가 크게 외치자 역요괘가 쏘고 있던 뇌광을 바로 거두고 영기벽 속으로 들어가 다시 뇌광을 불러냈다. 서수수를 둘러싸고 있던 영기벽에 뇌광이 들어와 순식간에 안을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뇌광이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순환되면서 괴물을 공격했다.
환영진은 원래 대단한 힘을 가진 진법이 아니었다. 이렇게 영기벽을 만들어 안에 뭔가를 가두어 둘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든든한 건 아니었다. 영기벽 내에 영기가 계속 반복적으로 순환되면서 끊기지 않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때문에 시하는 역요괘에게 진의 중심을 맡겼다. 뇌영근을 갖고 있는 그가 진의 중심에서 순환하고 있는 영기를 모두 뇌영기로 전환시키면, 영기벽은 곧 뇌광으로 가득 차게 되고 영원히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수수는 뇌광이 무서워도 절대로 도망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역시 영기벽이 전부 뇌전으로 바뀌면서 마치 네 장의 전광 그물망을 쳐 놓은 것처럼 안에 있는 서수수를 향해 360도로 빈틈없이 공격했다. 순간 그곳 하늘에 웅장한 천뇌음이 울려 퍼졌다.
서수수의 몸에 있는 단단한 비늘이 뇌광의 공격을 받고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다. 괴물은 미친 듯이 진 안에 순환되고 있는 영기를 공격했지만 매번 뇌광에 부딪혀 큰 비명만 남기고 물러섰다. 다시 물 공격을 시도했지만 이것도 오히려 뇌전의 공격 속도만 가속시킬 뿐이었다. 그의 몸은 여기저기 뜯긴 상처들로 순식간에 핏덩이가 되어 버렸다. 몸의 움직임도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기력을 모두 소진했는지 그대로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7계급의 괴물을 잡다니, 사람들은 다들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경계를 늦추면 안 돼요. 안 죽었으니까.”
시하가 큰소리로 외치자 과연 조금 있다가 서수수가 다시 솟아올랐다. 괴물이 온 힘을 다해 한 쪽 영기벽에 부딪쳤다. 괴물은 마지막 힘을 다해 광선의 공격에 맞서 죽기 살기로 덤볐다.
하필이면 이쪽으로 와서 부딪치고 그러냐. 내가 그렇게 쉬워 보여?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더니 목구멍으로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짙은 피비린내가 시하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역요괘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얼굴에 그늘이 잠깐 드리워졌다.
“하 씨, 당신!”
“전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세요!”
시하는 이를 악물고 단전으로부터 올라오는 통증을 애써 눌렀다.
젠장! 여기까지 왔는데 환영진을 멈출 수 없어. 멈췄다가는 모두 죽고 말 거야.
역요괘도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리더니 계속해서 환영진 중심에서 뇌영기를 쏘는 데 집중했다. 안에 있는 뇌광이 거세지며 온몸이 피로 얼룩진 서수수의 몸이 까맣게 타 버려 탄내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괴물의 울부짖음 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근데 갑자기 괴물이 똬리를 틀기 시작하더니 전에 그 비명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작은 송곳 끝으로 귓전을 마구 찌르는 듯하고, 진동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서수수의 몸이 갑자기 부풀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몸 중간의 일부분이 부풀어 올라 커지더니 상피에 두 개의 삼사십 센티미터 정도의 틈이 생겼다. 그리고 그 틈새에 박쥐 날개같이 생긴 까만 날개 한 쌍이 솟아올랐다.
“이, 이건 교룡으로 변신하려는 거예요!”
한쪽에 서 있던 왕희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교룡은 9계급의 괴물이라 화신기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 괴물은 수선계를 다 돌아다녀도 한 마리도 찾기 어려웠다. 괴물이 교룡의 혈통을 갖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진을 치고 있던 세 사람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돌더니 진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저 왕희라는 놈은 도와주지 못할망정 사람들 마음이나 흔들고 있어!
시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침착해요! 9계급의 교룡으로 변신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요? 이미 기력을 잃어 절대 변신하지 못할 거예요.”
사람들은 다시 냉정함을 회복했다. 역요괘도 온몸의 영력을 동원하여 교룡으로 변신하려는 서수수를 공격했다. 뇌광이 점점 더 거세지면서 역요괘의 얼굴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괴물의 승계는 특히 어려워서 7계급에서 9계급으로 오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서수수의 힘이 점점 더 약해졌지만 날카로운 비명은 멈추지 않고 점점 더 고막을 뚫을 듯했다. 괴물은 총 아홉 차례의 비명을 질렀다. 제일 마지막에는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온 삼림에 울려 퍼졌다.
시하도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홉 번째 비명 후, 삼림에서 각종 괴물들의 비명이 응답하듯 울려 퍼졌다.
“큰일 났어요. 교룡으로 변신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시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요괘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이건 다른 괴물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잠시 후, 연이은 비명이 여기저기에서 울리며 달음질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며 한 무리의 생물체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신호였어요. 신호!”
왕희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비명을 지르며 검을 부려 도망갔다. 그가 도망가자 진을 치고 있던 수사들도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 역요괘가 급하게 소리쳤다.
“흔들리면 안 돼요. 서수수가 아직 살아 있어요!”
하지만 그 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서수수 한 마리로 이렇게 힘들었는데 수천 마리의 괴물이 한꺼번에 몰려오니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싫어요, 저는 여기에서 죽고 싶지 않아요!”
오른쪽에 서 있던 수사가 놀라 몸을 떨더니 바로 손을 거두고 검을 부려 뒤도 안 보고 도망가 버렸다. 진법이 갑자기 하나가 비자 진 중심에 있던 역요괘가 제일 먼저 중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그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했다.
시하가 서둘러 영기를 보충하며 그 빈자리를 채웠지만 첫 번째가 있으면 꼭 두 번째도 있기 마련이다. 그 수사가 떠나고 난 후 다른 남자 수사도 버티지 못하고 손을 털고 가 버렸다. 이제 남은 사람은 시하와 목정 두 사람뿐이었다. 괴물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목정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역요괘를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비검을 불러냈다. 그리고 시하를 향해 말했다.
“당신, 당신도 어서 떠나요. 우리 힘으로는 괴물들을 당해 내기 어려워요!”
그 말을 남기고 목정도 떠나 버렸다. 그곳에는 이제 시하와 역요괘만 남았다. 시하는 혼자 환영진을 쳤고 역요괘는 여전히 진의 중심을 맡았다. 방금 세 사람이 갑작스럽게 손을 떼는 바람에 그 여파로 역요괘는 이미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의 눈, 코, 입, 귀를 통해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이제 죽기 살기로 버티는 방법밖에 없었다.
시하도 이쯤에서 손을 떼는 것이 현명한 판단임을 알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의 힘으로는 몰려오는 무리들의 발길에 치여 죽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녀가 가 버리면 역요괘는 정말 죽어 버리게 된다. 그가 서수수의 제일 가까이에 있어 환영진이 걷히는 순간 먼저 먹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하가 다시 이를 악물었다.
에잇, 원조에게 빚 갚는다 생각하지 뭐. 그녀는 계속해서 환영진을 유지하며 한편으로는 남아 있는 영기를 뇌영기로 전환시켰다. 순간 진 안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차더니 서수수의 숨이 드디어 끊긴 듯했다.
역요괘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자 시하는 앞으로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이봐요. 아직 살아 있는 거죠?”
“어떻게 당신이!”
역요괘가 어리둥절하며 그녀를 쳐다보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도 그녀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괴물들이 왔어요!”
시하가 그를 부축하여 손에 든 검을 꽉 잡았다. 잠시 후 큰 무리의 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 빼곡한 괴물들의 머리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역요괘가 창백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뭐 하려고요? 하 씨, 나서지 마요. 당신은 이 괴물들을 상대할 수 없어요. 어서 가요!”
“시간이 없어요.”
시하가 앞으로 나서며 전력을 다해 뭔가를 불러내니,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검들이 수천수만의 영검으로 변신했다. 영검은 검용(劍龍)으로 변신하더니 큰 소리를 내며 구름 속으로 날아올랐다. 검용은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며 앞으로 나갔다. 용의 몸에는 많은 풍인들이 둘러싸여 있었고 쓸어버릴 기세로 괴물들에게 다가갔다. 검이 닿는 곳마다 괴물들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 무리 한가운데에 큰길 하나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