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우연히 임령의 손에 있는 단약을 본 역요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단약은.”
역요괘의 반응에 임령이 물었다.
“역 사형, 이 단약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문제없어요. 어서 빨리 왕 사형에게 먹여요. 몸에 좋을 테니까요.”
임령은 그제야 안심하고 왕희에게 단약을 먹였다. 일각이 지나지 않아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온 왕희가 바로 정신을 차렸다. 몸의 출혈도 멈추어 상처도 아물고 안색도 많이 좋아졌다.
“여기에 다른 괴물은 없을 거예요. 이 자리에서 휴식하고 내일 다시 움직여요.”
역요괘가 큰소리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별다른 의견 없이 자리를 잡고 좌선을 하거나 상처 입은 사형들을 도와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었다. 시하도 걸음을 옮겨 조용히 휴식할 곳을 찾으려 하는데, 역요괘가 따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구전환혼단’을 가지고 있죠?”
“다른 사람에게 받은 거예요.”
장문인 그의 부친도 한 개밖에 갖고 있지 않은데 그녀가 어떻게 갖고 있는 걸까.
“그건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 백골에 살이 붙게 하며, 단전도 고칠 수 있는 팔품(八品) 단약이죠. 누가 그렇게 쉽게 이런 걸 내어줬죠?”
“수릉봉에 있는 후지에게서 받았다고 하면 믿을래요?”
역요괘는 이상한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노사부는 수릉봉을 나오지도 않거니와 나왔다고 해도 어떻게 당신한테 줄 수 있죠?”
“그 사람은 저의 오라버니이니까요.”
그는 마치 정신이상자를 보듯 시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역시 병이 심각하군요.”
“믿든지 말든지,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시하가 어깨를 으쓱하자 역요괘가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이 단약은 함부로 내놓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미리 귀띔해주는 거니까, 나중에 저한테 왜 말해주지 않았냐고 원망이나 하지 마세요.”
그는 말을 마치더니 차갑게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시하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이 단약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아직 한 병이 더 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 앉아 30분간 좌선을 했다. 법진의 공격에 상처를 입은 몇몇 사람들도 이제 거의 회복되어 있었다. 갑자기 파란색 옷을 입은 수사 한 명이 흥분된 얼굴로 뛰어왔다. 그의 이름은 이욱이었고, 시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중에 수행 계급이 제일 낮았다. 그는 영단봉(靈丹峰) 제자였고, 무리 중 사문 임무를 아직도 수행하는 중에 있었다. 방금도 임무를 완수하려고 단독으로 영초 채집을 나섰다가 돌아왔다.
“여기 보세요. 제가 뭘 찾았는지 아세요?”
그는 흥분된 표정으로 손에 영초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낮은 계급의 영초잖아요. 그것도 2품.”
사람들은 그를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다만 그와 같은 영단봉 출신의 제자 목정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이건 설마 선영초?”
“맞아요. 바로 선영초예요.”
이욱이 더욱 흥분하며 대답하자 누군가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선영초가 어때서요?”
“선영초는 ‘한옥왕화(寒玉王花)’의 반생초(伴生草, 주된 식물과 함께 심어서 그 식물을 보호하고 성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식물)예요. 선영초는 비록 2계급의 영초이긴 하지만 한옥왕화 부근에서만 자라죠.”
“한옥왕화요? 그건 수행 단계를 바로 한 단계 올려준다는 영화(靈花) 아니에요?”
“맞아요. 그리고 이 영초가 이미 절반은 흰색으로 변해 있는 걸 보면 주변에 분명 한옥왕화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이미 성숙기에 들어간.”
순간 모든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모이기 시작했다. 수행이 워낙 어렵고, 특히 금단 이후 수행 단계를 올리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한옥왕화를 얻는 것은 마치 승급 선물세트를 얻는 것과도 같았다.
“그럼 뭘 더 망설여요? 어서 그쪽으로 함께 가 봐요!”
“그 꽃은 어디에 있어요?”
“그러게요. 빨리 가서 채집해야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재촉하기 시작하자 이욱이 돌아서서 역요괘를 보며 말했다.
“한옥왕화의 개화기는 딱 하루예요. 어두워지면 져 버릴 수도 있어요. 역 사형?”
그런데 역요괘가 고개를 돌려 중상을 입은 왕희를 바라봤다.
“하지만.”
구전환혼단의 도움으로 왕희의 상처가 대부분 치유되었지만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왕희가 말했다.
“역 사형,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저도 따라가면 되니까.”
역요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임령과 다른 사형에게 왕희를 보살피도록 분부하고, 이욱에게는 길을 안내하도록 지시했다.
사람들은 서둘러 한옥왕화를 찾기 시작했다. 시하도 무리의 맨 뒤에서 멀찍이 따라갔다. 하지만 뭔가 계속 의문이 들었다. 한옥왕화, 이 이름은 그녀도 필홍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한옥왕화는 극한의 지역에서만 자라나는 영화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 삼림에서 발견된 거지?
대략 30분쯤 걸으니 도로변에 이욱의 손에 들린 영초와 똑같이 생긴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절반은 이미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 뒤로 더 들어가자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앞에 연못이 있어요.”
누군가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십여 미터 전방에 약 십 미터 넓이의 연못이 보였다. 연못 위에는 뿌연 안개가 자욱하고 멀리에서도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그곳은 아주 차가운 연못으로 주변에는 영초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다.
“왜 한옥왕화가 안 보이죠?”
하지만 연못을 둘러싸고 아무리 찾아봐도 선영초 이외에 다른 영초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욱이 물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봐요. 연못 중간에 육지가 있는 듯해요. 한옥왕화가 분명 저 위에 있을 거예요.”
“안으로 들어가서 찾아보죠.”
사람들이 저마다 검을 띄우던 그 순간, 시하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너무 순조롭게 풀린다는 생각 안 들어요?”
필홍은 진귀한 영물일수록 그 주변에 더 큰 위험물이 있다고 말했었는데.
전에 그 수사가 튀어나와 차갑게 대꾸했다.
“흥, 외문제자들은 역시 겁이 많네요. 여러분, 저 여자의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한옥왕화의 개화기가 제한적이라 빨리 채집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 여자 미친 거 아냐? 좋은 마음으로 말해준 건데 뭐라는 거야.
그러나 역요괘가 시하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저 여자의 말이 맞아요. 영주(靈株) 부근에는 항상 괴물들이 출몰했어요. 오는 길이 확실히 너무 조용했으니 각자 조심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각자 방어 결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수사도 어두운 안색으로 입술을 깨물며 망설이더니 무리를 따라 결계를 했다.
수행 계급이 제일 높은 역요괘가 제일 앞에서 가고 그 뒤로 사람들이 따라갔다. 물 위에 안개가 더욱 짙어지더니 그 뒤로 육지가 나타났다. 육지는 아주 작아 몇 평 남짓한 크기로 보였다. 열 명의 사람들이 육지로 내리자 그곳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시하가 땅을 밟자 발밑이 무겁게 내려앉더니 아래로 구멍이 나타났다. 구멍은 약 십 센티미터 깊이로 그렇게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니, 이 작은 섬은 전부 이런 작은 구멍으로 가득했다.
“한옥왕화를 본 사람 있어요?”
누군가가 묻자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워낙에 작아 한눈에 전체를 살펴볼 수 있었지만, 한옥왕화는 고사하고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구멍이 왜 이렇게 많은 거죠? 설마 누군가 먼저 가져간 건 아니겠죠?”
이욱이 땅에 있는 구멍들을 보며 말했다. 구멍이 딱 그 영초들의 크기와 맞았으므로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힘 빠진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괜히 허탕 쳤네!”
그때 목정이 갑자기 소리치며 앞을 가리켰다.
“어, 여기 목패가 세워져 있어요.”
“정말이네. 그것도 중앙에 세워져 있어!”
목패라고? 시하가 깜짝 놀라며 그쪽을 바라봤다. 과연 섬 중앙에 표지판처럼 생긴 작은 목패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갔다.
“위에 뭐라고 쓰여 있는데 이게 무슨 문자죠? 한 번도 보지 못한 문자예요.”
문자? 시하가 급히 무리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꽂혀 있는 목패를 봤다. 익숙한 필체를 보는 순간 하늘을 날 듯 기뻤다. 하지만 내용을 파악하고 다시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귀한 식물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 연못은 내가 지킨다. 사핍마존(師逼魔尊) 시동 남김.]
책임지긴 개뿔, 네 동생이나 책임져! 알고 보니 이 섬의 구멍은 전부 그가 남겨 놓은 것이었다. 비록 한옥왕화를 한 포기도 찾지 못했지만 시하는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다. 그녀가 이번에 허탕은 치지 않은 듯했다. 그녀의 허당 오빠가 이 비경을 다녀간 것이 분명했다.
그 목패가 증거물이었다. 글씨체가 조금 흐릿하긴 했지만 여전히 알아볼 수는 있었다. 기껏해야 몇십 년 정도 지난 것으로 보이고 백 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빠가 제일 마지막 나타난 곳이 확실히 이 비경이 맞는 듯했다. 그가 아직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흥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즐겁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옥왕화를 대체 누가 가져간 거야. 허탕이나 치게 하고 말이야!”
이욱이 화가 잔뜩 나서 고개를 숙이더니 화풀이를 하려는 듯 목패를 뽑으려고 했다. 시하는 순간 모현선부의 그 옥상자가 생각나 황급히 그를 막았다.
“뽑지 마세요!”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이욱은 이미 목패를 뽑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목패는 뿌직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 났고, 그는 그제야 화가 좀 풀렸는지 시하에게 눈을 흘겼다.
“소리는 왜 쳐요. 이깟 목패 하나 뽑는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닌데 호들갑은!”
그가 아직 말을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진동 소리가 들리더니 땅속에서 뭔가 솟아올랐다. 눈앞에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목패가 꽂혀 있던 자리에서 거대한 푸른색 뱀이 나타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목패를 뽑은 이욱을 단번에 삼켜 버렸다. 그야말로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은 대가였다.
“어서 흩어져요!”
역요괘가 제일 먼저 반응하며 크게 소리치자 다른 사람들은 그제야 검을 부려 날아올랐다.
뱀은 벌써 사람들을 쫒아오고 있었다. 꼬리를 한 번 흔드니 아래 연못에서 커다란 풍랑이 솟구쳤고, 조금 느리게 날고 있던 두 명의 수사가 아래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구해줄 틈도 없이 바로 뱀의 아가리로 들어가 버렸다. 잠깐 사이에 세 명이나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다.
“연못 밖으로 나가요!”
역요괘가 큰소리로 외치자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각각 연못 밖으로 날아갔다. 뱀이 그 뒤를 바짝 따르며 거대한 풍랑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풍랑 뒤에 몸을 숨기고 미친 듯이 검을 부렸다. 그렇게 연못 밖으로 나와 어렵게 원래 있던 그 삼림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연못을 다 벗어날 때까지 날았고 능화수를 죽였던 그 자리까지 와서야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