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오라버니였군요.”
시하는 한숨을 쉬고는 다른 사람들이 이쪽 상황을 눈치채지 않게 그를 끌고 와서는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여기까지 어쩐 일로 왔어요? 또 신식으로 변신한 거예요?”
“그래.”
이왕 다 알게 되었으니 후지도 숨길 것이 없었다.
“너는 아직 결단도 하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어.”
그사이에 또 도망가면 어떡하라고? 내가 지켜보고 있어야지.
“역요괘 몸에 붙은 거예요? 그 사람은요?”
“그도 아직 안에 있어. 다만 깊게 잠들어 있을 뿐이지.”
“깊게 잠들어요?”
낮에 그 오만방자하던 사람은 역요괘가 맞다는 말이었다.
“그럼 그도 알아요?”
후지가 고개를 젓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대답했다.
“원조는 알아.”
원조? 역요괘의 부친? 그가 그녀를 보고도 보지 못한 척한 것은 필홍 때문이 아니라 후지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양양합체술(陽陽合體術)을 사용하여 수행 계급이 몸의 제한을 받지 않지. 대신 그가 잠에 들거나 입정할 때에만 나타날 수 있어.”
양양합체술? 뭔가 불결한 이 느낌은 뭐지? 시하는 아래위로 그를 살펴보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를 떠올렸다. 남자 둘이 같이 있다면, 그럼 누가 음이고 누가 양이야?
“이 술법이 당신한테 다른 영향은 없는 거죠?”
예를 들어 성향 같은 그런 거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겠지?
그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 술법은 원래부터 신식을 단련하는 술법이라, 오히려 두 사람 모두에게 유익하지.”
그게 아니라면 원조가 그렇게 통쾌하게 허락하지 않았을 테다.
“아, 그럼 됐어요.”
시하는 그제야 안심했다. 아무리 그녀가 편견이 없다고 해도 이제 막 오라버니라고 인정한 그가 어려운 길을 가는 건 막고 싶었다. 역요괘는 아직 미성년자인 남자아이었으니까.
“먹을래?”
그가 또 과일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이번에는 분홍색이었다.
다음날, 별안간 누군가가 시하를 넘어뜨렸다. 눈을 떠 보니 역요괘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그녀를 잡아먹을 듯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 정말 부끄러움이 없군요!”
“또 왜요?”
시하는 넘어지면서 다친 손을 어루만졌다. 보아하니, 그녀를 넘어뜨린 사람은 후지가 아니라 역요괘인 듯했다. 그가 더 화가 나서 그녀를 마치 쓰레기 보듯 하며 말했다.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내 품에 안겨 있었잖아요. 당신은 창피하지도 않아요?”
품에 안겨 있었다고? 시하는 곰곰이 지난밤의 일을 떠올렸다. 밤새 후지와 얘기하다가 그에게 기대어 잠이 들어 버렸었다. 하지만 지금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할 수는 없었다. 시하는 뒤에 있는 큰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품에 안겼다고 그래요? 똑바로 봐요. 저는 쭉 이 나무 아래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요!”
역요괘가 당황하더니 주위를 살펴봤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 그럼 제가 왜 여기 있죠?”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저는 당신이 저를 넘어뜨리는 바람에 일어난 거잖아요. 근데 제가 당신이 어젯밤에 여길 왜 왔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역요괘는 말문이 막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나는 것을 보더니, 차갑게 돌아서서는 마치 병균이라도 피하듯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종일 역요괘는 그녀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가끔씩 의심쩍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바로 표정을 바꾸며 고개를 돌렸다.
그 후 며칠 동안, 사람들은 매일 같은 일과를 반복했다. 오전에는 검을 부려 비경으로 들어가고, 오후에는 흩어져서 각자 사문 임무를 수행하고, 저녁에는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15일을 날아, 비경 깊은 곳에 도착했다. 역요괘는 사람들에게 칼을 부리는 대신 보행을 하도록 했고, 다시는 흩어져서 행동하지 않도록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사문 임무를 거의 마쳤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는 길에 적지 않은 괴물들을 만났지만 모두 2, 3계급의 괴물들이었다. 딱 한 번 사급의 괴물을 만나 시간을 지체했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눴던 여자가 영수로 거둬들였다. 시하는 오는 내내 시동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으나 후지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마존과 관련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조그마한 단서라도 있으면 시하는 길을 나서고 싶었지만 매번 후지가 그녀를 막았다. 이제 비경의 중심부에 도착하여 괴물도 많고, 그녀 혼자서는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때문에 시하는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역요괘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점점 더 이상해졌다. 분노, 의심, 놀람, 고뇌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세상을 다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변해 갔다. 시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이해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보면 겨우 며칠밖에 모르는 처자를 꼭 끌어안고 있는 데다가 자발적으로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건 당연했다.
하지만 시하도 방법이 없었다. 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들 것이냐, 아니면 그의 품에 안겨 그냥 잠들 것이냐, 이 둘 중에 시하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시하는 그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하여 역요괘는 점점 더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매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하하(夏夏), 이 근처는 괴물이 너무 많아서 혹시 오계 이상의 괴물이 나타날지도 모르니, 좀 더 조심해야 돼.”
후지가 일러주었지만 시하는 그렇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그들은 정말 오계의 괴물을 만났다. 한 마리의 능화수(凌火獸)였는데 생김새는 말과 비슷했으나 보통의 말보다 세 배는 커 보였다. 온몸이 불로 덮여 있었고, 머리에는 세 개의 뿔이, 몸에는 비늘이 덮여 있었다.
오계의 괴물은 금단 초기에 해당하는 괴물로 불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열 사람 중 대부분이 빙계법술에 능해 능화수 하나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괴물이 변이적인 뇌(雷) 속성을 가지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수사 중 한 명이 괴물이 뿜어낸 천둥과 번개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 이상한 것은 괴물에게 계약을 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몇 명의 수사들이 계약진을 걸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거부 반응으로 몸에 중상을 입었다.
역요괘가 던진 천뇌(天雷)에 능화수가 죽었지만, 그들의 상황은 매우 비참했다. 열 명의 수사 중에 네 명이 상처를 입었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누가 수계(水系) 영근을 갖고 있죠? 어서 왕희를 도와줘요.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요.”
분홍색의 옷을 입은 여자가 초조한 얼굴로 누군가를 안고 있었다. 상대에게 영기를 나눠주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녀가 안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방금 능화수의 뇌전 공격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온몸이 피로 얼룩져 있었고 뼈가 드러나는 상처를 입고 있었다. 시하의 기억에 이 수사의 이름은 임령이었다. 상처를 입은 왕희와 연인 관계였다.
“임 사매, 모든 수 영근의 사형들이 상처를 입었어요.”
옆에 있던 수사가 말했다. 능화수는 불의 속성이라 방금 괴물을 계약하던 수사들은 모두 수계 영근을 가진 수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진법에 공격을 당해 쓰러져 있었다.
임령이 눈물을 글썽이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하죠? 왕 오라버니의 상처가 깊어서 수 영근만이 상처를 빨리 치유할 수 있는데. 오라버니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요.”
그녀가 초조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갑자기 시하를 바라보았다.
“당신! 당신은 외문 제자이니, 분명 수계영근을 갖고 있을 거예요. 어서 이쪽으로 와서 왕 오라버니를 구해주세요.”
갑자기 호명된 시하는 당황하며 미간을 찌푸리다가 앞으로 몇 걸음 나서서 말했다.
“제가 수계 영근을 갖고 있는 건 맞지만, 치유하는 법술은 갖고 있지 않아요.”
후지가 순양 영근은 모든 영근을 갖고 있다고 했으니 그녀도 수계 영근을 갖고 있는 건 분명했다. 임령은 시하가 싫어서 그러는 줄 알고 갑자기 화를 냈다.
“치유법술은 가장 기본적인 법술인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왕 오라버니의 상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죽는 걸 보고도 모른 척할 거예요?
“……정말 몰라요.”
그녀는 법술을 배운 기간도 짧았고, 수계치유술은 정말 배운 적이 없었다.
“당신!”
“그만해요. 임 사매.”
다른 수사가 그녀를 위로하며 시하를 쏘아봤다.
“외문 제자들은 역시 외문 제자들이야. 어디에도 쓸모가 없어. 방금 우리가 능화수를 공격할 때에도 멀리 서 있기만 했지.”
순간 모든 사람들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마치 시하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그녀를 쳐다봤다.
쳇, 내가 뭘 어쨌다고. 자기들이 반응이 느려 괴물한테 당하고는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방금 전에는 돕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 요괴에게 계약을 걸고 있던 수사에게 밀려서 돌아온 것뿐이었다.
시하는 당황하여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쨌든 모두 같은 조원이니까, 서운한 마음은 일단 뒤로하고 주머니에서 후지가 줬던 단약을 꺼내 그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임령이 막아서며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단약이에요. 제가 치유술은 쓸 수 없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약은 준비했어요. 그에게 먹여 봐요. 금방 좋아질 테니까.”
“당신네 외문 제자들이 제조한 단약을 누가 먹어요?”
임령이 아직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방금 임령을 위로하던 그 수사가 차갑게 끼어들었다.
“당신이 무슨 마음으로 이 약을 주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 말을 듣자 임령은 더더욱 약을 먹일 수가 없었다.
아, 열 받아! 나이도 어려 보이는 것들이 차별하는 법은 또 언제 그렇게 금방 배웠대.
“임령 매자. 지금 왕희의 목숨이 중요해요, 아니면 외문이니 내문이니 하는 그런 명분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거기 소저, 왕희 사형의 상처가 이렇게 깊은데, 그에게 단약을 먹이지 못하게 하는 당신은 무슨 심보죠? 당신 가족이 아니라서 급하지 않나 봐요?”
이간질은 참 쉽지!
수사가 화가 나서 뭐라고 쏘아붙이려던 찰나, 역요괘가 그들의 말을 끊고 경고했다.
“됐어! 그만들 싸워요. 모두 동문인데 싸우긴 왜 싸워요?”
그 수사가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역요괘가 시하를 바라보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