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189)

무망경이 열리는 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시하는 끝내 낙성진의 두 동작밖에 익히지 못했다. 후지는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하더니, 나중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더 막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어디서 났는지 한 뭉치의 물건들을 그녀에게 챙겨주면서 호신용으로 사용하라고 했다.

“이건 팔계(八階)의 법부야. 원영수사의 공격을 세 번은 막을 수 있어. 내가 만든 건데 가져가.”

“이건 법어법기야. 위에 있는 진법은 화신기의 수사도 공격할 수 없지. 내가 다섯 개를 만들었는데 어떤 걸로 할래? 그러지 말고 아예 다 가져가.”

“이건 구전회혼단(九輾回魂丹)인데 숨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한 병으로는 부족하니까, 열병은 가져가야겠지?”

“이건 고급 법의인데 위에 각종 진법이 깔려 있지. 열 벌을 준비했어.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

“그리고 이건…….”

오라버니, 그만! 시하가 주머니 안에서 계속 물건을 꺼내려는 후지의 손을 잡았다. 그가 척후로 변신했을 때 그 도라에몽 주머니가 생각났다. 그가 꺼낸 물건이 거의 산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물을 찾으려고 비경으로 들어가는데, 우린 무슨 물건 팔러 들어가는 꼴 같은데요?”

시하가 오랫동안 설득해서야 후지는 전부 다 주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요 며칠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도 이걸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시하는 법부 몇 개, 응급용으로 사용할 단약 몇 병, 연습할 때 사용했던 영검을 챙겼다. 후지가 그녀에게 다가와 함께 가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순식간에 산 아래로 사라졌다.

시하가 이번에 옥화파로 돌아온 사실은 후지와 필홍을 제외하고 아무도 몰랐다. 필홍은 시하에게 옥화파 대오에 섞여 문파의 제자들과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기강이 잡힌 대오와 함께라면 더 안전할 수 있기 때문에 시하도 반대하지 않았다. 필홍이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제자 명찰을 가져왔다. 시하는 그를 따라 옥화파 제자들이 집결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에는 광장이 이미 제자들로 가득 찬 후였다. 얼핏 봐도 그 수가 백은 더 되어 보였다. 그쪽으로 막 다가가려고 하자 필홍이 말리며 말했다.

“너 정말 갈 거야?”

“후지도 동의했는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괜찮아요.”

“누가 널 걱정한다고 그래. 내 말은……. 너 정말 찾을 거야, 그 사람?”

“제 친오빠요?”

“그는 마존이고, 너는 다르잖아. 이제 사라진 지도 오래됐는데, 왜 그런 사람을 찾으려고 고생하는 거야?”

“필홍, 왜 저랑 그 사람이 다르다는 거죠?”

“쓸데없는 소리. 네가 꼴도 보기 싫고, 귀찮게 하고, 맨날 사부님께 나를 고발이나 하지만.”

내가 언제 자기를 고발했다고?

“어쨌든 넌 나쁜 사람이 아니야.”

거참, 고맙기도 하지.

“필홍. 그럼 당신은 마존을 알아요?”

“…….”

“당신이 저를 아는 것처럼 저도 그를 알아요. 사람들이 마존을 용서할 수 없는 원수니,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나쁜 놈이니 욕해도, 저는 제 오라버니를 믿어요. 그는 절대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에요.”

“어휴, 사람은 언제고 변해. 수선의 길은 멀고도 험하니 충분히 변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은 변할 수 있지만 제 오라버니는 아니에요.”

그는 나의 유일한 가족이라고요. 이 세상에서 이 여동생마저 그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그의 곁에 누가 있겠어요?

필홍이 다시는 설득하지 않자 시하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바로 광장으로 달려갔다. 전에 필홍이 했던 것처럼 제일 좌측에 있는 관리인에게로 걸어가 제자 명찰을 전달했다. 관리인이 살펴보더니 제자 명찰을 투명한 돌로 만들어진 법기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돌이 밝게 빛나면서 명찰 위에 서서히 ‘일(壹)’ 자를 그렸다.

관리자가 깜짝 놀라더니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아래위로 한 번 훑어봤다. 그가 명찰을 그녀에게 돌려주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시, 역검봉외문(歷劍峰外門) 제자, 1조입니다. 당신이 소속된 그 조를 이끌 사람은 영기봉(靈器峰)의 역요괘(易燿罣) 사형이에요. 어서 가 보세요.”

역요괘(硬要挂, 중국어 발음상 죽음을 자처하다는 의미의 단어와 같은 소리를 냄)? 이건 또 무슨 불길한 이름이지? 다른 조로 바꿀 순 없을까?

“이 사형, 이 사람이 저희 조의 제일 마지막 사람이에요?”

열대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소년이 걸어오면서 물었다. 키가 아주 큰 데다가 거만한 인상이었다. 그가 다가오더니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관리인에게 말했다.

“여기 어떻게 축기기의 제자가 있는 거죠? 이 사형, 실력이 제일 좋은 제자들만 있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축기기의 사람이 조에 들어올 수 있어요?”

방금 인원을 편성하던 관리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역 사형, 조를 나누는 일은 이 진석(眞石)의 안내에 따라 나누는 것이라 저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럼 이 진석이 고장 난 게 분명하네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축기기의 제자를 한 조에 넣었겠어요. 안 돼요. 저희 조는 이렇게 약한 제자는 필요 없어요. 다른 조로 보내주세요.”

관리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었다.

“이건 정말 진석이 정한 거라, 바꿀 수 없어요.”

“저희는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으니 다른 조로 보내주세요.”

소년이 고개를 돌리더니 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 아무개, 이번 비경은 가지 말아요. 저희 조는 축기기의 제자는 필요 없으니까.”

무슨 근거로? 나이는 어린 놈이 성질 한 번 되게 더럽네. 딱 보니 응석받이로 자란 모양인데.

“내가 반드시 가야겠다면?”

시하의 말에 소년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중에 저를 원망하지나 말아요. 저는 무망경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그 수행 계급으로 그때 가서 어떻게 죽든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위험한 거야? 난 비경에서 사람 찾을 생각만 했는데.

“닭처럼 약하다면 가도 아무 소용없어요.”

그의 얼굴에 깔보는 기색이 가득하자 시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누굴 보고 닭이래, 너나 닭이다.

“마지막으로 충고할 테니 포기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다시 가라고요.”

그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시종일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위협하듯 그녀에게 말했다.

어휴, 내가 참아야지.

“미안해요. 저는 천성적으로 죽음을 자처하는 기질이 있어서요.”

소년이 화가 극에 달하여 소매를 걷으며 뭐라 하려던 찰나, 앞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출발해야 하는데, 또 무슨 소란이야?”

소년은 당황하며 중년 남성에게 걸어갔다.

“아버지.”

시하는 고개를 돌려 앞에 다가오는 중년 남성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중년의 사내는 바로 몇 년 전에 만났던 옥화파 장문 원조였다. 이 오만방자한 꼬맹이가 그의 아들이라니! 무망경으로 가는 사람들은 전부 금단의 수사들이라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 젠장! 어린 꼬맹이랑 괜히 실랑이를 벌여 가지고. 나를 알아보기라도 하면 무망경으로 갈 수도 없을 텐데. 또 죽인다고 쫓아오면 어떡하지?

“왜 아직도 출발하지 않고 있어. 아직 사람이 다 오지 않은 거야?”

“아버지, 진석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에요. 저희 조에 축기기의 제자가 들어왔어요.”

“축기기의 제자라고? 너 그것 때문에 지금 출발하지 않고 있는 거야?”

“아버지, 지금까지 조에 들어왔던 제일 낮은 계급은 금단이었어요. 축기기의 제자라니 이건 완전히 발목 잡히는 일이라고요. 저는 이런 사람을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

원조는 한숨을 쉬더니 역요괘가 가리킨 쪽을 보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이, 장문님.”

시하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오랜만이에요. 혹시 지금 수릉봉으로 돌아가도 늦지 않았을까요?”

원조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힘껏 눈을 몇 번이나 깜박거렸다.

“시, 시시,”

출발하기도 전에 들통이 날 줄이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시하의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바로 검을 뽑아 들고 시하를 공격할 줄 알았던 원조가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바로 표정을 바꿨다.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돌아서더니, 옆에 있는 아들을 흘기며 말했다.

“그만해! 너는 문파 최고 제자라는 녀석이, 어떻게 동문을 버릴 수가 있어? 도대체 뭘 배운 거야? 이 아비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역요괘가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아버지. 그, 그렇지만 시하는 축기인데.”

“축기가 뭐가 어때서? 축기 제자도 옥화파의 일원이야. 너도 축기를 거치지 않았어?”

“그렇지만.”

“쓸데없는 얘기는 이제 그만해라. 같은 문파의 사형으로 어린 사형, 사매들도 돌보지 못하면서 내문(內門) 제자의 신분은 지키길 바라는 거냐? 자기보다 수행 계급이 낮은 제자를 깔보면서?”

역요괘는 고개를 숙이고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그래. 비경은 매우 험하니 동문을 잘 챙겨야 돼. 알겠어? 어서 출발해.”

꼬맹이 역요괘가 그제야 원망 어린 얼굴로 시하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네, 가요!”

원조는 뜻밖에도 그녀를 모른 척해주었다. 그녀의 신분을 덮어주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보호하려는 듯했다. 설마 필홍이 떠나기 전에 그에게 뭐라고 얘기해준 것일까? 시하는 머릿속에 가득한 의혹을 안고 꼬맹이를 따라 광장 중앙에 있는 전송진으로 걸어갔다.

거기엔 이미 여덟 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핏 보니 남자 다섯에 여자 세 명이었다. 수행 계급을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모두 금단기의 수사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역 사형, 이 사람이 저의 조 제일 마지막 사람이에요.”

멀리서 분홍색 옷의 여자가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시하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사매, 용모는 뛰어난데 어떻게 아직 축기기에 있는 거죠?”

“그래. 역요괘, 너 예전에는 이렇게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었잖아.”

흰색 바탕에 초목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은 남자가 역요괘를 툭 치며 말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비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역 사형, 이분은 어느 봉에서 데려온 처자인가?”

사람들은 점점 더 시끄럽게 떠들며 두 사람을 한데 엮어 농담을 주고받았다. 시하는 억울하게도 두 여인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역요괘는 이제 겨우 열대여섯 살의 아이인데. 이런 애송이에는 나도 관심 없거든요!

역요괘도 화가 났는지 소리쳤다.

“그만해요! 진석이 배정한 거고, 역검봉외문 제자예요.”

그 말을 듣자 사람들은 바로 얕보는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외문 제자였군요. 거기에다 축기기인데 왜 같은 조로 배정된 거죠?”

“저도 몰라요. 진석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보죠.”

“사람을 바꾸면 안 돼요?

어떤 사람이 제안하자 역요괘가 그 사람을 흘기며 말했다.

“저의 아버지가 동문끼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고 하셨어요.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어서 가죠.”

말을 하면서 역요괘가 제일 먼저 전송진으로 들어갔다. 장문의 말이라고 하니,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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