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189)

“심법이요?”

필홍의 말에 의하면 심법이란 수사들이 체내의 영기를 만들어 내는 일종의 법칙이었다. 모든 영기가 각기 달라서 심법이 있어야만 각종 술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건 마치 새로 산 노트북과 같았다. 축기가 노트북의 부팅 단계에 해당한다면, 금단은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설치하는 단계로, 심법은 바로 윈도우 설치에 해당되었다. 어떤 사람은 XP, 어떤 사람은 윈도우7, 어떤 사람은 윈도우8, 이렇게 각자의 영근에 따라 아주 많은 버전들을 설치할 수 있다. 그리고 각종 술법들은 모니터에 배열되어 있는 워드, 엑셀 등에 해당하는 프로그램들이다. 그녀는 이제 막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설치한 것이었다.

그럼 나의 영근은 어떤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 거지? XP는 아니고, 윈도우7, 윈도우8도 더더욱 아니고, 윈도우11인가?

지금까지 순수한 양기의 영근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에게 맞는 공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시하는 눈물을 흘렸다. 왜 하필 순양기의 체질인 걸까? 맞는 시스템도 찾을 수 없는데 부품이 고급인들 무슨 소용인데!

“괜찮아.”

후지가 마음 아파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영근이 특수하여 사실 어떤 심법이든 모두 수련할 수 있어. 다만 그중에 하나만 수련하게 되면 다른 술법들은 많이 약해질 수 있어.”

그 말은 아직 쓸모가 있다는 거네?

“너의 수행 계급이 금방 안정되었으니, 급하게 심법을 수련할 필요는 없어. 축기이긴 하지만 집중하여 수련하면 심법이 없더라도 금단의 술법을 이겨 낼 수 있을 거야.”

“축기가 금단 술법을 이겨 낼 수 있어요?”

“그래.”

그때 필홍이 놀라며 끼어들었다.

“사부님, 설마 얘한테 낙성진(落星辰)을 가르치시려는 건 아니죠?”

낙성진,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후지가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눌렀다. 순간 눈앞에 영상이 가득 나타났다. 영상 안에는 하나같이 키가 작은 사람들이 각종 무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 영상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영상 속의 무술 동작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 무술 동작을 생각하자 자동으로 그 동작들이 다시 재생되어 나타났다.

이거 너무 편하잖아.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이 이런 기능을 갖고 있었으면 좋았을걸.

“이건 일검파만법(一劍破万法)이라는 건데 수사들의 검수(劍修)중 제일 강한 것이야. 이 오라버니가 오래전에 수련한 검술인데 마침 너한테도 잘 맞는 듯해.”

필홍이 울상을 하고 말했다.

“정말 낙성진이네요. 사부님, 저한테도 아직 가르쳐주시지 않았잖아요!”

후지가 차가운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너는 내 누이도 아닌데 뭣 때문에 가르쳐줘야 하는데. 미련한 제자 같으니, 썩 꺼져!

“네가 먼저 연습하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나에게 물어봐.”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영상에서 봤던 그 동작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귀납적 추리 방법을 통해 습관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중요한 요점들에 줄을 그었다.

“이 검법은 비록 세 개의 동작밖에 없지만 민첩하고 다변하여 강한 상대를 만나면 더 강해지는 특성이 있어.”

“세 개요? 서른여섯 개가 아니에요?”

필홍이 끼어들며 말했다.

“허튼소리 하지 마! 낙성진은 사부님 때문에 유명해진 검술이야. 수선계에 이 검법이 세 개의 동작밖에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그때 후지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네가 본 검법 동작들은 서른여섯 개였어?”

“네, 맞아요.”

머릿속에 동작들을 다시 자세히 살펴봐도 서른여섯 개가 분명했다. 시하는 말하면서 옆에 있던 나무 막대기를 들고 휘둘렀다. 비록 동작이 아직 완벽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서른여섯 개의 동작이 맞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필홍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사부의 검술을 그도 본 적이 있어 시하가 하는 동작들은 모두 익숙했다. 하지만 왜 서른여섯 개의 동작인 거지?

“뭐가 잘못된 거죠?”

“틀리지 않았어. 낙성진은 확실히 세 개의 동작을 갖고 있어. 하지만 매 동작이 다시 열두 개로 나뉘지. 동작들을 하나하나 나누면 하하(夏夏)의 말대로 서른여섯 개가 맞아.”

필홍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하를 한 번 쳐다봤다.

“동작을 나눈다고요? 동작들을 한 번밖에 보지 않았는데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검술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검의(劍意)를 이해하는 것이다. 때문에 검법을 완전히 통달해야만 검술의 동작을 분해할 수 있었고 검의는 검법이 높을수록 복잡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한 가지 검술 동작을 이해하는 데 평생이 걸렸다.

근데 시하는 이제 얼마나 됐지? 몇 분 지났나?

“이게 그렇게 어려워요?”

시하는 별거 아니라는 얼굴이었다. 그저 속도를 늦춘 뒤 나눠서 다시 조합을 하면 될 뿐이었다. 미적분을 배운 적이 있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하(夏夏)가 이해 능력이 뛰어나, 이 검술의 제일 중요한 요점을 벌써 깨달았구나.”

후지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누가 내 누이가 아니랄까 봐, 역시 대단해.

남은 2년 동안 시하는 열심히 검술을 익혔다. 후지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검술 동작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나누어서 가르친 다음, 매번 몸소 시범을 보여줬다. 그리고 시하의 동작을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로 잡아주었다. 시하는 이렇게 시범하고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규칙을 익히고, 요령을 터득하였다.

1년 후, 그녀는 드디어 제일 첫 동작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일 년에 한 동작씩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시하는 조금 느린 듯한 진도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녀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울상을 하고 있는 시하에게 후지가 위로하듯 말했다.

“검을 연습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만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검술은 천만 가지도 넘지만, 그래 봤자 다 거기서 거기니까 많이 연습하다 보면 익숙해질 수 있어.”

후지의 말에 시하는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

“네. 아, 후지. 제일 처음 이 검술을 배울 때 얼마나 걸렸어요?”

“오라버니라고 부르라니까. 대략 한 달 정도 걸렸을 거야.”

“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검술 전체를 배웠지.”

나보고 이해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니 순 뻥이잖아. 하긴 비교하면 뭐 해, 상처나 받지.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하는 모든 힘을 검술 연습에 쏟아부었다. 이런 그녀의 노력과 후지의 완벽한 가르침이 어우러져 드디어 낙성진의 두 동작을 익히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같은 검술 동작인데도 그녀가 했을 때와 후지가 했을 때 완전히 다른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가 가볍게 한 번 휘두르면 천 리까지 얼음으로 뒤덮이는 반면 그녀가 아무리 검을 빨리 휘둘러도 허공에는 검의 인영만 가득할 뿐이었다. 근데 후지는 하필 요 며칠 동안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쉬운 대로 필홍을 찾아가 가르침을 부탁했다. 필홍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너의 검술 동작에 영기가 없기 때문이야. 검술 동작을 할 때 그 속에 영기가 담겨야만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동작에 불과하지.”

영기라고? 시하가 깊게 호흡하면서 영기를 빙 영기(冰靈氣)로 전환시킨 후 다시 검을 들었다. 드디어 검술 동작에 변화가 일어났다. 원래는 검의 인영만 보였는데 이제는 수천, 수만 개의 얼음덩이가 공중을 가득 채웠다. 확실히 위력이 100배는 더 강해진 듯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한데요.”

위력이 강해지긴 했지만 후지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너는 수행 계급이 아직 축기밖에 되지 않았으니, 사부님과 같은 위력을 내기는 당연히 어렵지. 이만한 것도 이미 충분히 괜찮아. 사부님의 검의는 강력해서 평범한 검술 동작이라도 그 위력이 엄청나다고.”

“검의? 그게 뭔데요?”

“검의는 수사들이 검도에 대한 깨달음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이지. 검술과 검도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검의를 할 수 있어.”

필홍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손을 움직이자 공중에 거대한 금빛 영검이 나타났다.

“이걸 바로 검의라고 하는 거야. 모든 사람이 각각 검도에 대한 깨달음이 다르기 때문에 검의의 형태도 서로 다르게 나타나.”

필홍이 만들어 낸 그 거대한 검은 보고만 있어도 위력이 느껴졌다.

“그럼 본인이 검의를 할 수 있는지는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어요?”

“검의가 나타날 때, 단전 안에 아주 특수한 기류가 나타나는 것이 보일 거야.”

“특수 기류라.”

시하는 눈을 감고 집중해 보았다.

“붉은 빛을 띠는 것이 보이는데, 이걸 말하는 건가요?”

“모든 사람의 기류가 같지 않기 때문에 색깔도 당연히…….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어? 너 방금 단전 안에 이미 기류가 보인다고 한 거야?”

“네, 연습하던 첫날부터 있었어요. 예전에는 아주 작았는데 지금은 자라서 덩어리가 보여요.”

필홍이 잠깐 멍하니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사람 맞아?”

“그런 말은 그만하고, 어서 이 덩어리를 어떻게 하면 검의로 나타낼 수 있는지 알려줘요.”

그 상태로 검의를 나타내지 않는 게 더 어렵거든! 필홍은 꼬박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검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네가 그 기류를 이끌어 낸 다음 그것의 형상을 상상하면 바로 그 모양이 나타날 거야.”

“그럼 뭐든지 상상하는 모습이 강할수록 검의도 강하게 나타나는 거 아니에요?”

“그래, 검의는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어.”

“그럼 제일 강한 걸로 골라야겠네요?”

시하는 눈을 감고 단전에 있는 그 붉은 빛의 기체를 끌어냈다. 영기를 끌어내면서 계속해서 제일 강한 것을 주문했다. 제일 강한 것, 제일 강한 것.

잠시 후, 붉은색의 기단(氣團, 공기 덩어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필홍도 마음 졸이며 진지하게 공중을 쳐다봤다. 그 기체가 서서히 응집되더니 덩어리 전체가 선명한 붉은색으로 변했다. 위에는 둥근 모양이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거기에 꼬리도 있었다.

“무?”

필홍이 잠시 당황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이게 네가 말한 그 제일 강한 물건이야? 한참을 고민해서 만들어 낸 것이 고작 무라니, 하하하하하!”

그는 허리도 펴지 못하고 계속 웃어 댔다.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심지어 그녀가 만들어 낸 검의를 만지며 계속해서 비웃었다.

“이 검의는 어떻게 사용할 거야?”

“어떻게 이렇게 작지?”

시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것보다 더 큰 무라도 쓸모없는 건 마찬가지야!”

“이건 무가 아니에요.”

“이 둥근 모양의 뿌리가 무가 아니면 뭔데? 이것보다 배로 커진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진 못해. 방금 검의를 만들 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무슨 생각을 했냐고? 시하는 제일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떠올렸던 영상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제일 강한 무기는…….

“아마, 원자폭탄?”

“뭐?”

잠시 후, 거대한 진동 소리가 나면서 수릉봉이 흔들렸다. 이어서 하늘에 큰 버섯구름이 떠올랐다. 마침 검의를 잡고 있던 필홍은 진동에 그을려서 하얀 뚱보에서 검은 뚱보로 변해 버렸다. 전체 산 정상에 돼지고기 탄내가 진동했다. 그것도 아주 시커멓게 타 버린 냄새였다.

필홍은 시커먼 얼굴로 겨우 고개를 돌려 시하를 바라보더니 입에서 시커먼 연기를 토해 냈다.

“폭발할 수 있는 무라고 왜 얘기하지 않았어?”

그러게 무가 아니라고 했잖아.

필홍은 세상 모든 무가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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