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는 신속히 손을 등 뒤로 감췄다. 그리고 몸을 곧추세우더니, 순식간에 냉랭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바꿨다.
“나를 찾는 거야?”
“네?”
시하가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착각인가? 방금 전 벽을 긁으면서 원망하고 있길래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참이었다.
“이 구멍은?”
“방 안에 영기가 통하지 않아 창문을 열고 있었던 거야.”
“아.”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시하가 앞에 있는 구멍을 주시하며 말했다.
“이렇게 서서 저랑 대화하실 건 아니죠?”
구멍 사이로 얘기할 건가?
후지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안 그래도 마음이 너무 아픈데 남매의 연을 끊자고 하면 어떡하지? 그는 마치 발에 무거운 추라도 달린 듯 느릿느릿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진법을 보강하느라 상처를 입어 이렇게 느릿느릿 걷는 걸까? 시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필홍이 다 말해줬어요.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
“저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그래.”
그가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굴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손은 진귀한 보배를 만지듯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시하가 감동하여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후지,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그는 쇄마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를 구하려고 했다.
“나는 너의 오라버니이니까.”
시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앞에 있는 사람을 안아 버렸다.
“맞아요. 당신은 저의 오라버니예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 낯선 세계에서 저에게 이렇게 아낌없는 선의를 베풀어줘서.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계속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빛을 반짝였다.
“맞다, 전에는 왜 신식을 여우의 몸에 붙인 거예요?”
신식이 몸과 분리되면 수행 계급이 본래 몸보다 낮아지긴 하지만 그래도 화신기 계급은 유지할 수 있는데 왜 하필 육계의 여우 몸에 붙인 걸까?
“계약을 할 때 여우를 구속하지 못하고 실패하면 진법이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여우의 몸에 신식을 붙인 건, 저를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래.”
알고 보니 그녀의 계약진은 애당초 성공하지 못한 것이었다. 육계영수를 거두고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이 갑자기 산산조각이 나는 듯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 삼림에 있었던 거죠?”
“그날이 아니야. 쭉 그곳에 있었어.”
“네?”
“선범교계(仙凡交界)의 밀림이 열릴 때부터였어.”
밀림? 그럼 그녀가 그 절벽에서 올라와서부터?
“그럼 계속 저를 따라왔던 거예요?”
“문파 제자들도 축기 후나 되어야 밖에 나가 수련을 할 수 있는데, 너는 수행 계급이 낮은데 혼자 밖으로 나갔으니 내가 마음이 놓이겠어?”
그래요, 제 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이제 충분히 알았어요.
“그건 됐고, 후지.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어요.”
“난 동의 안 해!”
시하가 아직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가 일어서더니 몸에서 한기를 사방으로 내뿜었다.
“너는 내 누이야. 영원히!”
관계를 끊는다느니 하는 말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어.
“뭐가요? 저는 그저 뭐 좀 물어보려고 하는 건데.”
그게 아닌가? 후지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차가운 기운을 거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서 물어봐.”
남매 관계를 끊으러 온 것이 아니었나 보군. 그럼 아직 내 누이니 다행이야.
순간 그가 다시 활력을 찾자 시하는 눈앞에서 변덕스럽게 변화를 보이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지만 눈빛은 너무 기쁜 나머지 곧 꽃이라도 피울 듯했다.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의 볼을 힘껏 잡아당겼다.
모현선부에서 돌아온 후 시하의 휴대전화는 더 이상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미션 전달도, 이상한 지도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풀리지 않은 많은 의혹들이 있었다. 그녀가 휴대전화에 있는 친오빠의 사진을 후지에게 보여주면서 마존이 그녀의 오빠가 맞는지에 대한 의혹은 연기같이 사라졌다. 마존은 확실히 그의 친오빠가 맞았다.
선부에 나타난 그 검은 동굴은 후지도 알아보지 못했으나 그 동굴이 천지법칙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천지법칙은 천도(天道, 천지자연의 법칙)와 같은 것으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인상파(印象派)이지만 세간의 모든 만물은 천지법칙을 벗어날 수 없었다.
휴대전화가 휘장으로 변한 혼원비급과 모현선부로 가는 지도를 그녀에게 보여준 것은 상자가 깨지고, 그 무서운 동굴이 열릴 걸 알아 그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도한 것이었다. 근데 오빠는 무엇 때문에 그 상자를 남겨 두었으며, 그와 휴대전화의 미션은 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본인을 찾아야만 알 수 있을 듯했다. 필홍은 마존인 시동이 사라진 지 이미 백 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가 실종이 되었든 이미 차원 이동을 통해 돌아갔든 그녀는 반드시 그 것을 확인해야 했다. 만약 사라진 것이라면 그를 찾아내야 했고, 다시 돌아간 것이라면 차원 이동을 통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니 더더욱 자세히 알아봐야 했다.
그녀를 절벽 아래로 던진 원오는 그날 이후로 실종되어 다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시하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하게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와 그녀의 친오빠 사이에 백 년이라는 시차가 놓여 있었다. 도대체 어떤 잘못을 하였기에 이런 원한에 휩싸이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수한 살인, 멸문지환과 같은 일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오빠가 얼간이 기질은 좀 있지만 평소에 닭을 잡는 일에도 손을 떨던 사람이었다. 근데 살인이라니,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지에게 물어보니 마존이 제일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곳은 바로 무망경(無妄境)이었다.
“‘무망경’이 뭔데요?”
“동해 이남 지역에 있는 비경이야. 50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데, 원영 이하의 수사들만 들어갈 수 있어.”
“원영 이하라고요? 저번에 마존의 수행 계급이 화신기라고 했잖아요.”
근데 그가 어떻게 들어간 거지?
“그날 그는 확실히 ‘무망경’으로 간다고 했어. 그가 정말 그곳에 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나도 몰라.”
“어쨌든, 제가 가 봐야 될 것 같아요.”
혹시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다음 무망경이 열릴 시간은 언제예요?”
“5년 후.”
“그렇게나 오래요?”
“지금까지 무망경으로 들어갔던 수사들은 모두 금단기의 수사들이었어. 근데 너는 아직 일러.”
“그럼 지금 금단을 받으면 되죠.”
지난번에 전화위복으로 단번에 수행 계급을 축기후기(筑基后期)로 올렸었다. 다음이 바로 결단이니 성공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너는 지금 결단을 할 수 없어.”
“왜요?”
“네 경맥을 들여다봤어? 보면 알 거야.”
시하가 영문을 알 수 없어 바로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내시를 시작했다. 보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그제야 자기 몸에 단전을 포함한 모든 경맥이 전부 종잇장처럼 얇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영기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찢어질 듯했다. 영근의 작은 묘목 위에도 작은 균열이 보여 곧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너의 그 연기오층의 수행 계급으로 한꺼번에 축기까지 올랐으니 당연한 거야. 당장 급한 것은 폐관을 한 다음 지금의 수행 계급 상태를 안정시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어.”
“정말 결단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거예요?”
“아직 5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지금부터 안정시킨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몰라.”
“정말이에요? 지금부터 할게요.”
“그래.”
후지의 말이 맞았다. 수행 계급은 수선계의 최고 생산력이었다. 이번에 모현선부에서의 일을 겪으면서 수선계에서 술법을 잘 배워 수행 계급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깨달았다. 후지가 옆에 없었더라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었으리라. 아마 모현선부의 입구에서부터 계한에게 발견됐다면 출발하기도 전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반드시 폐관하고 수행 계급을 안정시켜야 했다. 후지가 적극적으로 폐관하고 계급을 안정시킬 만한 장소를 제공해주었다.
* * *
폐관을 하기 전 용오천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는 이제 상처를 다 회복하여 용성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시하는 그를 말리지 않았고 전에 후지가 주었던 무수심법(武修心法)을 전달해 주었다. 원래는 혼원비급으로 축기까지만 도달할 수 있었던 그가 이제 금단까지도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용오천도 군말 없이 받으며 감동한 얼굴로 그녀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난 후지에게 밀려 바로 산 아래로 밀려났다.
시하는 폐관을 시작했다. 근데 한 번 폐관을 하면 3년이나 걸려야 한다는 걸 누가 알았으랴.
3년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입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흙덩이로 변한 몸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고, 심지어 지독한 냄새까지 났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먼지가 심하게 날려 견딜 수가 없어 문을 열었다. 물통에 몸을 담그면 모래가 한 통은 나올 듯했다.
“하하(夏夏).”
후지가 문 앞에 나타났다. 3년을 보지 못한 사이 그의 표정은 여전히 뻣뻣했지만, 눈빛은 예전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두 팔을 벌렸다. 예전에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지만, 그의 눈빛만 보고도 이제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시하가 몸에 있는 먼지를 보며 말했다.
“괜찮겠어요?”
그가 여전히 두 팔을 벌렸다. 어쩔 수 없지, 그냥 안아줄 수밖에. 시하가 달려가 그를 안고 힘껏 등을 두드려주었다. 몸의 먼지가 사방으로 휘날리며 짙은 향기를 뿜어 댔다.
“저 이제 출관(出關)이에요!”
“그래, 콜록, 나오면, 콜록콜록, 좋지! 콜록콜록콜록.”
기침을 그렇게 하면서 왜 계속 안고 있는 거지.
후지가 손으로 거진결(去塵結)을 만드니, 몸의 먼지도 그 지독한 냄새도 순시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후지를 밀치고, 새 옷처럼 깨끗해진 자신의 옷을 만졌다. 그녀는 거진결이라는 편리한 방법이 있었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다.
“후지, 저 이제 결단할 수 있죠?”
이제 2년 남았으니 서둘러 준비해야 했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했다.
“오라버니라고 불러야지. 결단은 아직 안 돼.”
“왜요?”
이제 다 안정된 거 아니었어?
그때, 필홍이 어디에서 왔는지 갑자기 나타나 눈을 흘기며 말했다.
“결단이 무슨 배추 심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건 줄 알아? 금단으로 들어가는 건 일반 수행하고는 달라! 대체로 금단으로 들어가려면 영근에 부합하는 심법(心法)을 수련해야 돼. 너 그 심법 갖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