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189)

“이봐요. 사람 놀라게 하지 마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공중의 그 육각형 구멍으로부터 아주 강한 흡입력이 나오더니 땅에 있던 얼음, 부서진 돌 조각들을 감췄다. 대전 바닥에 깔려 있던 타일 조각들이 종이처럼 가볍게 떠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범위를 확장시키며 높이 솟구쳤다.

“어서 도망가요!”

시하는 깜짝 놀라 후지를 이끌고 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등 뒤에서 강력한 흡입력이 느껴지더니 그녀가 제대로 서기도 전에 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은인님!”

용오천이 재빨리 달려와 그녀의 손을 잡았지만 그녀를 잡아당기기는커녕 본인마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지가 주문으로 용오천의 발목을 묶어 공중에 있는 두 사람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진법을 사용해 자신의 몸을 바닥에 고정시켰다. 순식간에 세 사람의 몸이 천 조각인 양 공중에서 휘날렸다.

바닥에 있던 돌조각들이 전부 깜깜한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세 사람은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날아오는 돌 조각이 머리와 얼굴을 때려도 피할 수가 없었다. 돌조각과 모래 먼지가 전부 중간에 있는 용오천에게로 날아왔다. 용오천이 시하의 얼굴에 피를 뿜었다.

“오두방정!”

그는 그래도 그녀의 손을 더 힘껏 잡았다. 뿌드득하며 그의 팔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은인님, 꽉 잡아요!”

그가 힘겹게 다른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시하가 다른 손을 내밀려 고개를 돌리려다 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덩굴로 그들을 잡아당기고 있던 후지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고 있었다. 마치 어떤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처럼 뼈가 드러나는 상처들이 가득했다. 그가 입고 있던 흰색 옷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후지!”

“걱정하지 마, 오라버니가 금방 구해줄게.”

구해주긴 개뿔! 몸이 그 모양인데? 왜 그의 몸에 갑자기 이렇게 많은 상처들이 난 거지?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설마, 혼돈의 기?

공양이 혼돈의 기는 영기가 있는 모든 물건을 삼킨다고 했었다. 그리고 수행 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반응을 일으킨다는 말도 했었지. 주위에 혼돈의 기가 점점 더 많아졌으니 이렇게 가다가는 그도 낭떠러지에 떨어지던 노인네들처럼 될 듯했다.

그럼에도 후지는 자기 목숨도 위태한 상황에 끝까지 그녀를 구해주려고 하고 있었다. 오라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들 사람을 걱정하게 만드는 걸까!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때 중간에 끼어 있던 용오천이 울상이 되어 말했다.

“은인님, 그렇게 마구 움직이다가 안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어요! 동굴이 손바닥만큼 작아 보여도 위력은 엄청난 모양이에요. 방금 큰 돌덩이가 하나 빨려 들어갔는데 그래도 구멍이 보수되지 않았어요. 저희는 빨려 들어가면 끝이에요.”

“뭐라고요?”

“저 구멍은 보수할 수 없다고요!”

“보수, 복원!”

머릿속에 뭔가 반짝하며 뭔가 떠올랐다. 휴대전화에서 말했던 그 미션, 복원. 설마 이 동굴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이 육각형의 구멍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 거지? 잠깐. 육각형?

그녀는 갑자기 휴대전화 안으로 빨려 들어갔던 혼원비급을 떠올리곤, 급히 몸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애플리케이션의 상품 메뉴를 열었다. 육각형 모양의 휘장이 휴대전화 위로 떠올랐다. 작긴 하지만 모양은 그 동굴과 똑같았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 것 같아. 오두방정, 날 놔줘요.”

“네? 제가 놓으면 안으로 빨려 들어갈 텐데요.”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어서 놔요!”

시하가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치자, 바로 몸이 가벼워지면서 그녀는 깜깜한 동굴로 빨려 들어갔다. 시하는 정확한 타이밍을 봐서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의 휘장을 들어 동굴에 겨누었다. 귓가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휘장이 확대되더니 완벽하게 구멍에 들어가 맞춰지면서 순식간에 흡입력이 사라졌다.

휘장의 주위에서 금빛이 비치고 있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원래는 밝은 회색빛을 띠고 있던 휘장 표면에 희미하게 컴퓨터 소스 코드 같은 초록색 숫자들이 나타나더니 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잠시 후 휘장 전체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마치 그 동굴이 애당초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하가 중심을 잃고 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띵! 휴대전화 알림음이 울리더니 위에 초록색 글자가 나타났다. 미션 완성!

안도할 새도 없이 후지가 생각난 그녀가 물고기처럼 몸을 일으키더니 정신없이 뛰어갔다.

“후지, 오두방정!”

시하는 마음을 가다듬고 두 사람을 자세히 살펴봤다. 용오천의 입에서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금 그녀를 잡아당겼던 손은 심하게 뒤틀려 있어 보기에도 상처가 깊어 보였다.

후지는 더 심각했다. 어찌나 상처가 많았는지, 온몸이 피로 얼룩져 있고 호흡도 희미했다. 몸에서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던 마지막 불빛이 점점 밝아지더니, 그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여우의 모양으로 돌아갔다.

“후지! 후지!”

시하가 몇 번이나 불렀지만 여우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몸은 바뀌었지만, 상처는 그대로여서 살이 뒤집혀 뼈가 드러나고 꼬리까지 두 가닥 잘려 있었다.

용오천이 일어서려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죠? 위에 그 동굴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근데 이 사람의 상처는 왜 점점 더 많아지는 거예요?”

“혼돈의 기 때문이에요. 수행 능력이 높을수록 더 큰 반응이 온다고 했어요.”

그 구멍이 닫히긴 했지만 안에서 나온 혼돈의 기가 아직 다 사라지지 않고 모든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후지도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던 노인들처럼 될 듯했다.

시하는 고개를 들어 위를 봤다. 방금 동굴이 일으킨 지진으로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선부가 갈라져 위에 일 미터 정도의 틈이 생겼고 하늘도 보였다. 출구는 확보되었지만 거기까지 올라가는 중간에 혼돈의 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시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분명 나갈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런데 저는 왜 아무런 느낌이 없는 거죠?”

“혼돈의 기는 영기가 있는 물건을 삼켜요. 당신은 선인이 아니니 당연히 괜찮은 거죠.”

“하지만 은인님도 괜찮으시잖아요.”

시하는 순간 멍해졌다.

“그러네! 전 왜 괜찮은 걸까요?”

수행 능력이 낮긴 하지만 혼돈의 기의 공격이 이렇게 심한데 아무 일도 없다니! 공양도 수련 초기에 떨어졌지만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이건 뭣 때문이지? 설마 내 몸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녀에게 유일하게 특별한 것은 영근이었다. 방금 후지는 제 몸의 영기와 혼돈의 기가 같은 부류라고 했었다. 설마…….

시하는 고개를 들어 어지럽게 도망가고 있는 흑백 기체들을 바라봤다. 상관없어! 이렇게 가다가는 후지가 N번째 산산조각 난 노인 시체가 될 거야. 그녀가 용오천과 후지를 부축해 혼돈의 기가 제일 약한 구석으로 데려갔다.

“오두방정, 후지를 보고 있어요. 제가 가서 이 혼돈의 기를 해결하고 올게요.”

용오천이 머뭇거리다가 그제야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인님, 조심하세요.”

그녀는 몸을 돌려 혼돈의 기가 제일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리를 포개고 중간에 앉아 정신을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집중시키고 기를 몸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녀가 생각한 방법은 바로 혼돈의 기를 체내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후지가 그녀의 영기가 혼돈의 기와 같은 부류라고 했던 것은 혼돈의 기가 원래 음과 양, 두 가지의 영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과 양이 서로 상극이라 두 가지 영기가 동시에 나타나면 이렇게 큰 살상력을 나타내면서 서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영근은 양기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혼돈의 기 중에 양의 영기를 전부 끌어들였다. 그렇게 되면 음기에 속한 영기만 남아 있게 되어 공격 대상이 사라지면서 자연히 공격을 멈추게 되어 있었다.

시하는 모든 정신을 그녀의 몸 밖으로 집중시켰다. 역시 그녀의 생각대로 그 흑백의 기체 위에 짙게 깔려 있던 영력 중 흰색 부분이 가까이 다가오고 검은색 부분은 그녀를 멀리했다. 게다가 각종 색깔의 오행영기가 점차 이 두 영기의 영향을 받아 모이기 시작하더니 흑백의 영기로 바뀌었다. 이런 식이라면 혼돈의 기는 점점 더 많아 질 듯했다.

시하는 망설이지 않고 흰색의 영기들을 몸 안으로 끌어들였다. 한꺼번에 영기가 벌떼처럼 그녀의 단전으로 몰려 들어왔다. 일각도 채 되지 않아 단전이 이미 꽉 찬 것이 느껴졌다. 단전 안에 있는 그 여의주가 흰색의 밝은 빛을 뿜더니 대량의 영기가 아래 있는 영근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새싹이 급속도로 자라면서 원래는 세 개밖에 없던 영근에 삐죽하고 두 개의 잎사귀가 더 자라났다.

영기는 계속 흘러 들어오고 있었지만 영근의 어린 싹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했다. 계속 자라나지 못하고 오히려 잎사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수행 계급은 원래 연기오층(練氣五層)이었다가 전에 불여우를 거두면서 두 계급이 낮아진 것이었다. 때문에 이렇게 짙은 영기를 끌어들였으면 당연히 예전의 계급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은 어려웠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고 과한 영향이 꼭 성장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계급을 높이는 것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양기를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뿐.

어린 싹 위에 균열이 점점 더 심해져서 온몸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칼로 몸을 베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취제도 맞지 않고 생으로 몸을 베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하는 이를 악물며 멈추지 않았다. 최대한 몸의 통증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머릿속으로 국가를 불렀다.

그러나 영기를 아직 5% 정도밖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아직 95%나 남았지만 할 수 있어, 반드시 여기서 나가고야 말 거야!

어린 싹의 균열이 점점 더 심해졌다. 그녀의 몸도 영근처럼 영기가 들어오면서 여기저기 상처가 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몸에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체내에 점점 더 많은 영기가 들어와 영근 위의 여의주가 팽이처럼 돌아갔다. 돌면 돌수록 여의주가 점점 더 희고 밝은 빛을 냈다.

여의주가 드디어 부서지려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린 싹에서 삐죽하고 여섯 번째 잎사귀가 올라왔다. 그러더니 영기가 들어가는 속도가 갑자기 배로 빨라졌다.

이어서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 그녀의 수행 계급도 급격히 오르면서 칠층, 팔층, 구층, 이어서 대원만(大圓滿)에까지 이르렀다.

어린 싹이 흔들리며 갈라진 싹의 틈새로 영기가 새어 나왔다. 영기가 단전을 향하더니 몸 전체의 경맥을 지나면서 모든 경맥과 충돌했다. 시하는 온몸의 경맥이 갈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피가 마치 땀처럼 밖으로 흘러나왔다. 몸 전체가 부어오르면서 숨쉬기도 어려워졌다. 의식이 모호해지며 온몸에 피곤이 몰리니 그냥 그대로 눈을 감고 싶었다.

안 돼! 아직 해야 할 것이 많은데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의식을 다해 머릿속에 각종 힘이 되는 글귀들을 떠올렸다. 보검의 날렵함은 연단에서 나오고, 매화꽃이 향기로운 건 혹한을 견뎌 냈기 때문이다. 추위를 겪지 않고 어찌 향기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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