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189)

지면이 더 심하게 흔들렸다. 하늘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고, 땅도 갈라지기 시작하여 돌기둥조차 무너져 내렸다. 척후의 말이 맞았다. 두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어서 남아 있어 봤자 도움은 주지 못하고 목숨이나 잃을 듯했다.

시하가 용오천을 이끌고 출구를 향해 몇 걸음 뛰어가고 있는데 돌덩이 하나가 떨어져 내려왔다. 시하는 깜짝 놀라 용오천을 앞으로 밀어내고 자신은 뒤로 피했다.

“오두방정, 먼저 출구로 가세요. 금방 따라갈게요.”

“하지만.”

“제발 말 좀 들어요. 당신 몸에 금계 물건이 너무 많으니까 우선 출구에서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

“아, 그것도 괜찮겠네요!”

용오천이 그제야 알아듣고 앞으로 뛰어갔다. 시하는 입술을 깨물고 고민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먼저 가라고는 했지만, 동료를 혼자 남겨 놓고 그렇게 빨리 도망가는 건 아니잖아?

“하하(夏夏)!”

척후가 놀라서 다시 나타난 시하를 바라봤다. 왜 다시 돌아온 거지?

시하가 하늘 위 세 개의 진법이 두 개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봉인하려는 건 아니지? 말해 봐, 내가 뭘 도와주면 되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구전현천진(九轉玄天陳)만이 허공을 막을 수 있어요. 당신은 도울 수 없으니 어서 나가세요!”

“이 상황에 지금 장난해? 다 같이 죽으려고?”

그녀는 본인이 연약해서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못해도 옆에서 응원이라도 해주면 그것도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화신이라고 내 능력을 지금 우습게 보는 거야?”

“알고 있었어요?”

“내가 바본 줄 알아?”

시하가 눈을 흘겼다. 이제 모른 척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어느 화계 영수가 갑자기 빙계 술법을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수사들의 일에 대해서도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잖아.”

방금 계한이 엉뚱한 짓을 했을 때 그가 빙계 술법을 쓰는 것을 보고 바로 알아봤었다.

“부탁인데 다음부터 사람을 속이려면 좀 그럴듯한 이름으로 지으세요. 척후라니. 너무 뻔하잖아요, 후지!”

그리고 그 자꾸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은 자제했어야지. 척후, 아니 후지의 눈빛이 순식간에 온화해졌다. 곧 흘러내릴 듯 눈물을 글썽이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다.

누이가 나를 알아보다니. 반은 불여우의 몸을 하고 있어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는데 그녀가 알아보다니 너무 기쁘다.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 역시 내 누이야, 내 누이!

“하하(夏夏).”

“은인님!”

후지가 손을 뻗어 시하를 안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불청객이 나타났다.

“오두방정! 젠장, 왜 돌아왔어요?”

문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용오천은 곧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원래는 거기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품에 있던 은자를 떨어뜨려 출구가 무너졌어요.”

“출구가 무너졌다고요?”

“네.”

젠장, 이제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겠네.

후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용오천을 쏘아봤다. 이 사람은 제대로 하는 일은 없고 맨날 망치고 돌아다니네. 오는 길에도 매번 나서며 누이를 힘들게 하더니, 이걸 확 죽일까.

용오천은 몸이 뻣뻣해졌다. 은인님의 반려동물이 뭔가 무서워졌는데? 내가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나간다고 할까?

시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두 번째 진법이 이미 혼돈의 기의 공격에 거의 무너져 가고 있고, 다른 하나도 위태한 상태였다.

“후지, 이제 어떻게 하죠?”

시하의 말에 용오천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후지는 누구예요? 저 사람의 이름은 척후 아니에요?”

시하는 고개를 돌려 그를 흘겨봤다.

“당신은 알 필요 없어요.”

후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이제 이 허공을 막아야만 여기에서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신식을 한 개밖에 갖고 있지 않아 구전현천진을 딱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어. 그리고 그걸로 저 균열을 봉인하긴 했지만…….”

혼돈의 기. 그 구멍 주변은 혼돈의 기가 깔려 있어 그가 진을 펼친다고 해도 바로 뚫려 버려 작은 균열조차도 봉인하기 어려웠다.

“제가 뭘 할 수 있죠?”

누이가 도와준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힘들면 어떡하지? 마음 아프잖아!

시하의 물음에 후지는 복잡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의 기는 깨끗하여 이 혼돈의 기와 같은 부류에 속해. 네가 모든 영기를 저 구멍에 풀어놓기만 하면 혼돈의 기가 알아서 사라질 거야.”

“그렇게 간단하다고?”

신식이 한 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그의 몸이 아직은 여기에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의 몸은 지금 불여우의 몸을 입고 있어 신식이 위에만 붙어 있었다. 시하는 그가 금단기의 몸으로 화신기의 술법을 사용해도 정말 괜찮은 건지 의심스러웠다.

“이 진법을 사용해도 정말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

누이가 나를 걱정해주고 있어. 그는 감동한 나머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역시 부드러워.

“오라버니가 보호해줄게.”

시하가 그의 손을 치웠다. 갑자기 나타난 호구 오라버니가 너무 과분하게 잘해준다는 생각에 어색했다. 그때 용오천이 영문을 알 수 없어 손을 들고 질문했다.

“무슨 오라버니요?”

“신선계의 일이니, 당신은 몰라도 돼요!”

“네.”

시하의 대답에 용오천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죠?”

용오천이 신선계의 일은 이해할 수 없지만 뭐라도 돕겠다고 나섰다. 시하는 무를 꺼내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모퉁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 들고 저쪽에 앉아 있어요.”

“알겠어요!”

용오천이 모퉁이로 걸어가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 이것 또한 진법의 일부분이겠지. 드디어 은인님을 도울 수 있게 됐어.

“시작하죠!”

시하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온몸의 영기를 끌어 모았다. 후지가 손에 있던 결인을 움직이자 공중에 하나 남아 있던 금색 법진이 바로 열렸다. 진법의 방해가 없으니 흑백의 기류가 미친 듯이 주위로 새어 나왔다. 땅은 더욱 심하게 흔들리고 벽의 균열은 점점 더 커져 대전까지 이어졌다.

시하는 기회를 노리다가 바로 모든 영기를 풀어놨다. 밝은 빛이 몸으로부터 나와 바로 그 육각형의 구멍을 향해 퍼져 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어지럽게 퍼지던 흑백 기류가 바로 물러서면서 그녀와 그 구멍 사이에 길을 만들었다.

“후지.”

“오라버니라고 해야지!”

손안의 법진이 이미 결인을 마치고 거의 출구에 다다른 순간, 다섯 개의 밝은 빛줄기가 그녀의 영기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올라갔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균열 조각들이 하나로 모이더니 오각형 별 모양의 진을 만들었다. 한 꿰미의 법부들이 진 위에 나타나더니 밝은 빛이 들어왔다. 진 주변의 다섯 모퉁이에 갑자기 얼음처럼 맑고 투명한 영검이 나타나 돌기둥처럼 대전의 한 가운데에 꽂히더니 그 구멍 주위를 단단히 둘러쌌다.

진을 완성하자 방금까지만 해도 하늘땅을 뒤흔들던 진동이 갑자기 멈추었다. 시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온몸의 기운을 쏟아 내고 나니 나른해졌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호구 오라버니가 비틀거리는 걸 발견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부축했다. 스스로도 다리에 힘이 풀려 있는 상태라 두 사람 모두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용오천이 달려와 두 사람을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전 괜찮아요!”

시하는 기운이 조금 없을 뿐이라 괜찮았다.

“당신은요?”

후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네가 안아주면 바로 괜찮아질 것 같아.

그런데 그 순간 시하가 그의 머리카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신 머리카락이.”

그의 머리카락이 점점 검붉은색으로 변해 가고, 눈빛도 붉게 바뀌고 있었다. 이건 괜찮은 게 아니잖아!

“괜찮아. 이 몸의 발색 자체가 원래 붉은색이라서 그래.”

“하지만 당신 머리에 귀가 나왔어요.”

“걱정할 것 없어. 귀가 없는 불여우를 본 적 있어?”

“그게 아니라, 꼬리도 나왔다고요!”

“괜찮아. 꼬리 없는 불여우를 본 적 있어?”

“하지만 몸 전체에서 빛이 나오고 있잖아요!”

“괜찮아, 조금 있다가 괜찮아질 거야.”

“후지.”

“착하지, 오라버니라고 불러.”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는 거예요?”

영기를 다 썼다고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젠장!

후지는 진법 한 번에 모든 영기를 소진한 자신의 몸이 한스러웠다.

“아예 여우로 돌아오지 그래요.”

그러면 영기도 좀 더 빨리 회복되는데 왜 고집을 피우는 거지?

“그럴 필요 없어.”

그는 위대한 오라버니가 되고 싶었다. 절대 누이에게 약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 신식을 다시 가져와 봐요.”

“안 돼.”

그사이에 네가 도망가면 어떡하라고. 안 가.

“저한테 영기가 조금 있으니 나눠줄게요.”

“안 돼.”

좋은 오라버니는 누이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싫어.

도대체 어쩌겠다는 건가 싶어 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말만 잘 듣더니, 지금 몸이 바뀌었다고 성격까지도 바뀐 거야? 이건 오라버니가 아니라 남동생이잖아. 몰라, 그럼 우선 여기서 탈출하고 보자!

그때 용오천이 두려운 표정으로 높이 솟은 다섯 자루의 영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은인님. 이 검들이 이렇게 큰데, 다시 무너지진 않겠죠?”

“무슨 헛소리를.”

뿌지직.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지더니 다섯 자루의 영검이 순식간에 끊어졌다. 당황스러웠다. 용오천의 말이 씨가 되었는지 다섯 자루의 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방금 한 말 어서 취소해!

그 순간, 진법의 반격으로 후지가 피를 토했다.

“후지!”

시하가 그의 곁으로 급히 뛰어갔다.

“이건 허공이 갈라지는 게 아니야.”

“허공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럼 뭐지?

후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허공이 갈라지는 것으로는 절대 구전현천진을 뚫을 수 없었지만 구멍으로부터 희미하게 천지의 기운이 느껴졌다.

일 분쯤 지나자 진법이 전부 무너졌고 전보다 몇백 배는 큰 진동이 느껴졌다. 땅과 산들의 흔들림을 보니 적어도 규모 10 정도의 지진이 온 듯했다. 하늘땅이 갈라질 것처럼 흔들리며 엄청난 양의 돌조각과 모래들이 떨어져 내려오더니 갑자기 구멍으로 전부 빨려 들어갔다. 혼돈의 기가 다시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전보다 더 많은 흑백의 기류가 곳곳에서 미친 듯이 춤추었다.

후지의 얼굴이 더욱 고통스러워 보였다. 마치 엄청난 힘에 눌린 것처럼 이마에는 굵직한 땀방울이 솟아오르고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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