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189)

“왜요?”

그녀의 표정이 이상한지 옆에 있던 두 사람이 물었다. 시하는 심호흡하며 찬 공기를 들이마셨고 용오천을 붙잡더니 흥분하기 시작했다.

“오두방정! 당신들이 말하는 그 못되고 악랄한 마존의 이름이 대체 뭐죠?”

용오천이 깜짝 놀라 솔직하게 대답했다.

“마존의 이름은 마존이죠! 본명은 그의 누이 이름이 ‘시하’니까, 아마 성은 ‘시’일 거예요.”

“이름은요? 이름!”

“어, 그건 저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 순간, 척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요.”

시하는 마음이 초조하여 돌아서서 다시 척후의 손을 잡았다.

“어서 말해 봐. 이름이 뭐야?”

“동.”

“동?”

시하는 갑자기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느낌이 들었다. 마음에 유일하게 간직했던 희망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듯해 실망감으로 마음이 아프고 시렸다. 그녀는 몸을 돌려 나무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용오천은 영문을 알 수 없어 갑자기 모든 활력을 잃은 듯한 시하를 보면서 말했다.

“은인님, 무슨 일이에요?”

“하, 하하. 제가 참혹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거든요. 마존이 정말 제 오빠였어요!”

시동. 시간의 ‘시’에, 춘하추동 할 때의 ‘동’이었다. 28년간 항상 그녀와 같은 호적에 올라 있던 이름. 법률적으로든 혈연관계상으로든 그는 틀림없는 그녀의 오빠였다.

어렸을 때에는 그녀의 머리도 묶어주고, 밥 먹을 때에는 의자도 빼주고, 잠잘 때에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녀에게 연애편지를 전해주던 남학생을 혼내주던 친오빠였던 것이다.

그런 친오빠가 수선계에선 악명이 자자하여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니. 게다가 그녀에게는 미친 마존의 누이라는 엄청난 명성을 남겨주었다. 예전에 사람들이 마존의 누이라고 공격했을 때에는 억울했는데, 이제 보니 정말 마존의 누이일 줄 누가 알았을까. 시하는 괴로워 울고 싶었다.

“말도 안 돼요! 마존은 100년 전의 사람인데, 어떻게 당신과 관계가 있을 수 있죠?”

용오천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름을 고치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혈육관계를 함부로 인정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시하는 힘없이 손에 들고 있던 쪽지를 펼쳤다. 위에는 아주 간략하게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주에서 제일 큰 사핍(師逼) 마존 시동, 여기에 머물다 가다.]

“확실히 오빠의 필체야.”

이 삐뚤삐뚤한 글씨체는 그녀가 열 살 때 그에게 가르쳐준 거라 죽어서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얹고 천박하게 웃는 이 이모티콘은 그녀의 그 모자란 오라버니가 문자를 주고받을 때 습관적으로 쓰던 것이었다.

“마존은 정말 제 오빠가 맞아요. 친오빠요!”

오빠도 이 세계로 왔을 줄이야. 그것도 중간에 100년이라는 시차가 있었다니! 차원 이동을 하면 그냥 할 것이지 왜 조용히 지내지 못한 걸까? 마존은 또 뭐고? 이렇게 중2병스러운 직업은 어떻게 갖게 된 거지? 어려서부터 웃긴 놈이라는 소리는 들었어도 중2병의 증상은 전혀 없었는데. 수선계에 와서 그 병이 도진 걸까? 뒤늦게 반항기가 온 거야?

”아니에요!”

척후가 뭣 때문인지 갑자기 화를 냈고 시하를 끌어당기며 분노해서 말했다.

“그는 당신의 오빠가 아니에요! 당신에게 오라버니가 있어도 마존은 아니라고요!”

척후가 이를 악물며 말하자 시하는 어리둥절해했다. 나도 아직 화를 내지 않았는데 네가 왜 화를 내?

시하는 다른 생각은 잠시 접고 위로하듯 그를 안아주었다.

“진정해.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일단 여길 떠나자!”

바쁘게 반나절을 보냈지만 미션은 여전히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상자 속이 텅 비어 있는 걸 보니, 역회륜은 아마도 오라버니가 가져간 것 모양이었다.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푸른 인영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쳐 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방금까지 손에 들고 있던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한 사람이 검을 타고 몇십 걸음 밖 공중에 서서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역회륜이 드디어 내 손안에 들어왔다!”

“계한?”

시하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언제 따라왔지?

“저 사람 상처는 괜찮은 건가?”

가슴을 가로지르고 지나갔던 칼자국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척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영기가 넘쳐나고 횡설수설하는 걸 보니 광영단(狂靈丹)을 먹었네요.”

“광영단?”

그건 또 무슨 약인데? 척후는 미간을 좁히며 설명했다.

“광영단은 먹을 때 즉각적으로 몸에 있는 영기들을 자극시켜 일각 내로 수련 정도가 원래 있던 승계보다 한 단계 더 오르게 돼요. 하지만 영근이 원신(元神)까지 버티지는 못해 수련 정도가 원신까지 이르게 되면 소멸하죠. 말 그대로 자살약이란 겁니다.”

“하하하하, 이 역회륜만 있으면 광영단을 먹은들 뭐가 문제겠어?”

계한의 안색이 완전히 변해 있어 전에 봤던 그 온화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약에 중독된 모양이었다. 계한은 상자를 더 꽉 붙잡고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

“역회륜, 이 역회륜만 있으면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으니, 어떤 법보든 손에 넣을 수 있지 않겠어? 하하하하하!”

그는 미친 듯이 웃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바로 상자 뚜껑을 열었다.

“뭐야. 왜 비어 있지?”

계한이 사납게 세 사람을 쏘아봤다. 마치 사냥감을 찾는 야수처럼 험악했다.

“그 상자는 원래부터 비어 있었어요. 우리가 가져간 게 아니에요.”

시하는 손을 내저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상자를 갖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내가 그냥 줄 수 있었는데. 계한은 믿지 못하고 손에 있던 상자를 던졌다. 그러자 천만 자루의 영검들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거짓말! 역회륜을 나에게 줘!”

시하는 뒤로 물러섰다. 온 하늘을 덮은 검기(劍气)가 그녀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순간 그 기에 눌려 호흡이 어려워지더니 가슴에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전에 계한이 공격했을 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모든 대전 안에 감히 덤빌 수 없는 위압감이 가득했다.

그녀는 갑자기 그 광영단이 승계를 높여준다던 말이 생각났다. 계한은 원래 금단이었으니 지금은 원영에 오른 것이다. 용오천은 바로 입을 벌리고 피를 토했고 시하도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듯했다.

척후가 놀라 그녀를 부축하니 온화한 영기가 몸으로 흘러들어 공포감을 사라지게 했다. 척후는 공중에 있는 계한을 보더니 마치 천 년의 한기를 품은 듯한 차가운 표정이 되어 소리쳤다.

“감히!”

그녀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가더니, 하늘을 가득 덮었던 영검이 갑자기 재가 되어 날렸다. 온 대전 안에 한기가 퍼지더니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였다.

계한은 피를 뿜으며 공중에서 떨어졌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손쓸 틈도 없이 그의 몸에서 모든 영기가 빠져나갔다. 어떻게 단전이 이렇게 산산조각이 날 수가 있지?

“당신, 당신 설마.”

시하도 깜짝 놀라 눈앞에 가득한 얼음들을 보았다. 척후는 불여우였는데 언제부터 빙계로 바뀐 거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묻기도 전에 용오천이 갑자기 두려운 기색으로 앞을 가리켰다.

“은인님, 저길 보세요!”

방금 계한이 박살 낸 그 상자 조각들이 갑자기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날아올라 공중에서 어떤 형태를 만들어 냈다. 잠시 후 공중에 별 모양의 옥벽이 나타났는데, 한쪽은 검은색으로 다른 한쪽은 흰색으로 두 가지의 다른 빛을 비추고 있었다. 특이하게 한쪽은 눈부신 빛을, 다른 한쪽은 칠흑같이 검은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들이 순식간에 모든 공간을 덮어 버리더니 대전이 순식간에 흑백의 두 세계로 나뉘었다.

“이건 뭐지?”

척후는 미간을 좁히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두 가지의 상반된 빛은 얼마 버티지 못했다. 대략 몇십 초쯤 지나자 갑자기 찌지직 소리와 함께 옥벽이 갈라졌기 때문이다.

시하는 뭔가 큰일이 일어날 듯한 예감이 들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부서진 조각들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낼 것처럼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옥벽 안으로부터 아주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허공이 무너졌어요!”

척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공?”

차원 이동을 하던 그 허공을 말하는 건가? 화신 이상의 수사만 입구를 열 수 있는 것 아니었어? 갈라진 틈은 뭐지?

척후가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무거운 표정으로 결인을 했다.

“하하(夏夏), 여길 떠나요. 빨리요!”

“응?”

그가 설명하고 있을 사이 그 흑백의 옥벽이 모두 부서졌다. 공중에는 육각형의 구멍이 생겨, 마치 어떤 사람이 공중에서 그 부분만 잘라낸 듯 거기만 비어 있었다. 흑백의 기류가 서로 뒤섞여 새어 나오더니 점점 더 넓게 퍼졌다. 이건, 혼돈의 기!

척후의 손에 있는 진법도 동시에 세 개의 금색 광선을 만들었다. 세 개의 복잡한 금색 법진이 구멍을 막더니 그 틈으로 새어 나오던 기류도 막아 버렸다. 하지만 진법의 효과는 한계가 있어 몇 번 공격하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법이 비틀거리며 형태가 바뀌더니 안에서 흑백의 기류가 터져 나왔다. 역시 몸에서 만들어 내는 이 법진으로는 막을 수 없는 걸까? 피비린내를 풍기며 척후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척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척후도 막지 못하는 것이 있었어?

“여기를 떠나요. 어서요! 아니면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요.”

“그럼 너는?”

“저요?”

척후가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마치 기분 좋은 말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차갑던 얼굴이 갑자기 온화하게 활짝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저 구멍을 막을 수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정말 괜찮아?”

이 불여우, 내가 무식하다고 속이는 건 아니겠지?

“네.”

그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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