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오천이 작은 입구의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보세요. 이 위에도 글자가 있어요. 하지만 이런 문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요?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아시겠어요?”
시하가 그쪽으로 다가가 자세히 두 글자를 보려다가 깜짝 놀랐다. 머리에서 갑자기 띵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왜 그렇게 익숙했는지 그 이유를 찾았다. 위에는 그녀에게 매우 익숙한 간체자가 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큰 짐, 작은 짐, 모두 검색대 위에 올려놓으세요!’
“……”
이건 공항에 있는 보안 검색대잖아? 좌측의 문은 검색대 입구고, 우측에 있는 건 엑스레이 검색 기계야. 척후가 문 내부의 진법은 금계에 속한다고 하더니. 보안 검색대가 금속품을 검사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맞는 말이었어! 전에는 비상구, 이번에는 보안 검색대. 그리고 그 간체자들은 설마…… 이 선부의 주인도 현대에서 차원 이동으로 이곳에 온 걸까?
그녀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자 용오천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은인님. 설마 저 글자를 알아보시는 거예요?”
시하가 경직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우러러보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은인님은 역시 학식이 해박하시군요. 이런 이상한 문자까지 다 아시고!”
전직 반 문맹이었던 시하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이 위에 있는 글은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시하가 돌아서서 그 문 옆으로 다가가 한 손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척후가 깜짝 놀라더니 바로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아냐, 괜찮아.”
시하는 손을 넣어서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이건 보안 검색대가 맞아. 아마 금속 제품에만 반응할 거야.
척후는 놀란 얼굴로 그녀의 손을 여기저기 몇 번이나 살펴보더니 그제야 안심했다. 하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 것 같아.”
이 선부의 주인이 차원 이동을 한 사람이든 아니든 우선 들어가고 나서 보자.
“척후, 오두방정. 몸에 지닌 금속, 아니. 금계의 물건들은 모두 꺼내요. 이 좁은 입구 안으로 법기든 장식품이든, 영기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모두 던져 버리세요.”
그녀는 들고 있던 비검을 옆에 있는 작은 입구로 집어 던졌다. 붉은 불빛이 들어오더니 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하는 주머니를 내려놓고 용오천에게서 받았던 은자를 꺼내 똑같이 입구 안으로 집어 던졌다.
“어서 버려요. 그렇게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시하는 그 자리에 서서 미동도 않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척후와 용오천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본인들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때 용오천이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
“설마 이게 바로 ‘사득’의 의미인가요? 먼저 버려야만 얻을 수 있고, 몸에 지닌 모든 재물을 버려야만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보안 검색대니 뭐니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두 사람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비를 풀기 시작했다. 척후는 손에 있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안으로 던졌다. 용오천은 앞뒤로 몸을 뒤지며 금목걸이를 꺼내더니, 또 조금 있다가는 금반지를, 품에서는 골드바를 몇 개나 꺼내 놓았다. 무거운 은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많았다. 역시 부자야.
“이제 금계 물품은 더 없는 거죠?”
시하는 두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웬만해선 엑스레이를 빠져 나갈 수 없다고, 난 녹의처럼 되고 싶지 않아.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반복해서 확인하고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문 앞으로 다가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척후가 갑자기 그녀의 손을 뒤로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제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마세요.”
그럼 나야 좋지. 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셋 중에 척후가 수행 능력이 제일 높으니 가까이에 있으면 나쁠 게 없었다.
역시 금속 장비들을 버리고 들어가니 진법이 공격하기는커녕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순조롭게 안으로 들어갔다. 대략 몇백 미터를 걸으니 그 법진이 가득한 문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텅텅 빈 커다란 대전의 중심에는 오래된 나무 책상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상자는 옥처럼 희고 정교했다. 안에서는 은은하게 금빛이 새어 나오고 있어 멀리서도 그 상자 안에 있는 깊은 영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저건 지보 역회륜?”
용오천 같은 무수(武修)도 상자 속의 물건이 보통의 물건이 아님을 눈치챈 듯했다. 보아하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이 그 전설속의 역회륜이 분명했다. 그는 호기심에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그 전설의 법보가 대체 어떤 것인지 보고 싶었다.
그때 시하가 그를 잡아당기며 작은 출구를 가리켰다.
“잠깐만요. 물건을 찾아가야죠.”
보안 검색대에 올려놓은 물건들이 아직 나오지 않았잖아.
“물건이요?”
용오천이 어리둥절해하며 묻자 잠시 후, 작은 출구에서 붉은 빛이 들어오더니 철커덕 소리를 내며 비검(飛劍) 하나가 떨어졌다. 시하가 던져 넣었던 그 검이었다. 이어서 빨간 불이 들어오더니 안에서 물건들이 쏟아졌다.
“이, 이것들은.”
전부 그들이 안으로 던졌던 물건들이었다.
“멍하니 서서 뭐 해요. 어서 가서 가져와요!”
시하가 손을 흔들자 척후는 순순히 걸어가더니 본인의 반지를 가져왔다. 용오천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득’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왜 다시 돌려주는 거지?
그녀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설명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두방정. 보안 검색을 마친 재산은 아무리 공기관이라 해도 함부로 가져가지 않아요.”
보안 검색은 뭐고, 공기관은 뭐지?
시하는 바닥에 쌓여 있는 용오천의 장비들을 그에게 돌려주고 대전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용오천은 영문도 모른 채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중앙에 있는 테이블 앞으로 다가서자 주위의 영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흰색 상자 속의 금빛이 더 밝아진 듯했고 상자는 마치 “나는 보배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시하는 보배를 찾으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 상자에 관심이 없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살펴보아도 애플리케이션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화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여기가 바로 모현선부의 제일 깊은 곳 아니야? 왜 미션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거지? 아니면 신호에 문제가 있는 걸까?
시하는 휴대전화를 들고 대전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어디를 가든 결과는 똑같았다. ‘선인’이라고 쓰인 애플리케이션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완전 사기잖아!
“은인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용오천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시하를 이상하게 보며 말했다.
“신호를 찾고 있어요.”
“‘신호’요? 그건 무슨 법보예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데.”
그녀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법보야말로 엄청 대단한 거예요. ‘신호’는 일종의 엄청난 기능을 가진 무소불능의 보배죠. 세간의 전설에서는 이를 ‘전신’, ‘이동’, ‘네트워크’ 등 세 대사(大師)로 칭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세 가지 능력을 모두 합쳐서 십계법보(十階法保)라고 부르죠. 이 법보는 모양도 얼굴도 없어서 무소부재의 능력을 갖고 있고,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아요. 그리고 주인 마음대로 2G, 3G, 4G의 세 가지 특수 영기를 사용할 수 있답니다.”
“세상에 그렇게 대단한 법보가 있어요? 그럼 어서 찾아봐요! 은인님이 그렇게 법보를 잘 알고 계시니, 어디에 숨었는지도 아시겠네요?”
“쓸데없는 소리. 저 지금 기둥 타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시하는 휴대전화를 들고 문어처럼 기둥을 감싼 채 내려왔다.
“이 법보는 높은 곳에 있을수록 찾을 확률이 더 높아요.”
용오천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소매를 걷어 올리며 걸어왔다.
“그렇군요. 은인님, 제가 도와 드릴게요.”
그래, 그 말이 언제 나오나 했어. 시하는 휴대전화를 그의 손에 건네주었다.
“이걸 받아요. 이건 ‘신호’를 찾는 법기로 ‘신호’에 가까워지면 여기에 있는 법진에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힘내요!”
“은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그 법보를 찾을게요.”
시하는 묵묵히 기둥을 오르는 용오천을 응원했다. 사람은 좋은 일을 하면 꼭 보답이 있다니까?
그때 척후가 의혹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신호’ 수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어떤 파의 소속인지 알 수 있을까요?”
“어……. 그건 아주 멀리 있는 데다가 오래된 문파여서 아마 들어 보지 못했을 거야.”
“그 문파는 어디에 있죠? 수련은 오래전부터 한 사람에게만 영기를 부어주는데 셋이 협력하여 하나의 힘을 내다니! 저도 이 수사들을 만나 뵙고 싶어요.”
“너는 만날 수 없을 거야.”
그들은 전설 속에만 있을 테니까.
“그 문파는 규칙도 많고, 보수적이라 함부로 나타나지 않아. 그리고 그곳에서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동물이 사람으로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 규칙도 엄청 까다로워.”
“그럼, 이 법보에 있는 특별한 영기는 또 뭐예요? 저는 양과 음, 오행은 들어 봤어도 투지, 쓰리지 이런 영기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거든요.”
너는 아는 게 너무 많아 탈이야.
“그렇게 자세한 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세상에 들어보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영수는 수련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많이 알아서 뭐 하려고?”
척후는 어리둥절해하더니 다시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격의 사나이, 용오천은 이미 모든 기둥을 한 번씩 오르내렸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은인님, 이 기둥 위에는 아무래도 법보가 없는 듯해요. 아니면 상자를 열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는 휴대전화를 그녀에게 돌려주며 책상 위에 놓인 상자를 가리켰다.
“이 상자는 뭔가 특별해 보여요. 안에 역회륜 아니면 그 신호라는 법보가 있을지도 몰라요.”
시하는 가장 중심부에 놓여 있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기어코 가장 중심에 도달해야만 미션이 완성되는 걸까? 시하가 상자를 들어 올리자 용오천과 척후도 시선을 상자에 고정시켰다. 상자 속의 금빛이 더욱 밝게 빛나며 어서 열어보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시하는 한참 살피고 나서야 상자 옆에 있는 밸브를 발견하고 힘껏 눌렀다. 눈부신 금빛이 새어 나오며 상자가 서서히 열렸지만, 오로지 향만 풍길 뿐 아무것도 없었다.
비, 비어 있네. 근데 쓸데없이 왜 그렇게 반짝거린 건데? 광고도 이렇게까지 과장하면 벌금을 문다고. 용오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법보는? 역회륜은?
“왜 비어 있는 거죠? 어? 안에 쪽지가 들어 있어요. 뭐라고 쓰여 있나 봐봐요.”
자세히 보니 확실히 상자에 흰색 종이가 놓여 있었다. 쪽지에는 한 줄의 검은색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이번에도 간체자였다. 필적도 어딘가 익숙하여 쉽게 읽혔다.
하지만 절반쯤 읽다가 멈추고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는 뒷부분을 읽을 수가 없었다. 마치 번개가 번쩍하고 머리를 치고 지나간 것처럼 눈앞에 별이 반짝거리고 입술은 경련이 이는 듯 덜덜 떨렸다.
저기요, 욕 좀 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