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189)

영상은 오래가지 않았고 대략 몇 초 후 사라졌다. 그리고 문 내부는 다시 어두워졌다. 시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한마디를 했다.

“안이 더 위험한 건 아니겠지?”

또 무슨 악귀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한참 머뭇거리는데 옆에 있던 빨간 옷의 여자 귀신이 갑자기 그녀 앞으로 다가와 뼈다귀 하나를 건네며 웃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 길을 탐색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시하는 말없이 뼈다귀를 받아 들고 위아래로 그 여자 귀신을 살폈다.

“이 귀신, 장래가 아주 기대되는 귀신이야.”

어떤 재수 없는 귀신이 그녀에게 이 뼈를 뽑혔을까.

여자 귀신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부끄러운 듯 또다시 음침하게 웃었다.

시하가 뼈다귀를 들고 들어가자 띠리릭 소리와 함께 안에 갑자기 불빛이 들어오면서 환하게 밝아졌다. 문 뒤에도 석실이 있었는데 축구장만 했으나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맞은편에는 희미하게 몇 개의 문이 세워져 있었다. 불빛은 두 절벽 사이에 있는 화로에서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별다른 위험은 없을 듯해 시하는 마음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 석실 중앙까지 들어섰는데 뒤에 문이 찌지직 소리를 내며 서서히 닫혔다. 빨간 옷을 입은 여자 귀신이 아쉬운 듯 뼈다귀를 흔들고 있었다. 염라대왕도 울고 갈 귀여움이네, 정말.

용오천이 난감한 얼굴로 맞은편에 있는 문들을 보며 말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두 개의 문밖에 없었는데, 이번엔 왜 이렇게 많지.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거죠?”

시하도 할 말이 없었다. 이건 뭐 문을 연달아 넘는 게임이라도 되는 건가? 왜 어딜 가도 문이 있는 거지.

“설마 전처럼 문 뒤에 이상한 게 있는 건 아니겠죠?”

그때 척후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이 문의 색깔을 보니 오행에 따라 세워 놓은 듯해요. 이 중에 분명 생문이 있을 거예요.”

용오천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오행? 하지만 문은 여섯 개잖아!”

모두 여섯 개의 문이 있었는데 색깔이 다 달랐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문은 금색, 그다음은 녹색, 남색, 홍색, 그리고 황색이었다. 모두 오행의 색깔들이었으니 척후가 오행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한 것이었다. 다만 왜인지 홍색의 문이 두 개나 있었다.

용오천이 홍색 문의 우측하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문 위에 웬 부호도 있네요? 정말 오행 각인이에요! 은인님, 다른 문에서도 보셨어요?”

시하가 다른 문들을 살펴보니 우측 하단에 같은 도안이 있었다. 모두 오행 부호로 홍색은 불 모양, 황색은 울타리 모양, 남색은 물방울 모양, 금색에는 작은 칼 모양, 녹색에는…….

용오천은 문을 관찰하고도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문들이 다 비슷한데,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하죠? 은인님, 제 생각에 출구는 그 홍색 문 중에 있는 듯해요. 하나만 선택해주시면 저희가 따를게요.”

시하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저 문을 택하겠어요. 녹색!”

“설마 은인님은 이 문에 숨겨진 비밀을 이미 알아내신 건가요?”

“하하.”

시하는 당황하며 녹색 문 위에 있는 도안을 가리켰다. 용오천이 몸을 숙이고 그곳을 바라봤고, 척후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곳을 바라봤다.

“이렇게 이상한 도안은 처음 봐요. 은인님은 뭔지 아시겠어요?”

“알…… 지요!”

그 도안은 그녀가 살던 집 계단 입구, 길 어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뛰어가는 모습의 녹색 사람은 그녀가 있던 세계에서 거의 무소부재인 존재였지!

용오천이 머리를 움켜잡으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도안이죠?”

“이 도안을 그쪽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지. 비상구.”

“네?”

그 도안은 바로 비상구 표시였다. 매 건물마다 반드시 부착해야 하고, 붙이지 않으면 절대로 건물 허가를 내주지 않는 그 비상구 도안이었다. 바로 옆에 EXIT 표기가 있는 바로 그 도안!

분명 어려운 문제였는데 도안을 확인하고 나니 갑자기 난이도가 확 떨어졌다. 도안은 마치 대놓고 사람들에게 이 문이 안전하니 들어가도 좋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선부의 주인이 일부러 사람들더러 더 많이 들어오라고 문제를 쉽게 낸 걸까?

“가요!”

시하는 고민하는 것도 이제 지쳐 주저하지 않고 바로 문을 열었다.

문 안에는 온통 하얀 빛으로 가득했다. 희미하게 진법의 파동이 느껴지는 걸 보니 전송진인 듯했다. 세 사람은 바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밝은 빛이 반짝거리며 눈앞에 갑자기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한참 풍경을 감상하던 찰나 척후가 갑자기 그녀를 끌어당겼다.

“조심하세요.”

그 순간 영검(靈劍) 한 자루가 그녀가 서 있던 곳에 내려와 꽂혔다. 깜짝이야! 비상구라고 하지 않았어?

“사람이 있는 모양이에요.”

척후의 말에 용오천이 칼을 뽑아 들며 공격 태세를 갖췄다. 시하는 그제야 그들 앞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바로 계한과 녹의였다. 녹의는 조금은 의외라는 듯 그들을 바라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더 꽉 부여잡았다.

“아직 살아 있었네요.”

“그래요. 실망했어요?”

시하는 이 사람들에게 별로 감정이 좋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원래 네 명이었던 사람들이 이제 두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앞서 온 것치고는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옷에 피 얼룩이 가득한 걸 보니 몸에 중상을 입은 듯했다. 오는 길이 그렇게 순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 두 사람이 왜 보이지 않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듯했다.

녹의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난의 연속이네요.”

“그런 것 같네요. 근데 두 사람, 함께 있던 다른 두 사람은요?”

시하는 그들이 몸에 상처까지 입은 데다가 두 명뿐이라 그제야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었다. 계한이 금단이지만 척후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었다.

녹의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검을 꽉 잡고 앞으로 뛰쳐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계한이 경고하듯 그녀를 말렸다.

“저희 사매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요. 부디 너그럽게 봐주세요.”

계한이 웃으며 미안하다는 듯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 전에 있었던 일은 아예 잊은 것처럼 보였다.

이 계한이라는 사람은 그래도 보는 눈이 좀 있네. 지금 형세가 어느 쪽이 더 불리한지 알고 있으니까. 시하도 그들과 더는 충돌하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가려고 하는데, 계한이 손으로 그들을 막았다.

“잠시만요! 세 분도 아시다시피 이 안은 너무 위험해요. 조금만 방심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죠.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힘도 커지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힘을 모아 함께 보물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시하가 미처 답을 하기도 전에 용오천이 먼저 앞으로 나서서 반대표를 던졌다.

“은인님, 저들의 말을 들으시면 안 돼요. 저 여자가 지난번에 저희를 속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요.”

시하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렇게 사리 분별도 못하는 사람으로 보여요?”

지난번에 그 불여우의 일은 그녀도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척후가 옆에 서 있는데 그의 원수들과 협력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계한은 이를 눈치챘는지 더욱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원한은 풀어야지 맺어서는 안 됩니다. 그전에 저희가 실례가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세 분 모두 이렇게 무사히 여기까지 오셨으니 이제 좀 마음을 푸셔도 되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 선부에는 진귀한 보물이 수도 없이 많아 저희가 나누어 가져도 충분할 거예요. 조금씩 양보하면 되는데, 굳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싸울 필요가 있을까요? 만일 여러분이 저를 믿지 못한다면 이렇게 하죠.”

그가 가슴에서 노란색 병을 꺼냈다.

“이건 저희가 석실에서 얻은 단약(丹藥, 신선이 만든다고 하는 장생불사의 영약)이에요. 세 개의 정금단(定金丹)이 들어 있으니 이걸 세 분께 드릴게요.”

“사형!”

녹의는 그를 말리려는 듯 소리 지르고는 아쉬운 눈빛으로 병을 바라봤다. 하지만 계한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이 단약을 저희 성의로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시하는 옆에 서 있는 척후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조용히 물었다.

“정금단이 뭔데?”

“결단(結丹)할 때 사용되는 다섯 가지 단약 중 하나로 금단을 응고시키는 걸 도와줘요. 무용지물이지요.”

“아.”

결단에 사용되는 물건이라, 그래서 녹의가 이렇게 긴장하는구나.

계한은 본인이 이미 결단을 마친 뒤라 그들에게 주려는 것이었다. 만약 그 물건이 원영(元嬰)에 사용되는 단약이었으면 절대로 내놓지 않았으리라. 아쉽지만 이번엔 그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듯했다. 용오천은 무사라 애초에 단약이 필요 없었고, 시하는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아 주사와 약이라면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날 정도라 그게 어떤 효과가 있든 먹고 싶지 않았다.

“저희는 단약이 필요 없어요. 금단은 말할 것도 없고 영단(嬰丹)을 준다고 해도 저희는 받지 않을 거예요.”

“하하(夏夏), 영단(嬰丹)이 아니라 결영단(結嬰丹)이예요.”

“지금 그렇게 세세하게 따질 것까진 없잖아요.”

의미만 통하면 됐지.

“저희는 그쪽이랑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러니 그렇게 저희한테 잘해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먼저 저희한테 덤비지만 않으면 저희도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계한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금단이 맘에 안 드시면, 좀 있다가 새로운 보물을 찾아 세 분께 먼저 드리죠.”

시하는 계한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싸울 생각이 없다고 얘기했는데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이유가 뭐지? 한참 그 이유를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용오천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말은 참 그럴듯하네요. 당신들의 그 사매 때문에 산속에서 저희가 죽을 뻔했어요. 좋은 마음으로 구해주려고 했더니 오히려 저희에게 해를 입혔다구요.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어요?”

“저는 진심으로 세 분과 함께하고 싶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예전에 있었던 일은 이만 잊어주시면 안 될까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세 분의 화를 풀 수만 있다면 제가 뭐든지 들어 드릴 테니까요. 설령 전에 있었던 일로 저희 사매에게 원한을 갚는다고 해도 뭐라 하지 않겠습니다.”

“사형!”

녹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계한은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경고하는 눈빛을 보냈다. 녹의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다시 조용해졌다. 그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용오천도 다시 뭐라 하지 않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시하는 무거운 표정으로 그들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문을 열지 못해 저희와 협력하고 싶다 하시는 모양이네요.”

온화하고 예의 바르던 계한의 표정이 깜짝 놀라 흔들렸다. 역시 그들은 협력하려는 생각보다 본인들의 힘으로 법술을 뚫지 못해 세 사람에게 빌붙어 쉽게 가려던 속셈이었다. 녹의가 부끄러운 나머지 분해서 그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사형, 그만하세요. 저들은 신경 쓰지 마시죠. 고적에도 기록되지 않은 진법이에요. 사형도 열지 못한 걸 저들이라고 열 수 있겠어요? 암튼 이미 모현선부의 제일 마지막 관문까지 도착했으니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는 각자 능력에 맡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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