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189)

시하는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등불로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를 비추어 보며 말했다.

“척후, 왜 사문(死門)으로 들어온 거야?”

갑작스럽게 들어오긴 했지만 생문(生門)이 분명 더 가까이에 있었다. 근데 척후는 그들을 오른쪽에 있는 사문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두 문 모두 똑같아요. 그저 기회가 다를 뿐이지.”

“그 말은 두 문 모두 위험하고,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는 거야?”

“두 쪽 모두 영력의 파동이 느껴졌어요. 문 앞의 두 글자는 그저 안에 있는 진법 속성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것뿐이죠.”

계한과 그 무리는 괜히 고민한 것이로군.

그녀는 칠흑같이 깜깜한 통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척후, 안에 뭐가 있는지 알겠어?”

“저는 구체적으로 어떤 법진인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죽은 사람과 연관이 있는 건 분명한 듯해요.”

시하는 가슴이 두근거려 조용히 뒷걸음질 치며 물었다.

“설마 귀신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새 정신을 차린 용오천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귀신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평소에 행실이 바르고, 맘에 거리낄 것이 없는데 귀신을 두려워할 것 없잖아요. 은인님, 귀신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죠?”

“하하하. 설마!”

그때 척후가 끼어들었다.

“차라리 귀신이라면 오히려 좋겠네요.”

“무슨 말이야?”

“귀신은 음기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영기는 양기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 보통 수사를 가까이할 수 없어요.”

시하는 갑자기 용기가 생겨 머릿속에 가득하던 무서운 상상들을 지웠다. 스스로 귀신을 쫓는 기능까지 갖고 있는데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가요!”

시하는 돌아서서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괜스레 주위가 더 쌀쌀해진 느낌이 들었다. 10분 정도 걸으니 통로가 점점 더 넓어졌고, 원래는 하나밖에 없던 통로가 여섯 개로 늘어났다. 통로가 여덟 개까지 늘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데 드디어 끝이 보였다. 하지만 맞은편은 높이 솟은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 절벽은 아주 높게 솟아 있는 데다 여섯 개의 통로에 빼곡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절벽은 아주 평평하여 작은 구김살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절벽 중앙 부분에 돌덩이 하나가 어울리지 않게 우뚝 솟아 있었다. 시하는 마치 대놓고 ‘어서 와서 나를 눌러주세요’ 하는 듯한 그 돌덩이를 자세히 살펴봤다.

“이거 설마 진법을 가동하는 버튼은 아니겠지?”

“아마 그게 맞을 거예요.”

척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 눌러야 돼, 말아야 돼?”

손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어.

용오천이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은인님, 누르고 싶으시면 누르세요. 어차피 이제 다른 길도 없으니까.”

시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우뚝 솟은 돌이 절벽과 수평을 이룰 때까지 손으로 힘껏 눌렀다. 손을 떼자마자 바로 지지직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만 해도 평온하던 절벽 가운데가 갈라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목제 조립 완구가 분리되듯 점점 작아지더니 잠깐 사이에 벽이 전부 열리며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다.

절벽 뒤에는 온갖 무서운 모습을 한 사람들로 빼곡했는데, 하나같이 참혹한 상태였다.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사람을 비롯하여 온몸이 피로 얼룩진 사람,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들로 뒤덮인 사람, 배에 구멍이 나고 손에 창자를 들고 있는 사람, 몸의 반은 부패되어 뼈가 드러난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걷지 못하고 거의 둥둥 떠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좀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만약 절벽 아래에서 그 노인네들을 만났던 경험이 없었다면 그녀는 저녁에 먹은 밥도 다 토해 낼 듯했다. 척후는 별로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용오천은 이미 얼마나 토했는지 하늘이 다 노랗게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비참한 모습을 한 사람들은 세 사람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떠 있던 사람은 계속 떠 있고, 창자를 줍던 사람은 창자를 줍고 있었다. 시하는 척후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귀신들은 정말 수사를 무서워하는 걸까?

“저기가 출구인 듯해요.”

척후가 손으로 귀신들이 있는 뒤쪽을 가리켰다. 시하가 그쪽을 보았지만, 빼곡한 귀신들 모습만 보이고 문은 보이지 않았다. 음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몸이 떨리자, 시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마음을 다잡은 후 척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용오천도 벽을 의지하며 뒤를 따랐다.

등 뒤에서 지지직하고 익숙한 소리가 들리더니 사라졌던 절벽이 다시 나타났다. 순간 그 절벽이 뒤에 있는 통로를 막아 버렸다. 이번에는 절벽이 반듯하여 버튼처럼 우뚝 솟은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척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여기는 모두 보통의 악귀들이라 귀수들처럼 영기를 갖고 있지 않아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녀는 이제 수사이니 영기가 온몸에 넘치고 있어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대담하게 앞을 향해 나섰다.

방금까지 정신없이 움직이던 귀신들이 갑자기 무슨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멈춰 섰다. 등지고 서 있건 측면으로 서 있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관심 없던 눈들이 갑자기 불이 들어온 듯 붉게 빛났다. 시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제일 가까이에 서 있던 다리 부러진 귀신이 피 묻은 손으로 다가왔다. 입으로는 그녀를 위협하듯 끽끽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당황한 얼굴로 척후를 바라봤다.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척후가 표정을 굳히고 그녀에게 말했다.

“한 명 정도는 특별한 경우예요.”

“헉.”

그 다리 부러진 귀신이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다른 귀신들도 공격 태세를 갖췄다. 악귀들은 연이어 끽끽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한 명만 그럴 거라며?”

“이 무리 전체가 특별한 경우예요.”

세 명은 어쩔 수 없이 구석으로 물러섰다.

어떡하지? 아직 수련하는 단계라 귀신을 잡는 것까지는 배우지 못했는데!

그때 척후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귀신은 음기가 강해 깨끗한 기에는 못 당해요.”

“뭐가 깨끗한 기인데? 제발 알아들을 수 있게 얘기할래?”

“오행법술과 같은 거예요!”

“어떤 술법이든 모두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이야?”

척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아마도.”

“좋아. 그럼 너는 불로 공격하고, 나는 목계법술(木系法術)로 막을게.”

시하는 영기를 움직여 얇은 넝쿨 두 가닥을 불러냈다. 그리고 바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악귀의 허리를 감아 힘껏 잡아당겼다. 척후는 손을 휘저으며 화구(火球)를 불러내더니 악귀에게 던졌다. 하지만 악귀는 몸을 사리지도 않고 서 있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치직하고 불을 꺼뜨리며 트림을 했다.

악귀가 영기로 만들어 낸 화구를 삼키다니. 이건 귀수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절대 보통 귀신이 아닌 순수 악귀들이었다.

척후는 화계술법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술법을 연이어 사용해보았다. 하지만 모두 똑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수룡을 불러내도 먹어 버리고, 토담을 불러내도 먹어 버리고, 심지어 영검마저도 먹어 버렸다. 유일하게 귀신의 몸에 상처를 입힌 건 풍인이었다. 풍인이 귀신의 몸을 두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이 기뻐하는 것도 잠시, 귀신은 낑낑거리더니 바로 몸을 연결했다.

“제가 때려 볼까요?”

용오천이 온몸의 근육을 부르르 떨더니, 가까이에 있는 악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만하세요. 귀신은 실체가 없는데 어떻게 때려……. 날아갔잖아?”

시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주먹을 얻어맞은 악귀가 나가 떨어졌다.

그녀는 바로 척후와 눈빛을 교환했다. 세 사람은 팀을 이루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하는 방어하고 척후와 용오천은 각각 좌측과 우측을 맡아 악귀들을 물리치면서 조금씩 앞으로 이동했다.

악귀들은 흉측하긴 했지만 술법은 쓰지 못했다. 그리고 본능에 따라 사람을 물려고 여기저기 허둥대고 있었다. 용오천은 원래 무사였던지라 말할 것도 없었다. 척후는 그보다 더 강한 신체 조건을 갖춘 영수라 악귀들을 거뜬히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귀신이 아무리 사람보다 못하고, 한 명을 쳐 내면 줄어들긴 해도 원래 죽은 몸이라 때려눕히면 조금 있다 다시 기어올랐다. 때문에 전체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그들의 체력이 버텨 내지 못할 듯했다. 그중 몇몇 귀신은 특별히 더 사나웠다. 다른 귀신들은 용오천의 주먹에 한 번만 맞아도 버티지 못하는데 그 몇몇 귀신은 맞아도 날아가지 않을뿐더러 쉽게 몸을 감춰 버리니 시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방어진을 유지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몇몇 악귀는 방금 전에 법술을 삼켜 버린 그 악귀들이었다.

설마 영기가 저들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는 건가?

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이쪽은 이미 구석으로 몰렸다. 악귀들은 점점 많아지고, 점점 더 빼곡하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몇몇은 흉측한 손을 방어진까지 뻗어 쾅쾅 두드리고 있었다.

방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을 때, 갑자기 귀신 하나가 튀어나왔다. 시하는 바로 그 화구를 삼킨 귀신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시커먼 손을 뻗더니 얼핏 봐도 몇십 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손톱으로 방어진을 긁었다. 찌직 소리와 함께 방어진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 긴 손은 바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 손을 에워싼 어두운 기운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하하(夏夏)!”

척후는 깜짝 놀라 순간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시하는 긴장하며 반사적으로 체내에 있는 영력을 밖으로 뿜어냈다.

“꺼져!”

순간 몸의 영기가 하얀빛으로 변하여 주위를 밝게 비췄다. 그러자 그녀를 둘러싼 악귀들은 모양도 없이 증발해 버려 인영도 남지 않았다. 시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후방으로 오륙 미터 구간이 텅 비어 있었다. 마치 귀신 무리와 그들 사이를 원형의 진공청소기가 그 부분만 쏙 빨아들인 느낌이었다. 그 광경에 세 사람은 물론 귀신들도 어리둥절해졌다.

“아아아아아!”

귀신 무리에서 갑자기 두려움에 질린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방금까지 합심하여 그들을 공격해 오던 무리가 무슨 무서운 물건이라도 본 듯 두려움에 떨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정신없이 날아가는 놈, 서로 부둥켜안고 부들부들 떠는 놈,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는 놈, 벽에 붙어서 내려오지 못하는 놈, 다른 귀신의 다리를 빼앗아 자기 몸에 붙이고 달아나려는 놈 등 다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유일하게 일치한 것은 모든 귀신들이 하나같이 처량한 소리로 그 전대미문의 참상을 애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귀신이 내는 소리가 하도 날카로워 고막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시하가 참다못해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입 닥쳐!”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도망가던 놈, 벽을 오르던 놈, 다리를 훔치던 놈, 날카롭게 울부짖던 놈 모두 각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곳은 또다시 조용해져 어떤 해골 귀신의 뼈 부딪히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옆을 쳐다봤다. 그러자 놀라 덜덜 떨고 있던 해골 귀신이 더욱 높은 소리를 내었고 결국 산산조각이 나 땅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방금 전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날뛰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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