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은 숲속에서 잠깐 쉬었다가 상처가 거의 회복되어 이제 길을 떠나도 될 때 몸을 일으켰다.
“왜 칼을 부리지 않죠?”
척후가 묻자 시하가 어색하게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척후야, 너 영수니까 알지? 법기는 아주 비싼 거야.”
시하는 검을 부릴 줄 모른다는 그 창피한 말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제가 갖고 있어요!”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척후가 손으로 반짝하더니 갑자기 비검(飛劍) 하나를 나타냈다.
“저기, 우리는 세 사람인데 그 한 자루로…….”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척후가 다시 똑같은 검 세 개를 꺼내 들었다.
“하하하, 사실 날려면 바람이 좀 세야 하거든.”
이번에는 바로 흰색의 법의를 꺼냈다.
“어, 그게 하늘을 날게 되면 너무 눈에 띄게 되어서 다른 괴물들한테 쉽게 발견…….”
그 말에 척후가 몸을 감추는 휘장을 꺼냈다.
무슨 영수가 도라에몽도 아니고 없는 게 없네. 날 망신 주려고 작정이라도 했어?
결국 시하는 입술을 깨물며 인정했다.
“난 검을 부릴 줄 몰라.”
그래, 네 주인은 날지도 못하는 닭이다.
척후는 그 대답에 크게 놀라기라도 한 듯 한참 시하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기며 진지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그가 손을 휘저으니 그녀가 밟고 있던 검이 갑자기 날아올랐다. 시하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그의 옷을 꽉 붙잡았다. 나 고소공포증 있다고!
척후가 손으로 단단히 그녀의 허리를 부축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정신을 집중하고 영기로 법기에 반응해 보세요. 사람과 검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시하는 멍하니 듣고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척후가 가르쳐준 대로 모든 영기를 발아래 있는 검에 집중시켰다. 생각이 집중되니 몸과 검이 일체를 이루며 바로 앞으로 뚫고 나갔다. 그리고 주위 풍경들이 빠르게 뒤로 지나갔다.
날, 날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발아래 검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척후가 바로 검을 잡고 그녀가 집중하도록 도와주니 영기가 다시 돌아오고, 칼도 원래 상태로 회복되었다.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하시면 돼요.”
그녀는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검을 부리는 법을 배우고 목적지로 날아갔다.
잠깐. 뭔가 잊어버린 듯한데.
“은인님!”
혼자 남겨진 용오천의 얼굴이 온통 눈물로 뒤범벅되었다. 다행히 용오천의 손에 시하가 몰래 넘겨준 닭다리 하나가 쥐여 있었다.
* * *
비검이라는 교통수단이 있으니 일정이 순식간에 많이 단축되었다. 원래는 수개월을 걸어야 했지만 삼 일 만에 바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멀리 한 성이 보였는데 그리 크지는 않아도 끊임없이 수사들이 칼을 타고 들어가고 있었다.
휴대전화상 지도를 살펴보니 바로 그 장소였다. 근데 성문에는 모현선부가 아니라 ‘창미성(悵醚城)’이라고 쓰여 있었다.
설마 잘못 온 건가?
“창미성은 창미삼림 밖에 있는 유일한 수사성(修師城)이에요. 들어가실 거예요?”
들어가느냐 마느냐, 참 난감하네. 잠깐 망설이다가 그녀는 들어가 보기로 결정했다. 목적지가 맞든 아니든 여기까지 많은 길을 왔으니 잠깐 쉬어 가도 괜찮겠지.
막 성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귓가에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여 보니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하하(夏夏)!”
척후가 그녀를 부르면서 끌어당기더니, 몸을 날려 몇 걸음 뛰어갔다. 땅바닥의 그 균열은 잠깐 사이에 일 미터나 되는 깊은 골을 만들었다. 그때 용오천이 놀란 얼굴로 앞을 가리켰다.
“성안을 좀 보세요!”
고개를 들어 보니 앞에 멀쩡하게 서 있던 수사성이 갑자기 뒤집혀 먼지를 날리고 있었다. 벽돌과 나뭇가지들이 뒤섞여 공중에서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우르르 쾅쾅!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많은 수사들이 검을 타고 성 밖으로 나왔다.
“지진?”
세 사람은 모두 깜짝 놀라 멍해졌다. 그냥 성에 한 번 들어가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자폭하면서까지 거부할 줄이야.
“제가 가서 사람을 구할게요.”
용오천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더니, 벌써 몸을 날려 그 혼란스러운 성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하가 말리기도 전에 그는 이미 인영도 감춘 상태였다.
정의감 한 번 참. 내 말을 다 듣고 가도 되잖아.
그런데 일 분도 되지 않아 그가 안에서 나왔다. 전신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녹색 옷의 여자를 부축하고 있었다.
“은인님, 그녀를 좀 돌봐주세요.”
“잠깐만.”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몸을 돌려 이미 그 뒤집힌 성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또다시 용오천이 나왔다. 이번엔 빨간 옷의 여자를 부축해 나왔는데 똑같이 재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은인님.”
그가 또다시 그녀에게 그 여인을 넘기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노란색 옷, 흰색 옷, 남색 옷, 보라색 옷의 여자들을 차례차례 넘겨주러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성안을 들여다보니 성은 거의 다 무너진 듯했다. 얼핏 보니 하늘에 가득 날리는 흙먼지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벽들만 남아 있었다. 시하는 이 와중에 또 사람을 구하러 성안으로 들어가려는 정의의 사자 용오천을 말리며 말했다.
“이제 그만하세요. 지진이 있고 나면 땅이 쉽게 꺼져요. 다시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한 명은 더 구할 수 있을 듯한데!”
“아예 하늘을 날지 그래요?”
“저는 수사가 아니잖아요! 날지 못한다고요.”
시하는 살인 충동을 느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성안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들은 당신이 구해주지 않아도 된다고요.”
“성안에는 모두 연약한 여자들뿐인데 어떻게, 어?”
그가 말을 멈추더니 그녀의 뒤를 바라봤다. 자기가 구한 여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여인들은 다 어디 있죠?”
“갔어요!”
“그, 그냥 그렇게 갔어요?”
은혜 갚는 것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용오천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었다.
“여기는 수선성이고, 그녀들도 모두 수사들인데 당신의 도움이 왜 필요해요?”
여인들이 괜히 참견하지 말라고 나무라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용오천은 그제야 하늘 가득 각종 검을 타고 나는 수사들을 발견했다. 그가 구해준 몇 명을 빼고는 모두 깔끔한 차림이었다. 그제야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예쁜 여자들을 보니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은인님의 말씀이 맞아요. 일반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습관이 되었어요. 그녀들이 전부 연약한, 어?”
“갑자기 왜 그러는 거예요? 설마 또 들어가려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은인님. 어서 보세요.”
용오천이 급히 성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녹색 옷의 인영을 가리켰다.
“숲속에서 저희를 유인했던 그 여자예요.”
정말 그 작은 여자애였다. 시하가 옆에 있는 척후를 바라보자 그는 오히려 그저 미간만 찌푸리고 있었다. 시하는 망설이지 않고 척후와 용오천을 데리고 성안 그 폐허 속으로 들어갔다.
성안의 흙먼지가 더 커졌고, 가끔 돌이 떨어져 시하가 방어술을 써 세 사람을 막아주었다. 비록 이제 연습 단계에 있는 수준이라 법방(法防)은 아예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물방(物防)은 효과가 있었다.
녹색 옷의 여자는 뭔가 목적이 있는 듯 바로 성안으로 들어갔다. 지진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뛰어 나오는데 그녀는 오히려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니 뭔가 이상해 보였다. 시하는 무심코 휴대전화를 꺼내 그녀가 가고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지도에서 가리키는 그 목적지와 일치했다.
“녹의(綠意) 사매.”
갑자기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흙먼지 속에서 세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몸에는 그 여자와 비슷한 문양의 녹색 옷을 입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너무 오래 걸려서 안 오는 줄 알았다고요.”
중간에 있는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계한 사형. 거기가 좀 멀어서 늦은 거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무사히 왔으면 됐어요.”
왼쪽에 서 있는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누군가 뒤를 밟고 있지 않았습니까?”
“아마 없었을 거예요. 제가 성에 들어갈 때 모든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뛰어 나가고 있어서 저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어요.”
“중요한 일이니, 항상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가 어렵게 이 입구를 찾아냈고, 또 많은 공을 들여 그 많은 수사들을 쫓아낸 만큼 절대 노출되어서는 안 돼요.”
방금 전 그 지진은 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인가?
“계 사형.”
남자가 중간에 있는 계 씨에게 말했다.
“우리 중에 당신의 수행 계급이 제일 높으니, 그 신식(神識,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의 마음과 의식)으로 한 번 살펴보시겠어요?”
상대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눈을 감고 결을 만들었다. 그의 손에 뭔가 반짝거리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신식 관찰이라니! 이건 금단기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술법인데, 금방 들키는 거 아니야?
시하가 나서서 얘기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척후가 갑자기 세 장의 부적을 꺼내더니 각자의 가슴 앞부분에 붙여주며 말했다.
“은식부(隱息符, 숨결을 감추는 부적)예요.”
잠시 후 그 탐사 법진이 바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조금 있더니 계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눈을 뜨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 성에는 저희 외에 아무도 없어요.“
이게 되네. 시하는 가슴에 부적을 한 번 보고 또다시 아무 표정 없이 서 있는 척후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가 정말 도라에몽을 들인 건가? 어떻게 다 갖고 있지?
“기왕 이렇게 됐으니 이제 시작하죠!”
다른 남자가 재촉하며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그 녹의라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사계요단(四階妖丹)은요?”
“여기 있어요!”
녹의가 주머니에서 빨간색의 요단을 꺼냈다. 시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빨간색! 그 작은 여우의 내단(內丹, 도가에서 정기를 수련하는 것)이었다. 시하는 옆에 있는 척후에게 마음에 가책을 느꼈는지 참지 못하고 손을 잡았다. 척후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저 수정처럼 맑은 두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지긋이 바라봤다. 시하는 더욱 미안해져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비록 영수가 일단 계약을 하면 더는 괴물의 세계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진다지만, 어찌됐든 그의 아들은 자신과 용오천 때문에 사람들에게 잡혀오지 않았는가.
척후는 어리둥절해하며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건 용서한다는 뜻인가? 그러니까 더 미안해지잖아.
시하는 그러다 바닥에 새겨진 원형의 법진을 발견했다. 녹의가 요단을 바닥에 내려놓자 모든 법진에 불이 들어오더니 중앙에 있는 붉은빛이 점점 더 커졌을 때 어두컴컴한 동굴 입구가 열렸다. 네 사람의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