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89)

용오천은 일어서려고 애썼지만 옆구리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은인님, 모두 제 잘못이에요. 어서 도망가세요. 제가 괴물을 막을게요.”

“용오천!”

그녀는 말을 마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미 몸을 날려 괴물의 등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전처럼 등에 올라타 괴물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괴물의 불빛이 그의 몸을 삼켜 버려 시하는 멀리에서도 피부가 타는 냄새가 느껴졌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의 몸이 찢기고 터졌다.

이 지경인데 내가 어떻게 그냥 가!

양심이 그녀의 발목을 필사적으로 잡고 늘어져, 이를 악물고 한 번 덤벼 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한 번도 이 법술을 사용해 보지도 않았다. 이 술법은 축기의 수사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 그렇게 많은 것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초록색 옷의 여자가 썼던 주문을 외웠다. 때려눕히지 못하면 거둬들이는 수밖에 없지!

불여우의 아래에 영수를 계약하는 법진이 나타났다. 흰색 빛이 서서히 불여우의 주위를 둘러싸며 법진이 점점 더 커졌다.

시하는 영력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영기가 거의 고갈되어 이렇게 가다가는 계약을 완성하지 못할 듯해 이를 악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영기를 체내로 끌어들이자 사방의 영기들이 그녀를 향해 몰려왔다.

그렇다 해도 영기가 모이는 속도가 유실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체내에 겨우 자라던 다섯 개의 어린 싹도 색이 점점 옅어져 투명해지고 있었다. 한차례의 통증이 온몸을 감싸더니 수도꼭지처럼 피를 토해 냈다.

하지만 시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만약 여기서 멈추면 용오천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 뻔했다. 계약에 실패한 대가는 매우 엄중하다. 괴물이 그녀의 뼈를 가루로 만들 수도 있었다.

법진이 점점 더 커지느라 괴물은 이미 하얀 빛에 가려져 모습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시하의 의식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작게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체내에 거의 반투명에 가까워진 어린 싹이 한 가닥씩 갈라져 잎을 떨어뜨렸다. 그녀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다리에 힘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힘을 다해 법진 쪽을 바라보았다.

성공인 건가?

법진은 이미 사라지고 하얀 빛도 이제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흰색 빛 가운데 희미하게 구미호의 몸집이 작아지더니 갑자기 사람의 모양으로 변해 그녀에게 걸어왔다. 영력이 큰 구미호는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들었다. 그녀가 성공한 것일까?

마음이 놓인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져 1분 정도 쓰러져 있었다. 다시 눈을 뜨니 눈앞에 희미하게 흰 인영이 나타나 그녀를 부축하는 것이 보였다. 용모가 준수한 한 젊은 남자였다. 눈에는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사람 전체가 빛이 나고 있었다.

“깼어요?”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얼굴에 진흙을 칠했다.

“뭐 하는 거지?”

“다쳤어요. 하하(夏夏), 약을 좀 바를게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하하는 그녀의 어렸을 적 아명(兒名)이었다.

“당연히 알죠.”

시하가 깜짝 놀라 눈앞의 소년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는 온몸에 기이하게 생긴 붉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 여성스러운 색깔은 그가 입으니 의외로 잘 어울렸다. 그는 생김새가 유순한 편이었고 이마에 불꽃 모양의 문양이 찍혀 있었다. 이마의 문양은 온몸에 풍기는 분위기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차갑고 딱딱해 보여, 마치 소설 속에 나오는 악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깐! 붉은색 악당!

“당신, 설마 방금 전 그 구미호?”

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손에 있는 진흙을 내밀며 진지하게 말했다.

“약을 바를까요?”

“설마 내가 정말 성공한 거야?”

죽는 줄로만 알았는데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흡한 무술 능력으로 대계(大階)의 영수까지 잡아들이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참다못해 그 남자의 볼을 꼬집고,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그리고 내친김에 그의 꼬리도 당겨 보았다.

“정말 그 구미호? 내가 꿈을 꾸는 건 아니지?”

스스로 변신하는 재주도 갖고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소년은 눈을 크게 뜨고 그녀에게 희롱이라도 당한 듯 놀라며 외마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보드랍고 탐스러운 꼬리를 내밀더니 좌우로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정말 그 여우였네! 시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그렇게 거대한 괴물이 갑자기 이런 소년으로 변신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거둔 영수잖아?”

그것도 아직 살아 있는 영수였다.

“그럼 우선 이름부터 짓자.”

“제 이름은 척후예요.”

반려동물은 주인이 이름을 지어주지 않나? 이건 월권이다, 이놈의 여우야.

척후가 그녀의 손을 잡더니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진흙을 다시 내밀었다.

“우선 약부터 바를까요?”

“이게 뭔데?”

“영기를 이어주는 속령초(續靈草)예요. 당신의 영력이 고갈되어 경맥이 손상되고, 영기의 뿌리가 되는 곳에 상처를 입었어요. 이걸 바르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다리 전체에 이런 진흙이 칠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시(內視)로 살펴보니 약초로 다져진 이 풀은 정말 상처에 효과가 있어 그녀의 영기가 조금씩 체내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떨어졌던 새싹도 다시 되살아나고 투명했던 색깔도 점점 순백의 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수행 능력은 다시 삼층으로 퇴보되고 3개월이라는 연습 기간이 무색해졌지만 이만하면 아주 좋은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수행 능력이 감퇴하긴 했지만 그건 다시 연습하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모현선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 그녀는 휴대전화에서 뭐라 지시하는지 다시 들어보고 싶어졌다. 잠깐, 뭔가 허전한데.

“아, 그 오두방정 용오천이 안 보이네? 척후, 내 동료는?”

척후는 미간을 좁히고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얼굴의 진흙을 털어주었다. 그리고 빽빽한 밀림 속을 가리켰다.

“저기요.”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 거대한 진흙 덩어리 하나가 보였다.

“설마, 저기 저 안에 있는 건 아니겠지?”

“그의 상처가 당신보다 깊어요.”

그처럼 진흙투성이 공이 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되는 걸까?

용오천이 깨어난 지 이미 이틀이 지났다. 그는 그 진흙 덩어리에서 기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구운 닭고기의 진한 향기에 그의 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어, 일어났어요?”

시하는 구운 닭고기를 흔들며 인사하자 용오천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은, 은인님? 저 죽은 거 아니에요?”

“보아하니 그 진흙 덩어리가 정말 효과가 있네.”

여우에게 입은 화상으로 여기저기 뼈가 드러나 있었는데 이틀 만에 회복됐다. 척후를 칭찬해야 될 듯했다.

“은인님, 괜, 괜찮으세요?”

용오천이 그녀를 자세히 살피더니 그제야 감격하며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다행이에요.”

그런데 절반쯤 다가오다가 중간에 누군가에게 목덜미가 잡혔다. 척후가 그의 옷깃을 잡더니 다시 그 진흙 더미로 끌고 갔다. 용오천은 갑자기 나타난 붉은 옷의 남자에 어리둥절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여기는 척후라고 하고, 그 구미호예요. 지금은 저의 영수가 되었고요.”

“은인님께서 그를 거두신 거예요?”

용오천이 충격을 받은 듯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네, 그런 셈이죠.”

그가 척후를 한참 살피더니 그제야 그녀를 우러러보며 말했다.

“은인님은 과연 무소불능하세요.”

시하는 눈을 흘기며 닭다리 하나를 건네주었다.

“닭다리 먹을래요?”

그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제가 설쳐 대는 바람에 은인님께서 어려움을 당하셨는데, 어떻게 먹겠…….”

꼬르륵. 그의 배가 더 크게 울렸다.

“됐어요.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당신 잘못만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아마 우리가 이 숲에 들어섰을 때부터 이미 우리를 유인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을 거예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게 어떻게 은인님의 잘못이겠어요. 모두 제가…….”

꼬르륵.

“그때 제가 그 소저를 구하려고 가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

꼬르르륵.

“제가 좀 더 빨리 뛰었어도 은인님께서 잡히…….”

꼬르르르륵.

“어쨌든 모두 저의 잘…….”

꼬르르르르륵.

시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씰룩거렸다.

“그래서, 안 먹을 거예요?”

그가 바로 뒤뚱뒤뚱 기어 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시하의 손에 들고 있던 닭다리를 가로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용오천을 흘겨봤다.

“척후?”

아까는 구운 닭고기를 거들떠도 안 보더니, 왜 가로채는 거지?

척후가 손에 있는 닭다리를 쳐다보더니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내가 잡은 거예요!”

명분은 분명했다. 그가 잡은 닭이라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은 것이었다. 변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척후는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척후, 용오천은 이미 이틀이나 굶었어. 음식을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다고.”

척후는 멀뚱멀뚱 듣더니 내키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제가 나눠 줄게요.”

“그래.”

네가 잡은 닭이니 네가 나누려무나.

그는 또 다른 닭다리를 비틀어 대부분의 고기를 떼어 내더니 그녀의 손에 쥐여 줬다. 그다음 목과 날개 부분, 엉덩이, 머리 등 살이 없는 부분들은 용오천에게 건네주며 흘겨보았다. 용오천이 당황하며 그녀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은인님, 척후가 저를 싫어하는 모양이에요.”

“당신이 그 집 아들을 때리고, 또 잡혀가도록 한 장본인인데 좋아하겠어요?”

“아.”

“당신을 잡아먹지 않으면 이미 많이 봐준 거예요. 앞으로는 그에게 조심히 대하도록 하세요.”

척후가 그녀에게 친절했던 건 그녀가 그의 주인이기 때문이었지 절대 그전의 일을 잊어서가 아니었다. 용오천은 멋쩍어하며 다시 아무 말 없이 닭 엉덩이를 물어뜯었다.

사실 시하는 기를 체내로 끌어들이기 시작하고부터 뭔가를 먹는 일을 많이 줄이고 있었다. 척후는 영수니 당연히 음식을 먹지 않았고, 세 사람 중에 유일하게 음식을 먹는 사람은 용오천이었다. 근데 척후는 기어코 그 닭다리를 손에 부여잡고 용오천이 배고파하는데도 양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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