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는 운전면허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었다. 그들은 족히 3개월 동안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휴대전화상 그 지도는 모현선부까지 걸어온 길의 절반을 더 걸어야 한다고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같이 길을 걷다 보니 용오천의 또 다른 점을 발견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중얼거렸고 그 바람에 시하는 귀가 다 멍할 지경이었다. 시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근육과 용오천(龍傲天)이라는 패기 넘치는 이름이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근육 외에는 용성주의 품위와 위엄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 살려요!”
그러던 어느 순간,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한참 닭을 굽고 있던 용오천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뛰어가려 했다. 시하가 그를 잡았다.
“잠깐만요. 어떤 상황인지 파악도 하지 않고 뛰어가게요?”
“살려 달라고 하는데 어떡해요.”
“상황을 자세히 살펴봐요.”
시하는 앞에 있는 큰 나무를 가리키며 그에게 올라가 보라고 손짓했다.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걸 보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했다.
용오천은 훌쩍 솟아오르더니 몇 걸음 만에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시하도 법술을 이용해 가볍게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오십 미터가량 멀리에 붉은 몸집 하나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숲의 정중앙에 붉은 여우 한 마리였다. 여우의 몸집은 코끼리처럼 크고 몸 뒷부분에 여러 개의 꼬리가 달려 있었는데, 세어 보니 여덟 개나 되었다. 붉은 여우는 이를 드러내고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초록색 치마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울부짖는 소리의 주인은 바로 그 여자였다.
“여자예요!”
용오천은 깜짝 놀라더니 바로 몸을 날려 그쪽으로 뛰어갔다. 시하가 말릴 틈도 없이, 그는 이미 여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오는 내내 패기라곤 없어 보이더니 이제야 보여주네.
그런데 여우가 발을 들더니 한참 정의감에 불타 있는 용오천의 몸에 발을 날리려 했다. 시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궁금증을 뒤로하고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띄우기에는 아직 미숙한 목계술법(木系術法)으로 괴물이 있는 쪽을 향해 뛰어갔다. 옆에 있는 나무 넝쿨을 이용해 용오천을 내리치려는 괴물의 발을 잡았다.
“어서 비켜요!”
시하가 용오천을 향해 외치자 그는 그제야 뒤로 몇 걸음 물러나 괴물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몸을 날려 여우의 등에 올라탔다. 주먹으로 여우의 머리를 때리자 여우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여우는 등에 있는 용오천을 떼어 내려고 미친 듯이 몸을 움직였다.
용오천은 영기는 없었지만 무술이 뛰어나 축기에 해당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여우도 사계(四階)의 괴물로 실력이 상당한 적수였다. 하지만 시하가 옆에서 나무넝쿨처럼 매번 괴물의 공격을 막고 나서자 그들이 점점 우세한 쪽으로 형세가 기울었다.
여우의 털 색깔을 봐서는 불여우가 분명했지만 불여우라면 분명 화계법술(火系法術)을 이용할 만도 했다. 하지만 용오천에게 머리를 한 방 크게 얻어맞아서인지 그녀를 향해 불을 뿜지는 않았다.
괴물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바닥에 깊을 골을 만들었고, 시하는 요리조리 몸을 숨기며 피해 다녔다. 그녀의 법술로는 아무래도 괴물의 공격을 피하기는 역부족인 듯했다. 괴물이 여기저기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용오천도 하마터면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다.
싸움은 아마도 어느 쪽이든 먼저 힘이 빠지는 쪽이 지는 그런 장기전이 될 듯했다. 한쪽이 공격하면 한쪽이 몸을 숨기면서 그렇게 장장 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불여우가 지쳐 쓰러졌다. 등에 있는 용오천의 공격으로 피부가 찢기고 터진 채 바닥에 주저앉더니 작은 신음을 냈다.
시하도 체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데다가 체내의 영기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용오천도 여우의 등에 엎드려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제가 당신들을 도울게요.”
여우에게 놀라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초록색 옷의 여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손에 주머니를 들고 여우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뭐라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여우의 몸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법진 하나가 땅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금색의 법부(法符)들이 날아오르더니 빠르게 여우의 이마로 스며들었다.
계약영수(契約靈獸)의 부문(符文)이잖아!
“당신!”
시하가 놀라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보았다. 바닥에 있던 여우는 이미 붉은 불빛으로 변해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젠장! 이런 망할!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그녀의 속셈을 헤아릴 겨를도 없었다. 용오천은 일어서더니 그 와중에 이성을 잃지 않고 걱정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소저, 괜찮으세요?”
초록색 옷의 여자는 차갑게 웃더니 날아가 버렸고, 용오천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순풍 은인님, 그, 그녀가 절 보고 웃었어요!”
시하는 용오천을 때려주고 싶었지만 아직도 얼이 빠져 멍해 있는 그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어서 가요.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
“왜요?”
시하는 손으로 그의 뒤통수를 치며 말했다.
“이 머리에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아까 그 여자애가 우리를 이용해서 영수를 잡아들였잖아요!”
그는 깜짝 놀라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좀 전의 상황을 파악했다.
“그 사람의 수행 능력은 분명 우리보다 우위였는데, 우리를 여기까지 끌어들인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거예요.”
좀 전에 그녀가 살려 달라고 외쳤을 때, 그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괴물에게 쫓겼다고 하기에는 옷도 너무 깨끗해 보였다. 때문에 시하는 용오천을 말리려고 하던 참이었지만 그가 근육은 자랐어도 머리는 자라지 않았다는 걸 누가 알았으랴.
“어떤 이유로 자기 손으로 괴물을 잡아들이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여기는 안전하지 못하니 어서 빠져나가야 해요.”
용오천이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리더니 서둘러 오던 방향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뒤에서 귀청이 찢어질 듯한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흥!”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압력이 그들을 향해 덮쳐 왔다. 시하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용오천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어서 도망쳐요!”
그녀는 용오천을 데리고 풍계(風系)의 법술을 이용하여 앞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울음소리를 들으니 이 괴물이 방금 전 그 괴물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그녀는 모든 법술을 다리에 집중시키며 빠르게 앞으로 뛰어갔다. 얼마나 빠르게 뛰었던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 속도는 검을 부려 날아가는 속도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빨랐지만 뒤에 따라오는 괴물이 더 빨랐다.
갑자기 등 뒤가 후끈하더니 붉은 불빛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 불빛이 두 사람을 둘러싸니 숲에 있는 나무들이 순식간에 검은 재로 변해 버렸다.
“어흥.”
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붉은 불빛과 함께 좀 전보다 두 배나 더 큰 불여우가 나타났다. 온몸이 붉은빛으로 이글거렸고 꼬리로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꼬리가 아홉인 게 구미호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꼬리가 아홉 개인 여우에 대해 필홍에게 들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계의 괴물인 구미호는 성년이 되면 육계(六階)에 이르게 되어 금단중기(金丹中期)에 해당하는 수행 계급을 갖게 된다고 했다. 이 구미호는 얼핏 봐도 이미 성년을 넘긴 듯했다.
축기에 이른 수사와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풋내기는 육계괴물의 눈에 그저 잘 차려진 한 끼 식사에 불과했다. 방금 그 여자애가 왜 자기 손으로 괴물을 잡지 않았는지 알 듯했다. 꼬리가 아홉 개인 여우 괴물은 화계괴물로 비교적 사나웠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다. 어릴 때는 수행 능력이 약하여 사계에 머물고, 완전히 성년이 된 후에야 육계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모든 구미호들은 성년이 되기 전까지 옆에 어미나 아비 괴물들이 지키고 있다. 그 여자애는 그걸 알고 새끼 여우 괴물을 유인하여 잡는 데 두 사람을 이용한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제 이 ‘노부(老父)’의 원수가 되어 버렸다.
특히 용오천은 온몸에 자식의 피를 묻히고 있었으니 여우 노부가 그를 가만둘 리 없었다.
“어흥.”
그가 또 한차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소리가 크고 날카로운 것이 마치 칼날이 고막을 쑤시는 듯했고, 그 울음소리에 육계 괴물의 위엄도 느껴졌다. 시하는 갑자기 가슴이 아팠고 입에서 피를 토했다.
“은인님!”
용오천이 급히 시하를 부르더니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거대한 돌을 들어 괴물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녀를 이끌고 미친 듯이 뛰었다.
“어떡해요. 은인님,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지금 장난해요? 방금 사계괴물도 이기지 못했는데, 저건 심지어 육계괴물이라고요.”
“네? 은인님은 무술 실력을 숨기고 계셨던 게 아니었어요?”
“누가 실력을 숨겼다고 그래요?”
내가 할 일도 없는 줄 아나.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 하지만 예전에는 실력이 있었잖아요. 순식간에 삼층까지 올라가고! 지금은 오층까지 오르셨고요.”
“그건 제가 요 며칠 그냥 연습한 거예요!”
수련이 그렇게 쉬운 줄 아나. 이제 삼 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뭘. 자기는 30년이나 연습해서 겨우 축기에 올라놓고선.
“은인님은 무소불능하신 줄 알았어요.”
“제가 언제 무소불능이라고 했어요?”
그는 당황한 기색이 가득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럼 어떡하죠? 아니면 은인님은 먼저 가세요. 제가 남아서 싸울 테니까.”
“미쳤어요?”
그사이 괴물이 입을 벌리고 그들을 삼킬 듯이 가까이 다가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건 고양이가 아니라 생선포로 해결할 수도 없잖아! 잠깐 생선포?
그녀는 급히 주머니 속에서 제일 큰 생선포를 꺼냈다!
“은인님, 이건.”
“상관없어. 일단 시도해보는 거야!”
그녀는 손을 펴서 힘껏 생선포를 괴물의 입속에 던졌다. 괴물은 입을 다물더니 한입에 바로 삼켜 버렸다. 그리고 멈칫하지도 않고 바로 더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입을 벌리고 두 사람을 잡아먹을 듯 다가왔다.
역시 이건 묘성인에게나 먹히는 거였어!
시하는 절망에 빠졌다. 앞에 날카로운 이빨이 가까이 오자 곧 그녀의 몸이 두 동강 날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괴물은 거대한 입을 다물더니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몸에 있던 불빛도 절반 정도나 사라졌다. 그리고 몸을 굽히더니 목의 앞부분을 긁적이며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목, 목에 걸렸나 봐, 생선 가시가!
그녀는 순간 생선포가 마치 무적의 법기처럼 느껴졌다.
“어서 도망쳐요!”
괴물이 목구멍에서 생선 가시를 꺼내는 동안 시하는 용오천을 이끌고 힘껏 뛰었다. 두 걸음쯤 뛰었을 때 용오천이 갑자기 그녀를 옆으로 밀치며 말했다.
“조심해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용오천이 괴물의 발에 얻어맞고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귓가에 빠르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거대한 발이 그녀의 가슴을 치고 있었다. 그녀의 귓가에 뭐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엑스레이를 찍지 않아도 뼈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도 용오천의 옆으로 떨어졌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고도 괴물은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보아하니 원한이 아주 깊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