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89)

“네? 그렇지만, 30년 만에 뵈어도 은인님의 용모는 전혀 변함이 없는데요.”

수사 외에 누가 또 이렇게 젊음을 유지할 수 있지?

용오천은 생각했다.

“어, 그건 설명하자면 좀 복잡해요. 나중에 알려줄게요.”

보아하니 전에 시스템이 해제되면서 차원 이동을 하는 동시에 시간도 같이 이동한 듯했다. 그것도 한 번에 30년이나 지나서.

“그런데 이미 수선계에 발을 들였으면서 왜 수선은 하지 않는 거예요?”

“제가 수선을 하게 되면 전에 있던 무술에 대한 힘은 모두 잃게 돼요. 제 영근의 자질도 그저 그런 상태고요.”

그가 몸을 돌리더니 서가에서 영근을 측정하는 수정구를 꺼냈다. 그랬더니 수정구 안에 바로 홍, 황, 남, 녹, 금 이렇게 다섯 가지 색이 나타났다. 오행 잡영근(雜靈根)이라. 그는 확실히 평범한 영근을 갖고 있었다.

“이만한 소질로는 아마 축기에 오르기도 어려울 거예요. 지금 갖고 있는 공력(功力)이 축기에 해당하니, 평생 이걸로 만족하고 더는 애쓰지 않으려고요. 그리고 무수는 영근에 제한받지 않으니까 저와 같이 잡영근을 갖고 있거나 영근이 없는 제자들을 좀 더 가르칠 거랍니다.”

시하는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해주었다.

갑자기 쓸모없는 인간이 된 듯한 그 기분, 나도 이해하지.

“아, 혹시 은인께서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 공법을 전수하는 걸 원망하진 않으시죠?”

“공법은 제가 당신에게 준 거니까, 그건 이미 당신의 물건이에요. 누구에게 전수하든 그건 당신 마음이지요.”

그녀에게 공법은 주머니에 아직 가득이었으니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부족한 건 영근이라 문제지.

“고맙습니다. 은인님! 아, 근데 은인님은 어떤 영근이세요?”

하필이면 제일 아픈 곳을 건드리다니. 시하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공을 집어 들며 말했다.

“저는 당신보다 더 비참해요. 아예 영근이 없…….”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영근을 측정하는 수정구가 마치 전등처럼 환해지더니 흰색 빛을 뿜어냈다. 어찌나 밝게 빛나는지 눈이 다 부실 지경이었다.

용오천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흰색. 이 흰색은 무슨 영근이죠?”

“저도 몰라요.”

시하도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어 멍해졌다. 영근이 없는 걸로 확인됐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영근은 일반적으로 전에 용오천이 측정했던 것처럼 다섯 가지 색으로만 측정된다. 게다가 변이적 영근이라고 해도 뢰(雷), 빙(冰), 풍(風) 이 세 가지밖에 없었다. 뢰 영근은 번개, 빙 영근은 얼음, 풍 영근은 바람 모양으로 나타났다. 이 밝은 빛은 뭘 의미하는 걸까? 대머리가 될 것을 예고라도 하는 걸까?

“은인님은 한 번도 영근을 측정해본 적이 없으신가요?”

“네.”

측정해봤지만, 반응이 없었지.

“그러면 경맥은 내시(內視)해 보셨나요?”

“내시가 뭐예요?”

용오천이 어리둥절하며 시하를 바라보더니 책 하나를 꺼냈다.

“수선에서 기를 체내로 끌어들이는 기본 공법이에요. 기를 끌어들일 때 반드시 필요한 경맥 내시를 일컫는 건데 그때 자신의 영근도 볼 수 있죠. 아니면 은인님도 이걸로 시험해보실래요?”

시하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어 망설이지 않고 책을 받았다.

* * *

유유는 역시 아직 어린아이었다. 성안에서 영근을 시험하느라 줄을 오랫동안 섰던 탓인지 방으로 돌아오자 바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시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마음도 복잡하고 요즘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뭔가 마음이 찝찝했다. 전에 그 이상한 전화를 받고 난 후 어딘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전화! 그녀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바로 그녀가 가져온 혼원비급 옆에 던져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혼원비급이 밝은 빛으로 변하더니 휴대전화 화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난번에 새로 생긴 ‘신선’ 애플리케이션 우측 하단에 숫자 ‘1’이 뜬 게 보였다.

이건 업그레이드 버전을 의미하는 건가.

그녀는 참지 못하고 바로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보았다. 전과 같이 그 지도 아랫부분에 검은색 글자가 보였다.

‘물품혼원 휘장1 획득.’

그녀가 그 검은색 글씨를 누르자 휴대전화 화면이 더 밝게 빛났다. 그리고 휴대전화 밖으로 육각형의 은색 모형이 나타나더니 공중으로 떠올랐다. 진짜 휘장이었다.

휴대전화에서 꺼낼 수도 있는 건가? 시스템이 내 휴대전화에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시하는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이 물건이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용도를 알 수 없었다. 애플리케이션을 끄자 그 휘장도 휴대전화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뭔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었지만 우선 그냥 두기로 했다.

그리고 낮에 얘기했던 영근을 측정하는 일이 떠올라 용오천이 말했던 기를 체내로 끌어들인다는 기본공법 서책을 펼쳤다. 펼쳐 보니 안에는 입정(入定)하는 방법과 기를 체내로 끌어들이는 방법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내용들은 모두 계학당에서도 가르쳤던 것들이었다.

자신에게 갑자기 영근이 생길 일은 없지만 심심하기도 하고 다시 시험해본다고 해도 손해 볼 것도 없었다. 그래서 바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고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한 다음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조용한 밤이라 그런지 그녀가 반 시진쯤 앉아 있자 깜깜하던 시야에 갑자기 밝은 빛이 들어왔다. 빛의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밀물처럼 밀려와 모든 어둠을 밀어내고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눈앞에 갑자기 구슬 하나가 나타나더니 시야를 가득 채웠다. 큰 구슬에 눌릴 듯한 느낌이 들어 그녀는 깜짝 놀라 바로 눈을 떠 버렸다. 창밖에 밝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니 정신이 좀 돌아왔다.

방금 봤던 그건 뭐지? 설마 그게 용오천이 말했던 그 내시일까? 그 구슬은 뭐지? 나의 영근인가? 설마 영근은 아니겠지? 영근은 뿌리를 의미하는데 왜 둥근 모양이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녀는 방금 들어갔던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일각이 되니 바로 그 환한 공간으로 들어가 구슬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슬은 흰색이었는데 눈에 많이 익었다. 자세히 보니 위에 희미하게 각종 금색 무늬가 떠다니고 있었다.

흰색, 이건 내가 주웠던 그 구슬이잖아?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설마 오기 전에 공양이 입속으로 던져주었던 그 물건이 이건가?

구슬을 잡았을 때 흰색 빛이 나온 것은 그 여의주 때문일까? 이 여의주가 나의 영근이 되어 버린 것일까?

하지만 호구 오라버니가 말했었다. 영근은 경맥을 수련하는 것과 같고, 영근을 측정하는 것도 경맥이어서 여의주하고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그러니 여의주가 절대 그렇게 쉽게 영근이 되었을 리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여의주의 작은 틈 사이로 뭔가가 나오려고 했다.

아주 작고 뾰족하게 생긴 싹이 순백의 빛을 내고 있었다. 같은 흰색이었지만 여의주 공간의 흰색하고는 다르게 그 뾰족한 싹은 특별히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 어떤 색도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함을 갖고 있는 듯했다.

이건 내 영근이잖아!

시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주 작긴 했지만 이게 바로 그녀의 영근이었다. 그녀에게도 이제 영근이 생긴 것이다.

이제 누구도 나한테 감히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하지 못해! 어? 그러고 보니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 거였지. 에이, 그런 건 이제 생각할 필요도 없잖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밖으로 나가 크게 세 번 웃고 싶은 충동을 겨우 가라앉혔다. 대신 예전에 수업 시간에 배운 대로 주의력을 체내에 두지 않고 밖으로 돌리니, 바로 옆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유유가 보이고, 창문 밖으로는 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계속해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얼마쯤 지나자 주위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방금까지도 텅 비어 있던 주위가 갑자기 각종 다채로운 색상들로 빛나기 시작했다. 빨간색, 녹색, 노란색, 없는 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게 바로 영기야!

시하는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계학당의 사부는 자신의 영근과 비슷한 영기를 끌어들여야만 쓸모가 있다고 가르쳤다. 또. 호구 오라버니는 영근과 상응하는 영기면 친밀감이 생겨 조금만 이끌어주면 바로 체내로 들일 수 있다고 했다.

친밀감, 친밀. 젠장, 모든 영기에 다 친밀감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이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나? 남자 친구도 없는 내가? 대체 어떤 걸 들여야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다 들이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빛들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밀려들면서 앞다투어 몸속으로 들어왔다. 시하는 갑자기 과분한 사랑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시로 들어가 보니 그 영기들이 모두 여의주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 여의주가 마치 전등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아래쪽에 광선 하나가 나타나더니 바로 그 아래 작은 싹을 비추었다.

순간 그녀의 온몸이 나른해졌고, 그 작은 싹이 바깥으로 나왔다. 마치 작은 조각처럼 보였고, 조금씩 열리더니 아주 여린 싹으로 변했다. 영기가 끊임없이 체내로 들어오며 그녀의 작은 영근을 적시고 있었다.

영기가 증가하면서 별의별 색깔의 영기들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녀가 인도할 것도 없이 영기가 알아서 체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하는 자신이 혹시 잡영근을 갖고 있어 이 모든 영기들이 이렇게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잠깐! 구석에 그 검은 건 뭐지? 왜 이렇게 꼴 보기 싫은 거야?

그녀는 흰색 영기를 내보내며 검정색이 보이는 곳이 있으면 바로바로 깨끗하게 제거해 버렸다.

저 검은색이 영기는 아니겠지? 왜 검은색 영기가 있는 거야? 사부님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 건데? 모든 영기에 친밀감을 느끼는데 왜 저 검은색은 이렇게 눈에 거슬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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