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림은 성을 나선 뒤 좁은 길로 걸어갔다. 사람들을 의식해 피하는 것처럼 보일 뿐, 딱히 목적 없는 발걸음 같았다. 인적이 드문 곳만 찾아다닌 그는 가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깜짝 놀라며 몸을 숨겼는데 그 모습은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그는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은 뒤 한적한 숲속에 멈춰 섰다. 사방을 둘러보며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그는 유유를 큰 나무 아래에 세워 두더니 몇 마디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유유가 황급히 그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힘껏 유유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화를 내며 뭐라고 꾸짖더니 유유를 남겨두고 다시 성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시하는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 뛰어가 그를 힘껏 패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헌림이 다른 길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그 길을 막아서며 말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은, 은인님.”
헌림은 갑자기 나타난 시하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왜 여기에 있어요? 저, 저는 그저…….”
“너 지금 유유를 버린 거야?”
헌림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눈빛은 요동쳤다.
“은인님이 오해하신 거예요. 제가 어떻게 유유를 버릴 수 있겠어요? 저는 단지, 단지 유유가 먹을 걸 좀 사 오려고 했던 거예요.”
시하의 시선이 방금 전에 샀던 포자 쪽으로 향하자 그는 바로 등 뒤로 숨겼다.
“이전에도 네가 고의로 버렸던 거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네 동생이잖아!”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그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동생이면 뭐가 어때서요? 걔가 따라다니지만 않았어도 전 이미 선문에 들어갔을 거예요. 지난 반년 동안 선문을 몇 번이나 찾았는데도 쟤 때문에 시간을 버렸다고요. 유유는 저에게 짐이에요. 짐!”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친동생을 버리려고 했던 거야?”
“네! 맞아요. 저는 그 애를 버렸어요. 반년간 충분히 힘들었어요. 계속 안아주고 업어주고, 게다가 유는 걸핏하면 병이 났어요. 병을 고치느라 여비도 전부 다 써 버렸다고요. 이대로는 우리 둘 다 굶어 죽는단 말이에요!”
시하는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전에 알고 있던 소년이 맞는지를 의심했다.
반년이란 시간 동안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냉혈한처럼 변할 수가 있지?
“수선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 거야? 혈육도 포기할 만큼?”
“당연한 걸 물어보시네요. 이 세상에 오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그렇지만 이 숲이 얼마나 위험한데. 이곳에 얼마나 많은 요괴들이 있는지 알아? 저 애를 여기에 두고 가면 쟤는 죽는다고.”
“죽으면 더 좋죠! 살아서 저를 괴롭히느니 깔끔하게 죽어 주는 게 더 좋아요.”
그녀는 참다못해 주먹을 날렸다.
“네가 인간이야? 너 저 애가 얼마나 너를 생각하는지 알아? 네가 수선을 하겠다니까 여기까지 따라와서 그 고생을 했던 거잖아. 요괴한테 잡아먹힐 뻔까지 했는데, 너는 눈이 멀어서 안 보이는 거야? 힘든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네 누이라고!”
헌림은 주먹에 제대로 얻어맞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더니 더욱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는데요? 말은 참 쉽죠.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마당에 남매간의 우애를 무슨 수로 논할 수 있나요?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거예요. 누구든 저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요.”
시하는 헌림을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닥쳐! 넌 지금 오라버니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어. 이 세상의 오라버니가 다 너 같다고 함부로 판단하지 마. 곧 굶어 죽어도 혈육을 버리지 않는 사람도 많으니까. 너는 그저 자신의 잘못과 무능을 동생에게 덮어씌우는 비열한 인간일 뿐이야. 뭐가 어쩔 수 없는데? 젠장, 전부 다 변명이잖아. 너는 저 애의 오라버니가 될 자격도 없어.”
헌림은 시하에게 맞은 다리를 어루만지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서고는 노려보며 말했다.
“자격이 없어도 상관없어요. 그 애가 그렇게 걱정되면 당신이 데려가면 되겠네요.”
“너 이……!”
시하는 말을 하려다가 길 입구에 서 있는 작은 인영을 발견하고 말을 멈췄다.
“유유.”
유유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그녀가 여기에서 헌림을 막아섰던 건 유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방금 전 대화를 어디까지 들었을까. 그녀는 당황하며 유유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더니 급하게 해명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우리는…….”
그때 헌림이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외쳤다.
“들었으니 더 잘됐어! 어쨌든 저는 다시 그 애를 데리고 갈 생각 없어요. 당신이 저를 때려죽인다고 해도 소용없어요.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데려가라고 해요.”
그는 말을 마친 뒤 몸을 돌려 걸어갔다. 시하가 불러도 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더 빨리 걸음을 재촉하며 떠났다.
유유는 자리에 서서 울지도, 오라버니를 따라나서지도 않았다. 진흙으로 얼룩진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작은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그 모습을 보니 시하는 더욱 걱정이 되어 무릎을 꿇고 안아주었다.
위로를 해주고 싶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에 들었던 건 모두 오해라고, 헌림과 둘이 장난을 친 거라고 말할까? 하지만 헌림은 떠나 버렸다.
유유는 뻣뻣하게 그녀의 품을 파고들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의 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번에 오라버니가 저한테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유유는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하지만 오라버니는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방금 전에도 오라버니가 또 저한테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
“그래서 기다렸는데. 언니, 유유 잘했죠?”
“그래, 잘했어.”
“근데 유유가 뭘 잘못했어요? 왜 오라버니가 유유를 데리러 오지 않는 거죠?”
“…….”
“오라버니는 유유를 싫어하는 거죠? 사실 유유는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잠시 후 품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유유는 아주 작은 소리로 흐느끼다가 아예 엉엉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시하는 유유를 더 꼭 껴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다독여주었다.
그래, 차라리 울어 버리는 게 나아.
유유는 오랫동안 울다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쯤에야 울음을 멈추고 잠이 들었다. 시하는 유유를 업고 다시 용성으로 돌아왔다. 어렵게 마음씨 착한 집을 만나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유유는 시하보다 더 일찍 일어나더니 더는 울고 떼쓰지도 않았고, 비열한 오라버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전보다 더 과묵해졌다.
믿고 의지하던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으니 그늘이 있을 수밖에 없지.
시하는 성안 구경도 하고, 유유의 마음도 달래줄 겸 길을 나섰다. 성안은 어제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너무 북적거려 길을 걷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녀는 호기심이 동해 옆에 있던 상인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물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용성에 선인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에요.”
알고 보니, 이곳 용성의 성주는 무수(武修)였다. 비록 수행 계급이 높지는 않았지만 꽤나 이름이 있는 무수였다. 그리고 선문파(仙門派)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다.
용성의 반은 수선성(修仙成)이라고 할 수 있어서 항상 수사들이 나타났다. 많은 문파들이 제자들을 선발하기 전에 용성에서 영근을 시험했고, 영근이 있는 사람들은 다시 각 파로 들어가 시험을 치렀다. 많은 참가자 중 다음 시합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선출하는 방식이었지만, 수련 경험이 많고 소질이 있는 사람은 바로 문파의 선택을 받아 제자가 되기도 했다.
시하는 순간 자신이 옥화파에 갔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가 마지막 시험에서 떨어진 이유는 영근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낮에 선문 어음파(御音派)에서 제자를 선발하는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 국민의 공공의 적으로서 선문이라는 말을 들으니 시하는 갑자기 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덜덜 떨렸다. 그녀가 어디로 빠져나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유유가 갑자기 그녀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시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유유와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유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을 꼭 잡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저 수선(修仙)을 하고 싶어요.”
“왜?”
“오라버니가 계속 선인이 되고 싶다고 했으니 저도 가서 보고 싶어요.”
시하는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헌림이 혈육을 버리면서까지 하려는 수선이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걸까? 시하는 망설이다 유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유유, 잘 생각해봐. 수선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만약 제자로 뽑혀 선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언니하고도 헤어져야 하고.”
유유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그래도 강경한 의지를 보였다.
“그래, 그럼 이 언니가 함께 가 줄게.”
헌림의 일은 작은 가슴에 아주 깊은 상처를 남긴 듯했다. 아직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정신적으로 그렇게 어리지만 않았던 유유는 오라버니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애써 노력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견뎌보려는 걸 수도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길을 묻고는 유유의 손을 이끌고 제자를 받는다는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선문 사람들을 만날까 두렵기도 했지만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 먼저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하는 재수가 없었다. 사람이 재수가 없으려니 물을 마시다가도 치아가 빠지고, 사과를 먹어도 꼭 벌레 먹은 사과만 먹고, 화장실을 가도 꼭 화장지가 없던 것처럼.
다시 만난 헌림이 어음파 수사 앞에서 사납게 화를 내며 그녀의 신분을 밝힌 것이다.
“맞아요. 바로 저 여자예요. 저 여자가 예전에 자신의 성이 ‘시’라고 했어요. 그리고 제 누이는 저 여자를 ‘하 언니’라고 부르고요. 저 여자가 바로 그 마녀 시하예요!”
헌림은 점점 더 큰소리로 소리치며 간사하게 웃었다.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갖고 있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시하는 정말 헌림이라는 이 녀석을 쳐 죽이고 싶어졌다. 그는 자기 친동생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은혜를 원수로 갚는 아주 배은망덕한 놈이었다.